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5-25   2322

[판결비평-판결읽기2] 우리가 상지대 사건을 주목하는 이유

사법권력에 사학 공공성 무너지다

지난 5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리혐의로 물러난 구 재단측 이사들이 교육부가 학교 정상화를 위해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임시이사들이 구 재단측과 협의하지 않고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권한 밖의 일이며 따라서 정이사 선임을 한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사건번호 2006다19054)하였다.

학내 분규와 공금횡령 및 부정입학 혐으로 김문기 전 이사장이 사법처리를 받는 등 몸살을 앓고 있던 상지대는 1993년 이후 교육부가 구 사립학교법에 의해 파견한 임시이사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2003년 학교가 정상화되고 이들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 9명을 선임하여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구 재단측 이사들이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고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재판부는, 이미 임기가 만료되었거나 사임한 후이므로 정이사 선임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각하하였다. 이와 달리 2심 재판부는, 학교가 정상화되었다면 임시이사들은 경영권을 구재단측 이사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또한 구 재단측 이사들을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해 학교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한다며 구 재단측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8명의 대법관들(대법관 이용훈(대법원장), 고현철, 김용담, 양승태, 김황식, 박일환, 김능환, 안대희)은 지난 번 고법판결과 같이 구 재단측 이사들이야말로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자들로서, 단순한 위기관리자인 임시이사들이 이들 구 재단측을 완전히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또다시 구 재단측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대해 5명의 대법관들(대법관 김영란, 이홍훈, 전수안, 박시환, 김지형)은, 구 재단측 이사들은 이미 임기만료되었거나 사임한 후이므로 정이사 선임에 대해 무효를 다툴 권한도 없을 뿐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임시이사들이 학교 정상화의 한 방편으로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당연한 권한이라며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다수의견에 대해서 사립학교는 비록 사인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되었지만 교육이라는 공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공공 시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설립자의 재산권만 강조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다. 참여연대는 사립학교의 공공성과 자주성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보고 토론해 보기 위해 이번 판결을 비평대상으로 선정하였다.(편집자 주)

판결, 그 후

임시이사에게 정이사 선임 권한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상지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상지대는 5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의 입장과 향후계획 등을 밝힐 계획이다. 조석곤 상지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경제학과)는 “상지대 사건은 더 이상 상지대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대학가는 상지대 판결에 따른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지켜보고 있다.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을 비롯해 사립학교법 재개정 논의, 헌법재판소에 계류된 개정 사학법 위헌소송 등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지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당장 임시이사가 파견돼 있는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사학의 ‘공공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교수단체는 잇따라 대법원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는 성명서를 통해 “부패 사학 개혁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례를 만들어낸 상지대에 대해 대법원은 김문기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상지대의 개혁에 급제동을 걸었고, 한국 사학 개혁 전체의 진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을 놓았다”고 비판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이하 교수노조)도 “단순히 상지대라는 한 대학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헌법을 비롯한 우리 교육법이 핵심가치로 삼고 있는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해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사학 전반, 우리 교육 전반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개탄스러운 일이다”고 꼬집었다. 교수노조는 6월 중순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실과 공동으로 상지대 사태 관련 공개 토론회도 열 예정이다.

보수ㆍ진보 언론의 서로 다른 시각

“사학 자주성은 헌법적 권리 재확인”<조선일보>, “국가의 과도한 사학개입에 제동”<동아일보>, “교육부 ‘비리사학 견제’ 차질 빚을 듯”<한겨레>.

상지대 판결이 나온 다음날(18일) 소위 보수·진보로 분류되는 일간지 논조는 확연히 달랐다. 보수신문은 사학의 자율성에 방점을 찍어 사학법 재개정 논의의 불씨를 살리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힘이 실리게 된 셈이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상지대 판결과 사학법 법리논쟁은 별개의 문제지만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대법원 판결이) 사학법 재개정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정 사학법 제25조 등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이 헌재 판결의 ‘예고편’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전국대학노동조합은 “더 큰 문제는 이번 판결이 비단 상지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며 “당면해 있는 사학법 위헌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나아가 모든 사립학교의 학원민주화 투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대, 대구대, 영남대 등 임시이사 체제인 대학에도 상지대 사건은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겼다. 이상열 조선대 교수협의회장(물리학과)은 “현재 정이사추진위원회를 가동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구 재단이 다시 개입하려고 하는 여지를 줄 수 있다”며 “학교를 파행으로 몰고 간 이들이 다시 들어온다는 데 구성원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석균 영남대 교수회 의장(디스플레이화학공학부)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앞으로 문제가 없으려면 (구)재단 측과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와 걱정이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조만간 상지대에 임시이사·정이사 파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김 씨가 ‘상당한 재산을 출연하거나 학교 발전에 기여한 자’에 해당하는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상지대는 김 씨의 재산 출연분이 적고 학교 발전에 기여한 자가 아닌 ‘분란을 일으킨 자’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김 씨의 의견을 반영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개정 사학법에 따라 이사의 3분의 1이상은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하는 자로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김 씨는 상지대에 계속 발을 붙이지 못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재단 관련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례적 판결

