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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개혁
  • 2005.06.10
  • 1825
  • 첨부 2

13개 정부기관 공개 0…국정원·통일부 등 5년간 집계



영국의 <더타임스>는 2003년 3월7일치에 노무현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기사를 실었다. 외교통상부는 같은 달 10일 ‘노 대통령, 영국 더타임즈 회견’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Ⅲ급 비밀로 지정했다. ‘수/발신처’가 ‘주미대사’로 된 이 문서는 같은 해 12월31일 비밀에서 해제됐다. 보도 외에 어떤 숨길 내용이 있어 Ⅲ급 비밀로 지정됐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외교부는 비공개 회신을 보냈다. 특별하게 숨길 내용이 없어 보이는 ‘미국의 태풍피해 복구 지원금 전달’이란 제목의 문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겨레>와 참여연대는 1월31일 외교부의 북미1·2과, 동북아1과 등 세 과에서 최근 5년 사이에 비밀해제된 기록물의 목록(문서 제목)을 달라고 요구했다. 3월8일 한 상자 분량의 자료가 왔다. 그런데 대부분이 ‘문서 제목’과 ‘수/발신처’라고 쓰인 칸이 시커먼 먹칠이 돼 있었다.(사진 참조). 비밀보호 기간이 끝난 문서는 언제든지 내용을 열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를 절감했다.

외교부의 세 과가 비밀에서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기록물은 1만5339건이지만 ‘문서 제목’이 공개된 것은 6372건으로 41.5%에 그쳤다. 대검찰청은 338건 가운데 19건의 제목을 공개했고, 319건은 비공개했다. 이것도 문서 ‘제목’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12월 ‘APEC회의 대만인사 접촉 유의사항 통보’라는 문서를 Ⅲ급 비밀로 지정하고, 4일 만에 비밀을 해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내용은 공개를 거부했다. 통일부에 비밀이 해제된 문서의 공개 여부를 묻자 “211건 가운데 공개 건수 1건, 비공개 건수 210건”이라고 답했다.

외교부는 목록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반문서로 재분류된 문서의 공개 여부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에 따라 한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국가안보·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등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안보에 해롭지 않아 비밀을 해제한 뒤 다시 국가안보에 해롭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셈이다.

일반문서 재분류해도 대부분 ‘비공개’ 자물쇠

‘공개’ 하더라도 제목만 살짝…내용 접근봉쇄

비밀보호기간 끝나면 빛 못보고 ‘폐기’ 많아




정부 부처의 정보공개 담당자들조차 “일반문서로 재분류된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관련 법령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심지어 비밀 기록물 가운데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것을 비밀기록으로 관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비밀이 풀린 문서의 제목만 공개하고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도 없다. 미국은 비밀이 풀리면 내용까지 곧바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 부처의 고위공직자는 “직접 비밀문서를 재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서무를 보는 직원이 서류를 뭉치째 들고 오면 사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재분류가 형식적으로 이뤄져 한 번 매겨진 비밀등급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비밀문서가 폐기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안업무규정은 비밀보호 기간을 정한 ‘예고문’이나 국정원장의 요청 등에 따라 비밀을 폐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교부에 지난해 4월 Ⅲ급 비밀로 지정됐다가 12월 말 비밀이 풀린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에 대한 기금지원 관련 의견송부’라는 문서를 공개하라고 요청하자, “다른 부처에서 생산한 문서로서 예고문에 의거 파기되어 자료가 부존재”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기록물관리법시행령 제37조는 비밀 기록물을 폐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안업무규정과 명백한 모순이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비밀 보호기간이 끝나면 곧 폐기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며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비밀기록은 되도록 영구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기록물관리법은 기록물의 ‘보존’ 기간을 ‘영구·준영구·20년·10년·5년·3년·1년’ 등 7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밀의 내용과 가치를 보고 정하는 비밀 ‘보호’ 기간은 보존기간과는 개념이 다르다. 기록물의 보존 기간이 비밀보호 기간보다 길어야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보존기간이 보호기간보다 짧거나 같게 되면 보호 기간이 끝나는 즉시 비밀문서가 폐기될 우려가 있다.

