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10-23   7369

[판결비평] 내란음모 안 되면 내란선동?

 

지난 8월 11일,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지하혁명 조직 RO의 존재를 증거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내란음모죄의 성립요건인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내란선동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죄로 인정했는데요. 내란선동죄는 형법 제정 당시에도 그 적용범위가 확장, 남용될 위험성이 커 반대가 거셌다고 합니다. 이번 판결비평에서는 알쏭달쏭한 내란음모죄와 내란선동죄에 대해 꼼꼼히 짚어봤습니다.

 

 

내란음모 안 되면 내란선동?

 

 

서울고법 제9형사부 2014. 8. 11. 선고 2014노762 내란음모, 국가보안법위반, 내란선동

판사 이민걸(재판장), 진상훈, 김동현 

 

하태훈

 

 

 

 

 

하태훈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 

내란음모·선동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국회의원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대신 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으로 형량을 줄였다. 항소심은 대단한 혁명조직인 것처럼 부풀려진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란 행위의 시기 및 대상, 수단과 방법, 역할 분담 등의 윤곽을 정하지 않아 어떤 합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어 내란음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내란범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라는 것이 명백히 인식되고 그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내란음모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의 문제는 내란선동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시기, 대상, 수단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반도 전쟁 발발시 기간시설을 파괴하자고 말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폭동을 부추겼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본 점이다. 민청학련 사건의 판례처럼 내란선동을 ‘폭동에 대해 고무적인 자극을 주는 일체의 행위’로 넓게 본다면 선동에 해당할 수 있다. 선동을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이렇게 광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물적 준비행위인 내란예비와 언어에 의한 의사합치 단계인 음모와 범죄를 부추기는 선동이 동일한 법정형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과 법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원칙을 고려한다면 선동을 그렇게 넓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법제정 당시 내란선동죄는 언론의 자유를 옥죄는 독소조항이라 하여 반대가 거셌고 확장ㆍ남용의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II. 

내란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저지르는 것이다(형법 제87조). 내란을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내란 선동 또는 선전한 자에 대한 형도 같다. 즉 형법 제90조는 내란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와 내란의 죄를 범할 것을 선동 또는 선전한 자를 구분하고 있지만 그 법정형은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 

내란예비·음모는 행위자가 직접 내란죄를 범할 목적으로 그 준비행위로서 예비하거나 다른 사람과 의사의 합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내란선동·선전은 행위자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란죄를 결의하게끔 의사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선동(煽動)의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이 감정에 부채질하여 범죄결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형법상 예비 또는 음모는 원칙적으로 불가벌이지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을 두어 예외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예비 또는 음모는 계획한 범죄가 중대 범죄여야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예비 또는 음모 자체가 실질적인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어야 한다. 선동도 마찬가지다. 선동을 처벌하는 이유는 피선동자에 의한 범죄 실현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동한 범죄 실현의 위험성은 피선동자의 의사와 행위에 의해서 실현된다. 예비음모는 예비음모자가 주체가 되어 범죄 실현 가능성이 선동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선동한 범죄 실현은 피선동자가 하므로 간접적이며 실현가능성은 피선동자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선동의 가벌성의 근거가 박약하기 때문에 선동죄의 성립은 중대한 범죄로 제한하고 있고 범죄 실현의 위험성 판단도 음모와 마찬가지로 범죄 실현의 명백하고 현실적이면서 긴박한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III. 

선동은 범죄의 교사와 매우 유사하다. ‘선동이란 특정한 범죄행위를 실행시킬 목적으로 문서·도화 또는 언동에 의하여 타인에게 그 범죄행위의 실행을 결의하게 하거나 이미 발생한 결의를 조장할 힘이 있는 자극을 주는 것’을 말한다. 내란의 죄를 범할 것을 교사하면 내란죄의 교사범이 성립하고, 내란의 죄를 범할 것을 선동하면 내란선동죄가 성립한다. 선동하였으나 상대방이 내란의 범죄결의를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내란을 선동하였으나 내란의 범죄를 결의하였다면 내란죄의 교사범이 성립한다. 즉 내란의 범죄를 선동한 자가 어떻게 처벌될 것인가는 선동 상대방의 의사와 태도에 달려 있다. 내란의 범죄결의를 하지 않으면 내란선동죄, 선동으로 인해 내란의 결의에 이르게 되었다면 내란선동죄가 아니라 내란교사가 성립한다. 선동은 피선동자가 범죄결의를 하지 않아도 성립하며 피선동자가 선동으로 인해 실제 범행실행으로 나아갈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라는 점에서 범죄교사보다 불법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교사나 선동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언행으로 실제 범죄 구성요건적 행위를 한 피교사자와 동일하게 처벌받거나 선동죄의 정범으로 처벌받는다.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가 결국 형법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교사나 선동은 범죄 구성요건을 직접 실행하지 않고 이를 유발하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형법에 의하여 처벌되지 않으나 예외적으로 내란선동죄와 같이 침해되는 법익이 극히 중대한 경우에 한하여 처벌된다. 

 

선동은 주로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의 표현행위가 대부분인데 언어의 추상성과 다의성으로 인해 그 적용범위가 무한히 확장될 위험성이 있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더구나 선동자의 선동으로 인해 선동 상대방이 범행 결의에 이를 것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선동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선동의 의미내용을 넓게 해석하면 선동 상대방이 선동되지 않았더라도 선동자를 처벌하게 되어 처벌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선동의 구체성이다. 선동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동자가 타인으로 하여금 특정한 범죄행위를 실행시킬 주관적인 목적을 가지고 선동행위를 하여야 한다. 또한 선동의 상대방이 범죄결의를 할 것을 요하지는 않지만 범죄결의에 이르게 하거나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정도의 구체성과 적합성이 있는 선동행위여야 한다. 구체적인 범죄 실행의 결의가 있는 내란음모죄에 준하는 정도의 불법을 인정할 수 있으려면 선동의 내용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내란선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란음모죄의 경우와 같이 반드시 범죄행위의 시기, 대상, 방법 등 내란행위의 윤곽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선동해야 한다. 그래야 내란음모처럼 객관적 명확성과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될 수 있어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선동을 문언중심적 해석에 따라 넓게 이해해서는 안 되고 다른 규정과의 관계를 고려한 체계적 해석으로 의미범위를 제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IV. 

요즈음 거의 사문화된 형벌규정이 되살아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보수정권이 검찰을 선동해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사건을 통한 전기통신법이 그렇고 내란음모·선동죄도 그렇다. 민주국가의 핵심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와 언론표현의 자유보다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질서를 우선으로 여기면서 벌어진 과잉범죄화로 반민주, 법치의 역주행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처럼 국가형벌권을 최우선수단(prima ratio), 유일한 수단(sola ratio)으로 여기고 있다. 민주국가는 형법의 최후수단성(ultima ratio)을 형법의 임무로 삼는다. 형법을 앞장 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하지는 않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의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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