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국가정보원 2019-12-03   2164

[연속기고] 국정원 수사권 폐지해야 할 이유 ② 어이없는 국정원 수사

해당 기고문은 2019.12.03. 오마이뉴스에 게재 되었습니다. [바로가기]

‘증거없지만 다 알아’, 혁명조직은 이렇게 탄생했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해야 할 이유 ②] 어이없는 국정원 수사

국정원의 수사권 이관(폐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며 중요한 권력기관 개혁방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법 개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정원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사이 국정원이 또다시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프락치를 활용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기 위해 증거를 날조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권한을 남용한 사례를 중심으로 ‘국정원 수사권을 폐지해야 할 이유’에 대해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편집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라고 한다)은 오직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만 받으며, 국가정보원법에 의하여 특별히 국가보안법 위반죄의 수사 권한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압수수색 현장에서, 국정원 조사실에서, 법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다. 법적으로 그들은 특별한 존재였지만 정작 나는 국정원 수사관들로부터 수사와 관련한 특별한 전문성을 발견하진 못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발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에게 당선시키기 위해 ‘댓글공작’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서울시 공무원 탈북자 간첩’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졌다.

 

바로 그 때 2013년 8월 28일, 소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터졌다. ‘터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원내 진보 정당에 소속된 7명이 체포되고, 그들의 신체, 집, 사무실과 차 3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비밀 엄수의 의무가 있는 국정원 수사관으로부터 누설되었음이 틀림없는, 사건의 증거인 소위 ‘녹취록’은 8월 30일 한국일보에 ‘원문’이라며 전면 게재되었고, 언론들은 하루에 1200여 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 녹취록을 전면 게재했던 기자들은 추후 녹취록의 주요부분이 허위였던 것과 무관하게 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는 ‘국정원 댓글 공작’ 국면에서 ‘종북 세력 척결’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한국 사회를 격랑으로 몰아넣었던 이 사건의 대부분은 혁명조직 ‘RO’도 ‘내란음모’도 없이 국가보안법 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마무리되었지만, ‘내란선동’죄로 현재까지도 구금되어 있는 피고인이 있고,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과로 이어졌다. 의회에서 ‘왼쪽’ 목소리는 그렇게 제거되었다.

 

‘혁명조직’의 탄생 – 국정원과 ‘프락치’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5월 경기동부연합이 결성한 지하조직 “RO(Revolutionaary Organization)”로 모임을 개최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의 모습.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이 의원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다음 날인 29일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2013.8.29  ⓒ 연합뉴스

 

어찌 되었건 한국 현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결과를 만든 국정원인데, 기록상 확인되는 국정원의 ‘수사’라는 것은 약간 어이가 없을 정도다. 유일한 증거가 한때는 동지이자 친구였던, 국정원 협조자가 된 ‘프락치’의 ‘입’이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만들고 관리했던 그 ‘입’은 다섯 번의 진술로 ‘혁명조직’을 만들었다.

 

진술조서 1차

 

이 사건에서 프락치의 진술조서는 사건이 발생하기 3년 전 2010년 9월 8일 처음 등장한다. 프락치는 ‘2009년 10월 보궐선거 때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고, 생계가 곤란해서 활동에 전념할 수 없게 되었고, 북한의 3대 세습으로 환멸을 느꼈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진술’한다며, 국정원 조사실에서 약 3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다. 그는 당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 중 자신이 아는 경기 지역 출신 당직자 내지 활동가들의 조직표를 그린다.

 

▲  2차 진술조서 수사 과정 확인서 중 일부  ⓒ 하주희 변호사

 

 

진술조서 2차 

 

국정원과 프락치는 2010년 10월 28일 다시 진술조서를 작성하는데, 이 때 진술조서는 모 한정식집에서 작성된다. 진술하게 된 경위는 한달 전 조서의 앞부분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하고, 자신이 혁명조직에 가입하였고, 혁명조직과 관련한 직접적인 증거는 폐기하여 없어졌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는 조서를 작성한다.

 

한때 함께 활동하던 지인 5명의 경력을 담은 상세한 진술조서 27페이지를 작성하는데 이 조서는 조사를 시작한 지 단 20분 만에 작성된다. 조서 열람까지 합해도 단 30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미리 작성해두지 않는 한,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지 않은 한 27쪽짜리 조서를 20분 안에 작성할 수는 없다.

