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5-28   1649

[판결비평-판결읽기3] 법관은 과연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결하는가?

주관적인 양심이 아니라 국민적 기준에 입각한 객관적인 양심을 따라야

지난 5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리혐의로 물러난 구 재단측 이사들이 교육부가 학교 정상화를 위해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임시이사들이 구 재단측과 협의하지 않고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권한 밖의 일이며 따라서 정이사 선임을 한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사건번호 2006다19054)하였다.

학내 분규와 공금횡령 및 부정입학 혐으로 김문기 전 이사장이 사법처리를 받는 등 몸살을 앓고 있던 상지대는 1993년 이후 교육부가 구 사립학교법에 의해 파견한 임시이사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2003년 학교가 정상화되고 이들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 9명을 선임하여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구 재단측 이사들이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고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재판부는, 이미 임기가 만료되었거나 사임한 후이므로 정이사 선임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고 각하하였다. 이와 달리 2심 재판부는, 학교가 정상화되었다면 임시이사들은 경영권을 구재단측 이사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또한 구 재단측 이사들을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해 학교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한다며 구 재단측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8명의 대법관들(대법관 이용훈(대법원장), 고현철, 김용담, 양승태, 김황식, 박일환, 김능환, 안대희)은 지난 번 고법판결과 같이 구 재단측 이사들이야말로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자들로서, 단순한 위기관리자인 임시이사들이 이들 구 재단측을 완전히 배제한 채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또다시 구 재단측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대해 5명의 대법관들(대법관 김영란, 이홍훈, 전수안, 박시환, 김지형)은, 구 재단측 이사들은 이미 임기만료되었거나 사임한 후이므로 정이사 선임에 대해 무효를 다툴 권한도 없을 뿐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임시이사들이 학교 정상화의 한 방편으로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당연한 권한이라며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다수의견에 대해서 사립학교는 비록 사인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되었지만 교육이라는 공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공공 시설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설립자의 재산권만 강조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다. 참여연대는 사립학교의 공공성과 자주성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보고 토론해 보기 위해 이번 판결을 비평대상으로 선정하였다.(편집자 주)

상지대가 정상화되기까지

최근 우리나라 사학비리의 상징인 상지대 구재단을 사실상 옹호하는 비논리적인 판결이 나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지난 5월 17일 상지대 구재단 이사장 김문기씨 등 5명이 학교법인 상지학원을 상대로 낸 이사회결의 무효확인 청구소송에 대해 대법관 8대 5의 의견으로 원고 승소 판결하였다.

상지학원은 김문기 전 이사장이 출연하여 설립된 것이 아니라, 설립자 고 원홍묵 선생과 지역사회의 자발적이고 순수한 기부에 의해 1962년에 청암학원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에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입학생 감소로 대학이 급작스레 재정난에 빠지자, 당시 임시이사로 파견되었던 김문기씨가 이사장으로 부임한 후 학원명칭을 상지학원으로 바꾸고는 자신이 설립자처럼 행세해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2004년 10월 28일 대법원 판결로 명백히 밝혀졌다. 그리고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문기 전 이사장은 1993년에 토지투기, 부정편입학, 친인척 비리 등으로 현직 국회의원으로 구속당하는 사태를 맞게 되었고, 대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이로 인해 임시이사가 파견되었고 구재단의 악의적인 저주에도 불구하고, 임시이사회와 학교구성원의 노력으로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2004년 1월 1일 대학교육 사상 최초로 사학비리 구재단을 배제하고 안정된 정이사체제(이사장 변형윤)로의 전환을 이루어냈다. 상지학원의 사례는 임시이사회와 학교구성원의 협력과 민주적이고 투명한 학교운영만이 비리사학의 아름다운 변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모범사례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이러한 상지학원 정상화의 노력을 부정하고, 나아가 사학비리 집단에게 복귀의 논리를 일정 정도 제공하여 사립학교법 개정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논거로 원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법리적으로도 억지로 점철되어 있어서 상식적으로 최고법원의 판결이라고 보기에는 그 수준이 실망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진 다수의견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법적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쟁점은, 임시 이사 파견 직전의 구재단 이사들이 임시이사회가 결의한 정이사 선임행위에 대하여 무효를 다투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쟁점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을 가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퇴임이사의 직무수행권에 기초하여 구재단 이사들의 소송적격을 인정한 항소심과는 달리 이를 명백히 부인하면서도 구재단 이사들에게 소의 이익이 있다는 점을 다른 이유를 들어 장황하고 궁색하게 설명하고 있다.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은 순차적으로 선임되는 이사들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 임시이사가 선임되기 전에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들은 ··· 새로운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있는 것과 관계없이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구현함에 적절한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결의의 무효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있다”고 했다.

