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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개혁
  • 2005.06.09
  • 1355
  • 첨부 1

국가안보 ‘과식’ 알권리 ‘찬밥’…참여연대, 국정원에 소 제기



“국가안보 유해” 국정원 공개거부, 다른 부처들도 대부분 “안돼”

보호가치 없는 것도 모두 자물쇠


문: 한국에는 비밀이 몇 건이나 될까?

답: “절대로 알 수 없다.”

한국의 비밀은, 정상을 쉽사리 내주지 않는 에베레스트보다도 접근이 어려웠다. 내용이나 제목은커녕 ‘몇 건’인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한겨레>와 참여연대는 지난 3월 국가정보원에 당시까지 생산된 △국정원의 급수별 비밀지정 기록물 건수 △공공기관별 비밀지정 기록물 건수 등을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공공기관의 장들이 6월 말과 12월 말을 기준으로 해마다 두 차례 비밀 보유현황을 국정원장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국정원은 전체 비밀 보유현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보기관을 비롯한 각 공공기관과 국가 전체의 비밀 보유현황에 대한 공개는 정보역량 노출 등 국가안보상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외교통상부와 행정자치부 등 13개 주요 부처에 “국정원에 통보한 비밀관리기록부와 목록 및 건수”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이번에도 모두 ‘국가안보’라는 벽에 부닥쳤다.

국방부는 2004년 국정감사 때 ‘등급별 비밀 취급인가증 보유인원 현황, 2004년 현재 대외비 이상 비문(비밀문서) 현황’ 등 비밀 보유현황을 공개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우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국방부가 공개한 비밀 건수는 Ⅰ급 9건, Ⅱ급 22만9707건, Ⅲ급 36만7929건 등 모두 59만7645건이었고, 대외비는 53만466건이었다. 국방부는 “보유현황 가운데 실제 생산 보유건수는 9만2651건(Ⅱ급 3만7298건, Ⅲ급 5만5353건)이며, 보유건수(대외비 제외)에는 사본 부수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국감 당시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에게 서면제출한 자료가 외부에 알려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원도 1월 “특수자료관이 설치된 통일부·외교부·국방부·대검찰청·경찰청 등이 국가기록원에 통보한 비밀기록물 생산현황”을 공개하라고 청구하자, 이를 공개했다. 내역을 보면, 통일부는 2001년 1588건, 2002년 904건, 국방부는 2001년 2560건, 2002년 542건, 외교부는 0건 등이었다.

과연 국정원이 공개를 거부한 ‘비밀 건수’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 법원도 비밀로 분류됐다는 이유만으로 비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보호해야 할 실질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미국은 정보보안감독국(ISOO)이 해마다 연차보고서를 내 행정부가 한해 동안 생산한 등급별 비밀 건수와 비밀해제 건수 등을 공개하고 있다. 비밀기록물의 제목도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난해 미국 행정부가 만들어낸 비밀은 35만1150건으로, Ⅰ급 1만1435건(3%), Ⅱ급 25만8762건(74%), Ⅲ급 8만953건(23%) 등이었다. 연차보고서는 홈페이지에도 올라 일반인도 볼 수 있다.

국정원이 이의신청을 기각하며 “미국이 공개하는 비밀현황은 정부기관의 당해연도 신규지정 비밀건수에 국한된다”고 밝혀, 다시 “1998년부터 매년 신규지정 비밀기록물 건수”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국정원은 이번엔 “독일·일본 등 대부분 국가가 정보기관을 비롯한 각 기관의 신규지정 비밀기록물 건수를 국가안보상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거부했다.

분류잣대 아직도 ‘냉전 눈금’

국가정보원법에 포괄규정, 경제·과학분야 포함하되 대상 구체화 풀건 풀어야

한국의 비밀 관련 사항은 국가정보원법 3조 2항(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에 근거한 보안업무규정에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

비밀은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 안전보장에 유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국가기밀”이라고 업무규정은 정의하고 있다. 비밀은 중요성과 가치의 정도에 따라 Ⅰ급·Ⅱ급·Ⅲ급으로 나뉜다. Ⅰ급은 “누설되면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전쟁을 유발하며, 국가의 방위계획·정보활동 및 국가방위상 필요불가결한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위태롭게 하는 등의 우려가 있는 비밀”이다. Ⅱ급은 “누설되면 국가 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비밀”이며, Ⅲ급은 “누설되면 국가 안전보장에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다.

1964년 3월 제정된 보안업무규정은 한 차례 일부 개정된 뒤 70년 전문 개정됐다. 이후에도 다섯 차례나 부분적으로 개정됐다. 그렇지만 비밀 개념의 중심은 여전히 ‘국가안보’에 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정보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경제 분야가 국가이익의 중요한 분야로 등장한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비밀도 국가안보 중심에서 산업·통상·과학·기술 등의 분야로 포괄하는 쪽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흥식 중앙대 교수(행정학)는 “보안업무규정이 남북간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만들어져 환경의 변화를 적절하게 담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진전에 발맞춰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비밀관리제도를 개선해 알권리와 비밀보호를 통한 국가이익 사이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밀의 범주를 확대하는 대신 비밀 규정을 엄밀하게 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진 비밀관리제도를 정보가 더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가안보 ‘과식’ 알권리 ‘찬밥’ (이광수 변호사,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장)

참여연대, 국정원에 소 제기, “보유현황은 단순 통계일뿐”

참여연대는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내기로 했다. 국정원이 ‘비밀기록 단순현황’마저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비밀기록 현황은 ‘단순한 통계자료’에 불과하다. 비밀기록물 건수는 비밀기록의 구체적인 사항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어렵다. 이런 통계자료를 공개한다고 해 국가안보상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는 없어 보인다. 설령 통계치가 이용되더라도 실제 내용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 비공개 결정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봐야 한다.

국방부는 2004년 국감 때 급수별 비밀분류 기준 및 취급규정 등 단순 통계현황을 공개했다.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와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정한 법률이 다르고, 이에 따라 정보공개의 범위와 내용, 강제성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국감 자료가 일반인에게 공개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공개 여부에 대한 결정을 다르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두 행정기관이 동일한 내용에 대해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행정의 일관성을 해쳐 국민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현행 비밀지정 및 해제 관련 법규가 미비하다. 따라서 비밀로서 가치가 없는 기록물이 부당하게, 그리고 과도하게 비밀로 분류된다.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떨어지고, 헌법에 보장된 알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단순한 통계자료로서의 가치밖에 없는 비밀 보유현황마저 공개하지 않은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자의적인 법률 해석을 함으로써 헌법과 정보공개법이 정한 국민의 알권리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한겨레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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