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임명 공론화 과정은 사법부 독립의 시작이다

국민의 대법원장 후보추천은 국민주권의 시작

1. 윤관 대법원장이 지난 16일 한 강연회에서, “민주정부가 들어선 오늘의 상황에서는 정치권력보다 오히려 사회의 각종 이익집단이나 오도된 여론 등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 졌다. 대법원장의 이 말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사법부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면 어떠한 외부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 독립은 고고한 성채에 법관들만 있고, 그에 대해 누구의 간섭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권위적 태도로 수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재판이 아니라 사법부 구성과 대법원장 임명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논의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와 사법부 독립을 잘못 오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사법부라고 하여 그 권력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주권의 원칙은 당연히 사법부 구성에도 관철되어야 한다. 비록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이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과 공익단체가 특정 후보를 추천하고 특정 후보를 반대한다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역동적 과정을 무시하는 듯한 대법원장의 견해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2. 대법원장의 이번 발언은 특히 대한변호사협회의 대법원장 후보 추천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이익단체인 변협이 대법원장을 추천하겠다는 것”을 “사법권 독립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 및 대법원장의 입장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사법부의 독립 위협으로 과대 해석한 것으로써, 참여민주주의와 국민주권원칙에 대한 현 사법부의 의식이 어떤 수준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대법원장이 변협의 이러한 대법원장 추천 움직임을 두고 “각종 이익단체” “오도된 여론”이라고 언급하였다면 이것은 분명한 망발이다.

3. 대법원장은 단순히 법원의 관료적 서열승진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 대법원의 장은 전체 법원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사법권의 대표자이고 법의 지배를 수호해야 할 상징적 대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들은 신뢰받고 존경받을 대법원장을 선정하기 위하여, 임명과정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으며, 대법원장의 선정과정의 공론화를 통해 다양한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비단 변협뿐만이 아니라 시민을 대표하는 어떤 단체라도 바람직한 대법원장을 추천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뽑을 때, 국민들이 투표권을 갖고 결정권을 행사하듯 국민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의 임명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대법원장 또는 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온갖 단체들이 심각한 논전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권익이나 공익 수호, 형평성의 관철 등의 기준에서 어떤 법조인이 대법원장의 자격이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임명과정에 개입할수록 민주적 사법권, 독립적인 사법부가 탄생할 여지가 큰 것이다.

4. 물론 사법권의 독립은 존중되어야 하며, 국회의 동의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적 절차나 임명권 행사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의 정당성은 국민이 동의하고 납득할 수 있는 존경받는 대법원장의 임명을 통해서만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많은 대법원장이 대통령이나 정권과의 친밀함을 기준으로 밀실에서 임명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대법원장의 밀실선출의 과정이 사법부 독립의 훼손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오히려 민주적 공론의 과정을 통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더불어 후보자 선출 이후, 인사청문회를 통해 연륜, 경륜, 소신, 능력 등의 자질 검증의 절차를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법원장의 선출이 법치주의 확립의 시작일 수 있는 것이다.

5. 변협이나 시민단체의 대법원장 후보 추천문제를 이익집단의 영향력 행사쯤으로 인식하는 대법원과 대법원장의 입장은 교정되어야 마땅하다. 대법원장의 언급했듯이 “사법부의 판단에 승복하는 사회분위기와 판결을 존중하는 시민의식”이 확산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사법권력에 있어서의 국민주권주의를 확고히 하고 시민참여의 장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 선결조건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6. 이러한 관점에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타는 “국민이 원하는 대법원장, 국민이 원하는 사법부”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이번 대법원장 선정과정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다. 21세기의 사법부는 이전처럼 국민위에 군림하고, 권위적이며 관료적인 사법부가 되어선 안되며, 진실로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권익을 수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구성의 첫단추를 낄 대법원장의 선임에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더 이상 대통령과의 친분관계, 출신지역, 학연에 의해 대법원장이 인선되어도 안 될 것이며, ‘大過 없음’을 추구하는 보신주의적 태도를 인품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훌륭한 대법원장을 뽑는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과 밀실-친분인사로 대법원장을 뽑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국민주권에 어울리는 방식인지는 논란할 여지도 없다.

7. 아울러 우리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인사청문회법이 하루바삐 통과되기를 바란다. 대법원장 및 헌법재판소장은 인사청문회의 첫 대상이 될 것이며, 공정한 인사청문회를 통해 어떤 분이 대법원장으로 되는지 ‘알고’ ‘참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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