학교법인은 정관을 가진 독립된 재단법인이다. 따라서 재단법인의 이사회는 법률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법인 운영권을 행사하고, 후임이사를 선임할 권한을 행사한다. 임기가 다하였는데 후임이사로 선임되지 못하거나 이사직을 스스로 사임했거나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해 감독관청에 의해 이사직을 취소당하면 이사의 직위를 상실하게 되고 따라서 당연히 법인과 아무런 법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법적 원리이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구사립학교법은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해소된 경우 정상화 방법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고 … 구 사립학교법 제25조는 민법 제63조에 대한 특칙으로서 임시이사의 선임사유, 임무, 재임기간, 정식이사로의 선임제한 등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 임시이사는 임시적으로 그 운영을 담당하는 위기관리자로서, 민법상의 임시이사와는 달리 일반적인 학교법인의 운영에 관한 행위에 한하여 정식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 따라서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은 없다”고 보고 있다.

학교법인은 민법상 재단에 해당하고, 사학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사립학교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 운영되는 특수법인이기 때문에 학교법인에 대하여는 사립학교법이 우선 적용되나 그 외 사립학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는 민법의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법의 일반원칙이다.

따라서 사립학교법 제16조 제1항은 이사 등의 임면에 관한 사항을 이사회가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구 사립학교법 어디에도 임시이사회가 임원 임면 결의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규정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민법 제63조에 의해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수의견이 임시이사 선임사유 해소 이후 정상화 방법에 관한 규정이 없는 구 사립학교법 하에서는 민법의 일반원칙으로 돌아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립학교법상 임시이사의 권한에 대해서는 민법의 일반 원칙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또한 다수의견이 민법제 63조에 대한 특칙으로 거론하고 있는 구 사립학교법 제25조는 임시이사의 선임사유, 임무, 임기, 정식이사로의 선임제한 등만 규정하고 있을 뿐인데, 이를 근거로 임시이사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법해석을 넘어 입법행위에 버금가는 월권행위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한 사법부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마음대로 재단하려고 하려는 행위는 의회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우려되는 사법권의 남용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비리사학 구재단 이사가 관여할 여지는 더욱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앞으로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전환하려면 구재단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수 의견이 구재단 이사들이 “학교 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할 지위”에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의 결의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의 이익”에 있는데 관하여 법률상 이해관계를 인정하는데 불과하다.

다수 의견도 이들이 정이사 선임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고 “구 사립학교법이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해소되는 경우의 정상화 방법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유효한 사립학교법, 민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원칙에 따라야 할 것”이라 하고 있다.

또한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판결은 어디까지나 구 사립학교법상 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의 정상화의 방법의 문제에 관해 내린 판단일 뿐”이라 분명히 하고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23조의 3에 따르면 앞으로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는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선임하도록 되어있고, 이때에 대학평위원회의 경우에는 이사의 3분의 1 이상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지만 상당한 재산을 출연한 자나 학교발전에 기여한 자의 경우에는 단순히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지 의견을 제시 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들어 정이사 선임에 관해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확대해석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학설과 판례에서 확립된 법 해석론에 따르면 법 해석의 순서는 우선 법조문의 문리적인 해석에 의하고 이러한 해석이 명료하지 않을 때 비로소 목적해석을 허용하고 있다.

법원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기관이지 입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현행 사립학교법이 정한 절차를 결코 뛰어 넘을 수 없음을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김문기 전이사장은 상지학원의 설립자도 아니고 출연한 재산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 발전에 기여한 적도 없기 때문에 의견 청취 대상조차도 될 수 없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 필요

독일에서 판결주문은 항상 “국민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 ”라고 시작하고 있다. 법관이 행사하는 사법권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권력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여 국민의 입장에서 판결하라는 너무나 당연한 의미이다. 과거 독일의 사법부가 사회기득권세력을 비호하고 나아가 독재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였던 부끄러운 과거를 통력하게 반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3조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양심은 법관 개인의 편협한 세계관에 기초한 주관적인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기준에 입각한 객관적인 양심을 의미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지난 군사독재정권시절에 내려진 어이없는 판결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은 그러한 오욕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대법관을 지낸 두 명의 변호사와 직전에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분이 사학비리의 대명사인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변호를 자임한 것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이 때문에 전관예우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고. 수임료에 대한 의혹마저 빚어지고 있다. 최근 사법부의 일부 판결이 힘있는 비리집단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아직도 전관예우가 통하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들의 우려와 관련하여 이번 판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번 판결은 사학개혁과 사법개혁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면서도 선출되지 않은 법관에 대해서는 마치 성역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다.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은 법관이 행사하는 사법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국가권력이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법권의 행사를 전문 직업 관료집단인 법관에게만 방치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행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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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섭 교수(법학, 상지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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