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리포트] 헌법재판소 20년, 헌법재판관 및 헌법연구관 구성분석(2) “헌법재판소를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헌법재판소 20년, 헌법재판관 및 헌법연구관 구성분석(2)
“헌법재판소를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헌법재판소는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정치적 민주화의 제도적 상징이다.
헌법재판소의 독립과 민주화


이국운 (한동대 교수, 헌법/법사회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헌법재판소는 누가 움직이고 있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정치적 민주화의 제도적 상징이다. 거듭되는 대통령정치의 실패와 의회정치의 무능에 비하여 지난 20년간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민주화의 메인 스테이지가 되어 왔다. 독재시대의 각종 법령에 대한 과거청산, 대의과정의 불평등에 대한 교정,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폐습과의 절연,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에 대한 공적 승인 등에서 헌법재판소와 그 공헌도를 견줄 수 있는 국가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심화가 헌법재판소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체로 설립 10주년이 지난 시점부터 헌법재판소는 명실 공히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다툼을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심판자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1998년 김종필  국무총리서리의 임명과 관련된 ‘대통령과 국회의원간의 권한쟁의사건’(98헌라1)은 그 기점이었으며, 이후 이런 흐름은 사법적 최고성(judicial supremacy)의 결정판이라 할 2004년의 두 결정, 즉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사건’(2004헌나1)과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법 위헌확인사건’(2004헌마554)에까지 도도하게 이어졌다.


시민들의 정치적 수요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국가기관이 그렇지 않은 국가기관들에 비하여 더 강력한 권력을 누리게 되는 것은 민주정치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적인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민주정치와의 관련 속에서 한 가지 매우 초보적인 사실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최강의 사법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실제로’ 누구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는가? 이 무소불위의 사법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가?


순수하게 헌법적 통치구조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이 질문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헌법 제111조는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3인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다른 3인은 국회가 선출한 사람을 임명하며, 나머지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을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대표의 대표’라는 한 마디에 집약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해석의 최종적인 확정을 위하여 국회, 대통령, 법원의 합동에 의해 구성된 일종의 정치적 협상클럽이며, 따라서 그 제2선의 대표들은 자신들을 선임한 제1선의 대표들을 대변할 수밖에 없으므로 ‘헌법재판소를 실제로 누가 움직이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표의 대표’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헌법재판소를 실제로 누가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민주정치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과 같은 제1선의 대표들은 항상 피대표인 유권자시민들과의 관계에서 규정된다. 그 점에서 민주정치는 애초부터 유권자시민들과의 관계에서 ‘책임정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제1선의 대표들에 의해 지명, 선출, 임명되는 제2선의 대표들은 상황이 다르다. 유권자시민들이 관계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등장하지 않는 까닭에 ‘민주적 책임정치’의 요청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제2선의 대표들(‘대표의 대표’)에게 ‘실제로 누가 움직이는가?’의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적 책임정치의 요청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욱이 대한민국처럼 불과 10여 년 만에 헌법재판소를 통한 사법통치(juristocracy)를 논의하게 된 경우에는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역대 헌법재판관과 헌법연구관 230여명, 그들은 누구인가?”


헌법재판소 설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그동안 헌법재판소를 ‘실제로’ 움직여왔던 사람들에 관한 분석을 시도했다.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37명 또는 39명(2인의 연임자(김진우, 김문희)를 포함시킬 경우)의 헌법재판관들과 이들을 실무적으로 보조해 온 헌법연구관 등 총 195명의 헌법재판 보조 인력들이 주된 분석대상이었다.

제도적 외피를 걷고 들여다보면,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결국 이 200여 명의 사람들에게 헌법해석의 최종적인 확정권력을 맡겨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권력은, 앞서 언급했듯이, 특히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으로 성장한 바 있다.


