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5-22   1560

[판결비평-판결읽기1] “다수의견 대법관들, 사학비리에 눈감다”

지난 5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리혐의로 물러난 구 재단측 이사들이 교육부가 학교 정상화를 위해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임시이사들이 구 재단측과 협의하지 않고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권한 밖의 일이며 따라서 정이사 선임을 한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사건번호 2006다19054)하였다.

학내 분규와 공금횡령 및 부정입학 혐으로 김문기 전 이사장이 사법처리를 받는 등 몸살을 앓고 있던 상지대는 1993년 이후 교육부가 구 사립학교법에 의해 파견한 임시이사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2003년 학교가 정상화되고 이들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 9명을 선임하여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구 재단측 이사들이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고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재판부는, 이미 임기가 만료되었거나 사임한 후이므로 정이사 선임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각하하였다. 이와 달리 2심 재판부는, 학교가 정상화되었다면 임시이사들은 경영권을 구재단측 이사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또한 구 재단측 이사들을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해 학교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한다며 구 재단측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8명의 대법관들(대법관 이용훈(대법원장), 고현철, 김용담, 양승태, 김황식, 박일환, 김능환, 안대희)은 지난 번 고법판결과 같이 구 재단측 이사들이야말로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자들로서, 단순한 위기관리자인 임시이사들이 이들 구 재단측을 완전히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또다시 구 재단측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대해 5명의 대법관들(대법관 김영란, 이홍훈, 전수안, 박시환, 김지형)은, 구 재단측 이사들은 이미 임기만료되었거나 사임한 후이므로 정이사 선임에 대해 무효를 다툴 권한도 없을 뿐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임시이사들이 학교 정상화의 한 방편으로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당연한 권한이라며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다수의견에 대해서 사립학교는 비록 사인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되었지만 교육이라는 공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공공 시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설립자의 재산권만 강조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다. 참여연대는 사립학교의 공공성과 자주성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보고 토론해 보기 위해 이번 판결을 비평대상으로 선정하였다.(편집자 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판결

2007년 5월 17일 대법원은 상지대의 정이사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부패사학의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사법 쿠데타’라고 할 만하다. 상지대의 정이사가 무효라는 김문기 전이사장 쪽의 요구에 대해 13명의 대법관 중 8명이 찬성했고 5명은 반대했다. 8명의 대법관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승인할 권한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상지대의 새로운 정이사는 임시이사 이전의 정이사가 승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도둑에게 경찰의 임명을 승인받아야 한다는 엽기적 판결이다.

8명의 대법관은 사실상 상지대의 개혁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임시이사가 파견되기 이전에 상지대는 부패사학의 대명사와 같았다. 온갖 부패와 비리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교수와 직원, 그리고 학생이 힘을 합쳐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어렵게 개혁이 시작되고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상지대의 구성원들은 시민의 참여로 운영되는 ‘시민대학’의 전형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러한 노력을 인정해서 교육부는 2003년 12월에 상지대의 임시이사체제를 11년만에 끝내기로 결정했다. 8명의 대법관은 이런 고난의 역사를 부정하고 상지대의 시계를 15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부패사학의 문제

부패사학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많은 사학재단이 사실상 한푼의 돈도 내놓지 않고 오로지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소유하고 이용하고 있다. 그 결과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 횡령, 학교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학교 건물의 건축과 관련한 뇌물 수수, 학교의 기자재 구입과 관련된 비리, 교수 채용이나 학생 입학과 관련된 비리 등의 온갖 저열한 문제들이 많은 사립학교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무참한 상황에서 상지대는 부패사학의 문제를 개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일군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

그러므로 8명의 대법관은 상지대의 개혁을 가로막은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부패사학의 문제를 개혁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를 짓밟은 것이다. 그들은 부패사학의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에게 부패사학의 문제를 해결할 정이사의 임명을 승인받도록 결정했다. 이로써 부패사학은 언제까지고 부패사학으로 존속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부패사학의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 곧 교육자의 탈을 쓴 도둑들이 ‘회개’하기 전에는 부패사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패사학을 옹호할 거라면, 경찰이나 법원이 과연 왜 필요한가? 8명의 대법관은 부패사학의 수호자가 되었다.

다수 의견 판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한국의 사법부는 독재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이른바 ‘사법살인’이라는 참으로 부끄러운 잘못을 저지른 과거가 있다. 한국의 사법부는 오욕의 역사를 직시하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8명의 대법관은 한국의 사법부를 불신하게 하는 오욕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8명의 대법관은 김문기 전이사장의 손을 들어주어서 상지대의 개혁을 짓밟았다. 김문기 전이사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년에 걸쳐, 아니 사실은 20년에 걸쳐 펼쳐진 개혁의 역사가 뭉개졌다. 8명의 대법관은 사학개혁과 사법개혁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었다.

대법관의 임기는 무려 6년이고 연임도 가능하다. 정년인 65세가 될 때까지 대법관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법관은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병의 하나인 부패사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고, 부패사학의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과 한패가 되어 부패사학의 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번의 판결은 대법원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를 확인해주었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대법관의 판결에 대한 철저한 시민의 감시가 행해져야 한다. 8명의 대법관은 사법부에 대한 시민감시의 중요성을 다시금 증명해주었다.

끝으로 윤영철 변호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법관을 거쳐 헌법재판소 소장을 지낸 윤영철 변호사는 그야말로 이 나라의 법조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김문기 전이사장의 변호를 맡았다. 이것은 그의 이력이나 위상에 비추어 보아서 대단히 걸맞지 않은 수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의 전관예우’에 대한 의혹이 빚어졌고, 당연히 그가 받기로 한 돈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윤영철 변호사와 같은 사람은 ‘공익’을 더 깊이 고려해서 사건을 수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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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교수(상지대,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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