행정감시센터 공직윤리 2003-05-29   982

수사권 폐지, 밀고 갈까 거둬들일까

신념과 정치역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정형근 의원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이후 한나라당의 ‘국정원 폐지’ 강경론을 주도했던 정형근의원이 국정원 개혁 쟁점 중 하나였던 수사권 폐지를 놓고 애초의 한나라당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 의원은 29일 오전 10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 열린 참여연대 주최 ‘국정원개혁 대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일단 해외정보를 다루는 부서와 국내 안보정보를 다루는 부서를 분리하되, 국내보안담당 부서의 수사권은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유지하든지, 검찰이나 경찰에 이관하든지 공청회 등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주최한 국정원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원 개혁방안에 대한 다른 참석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고심의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 : 사이버참여연대)
정 의원이 단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의 ‘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추진기획단’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국정원을 폐지하고 해외정보, 대북정보, 대테러정보 등 3대업무만 전담하는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홍준표의원은 “대공관련 수사업무는 기무사와 검찰, 경찰 등으로 이관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정보기관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기정사실화했던 한나라당의 입장이 이날 정 의원의 발언에서는 검토 입장으로 후퇴한 것이다.

정 의원은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방향은 정해졌지만 내용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간첩수사를 검·경에 넘기자고 하는데, 이는 대공수사업무의 어려움을 모르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국내 정보기관의 대공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정 의원의 정보기관 수사권에 대한 미련은 “현재 국정원은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니라 ‘정보수사기관’이기 때문에 국정원 수사권 폐지 논란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는 처음의 발언부터 강하게 묻어났다. 국정원 개혁의 또 하나의 쟁점인 국정원의 예산통제에 대해서도 “세계 어느 나라도 정보기관의 예산이 공개되고 있지는 않다”면서 “미국도 국회 정보위에서만 공개를 하는데, 정보기관의 기밀유지에 대한 정보위원의 인식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고 밝혔다.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와 법률에 의한 통제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 주장에 대해 보안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다.

국정원 자체 개혁안에 대한 집중 성토

정 의원은 이밖에 지난 9일 발표된 국정원이 발표한 자체 개혁안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대공정보수집에 있어 수집과 분석조직을 분리했는데 본인의 경험상 이는 언제든지 기구를 확대할 수 있다. 또 동북아지원단 등 2개 기구를 신설해 오히려 조직을 확대했고, 인적인 구성에 있어서도 1급 이상 직원의 70% 이상이 특정지역 출신으로 이뤄져 상호견제 기능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이날 정 의원의 전체적인 발언은 고영구 국정원장과 서동만 기조실장의 임명 이후 국정원 폐지를 들고 나온 한나라당의 초강경론이 당의 정체성 논란, 노무현정부에 대한 대응 수위 등 여러 정치역학 사이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 의원은 “해외정보처와 국내 정보부서의 분리는 국정원 근무시절부터 절실하게 느꼈고, 참여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론의 추이는 ‘더 이상 국정원에 대해 한나라당이 미련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애자’는 즉각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 한나라당 국정원 폐지의 핵심 내용인 대공수사권의 검경 이전은 “이 정부 들어 간첩을 몇 명이나 잡았느냐?”는 김대중정부 시절의 한나라당의 평소 목소리와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라 당 내부의 혼란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후 박희태 대표가 ‘꼭 국정원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조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 발 물러서고, 국사모(국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 그동안 한나라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외부단체 및 내부 인사들의 반대에 직면하면서 초기의 강경 당론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반북반공 정치인이자, 국정원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정 의원의 고심은 한나라당이 국정원 폐지 법안의 국회 제출 시기로 잡은 오는 9월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단이 날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관 수사권은 고무줄”

국정원개혁 토론회 ‘수사권 폐지’ 대세 확인

▲참여연대 주최 ‘국정원개혁 대토론회’가 29일 오전 민주화기념사업회 강등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남창희 교수, 정형근 의원,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처장/사회),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처장/발제), 김성호 의원, 한상희 교수(사진 : 사이버참여연대)
“국가보안법 관련된 수사권 일체를 없애지 않는다면 정보기관의 속성, 보안사건 관련 사법기관의 보수성 등에 비춰 수사권의 확대를 막을 수 없다.”

참여연대가 주최한 “참여정부 국정원, 이렇게 바꾸자”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한상희 건국대 법대교수는 지난 5월 9일 국정원이 발표한 자체 개혁안의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 중에서 한 교수가 주목한 부분은 ‘국정원의 수사권 중에서 북한 또는 해외와 연관성이 없는 국내 보안범죄에 대한 수사는 검·경으로 이관하여 대폭 축소하고, 북한 또는 해외연관 보안범죄에 대해서만 수사하겠다’는 부분이다.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은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왔던 대공정책실의 폐지안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한 교수는 “국정원 수사권의 기초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국가보안법 관련 보안범죄인데, 국가보안법 관련된 일체의 수사권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반국가단체 구성, 반국가단체수행 목적 등의 혐의가 이적단체구성죄나 회합통신죄로 연결될 수밖에 없어 결국 수사권의 확대적용과 이로 인한 인권침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국내 보안범죄 관련 사법부의 판결과 정보기관의 개입 관행에 비춰 ‘북한 또는 해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범죄라도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충분히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국정원이 사찰정보 수집과 기관출입 금지에 대해서도 “역대 가장 취약한 소수정권으로서 정국돌파를 위한 수단으로 정보기관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국정원의 국내정보수집권 유보에 대한 비판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는 차병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사회로,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처장이 발제를 맡고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김성호 민주당 의원, 남창희 인하대 교수, 한상희 건국대 교수 등 4인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장유식 처장의 발제에 따라 토론회는 크게 수사권 폐지, 국내보안정보 수집,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역할 등 3가지의 쟁점에 맞춰 진행됐다. 김성호 의원은 △대공정책실 폐지 △해외정보수집 및 경제과학 기술정보, 국가안보를 위한 마약, 테러 등에 대한 정보수집 기능 강화 △국내 보안범죄 수사권의 검경이관 등을 주요 개혁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체로 수사권 폐지가 대세를 형성했다. 정형근 의원 역시 “수사권을 갖는 별도의 국내보안담당 기구를 신설할 지는 아직 검토단계지만 해외정보처는 외국의 정보기관처럼 수사권을 갖지 않는다”고 밝혀 최소한 정보기관의 수사권이 과거와 같은 범위와 강도로 적용될 여지는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참여연대는 토론회에서 제시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정원 개혁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할 방침이다.

장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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