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11-23   4081

[24차 판결비평②] 헌법재판소의 ‘복고주의’ : ‘특별권력관계론’과 ‘복종적 정신전력론’

지난 2010년 10월 28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를 합헌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 헌재는 이 조항에 따라 23개의 서적들에 대해 내려진 불온서적 지정 및 반입금지조치가 장병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며 당시 군법무관 7명이 낸 헌법소원을 각하하였고, 군인복무규율 조항의 근거법률인 군인사법 제47조의2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각하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2008년 10월 22일, 군법무관 7인이 국방부의 자의적인 불온서적 지정이 장병의 알권리, 학문의 자유, 양심형성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간 사건입니다.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 10월 29일 “군인들의 사상의 자유를 무시한 결과이며 법적으로도 흠결을 가지고 있어 유감”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오동석 아주대 교수(헌법), 오병두 홍익대 교수(형법)를 비롯해 2008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 가운데 한 명인 박지웅 변호사 등 세 명의 전문가에게 헌재 결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담은 비평을 요청하였으며 각각의 글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

[24차 판결비평①] 헌법, 군대에서는 할 일이 없다?
[24차 판결비평③] ‘불온’이란 말은 결국 21세기 한반도에서 종식되지 못했다
[참여연대 논평] 헌재의 “불온한” 결정 유감

JWe201011230a.pdf – [24차 판결비평 – 광장에 나온 판결]

오병두 교수 (홍익대 법대ㆍ형법)

 1. 헌법재판소 결정의 두 가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10년 10월 28일 국방부장관에 의한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 지시’(이하 ‘불온서적 차단지시’)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에 이 차단지시의 근거가 된 군인사법 제47조의2,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 2가 합헌이라고 판시하였다.(2008헌마638 군인사법 제47조의2 위헌확인 등.) 불온서적 차단지시와 불온서적 영내반입 금지를 규정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가 헌법에 합치하는가가 주된 법적 쟁점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는 5대 4로 장병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각하였고, 후자에 대해서는 재판관 6(합헌) 대 3(위헌)으로 판단하였다.

이 결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고 헌법적·법률적 쟁점에 관하여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특히 ‘특별권력관계론’과 ‘정신전력론’ 두 가지의 점에 대하여 지적하고 싶다. 헌법재판소, 특히 다수의견이 군대에 관한 ‘고전적’ 혹은 ‘복고적’ 인식을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 헌법재판소의 ‘복고주의’(1) – ‘특별권력관계론’의 부활

헌법재판소는 군인의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 법률유보원칙의 완화가능성을 천명하였다. 이는 국방부의 의견을 통해 언급한 ‘특별권력관계에 있어서의 기본권 제한의 특례’가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국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명하복의 체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군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군인의 복무 기타 병영생활 및 정신전력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부분은 행정부에 널리 독자적 재량을 인정할 수 있는 영역”이고 이 영역에는 “법률유보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그와 같은 요구를 따르지 못한 경우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여 군인의 기본권 제한에 있어 법률유보의 원칙이 민간인에 비하여 완화될 수 있음을 선언하였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조대현 재판관의 기각의견은 “국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군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규가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 직접 규율하지 아니하고 국군통수권에게 개괄적이고 광범위하게 위임하거나 군사지휘권에게 재위임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까지 한다.

헌법재판소의 논지는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의 원칙이 군대에서는 약화될 수 있다는 사고로서 학계에서 이미 폐기된 ‘특별권력관계론’을 원용한 것이다. ‘특별권력관계’ (특별권력관계라는 용어 대신 ‘특별행정법관계’(박균성, 행정법강의, 제5판, 박영사, 2008, 108쪽), ‘특수신분관계’(성낙인, 헌법학, 제10판, 법문사, 2010, 368쪽)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특별권력관계’라는 종래의 용어례를 사용하기로 한다.)란 “특별한 법적 원인(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동의)에 의하여 성립되며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예컨대 학생, 군인, 공무원, 수형자) 시민이 국가권력에 대하여 특히 강한 법적 구속(포괄적 지배·복종)하에 있는 법률관계”(홍성방, 헌법학, 개정4판, 현암사, 2007, 348쪽.)라고 정의된다. ‘전제국가의 유물’(한태연, 헌법학, 법문사, 1985, 967쪽.)인 ‘특별권력관계론’은 특별권력관계 내부에서는 법률의 수권 없이도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이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특별권력관계론’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우선, 특수한 관계에 있어서도 “기본권은 제한되지 않고 원칙적으로 효력을 가진다는 데 대하여 전혀 이견이 없다.”(홍성방, 앞의 책, 351쪽.) 다음으로, 종래의 ‘특별권력관계’에서의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의하거나 법률을 근거로 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도 특별한 이설이 없다.(홍성방, 앞의 책, 351-352쪽; 성낙인, 앞의 책, 369쪽.)