13개 정부기관 공개 0 (최광호/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실행위원)

국정원·통일부 등 5년간 집계…비공개 기준도 부처별 제각각

비밀을 해제하고서도 비공개로 분류하면 일반 시민에겐 비밀해제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 비공개 정보에 대한 재분류 규정이 미비해 한 번 비공개한 기록물은 영원히 햇빛도 보지 못하고 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물관리법은 비공개 기록물은 30년이 지나야 재분류를 하도록 하고 있다. 보존연한이 20년 이하인 비공개 기록물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고 폐기돼도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정보공개법은 비공개 대상 정보라 할지라도 시간의 경과 등으로 비공개 필요성이 없어지면 공개하도록 규정(제9조2항)하고 있다.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비공개 기록물이 이 조항에 따라 얼마나 재분류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랬더니, 최근 5년 동안 비공개 기록물 가운데 공개문서로 된 것이 외교통상부가 85건이고, 국가정보원·통일부·국방부·경찰청 등 13개 부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같은 내용에 대해 기관마다 공개 기준도 들쭉날쭉이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관련 문서인 이른바 ‘브라운 각서’를 외교부는 2004년까지 비공개로 했다. 그러나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는 1981년 발간한 국방조약집을 통해 이미 공개했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데서 온 혼선이다.

재분류 이후 공개 대상자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다. 국가기록원은 5월 30년이 경과한 4314권의 비공개 기록물들을 재분류했다. 1064권(24.6%)은 공개하고, 16권(0.37%)은 비공개했다. 3234권(74,9%)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개인신상정보여서 비공개 대상이지만 공개 취지를 살려 제한적으로 공개했다는 설명을 붙였다. 하지만 개인신상정보가 문제라면 개인신상정보만 삭제하고 공개하면 될 일이다.

결론적으로 비공개 기간이나 재분류에 명확한 규정·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공개되지 않고 폐기될 수 있는 법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비밀 또는 비공개 기간은 해당 기록물의 전체 보존기간에 포함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비밀무장’ 경찰 해제 0 (이재명/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

매년 3만여건 만들어내…“재분류 아예 안 했을 수도”

국가정보원과 외교통상부, 국방부, 경찰청 등 14개 기관이 최근 5년 동안 비밀을 해제한 기록물 건수를 보면, 정부의 비밀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할 수 있다. 통일부는 211건, 국방부는 20건, 국정원은 14건 만을 비밀문서에서 일반문서로 재분류했다. 경찰청은 단 한 건의 비밀도 해제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약 31만건의 비밀기록을 해제했다고 밝혔다.

그럼 이들 기관이 해마다 만들어낸 비밀기록은 얼마나 될까? 단 한 건도 비밀을 해제하지 않은 경찰청은 2002년 3만6648건, 2003년 3만6998건의 비밀을 생산했다고 국가기록원에 통보했다. 해마다 3만여건의 비밀을 만들어내도 비밀해제는 0건이다. 통일부는 2002년 1588건, 2003년 904건, 국방부는 2560건과 542건 등의 비밀을 만들었다고 국가기록원에 통보했다. 외교부는 통보조차 안 했다. 비록 같은 기간은 아니지만 생산현황과 비밀해제 현황을 단순비교해도 비밀이 해제된 기록은 채 1%도 안 된다. 비밀해제가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종흡 경남대 교수(사학)는 “기관들이 재분류 자체를 안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기관의 비밀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비밀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비밀기록이 재분류 과정에서 폐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록물관리법이 기록의 무단 폐기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비밀의 재분류 절차를 정하고 있는 보안업무규정은 비밀을 폐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비밀기록 담당 공무원들은 아예 비밀 폐기가 가능하도록 관계법령을 명확하게 정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이 비밀기록은 폐기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은 기록 보존 차원에서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비밀 폐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비밀 폐기 여부에 대한 외부의 감시나 견제가 필요한 이유다.



한겨레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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