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9-19   2073

[17회 판결비평-좌담회] 불법파견 노동자 보호받는다, 아니다?

<시민사회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법정 밖에서 본 판결’

현대차 아산-울산공장 근로자 파견법 적용

<시민사회신문>과 참여연대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힘든 문제적 법원 판결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하는 ‘판결비평-법정 밖에서 본 판결’을 진행한다. 첫 번째 판결비평은 동종 업체 파견근로자들의 불법파견 적용여부에 대한 법원의 완전히 다른 판결을 다룬다.

9월 12일(수) 오후 7시 참여연대 중회의실에서 진행한 좌담회에는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이혜수 한국비정규노동자 센터 정책부장, 고재환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 임아연 보건노조 법규부장(노무사)이 참석했다./편집자

<논란의 판결>

무분별한 파견근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파견근로자보호법은 A사에 파견돼 A사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는 ‘파견근로자’는 근무기간이 2년이 지나면 A사의 정식 근로자가 된다고 정한다. 또 자동차 생산과 같은 업무/파견업종은 파견근로자를 고용해 일을 시킬 수 없다고 정해져 있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아산공장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파견이 금지된 영역이지만 현대차 임직원으로부터 직접 작업지시를 받은 사실상 ‘파견근로자’였고, 파견이 금지된 자동자 생산업무였지만 2년 이상 근무한 만큼 파견법 취지대로 정식근로자가 됐다고 판결했다.(사건번호 2005가합114124)

반면 7월 서울행정법원은 현대차 울산공장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2년 이상 파견형태로 일했다 할지라도 ‘파견법’에 파견근로를 시킬 수 없는 업무·업종에서 일한 만큼 이들을 현대차의 정식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사건번호 2006구합28955)

두 판결의 차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원의 엇갈린 시선

▲ 한상희▲한상희=개발독재와 냉전구조의 결합으로 그동안 ‘노동’은 억압과 탄압의 대상이었다. 민주화를 거치고 경제강국 진입을 앞둔 현재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현실이다. 우리 법원은 권력의 강요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온 왜곡된 노동 판례를 선례란 이름으로 유지하며 구태에 입각한 판결을 내린다는 지적이다. 그 틀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이익보다 사용자에 기우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비평은 서울중앙지법과 행정법원의 거의 동일한 사안에 대한 엇갈린 판결이다.

▲고재환=두 건 모두 금속노조법률원에서 맡았지만 진 판결의 변호인이 판결비평을 하자니 조금 민망하다. 아산공장 판결이 나왔을 때 내심 법원이 용기있는 판결을 했다고 봤다. 노동계 전반에 걸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행정법원도 이 판결을 무시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한상희=비정규직 논란은 이제 비일비재한 논란거리다. 도급과 파견의 형태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한데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나.

비용절감 넘어 법적 회피수단

▲ 이혜수▲이혜수=제조업에서 불법파견이 일어나는 것은 비용절감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노사 관계에서의 법적 책임을 회피 할 수 있는 한편 고용 유연화와도 깊게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가 반드시 회사의 이익이 되는 것인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옆 공장의 사내하청이 반이니 우리도 대세를 따라 해야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한상희=미 쇠고기 수출업체인 카길사에서 수입된 물품 중 반입이 금지된 쇠고기 뼈가 자주 나오는 것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직장이 경제적 교환의 장을 넘어 자아실현과 인간적 관계가 형성되는 장이란 교과서적 정의를 감안할 때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임아연=중앙노동위에서 마저 불법파견은 고용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리는지 살펴보면 역시 법원의 판결에 근거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입장에 선 중노위마저 법원의 보수적 판결에 휘둘린다. 노동자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상희=사회 갈등 해결의 최종 기관이라는 법원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사내 하청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 고재환▲고재환=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 사업장이다. 현대차의 경우 2대 1의 비율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근무한다. 이 비율은 하이닉스나 기륭 등 전자업체들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똑같이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작업 내용이 특수하니 정규직이고 그렇지 않으니 비정규직인 게 아니다. 정규직이 결근하면 비정규직이 메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다른 복장을 해 한눈에도 비정규직임을 알 수 있다. 정규직 간에는 드러내놓진 않지만 내심 차별의식이 잠재해 있기도 하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정리해고를 경험한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이 일종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있다. 최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라인 점거 파업을 했지만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자본의 노동자 분할 착취는 경제적 목적 이상의 우려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한상희=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비가 절감된다면 사내 하청이든 뭐든 얼마든지 선택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나. 다른 한편에선 고용 안정이 국가 보장 사항이란 이야기도 하는데.