헌법재판소의 ‘특별권력관계론’의 문제점은 단순히 소멸한 옛 이론을 되살려냈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군대가 사실상 통제받지 않는 ‘국가 속의 국가’라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군을 ‘국가 속의 국가’가 된다는 것은 군이 입헌주의적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된다는 의미이다. 현대 입헌주의의 원리는 사회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군대를 사회와 통합시켜서 동일한 헌법적 원리로 통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계수/이재승/오병두, 외국 군 인사·복무 관련 법령 및 제도 등 실태조사-독일의 법령과 제도를 중심으로-, 2006년도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2007, 22쪽.) ‘국가 속의 국가’로서 군이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한 예로는 제정시대 독일이나 군국주의의 일본의 군대를 들 수 있다.

둘째, 군인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헌법적 요청과 군인 인권의 현실에 역행한다. 군인, 특히 사병은 영내생활 등으로 인하여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한국의 군인의 전반적 인권수준도 높지 않다.(이에 관하여는 이계수, 군사안보법 연구,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7, 171쪽 이하 참조.) 따라서 군인의 기본권에 관한 특별한 배려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의 내용이 된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군인을 ‘제복을 입은 시민’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군인의 기본권은 다른 시민과 동등하게 보장된다는 관점에서 군인의 인권보장을 헌법적 차원에서 고려한다는 의미이다.(이계수/이재승/오병두, 앞의 보고서, 21쪽.) 

셋째,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문민통제의 원칙을 약화시킬 수 있다. 포괄적인 위임과 재위임, 사실상의 무제한 위임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대통령의 군통수권에서 그 정당성의 원천을 찾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군통수권이 국방부장관을 통하여 군 내부로 원활히 관철되는 것은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반대로 나아갈 수 있다.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의 군에 대한 장악력이 약화되는 경우, 이 논리는 무제한의 수권을 허용한 결과, 군 수뇌부의 무소불위의 권력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로서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은 법치행정의 원리에 기반한 ‘법적인’ 것이며 또는 그래야 한다.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제74조 제1항)하도록 하고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제2항)하도록 특별히 명시한 헌법의 정신을 헌법재판소는 망각한 것이다. 더구나 정치군인에 의한 군사쿠데타와 군사정권을 수십 년씩 경험한 나라의 헌법재판소가 말이다.

 3. 헌법재판소의 ‘복고주의’(2) – ‘복종적 정신전력’을 위한 기본권 제한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과잉금지원칙을 판단하는 주된 잣대로 ‘군인의 정신전력’을 강조한다. 헌법재판소는 불온도서의 영내반입금지를 규정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즉 ①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한정된 범위내의 불온도서를 취득하는 등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② “이적표현물 등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는 도서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불온도서에 대한 군인의 접근을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하여 해당 도서의 소지 및 취득 등을 금지하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적절한 수단이 된다”고 보아 수단의 적절성이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③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한정된 범위내의 불온도서를 취득하는 등 행위를 금지하고, 그 인적인 범위 또한 군인들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등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내용의 도서가 군인들의 정신전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군인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보장함을 직접적인 존재의 목적으로 하는 군 조직의 구성원이므로, 그 존립 목적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일반인 또는 일반 공무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기본권 제한이 가중될 수 있는 것이다.”는 점 그리고 “집체생활을 하는 군인들에게는 구체적인 사회적 위험성의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고, 또한 군의 정신전력을 해할 목적으로 도서를 소지, 취득하는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에서 침해의 최소성이 인정되고 ④ “복무규율조항으로 달성되는 군의 정신전력 보존과 이를 통한 군의 국가안전보장 및 국토방위의무의 효과적인 수행이라는 공익은 이 사건 복무규율조항으로 인하여 제한되는 군인의 알 권리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 할 수 없”어 법익균형성이 인정된다고 한다.

이 결정문에서는 ‘정신전력’에 대하여 특별히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정신전력’의 개념은 국방부의 주장을 그대로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군에서는 “정신전력이란 모든 장병이 지휘관을 중심으로 투철한 군인정신, 엄정한 군기, 충천된 사기, 공고화된 단결로 부여된 임무를 능동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조직화된 전투의지력”(국방부, 정신전력 지도지침서, 1998, 31쪽.)이라고 정의한다.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으로 기본적으로 지휘권의 한 내용이 된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정신전력’을 강조하는 것은 국방부의 ‘지휘권 보장’의 논리를 또 다른 ‘정신전력’이라는 용어로 치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휘권 보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은 구태의연한 ‘지휘권 보장’의 논리를 그대로 헌법이론으로 들여오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김종대 재판관의 별개의견은 이를 더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김종대 재판관은 “군지휘관이 할 수 있는 정훈교육의 일종으로서 그 지휘권의 당부 판단은 전력극대화를 위하여 군지휘관이 갖는 지휘명령권의 특수한 내용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일반 국민의 알 권리, 표현의 자유, 정신적 기본권을 갖고 접근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김종대 재판관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리고 다수의견이 전제하는 바와 같이-, 군에서는 정신전력의 향상을 위해 정훈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훈교육의 개념이 나라마다 다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정훈교육의 임무가 ‘잘 알게 하는(well-informed)’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한국에서는 ‘잘 교육하는’(well-educated) 쪽에 비중으로 두어 이루어진다고 한다.(김성옥, “한미군의 정훈교육체계 비교연구,” 시대상황의 변화와 군 정신전력,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2005, 267쪽.) 한국의 정훈교육이 말 잘 듣는 군인의 양성에 비중을 둔다면 미국의 정훈교육은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보장하면서 제대로 된 인식을 확보하는 데에 비중을 둔다는 말이다. 또한 한국의 정훈에 대응하는 독일의 용어는 ‘민주적·시민적 지휘’(innere Führung)이다. 독일 연방의회는 이 용어를 “군의 임무수행이라는 요청 그리고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가지는 군인의 존엄과 권리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용어는 “군 내부적으로는 군대의 기능적합성 및 군 내부질서의 법치국가적 구성을 유지하고 대외적 관계에서는 군대, 민주주의와 사회를 합치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독일에서 이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는 이유는 군대 내에서의 시민은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군대가 ‘국가 속의 국가’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이계수/이재승/오병두, 앞의 보고서, 22쪽.)

