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6-02   3746

[판결비평] 청소년도 국민이기에 주권자이다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많은 국가에서 선거권 행사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권 연령 기준을 19세로 규정하고 있어 19세 미만 청소년은 다양한 교육 제도의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 청소년들의 선거권 및 선거운동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합헌 6인 대 위헌 3인)했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래 비평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국민주권에 대한 부정이며, 청소년들은 성년이 아닐 뿐 주권자로서의 정치적 판단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 판결비평문을 한번씩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청소년도 국민이기에 주권자이다

 헌법재판소 2014. 4. 24. 2012헌마287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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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동 석 /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가만히 있으라’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학생들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 거 아니냐’, “안전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해놓고 지들끼리 다 나가고”, 또는 ‘갑판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나 그 의견은 거기에서 그냥 끝났다. 그 의견으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토론 그리고 그로부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실천으로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고 의탁하라던, ‘정치적으로 성숙한 성년자들’은, 권력자들은 우왕좌왕할 뿐 한 치의 협동도 하지 못함으로써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한편 한 달 후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아주대학교 종합관에서 경기도 청소년들은 “표는 없어도 할 말은 있다”고 교육감 후보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후보자들은 간략한 인사말만 할 수 있었을 뿐 청소년들과 정견을 토론할 수 없었다. 선거권이 없었고 그것은 곧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책 토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교육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이면서도 선거권 행사는 고사하고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청소년들은 후보자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후보자에게 요청할 수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세월호에서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고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자들은 어느 하나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폭력을 지속해서 저질러왔다. 헌법재판소도 그 폭력을 멈추게 하지 못하고 방관하고 청소년을 정치적으로 무능력자로 낙인찍었다.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25세 이상의 사람에게만 피선거권을 인정한 법조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6 : 3의 의견으로 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지방의회의원 등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조항과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조항,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만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정당법 조항 등을 합헌으로 결정하였다.

 

 

2. 정치적 판단능력은 키워나가는 것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앵무새 같은 논거는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현실상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경우,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거나,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법자의 판단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또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요즘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 청소년들도 알 만한 것들은 다 안다. 아니 우리의 헌정사를 되돌아보아도 과거의 독립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최근의 촛불집회 등에 이르기까지 청소년들은 올바른 정치적 판단과 함께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기는데 함께 했다. 그들은 미래의 시민이 아니라 국민의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 동료로서 늘 함께였다.

 

설령 청소년들이 정치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해도 자신이 누구와 생각을 함께 하고 있는지 또 나라를 위해서 누가 제대로 일을 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또 알기 위해서 그리고 판단하기 위해서 빼앗긴 정치활동의 자유를 요청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활동을 통해서 청소년들은 정치적 판단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과거 청소년 시절 정치적 판단능력을 키울 기회가 없었던 성년자들이야말로 아직도 정치적 판단능력과 소통능력이 부족한 것 아닐까?

 

헌법상 보통선거의 원칙은 개인의 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선거권을 인정한다. 지능이나 학력에 의해 선거권 인정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미성년인 모두를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보통선거원칙에 위배되며, 차별이다. 특히 18세 이상 19세 미만의 사람의 경우 더욱 모순적이다. 그들은 근로능력이나 군복무능력 등을 인정받으면서도 선거권을 부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이 그렇다고 갓난아이까지 선거권 주체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민법상 성년 나이보다는 낮추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법상 성년 나이는 개인인 미성년인을 보호하려는 취지인데 비하여 선거권 연령은 개인인 미성년인의 보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는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이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는 동등한 구성원들 모두의 전체 의사를 모아 함께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능력 부족은 다른 동료에 의해 커버된다. 성년자의 결정에 의한 미성년인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것은 보호를 명분으로 한 인권과 주권의 탈취이며, 민주시민 아닌 신민 양성이다.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만을 제한할 뿐, 선거운동 외에 정치적 표현행위는 제한 없이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선거권 문제는 정당 활동까지 연장된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만이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인권의 현실에 대하여 무지하다. 더 큰 문제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소년들의 눈은 가리어져 있고 귀는 막혀져 있으며 입에는 재갈이 물리어져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참담한지를. 

정당 활동 금지의 근거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정당의 헌법상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미성년인들이 정당의 기능에 어떠한 저해가 된다는 것인가? 정당 활동은 정당 활동 역시 다른 정당원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점에서 문제될 것도 없다. 헌법재판소는 ‘미성년자는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고 가치중립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는데, 도대체 가치중립이란 무엇인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하는 민주시민 양성에 부합한다.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약한 사람이 정당을 설립하고 가입함으로 인하여 정당의 기능이 침해될 위험성은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미성년인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정치하는 자들 또는 성년자들에게 청소년들이 이용당할 것이라는 전제는 청소년들의 자율적 판단능력을 무시한 처사이고, 청소년들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 또는 성년자들의 탐욕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문제는 성년자들이다.

 

 

3. 민주주의는 함께 성숙해가는 과정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정치적 판단능력을 갖추어야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일까? 개인의 수준을 따지지 않고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또 그리고 공동결정으로 대표를 선출하자는 게 선거이고 민주주의이다. 설령 청소년들의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성년들과의 토론 속에서 능력을 키워나간다. 실천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다. 그리고 만19세가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정치적 판단능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합리적 근거 없는 착각이다. 배움의 과정은 일방적이지 않다.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인정하면 성년인 또한 정치적 판단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몇 가지 방향을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거권 또는 국민투표권 및 주민투표권 연령은 민법상 성년 연령보다 최소 한 살 이상 낮춰야 한다. 둘째, 선거권 연령과 피선거권 연령을 달리 할 까닭이 없다. 셋째, 정당 가입 및 활동은 연령 제한을 둘 이유가 없다. 개인의 선택에 맡기면 될 일이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요청해야 한다. 정당은 민주주의 학교이어야 한다. 넷째, 선거과정에서 청소년들도 선거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교육을 받을 권리로 이해해야 한다. 혼탁한 선거는 성년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그들이 배제 당함으로써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다. 다섯째, 교육감 선거만큼은 일반 선거보다 그 연령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 그것은 청소년들이 당사자 및 소수자로서 외면당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청소년들은 다수가 될 수 없기에 청소년들이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정치권의 무능력과 부패는 청소년들을 배제를 통해서는 절대 달성될 수 없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은 소수 정치꾼들의 독과점을 방조할 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조기교육과 실천을 통한 학습만이 한국 정치를 혁신할 수 있다. 그 힘은 바로 지금 국민으로서 주권자인 청소년들에게 있다. 그들은 아직 그저 성년이 아닐 뿐 주권자로서의 정치적 판단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정치적 활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청소년 자신의 몫이다. 주권적 개인만이 주권적 국민이 된다. 성년들의 비성년인에 대한 신민 지배를 멈춰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국민주권에 대한 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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