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11-07   1636

[제20회 판결비평-판결읽기] 판사님, 사회통념이라니요? 그건 잘못된 관행입니다

잘못된 관행을 앞세워, “위법하지 않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주민소송 판결

지난 10월 17일 서울행정법원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발전에 있어서 한 획을 긋는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이날 새로 도입된 주민소송의 첫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법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를 방지하거나 시정하기 위해 역사상 처음 도입된 주민소송의 첫 판단인 성북구의회 의장단 등의 예산낭비 행위에 대해, 허물은 인정되나 주민소송을 제기할 만큼 위법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성북구의회 의장과 부의장 등이 업무추진비로 25회나 단란주점과 노래방에서 접대하고 양주와 외제화장품 등 동료의원들과 직원들의 선물구입에 755여만원을 사용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주민들은 잘못 사용된 예산을 환수하라고 성북구청장에게 주민소송을 제기하였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 판사들(재판장 김용찬, 김태건, 송민경 판사)은, 이 같은 행위가 “허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통념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는 아니므로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주민들의 주민소송을 기각하였다.

과연 판사들의 판단대로 세금을 직접 내는 주민들도 공금으로 단란주점 접대나 선물을 구입하는 행위가 일반적인 관행이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할까? 잘못된 관행들을 법원 판사들 자신들만이 ‘사회적 통념’이라며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번 판결을 통해 판사들이 믿고 있는 사회통념이 주민들의 그것과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법원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토론해 보고자 판결비평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비평글은 박현섭 변호사(함께하는 시민행동 법률지원단)가 작성하였다(편집자 주)

세금내는 주민들과 구의회 의원들 그리고 법원

2005년 당시 성북구의회 의장은 지역주민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나서 25차례에 걸쳐 2차로 간 단란주점과 노래방 비용 등을 공금에서 지출하였다. 또한 의장과 부의장은 공금으로 양주나 외제 화장품 등을 구입해 동료의원과 공무원 등에게 선물하였으며, 성북구의원들은 공금을 들여 호주 현지 시의회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광 일정으로 단체 해외연수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성북구 주민들은 구의원들의 이 같은 예산낭비에 대해 서울시에 감사청구를 요청하여 잘못을 시정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앞으로 업무추진비로 접대할 때는 지출증빙서를 기재하도록 하고 선물도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해외연수는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등 담당공무원을 엄중 문책하도록 하였다는 감사결과를 통보하여 왔다.

그러나 성북구 주민들은 2006. 9. 13. 성북구의회 의장이 2005년도에 2차로 간 단란주점과 노래방 비용을 업무추진비에서 지출한 행위, 공금으로 동료의원이나 직원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한 행위 및 구의회 의원들이 관광성 해외연수를 다녀온 행위 등은 위법하다며 성북구청장에게 환수할 것을 요구한 주민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제11부)은 2007. 10. 17. 성북구의회 의장과 구의회 의원들의 위와 같은 행위가 “허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사회 통념”과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아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하였다.

주민감사청구의 결과만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낭비 예산 환수와 유사한 사례의 재발방지 및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성북구청장에게 낭비된 예산의 환수를 요구하는 주민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행정법원은 기초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의 잘못된 공금지출행위가 부당하기는 하나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벗어난 것이 아니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사님,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 판결을 다음과 같은 점에서 몇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의 부당 위법한 공금 사용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의 시행 이후 항상 문제시 되었던 일이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하여 주민소송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이번 판결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통념이라는 잣대로 잘못된 관행을 인정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전체국민이 책임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둘째, 의장이 간담회를 마치고 직무와 관련된 의견교환을 위하여 밤늦은 시간에 단란주점이나 노래방을 출입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접대상대방도 대부분 지역주민이나 직능단체로서 평소 고유한 업무적 유대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직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고, 그 출입시간대도 대부분 자정 전후이므로 공적 업무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없다. 따라서 의장이 간담회 등을 개최한 이후 2차로 단란주점이나 노래방을 출입하고 그 비용을 공금으로 처리한 행위야말로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벗어난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현행법상 의장이 공금이 아닌 사비(私費)로 1인당 5만원 이하의 선물을 구입하여 동료의원이나 공무원들에게 준 경우라도 공직선거법위반행위(기부행위금지)에 해당한다. 또한 오늘날 정치현실은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요구하고 있다. 의장이 사비도 아닌 공금으로 소액의 선물을 구입한 행위는 더 비난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장과 부의장이 공금으로 선물을 구입하여 동료의원이나 공무원들에게 준 행위는 그 금액의 다소(多少)를 떠나 그야말로 일반인의 “사회통념”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다.

넷째, 성북구의회의원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 등에 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한 목적에 맞는 일정과 방문지를 선정하지 않고 단지 여행사가 추천한 관광상품을 선택하여 호주를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의원들은 주립의회를 방문하여 약 1시간 40분 정도 질의응답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관광지를 둘러보았을 뿐이다. 재판부는 이를 현장체험 또는 해외시찰업무로 해석하였으나, 관광지를 둘러본 행위를 현장체험 또는 해외시찰업무로 해석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구의회에서 작성한 ‘해외연수 결과보고서(호주)’를 보면, 그 내용은 인터넷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정보들로 가득한 감상문에 불과하다.

이렇듯 아무런 준비도 없이 관광일정으로 대부분 채워진 해외연수를 세금을 직접 내는 주민의 입장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이는 위법한 지방재무회계를 시정하기 위해 도입된 주민소송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잘못된 관행을 앞세워 위법하지 않다고 한 이번 판결대로라면 주민참여와 주민통제에 의한 지방자치제도의 확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법한 지방재무회계의 시정이라는 주민소송 본래의 취지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기초의회의 폐해로 말미암아 이를 폐지하자는 여론 형성에 힘을 실어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기사 참고하기

성북구의회 예산 5670만원 들여 해외연수,법원 “허물 있지만 재량권 넘지 않아”(한겨레)

판결문보기1106-01.pdf

박현섭 변호사(함께하는 시민행동 법률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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