서울고등법원이 ‘종전 이사’라는 새로운 용어를 써가며 사학법인의 재산권을 처음 인정한데 이어 대법원의 판결은 학교법인 상지학원 관계자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고 밝힐 만큼 이례적이었다.

재판부는 ‘비리를 저지른 학교법인의 임원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행정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시정하기 위한 수단이 지나쳐 함부로 학교법인의 정체성까지 뒤바꾸는 단계에 이르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에 따라 김 씨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구 사립학교법상의 임시이사에게 정식이사 선임권한이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종전 대법원 판결(1970.10.30 선고 70누116) 등은 이번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관예우의 의혹?

소송 과정에서 불거진 전관예우 논란 등의 잡음으로 인해 사법개혁이 퇴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원고 측 변호인단에 뒤늦게 합류한 사실은 전관예우 아니냐는 지적을 불러 일으켰다. 윤 전 소장뿐 아니라 윤재식·박준서 전 대법관도 원고 측 변호인으로 일찍부터 활동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 판결 과정에선 원고와 변호인, 재판장이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교협은 “공익 구현을 위해서나 법조인의 명예를 위해서나 윤영철 변호사의 수임은 대단히 부적절했다”고 꼬집었다.

학계는 전관예우 논란에 따른 사법부 불신, 사법개혁의 퇴행을 우려하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과)는 “전직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이 퇴임 이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전관예우를 의심할만한 사건에 이름을 올리면 법관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이 클 것이다”며 “이는 결국 사법부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문기 씨는 상지대에 복귀하기 위해 줄기차게 소송을 진행했다. 무려 20여건이다. 김 씨는 2004년 10월 교육인적자원부를 상대로 ‘상지학원 정관변경인가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대법원은 당시 “상지학원의 설립자는 김문기 씨 등이 아니라 원흥묵 씨 등 8명”이라고 선고했다. 김 씨는 또 2005년 6월 상지대 및 상지영서대학이 사용하고 있는 시설용지 외 사유지(실습지)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다시 혼란 속으로 빠진 상지대의 앞날은…

상지대를 주목하는 이유는 상지대가 ‘시민대학’이라는 사학운영의 새 모델을 제시하며 ‘사학 공공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처음으로 임시이사에서 정이사 체제로 전환한 상지대가 빠른 시일 내 학교 운영을 정상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 구성원의 협력 때문이었다.

지난 4월 17일 오후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정이사 체제 수호를 위한 결의대회’엔 2천5백여명의 학교 구성원이 참여했다. 특히 상지대 학생 2천여명이 한 자리에 모인 광경은 인상적이었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한 학생은 “학교가 이제야 제대로 가고 있는데 대법원이 김문기 씨의 손을 들어주면 다시 혼란스러워지는 것 아니냐”고 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다. 이들 상당수는 2월 15일 대법원 공개변론 자리에도 참석했다.

상지대 사태가 김문기 씨를 중심으로 한 구 재단 측과 현 이사진 만의 문제가 아닌 상지대 구성원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성원의 협력은 상지대가 시민대학으로 재탄생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정이사 체제 전환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분규·비리를 정상화했다는 사실은 물론 새로운 대학운영의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93년 김문기 씨가 부동산 투기·부정입학 혐의로 물러나면서 임시이사를 구성한 뒤 10년 만에 시민대학으로 거듭난 상지대는 민주사학의 발전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민대학은 대학운영의 철학과 교육목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민주적인 대학운영 △의사결정과정 공개와 투명성 확보 △학생등록금과 국고 지원금에 ‘시민재정’을 추가한 대학재정 확충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이 대법원 판결 직후 “상지대가 한 단계 앞으로 나갔는데 이번 판결로 다시 한 단계 내려갔다”고 말한 것은 상지대 구성원이 느끼는 안타까움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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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교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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