고용자유 이전에 사회약자 보호

▲이혜수=고용의 자유는 자본주의 3대 원칙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노동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시대를 생각해보자.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권리요구를 법 내로 수용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노동법이다. 이후 고용안정, 평생고용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고용형태로 유지돼 왔다.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의 고용안정 아니겠나. 국가와 사회가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고용 유연성 등과 같은 조류에 너무 쉽게 쓸려가고 있다. 사용자로서는 당연히 큰 유혹임에도 적절한 규제는 없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여전히 고용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임아연=노무사 시험 문제 중 이런 게 있었다. ‘평생고용이 바뀌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갈등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로 기억한다. 정답은 ‘근로자 개개인의 능력을 키워 재취업 역량을 만들고 사용자는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식이었다. 비정규직의 양산은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 등을 거치며 촉발된 것인데 국민의 힘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시점에서도 근로자는 임금을 주고 사용하는 소모품에 그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임아연▲한상희=다시 판결로 돌아가 어쨌거나 거의 동일한 사안에 상이한 판결이 나왔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나. 단순히 판사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고재환=중앙지법의 판결은 컨베이어 시스템 상 도급은 부적당하다는 전제가 있다. 도급은 수급자가 도급인에서 완성 물품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인데 원청회사와 하청회사 근로자들이 함께 하는 컨베이어 벨트 공정은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투입된 노동량에 대한 대가 지불이므로 상식적으로도 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법원이 일반인의 상식에 맞는 법률적 판단을 할 수 있냐 없냐는 문제일 뿐 아니라 부당한 법을 뒤집고 바로잡는 용기를 과연 법원이 할 수 있느냐는 것이기도 하다. 행정법원의 판결은 불법파견도 고용의제로 적용되는가라는 검토 이전에 판결이 가지는 현실파급력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판단이 앞선 것 같다.

▲이혜수=법의 공백이다. 입법적 문제라고도 하나 진정성 있는 개선 노력이 아쉽다.

▲한상희=결국 사용자들만 득이 되는 것 아닌가.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력들은 있는가.

▲임아연=일부 지방노동위에서 이와 유사한 경우에 고용의제로 인정해도 중앙노동위와 법원이 거부하는 식이다. 도리어 불법파견 사유가 몇 건이 되더라도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지침이 새로 만들어져 앞으로 상황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상희=민주화운동을 한 노동부장관을 둔 나라답지 않다. 이렇게 보니 행정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보다 서울지법이 잘한 판결을 내렸다는데 비평의 무게가 쏠리는 것 같다.

▲고재환=같이 일하는 변호사 중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와 동기가 있어 물어봤더니 자신들도 이 판결이 고등법원까지 유지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확실히 상식적인 판단이었지만 이례적인 판결인 것도 사실이다.

사회급변기 진보판례 나와

▲이혜수=이전 노동판례들을 살펴보면 사회적 급변기 이후에 진보적 판례들이 많았다. 뒤늦게 이런 진보적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법이 사회발전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재벌총수에 대한 최근 사회봉사 명령 등을 보면 판사들의 재량권이 상당이 넓어진 것 같은데 노동판결에서만 엄격하고 제한적이며 입법영역이라고 회피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임아연=외부 교육을 나가면 노무사지만 노동관련 법률대응은 하지 말라고 말린다. 법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현재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간략히 설명한다. 노동법이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법을 다루는 이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이를 이해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고재환=다른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들의 변화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공장 안에서는 대단히 전투적이면서 법제도적 대응은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 파업할 때마다 가장 먼저하는 것이 구속결단식 아닌가. 구속을 전제로 한 파업이 아니라 합법적 노동운동을 위한 노력을 확산해야 한다.