분석의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법률가의 지배가 두드러진다. 법관자격을 변호사자격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관련 법령 때문에 비법률가, 곧 변호사자격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헌법재판관으로 진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헌법재판 보조 인력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비법률가는 주로 헌법학을 전공한 일부 법학연구연
력에 국한되고 있을 뿐이다. 단적으로 묘사하자면, 헌법재판소는 50-60대의 법률가(변호사자격자)들이 30-40대의 법률가(변호사자격자) 및 소수의 헌법연구 인력들의 도움을 받아 헌법해석의 최종적인 확정권한을 행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헌법이 법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헌법재판소에 대한 법률가의 지배는 그 자체로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한 까닭은 그것만이 아니다. 통계에서 드러나듯이,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법률가들 가운데 다수는 법원으로부터 충원되고 있다. 헌법재판관 가운데 법원으로부터 직접 충원되거나 법원퇴직 후 3년 이내에 임명되는 비율이 점점 높아져서 최근(2001년 이후)에는 75%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헌법재판관을 보조하는 연구 인력의 경우에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헌법재판 보조 인력 가운데 법원에서 파견된 인력,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한 이후 법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판사들의 구성 비율이 과반수(50.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파견된 검사들까지를 포함하면 그 구성 비율은 70%를 상회한다(72.8%).


헌법재판관에 비법률가가 임명될 수 있는 가능성이 법령에 의하여 봉쇄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법률가의 시각이 헌법재판소를 ‘실제로 움직이는 데’ 반영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헌법재판 보조 인력을 경유하는 것이다(참고로 헌법소송과정에는 시종일관 변호사강제주의가 시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제도적 위상이 확보된 이후 헌법연구자로 대표되는 비법률가 헌법재판 보조 인력의 숫자는 상당히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4번째 헌법재판소장이 임명된 이후 이 경향은 정면으로 역전되어 특히 법원에서 파견된 헌법연구관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 점은 최근 헌법재판관의 압도적 다수가 법원에서 충원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이러다가 헌법재판소가 제6의 고등법원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헌법학계 일각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법률가, 특히 법관의 네트워크에 갇힌 헌법재판소를 풀어주자”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를 실제로 움직여 온 사람들에 대한 이번 분석은 헌법재판소가 이중의 네트워크에 갇혀 있음을 보여 준다.

첫째는 법률가(변호사자격자)의 네트워크이고 둘째는 그 중에도 법원(판사)의 네트워크이다. 이 두 가지 네트워크는 내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법률가의 네트워크를 주도하는 법원(판사)의 네트워크의 헤게모니 또는 리더십이 헌법재판소를 실제로 움직이는 과정에도 상당부분 관철되고 있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


만약 이 잠정적인 결론이 다른 증거들, 예를 들어 국회와 행정부에서 정치문제를 사법화하고 다시 그것을 헌법재판소로 실어 나르는 일단의 법률가정치인들에 대한 인적 분석 등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면, 그 정치적인 의미는 자못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실제로는 ‘법률가-법원-법률가정치인’들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엘리트 법률가 네트워크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잠정적인 결론이 하나의 실천적 과제로서 제기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독립과 민주화의 문제다. 여기서 헌법재판소의 독립이란 우선적으로 이 글에서 언급한 이중의 네트워크로부터 헌법재판소를 독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법률가(변호사자격자)의 네트워크이고 둘째는 그 중에도 특히 법원(판사)의 네트워크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단방식이 기본적으로 재판이라는 사법적 방식임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에 대한 법률가들(특히 판사)의 관여는 필수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관여의 필수성이 반드시 현재와 같은 법률가의 헌법재판소 독점이나 비법률가의 체계적인 배제와 연결될 필요는 없다.


헌법재판소를 법률가, 특히 법원의 네트워크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은 곧바로 헌법재판소의 민주화의 문제를 제기한다. 소위 ’87년 체제의 가장 빛나는 성과라 할 헌법재판소를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한 핵심기구로 재규정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재판소의 민주화는 피할 수없는 정치적 과제가 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헌법연구관 파견 제도를 폐지하자거나, 최소한 헌법학자들에게는 헌법재판관 임명자격을 개방하자는 제안에서부터 적어도 3인 정도는 비법률가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자는 논의에 이르기까지 헌법재판소의 민주화를 위해 기탄없는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금명간 시작될 공식적인 헌법개정논의에서 헌법재판소의 독립과 민주화를 핵심적인 의제 중에 하나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JWe200808310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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