 

조사를 급히 마친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한정식집이니 밥을 먹었을 것이고, 이 진술조서를 작성한 후인 2011년 1월 25일부터 만나는 모든 이들과의 대화를 녹음했으니 이날 녹음기와 관련한 얘기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술조서 3차

 

2011년 2월 7일 이번에는 모 ‘횟집’에서 진술조서가 작성된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사건’의 ‘대상’이 정해지고, 그로부터 받은 USB 사진을 첨부하여 9페이지의 진술조서를 작성한다. 이 날의 수사과정확인서는 첨부가 되지 않아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역시 얼른 끝내고 회를 먹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영장 없이 녹음한, 이제는 표적이 된 지인의 음성을 확인했을 수도 있다.

 

진술조서 4차

 

2011년 9월 15일 역시 모 한정식 집에서 프락치의 진술조서가 작성된다. 이 때의 진술조서를 보면 대략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프락치는 ‘2010년 11월경 조직원인 동지이자 친구가 찾아와서 활동 재개를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활동재개를 요청한 그 사람이 혁명조직의 조직원임이 틀림없는 이유를, 도저히 근거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20페이지에 걸쳐서 역시 단 45분 만에 작성한다.

 

그런데 당시와 관련하여 피고인들과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동안 보이지 않던 프락치가 2010년 11월 경부터 다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는 거다. 짠한 마음이 들어 얘기 나눴던 선배는 졸지에 ‘혁명조직’을 지도하는 ‘표적’이 되었다.

 

마지막 진술조서 5차 

 

이렇게 되지도 않는 일들을 ‘사건이 되게 하는 마지막 진술조서’는 2011년 12월 22일 모 ‘풍천장어집’에서 작성된다. 이번에는 대낮인 12:50에 만나서 그 ‘표적’을 만난 얘기를 단 10분 만에 15페이지의 조서로 작성한다. 이 마지막 조서에는 프락치와 ‘표적’인 선배가 만나는 사진이 선명하게 첨부되어 있다. 영장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맞춤 제작된 ‘혁명조직’

 

피고인 ‘선배’와 프락치와의 대화 녹음은 2011년 1월 25일부터 이루어졌고, 2012년 5월 8일까지 영장 없이 11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대부분 큰 의미 없는 중년 아재들의 대화였지만,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그들의 ‘불순한’ 어휘는 이들을 혁명조직의 구성원이 되게 했다.

 

영장 없이 녹음한 위법한 파일들은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법하게 녹음한 내용을 근거로 국정원은 ‘혁명조직’ 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2012년 6월 1일자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를 받았고, 이는 녹음파일이 쌓이는 만큼 계속 갱신되었다.

 

결국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에서 수사라고 한 것은 ‘프락치’에게 공작을 설득하고, 프락치에게 ‘조직’이 있다고 진술을 하게 하고, 구체적 혐의가 있든 없든 일단 뭐든 녹음해서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말을 찾아내고, 이적표현물을 확보하여 영장을 발부받아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대화를 녹음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파일을 공개하여 사건을 만든 것이다.

 

국정원이 하는 국가보안법 수사라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와 같이 혐의가 있어 수사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국정원의 위 제작 과정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의 사생활 침해와 기본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녹음하는 것이 헌법적 비례의 원칙에 맞는 것인지 검토해본 적이 없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해야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 모습 지난 9월, 국정원이 이석기 내란사건 이후 또다시 프락치를 이용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 모습 지난 9월, 국정원이 이석기 내란사건 이후 또다시 프락치를 이용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 참여연대

 

정보기관이 수사까지 하는 다른 예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영국, 독일, 미국에서도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국내와 해외의 정보 업무도 구분하는 추세다.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한 경우의 대표적인 폐해가 독일의 나치 정권인데, 독일은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질 수 없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수사를 하는 경찰의 정보 공유와 관련하여서도 엄격한 법적 제한을 두고 있다.

 

그동안 국정원이 저지른 반헌법행위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만들어진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 역시 2017년 11월 13일 자신들의 활동을 마무리 하면서 “△국정원 명칭 변경 △ 수사권 이관 △ 직무 범위 명확화·구체화 △ 예산 집행의 투명성 제고 △ 내·외부 통제 강화 △위법한 명령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권 활성화 등 원(院) 개혁 관련사항을 면밀 검토, 국정원법 정비안을 조속히 마련해 연내(年內)에 국정원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국회의 입법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미 위 내용을 담은 법안도 발의되었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국정원 개혁을 위한 걸음이 뒤로 밀리는 동안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리스트는 계속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하주희 변호사. 당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및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원회 변호인단’ 소속 변호인. 현재는 법무법인 율립의 대표변호사이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입니다.

 

해당 기고문은 2019.12.03. 오마이뉴스에 게재 되었습니다. [바로가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