▲한상희=항간에는 법원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이유가 전관예우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오명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정의로운 노동판결이 확대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이혜수=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전향적 변화는 쉽게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법제도 개선에 관한 노동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아울러 판사 임용을 위한 과정의 개선이 중요하다. 대다수 사법고시 합격자가 강남 출신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혜적인 판결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이 투쟁이 강해질 때일수록 긍정적인 판결이 나왔다. 사회적 힘이 최소한 균형을 이뤄야 변화가 만들어 진다. 개인의 노력이 아닌 사회적 변화요구가 중요하다.

▲한상희=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법관에 임용되는 구조를 지적했다. 사실 노동현장에서 닥치는 문제는 정말 삶 그 자체인데 법관들의 관심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변화의 과제들이 많은 것 같은데 덧붙여 입법화 활동도 중요할 것이다.

▲임아연=얼마 전 인혁당 관련 법원의 판례가 의미심장하다. 실제 법관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기 힘든데 법관 개인이 결정이라기보다 우리사회가 그 사건을 야만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수준이라는 사회적 의식 발전의 바탕위에 좋은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같은 판결이 계속 나오려면 강조컨대 역시 사회 전체의 의식 수준이 성숙해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게 노동관련 분야다. 자신 스스로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파업에 비우호적인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그동안 학교에서 또는 사회에서 세뇌된 결과다.

▲한상희=인혁당 판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섭섭한 느낌이 있었다. 대법원장 직접 사과가 있었다면 한편으론 상징적 의례일지라도 사법부 전체의 반성과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지 않았겠나. 마지막으로 판결비평을 정리하자면.

▲고재환=다른 분야의 판결은 차지하더라도 노동분야 만은 개별 법관의 양식에 맡기기보다 제도적인 변화 모색이 필요하다. 우선 노동사건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의 설립이다. 노동법원의 재판부 구성도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개입해야 한다. 그럴 때도 됐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노동법원이 있다. 여기엔 직업 법관과 노동조합 추천 인사가 함께 재판부로 구성된다. 동일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직업 법관마저도 노동조합이 거부하면 들어설 수 없게 했다.

노동분야 재판을 보면 사회분위기에 따라 극명하게 판결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투쟁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파업하다 법정에 서면 실정법 위반이라 해도 민주주의를 위해 또는 노동자를 위해 희생하다 그런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국가경쟁력과 효율성이 최고 가치가 된 요즘에는 이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돼 버리고 만다. 형량은 물론 구속할 이유가 없음에도 구속하거나 집행유예를 실형으로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다.

사법부의 변화는 사회변화, 그중에서도 사회 가치관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우선시 할 것인가, 이것을 고민하고 바꿔내는 사회전반적 활동이 병행돼야 한다.

비정규직 판결, 집중적 관심을

▲한상희=답답한 현실에서 타결점을 찾기 어려운 문제를 꺼내놓으니 더 답답한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이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국가 경쟁력, 신인도, 생산성, 고효율·저비용이라는 담론이 우선이다. 그 이면에는 고용 없는 성장의 형태로 국가와 기업은 살찌우되 서민은 가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 이를 가리기 위한 위정자들의 행태도 보인다. 국민을 위한 정치, 국가운영이라면 국민의 아픔을 보살펴야 하는데 큰 틀의 성장만을 갈구하는 형국이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겨우 찾아낸 노동인권이 다시 가차 없이 억눌림을 당하는 잘못된 담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과제를 새삼 느낀다.

엇갈린 이번 판결의 항소심 재판과정 역시 우리의 관심사다. 앞으로 주의 깊은 시선이 필요할 때다.

이재환 (시민사회신문 기자 )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