요컨대, 한국에서는, 적어도 한국의 국방부와 헌법재판소는 이 ‘정신전력’을 ‘지휘권’의 내용과 대상과 관련시켜 이해한다. 즉 지휘관이 결정하면 이의 없이 잘 따를 수 있는 정신적 상태를 의미한다. ‘군의 특수성’에 비추어 법적 절차에 따른 집행이나 합리적 이의제기보다는 ‘지휘관’의 상황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와 그 배경이 된 국방부의 낡은 사고방식은 정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첫째, 이와 같은 ‘군의 특수성론’이나 ‘절대적 지휘권 보장론’ 그리고 그에 기초한 ‘복종적 정신전력론’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가 강조되는 헌법질서에 부합하기 힘들다. 특히 ‘복종적 정신전력’을 기본권 제한을 위한 방편으로 원용하는 것은, 지휘권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것으로, 하급자에 대한 전속적 지배를 전제로 하는 봉건적 군대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결국 이와 같은 논리들은 국가로부터 분리된 군이라는 작은 사회가 국가의 기본권 질서로부터 분리된다는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에 불과하다.

둘째, ‘복종적 정신전력론’은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일부 군수뇌부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권력욕에 불타는 소수의 정치군인들과 폭압적 군사문화에 길들여진 장병이 함께한 결과였다. 지휘관의 위법한 판단과 그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부하들만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참극의 전형이라고 할 것이다.

셋째, ‘복종적 정신전력론’은 ‘진정한 의미’의 지휘권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국방부는 봉건적·신분제적 지휘권 개념과 국가 속의 국가라는 낡은 고정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복고적으로’ 기존의 경험적 지휘권에 매달리고 있다. 아쉽게도 이를 또한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승인해 주었다. 그러나 봉건적, 억압적 군사문화가 지휘권과 군기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그다지 근거가 없다. 엄혹한 군기를 강조했던 일제말기 일본 군 내에도 군기위반, 탈영은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또한 시대에 역행하는 ‘복고적 지휘권’이 현실적으로 그 내용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19세기적 사고에 고착된 군수뇌부와는 달리, 21세기적 사고와 인권의식을 가진 장병들이 군을 앞으로 채워갈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복종적 정신전력론’과 그 기반인 ‘절대적 지휘권 보장론’은 법치주의적이며 합리적인 지휘권 행사에 대한 고민이나 대안을 차단하는 폐단이 있다. 국방부의 ‘절대적 지휘권 보장론’은 시대에 맞는 지휘권 개념을 고민하기 보다는 ‘좋았던 옛날’을 향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법치주의’에 기반한 지휘권의 행사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한 입법적·정책적 노력만이 국방부가 그토록 원하는 지휘권의 ‘실현’을 보장할 수 있다.

 4. 헌법재판소 결정 – 동전의 양면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종래 국방부가 되풀이해오던 ‘군의 특수성론’, ‘절대적 지휘권 보장론’ 그리고 그에 기초한 ‘복종적 정신전력론’ 등을 여과 없이 승인해 주었다. 이와 같은 낡은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제는 폐기된 ‘특별권력관계론’을 다시금 등장시켜야 했다. 이 양자의 논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군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복고적’ 시각을 현재의 기본권이론으로는 정당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권력관계론’은 ‘복고적 시각’을 정당화시켜주는 ‘복고적 기본권 제한이론’인 셈이다.

‘복고’라는 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고’가 ‘퇴영’(退嬰)과 등치될 수 있을 때는 문제가 된다. 그 ‘복고’=‘퇴영’의 등식이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그 역사적·사회적 소명을 다해야 할 헌법재판소에 적용된다면 더 문제가 된다. 더욱이 군부독재의 폐해를 경험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군사(軍事)와 관련된 사안에서 ‘퇴영적’ 판단을 하였다면 더 무엇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JWe2010112300.hwp – 보도자료 원문

JWe201011230a.pdf – [24차 판결비평 – 광장에 나온 판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