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03-15   2632

[판결비평문] 정치의사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법원의 퇴행적 판결

지난 1월 대법원 제1부 이용우, 윤재식, 이규홍, 김영란 대법관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김 모씨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게시 등) 위반에 대해 무죄선고한 항고심과 1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에 환송하는 선고를 내렸다.

재판을 맡은 4명의 대법관은, 2004년 4월 15일에 있었던 국회의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에 앞서 국회의원 후보자로 등록할 것이 확실했던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개인 홈페이지에 박근혜 의원을 비판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글을 게시한 김 모씨에 대해 선거법에서 정한 방식 외에는 당락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비판 지지의 글을 배포, 게시해서는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93조를 위반한 것이라 유죄판결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1심 재판과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판사들은, 피고인 김 모씨가 박근혜 의원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내용중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부분은 유죄에 해당하지만, 박근혜 의원에 대해 반대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그 행위 자체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공직선거법 93조가 선거가 혼탁해지는 것을 방지할 의도가 있는 법이지만, 후보자 또는 후보자로 나올 정치인의 개인 홈페이지에조차 유권자인 국민이 지지, 반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적인 법률적용이라고 판시하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1심과 항소심을 맡았던 판사들의 이같은 판결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위한 고민의 결과로서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져야 할 전향적인 판결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4인의 대법관들이 최소한 후보자 개인의 홈페이지를 통한 지지, 비판의 의견제시와 토론의 기회조차 봉쇄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지극히 소극적인 것으로, 하급심 판사들의 전향적인 법해석을 대법원이 경직된 법해석으로 퇴행시켰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을 하급심 판결과 비교하며 비판한 박경신 변호사(미국 변호사,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의 판결비평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제목

선거 그들만의 잔치?

현재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직선거법)은 법이 매우 자세히 정해놓은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는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을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 또는 기타 자료를 어떤 형태로든 유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법 제93조 제1항). 여기서 법이 정해놓은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세세하여, 그 절차를 모두 따르려면 기본적으로 특정캠프의 선거운동원이 되어서 MS워드파일로 물경 430킬로바이트 상당의 공직선거법의 내용과 역시 상당한 양의 공직선거법 시행령을 숙지해야만 가능하다.

물론, 예외적으로,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도 후보자등록이 이루어지면 법이 정한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며(법 제59조) 선거운동기간 동안에는 인터넷홈페이지를 통해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표명할 수 있다(법 제82조의4). 하지만 후보자등록은 빨라야 선거일 16일 또는 22일 전에야 이루어지므로(법 제49조) 2-3주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나 반대를 표명한다는 것은 별로 보람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선거 약 6개월 (180일)전에는 사실 누가 후보가 되려고 하는 지도 불분명한 시기이므로 지지나 반대를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선거6개월 전과 후보등록 사이의 선거 전 약 5개월 반정도의 기간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일반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후보들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표명하기에 가장 보람된 기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운동원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선거일 180일 전 시점에서부터 후보등록이 이루어지는 선거일 16일 또는 22일 전의 시점까지의 중차대한 기간에 어떻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가? 공직선거법을 문언 그대로 해석한다면 결국 주변 사람들과 사석에서 떠드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이 옳다’는 것이 올해 초에 조용히 내려진 어떤 대법원 판결의 요지이다 (2004도7488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 선고 2005. 1.27)

대법원이 문언을 그대로 해석한 것은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사법부를 문언의 격자로 가두어 놓고 법률해석에 있어 법률의 상위법인 헌법에 맞게 그 법률을 해석해야 한다는 비판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위 대법원 판결에 스러져간 같은 사건의 항고심 판례와 1심 판례이다(서울고등법원 2004노1871 선고 2004.10.19와 서울북부지방법원 2004고합239 선고 2004.7.2). 이 두 개의 판례들은 법률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중요한지 헌법의 시대적 요청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지의 아주 오래된 논쟁에 다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번 참여연대 사법감시 판례비평에서는 바로 이 두 개의 판례들을 발굴 소개하고자 한다.

위 사건에서 피고인 김 모씨는 2004년 3월경 선거일 180일 전과 16일 전 사이에 해당하는 기간에 정치인 박근혜씨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박근혜씨를 조롱 및 비방하는 내용을 남겨 위에서 소개한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대한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공직선거법 제93조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 .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 . . 문서. . . 기타 이와 유산한 것을. . . 게시’하였으므로 당연유죄였다.

1심 판사들(박철(재판장), 고제성, 김양훈)이 문언의 제한을 뛰어넘어 진정한 의미의 법률해석을 하려 하게 된 동기는 바로 공직선거법 제59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심 판사들은 제59조는 후보자는 어느 때고 자신이 개설한 홈페이지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음을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논리를 전개한다.

“무릇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차등을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인종, 성별, 나이, 사상에 불구하고 모든 국민은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평등의 원칙은 이 나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고, 이 법원을 포함한 사법시스템이 추구하여야 할 이상이다. . .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 후보자와 정치인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당해 후보자를 지지하는 글을 표현하는 행위와 반대하는 글을 표현하는 행위에 대하여 양자 모두 위 규정이 금지하고 있다고 해석하거나 허용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만이 허용되고, 양자 중 하나는 허용되고 하나는 금지된다는 해석은. . .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따라서 후보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국민이 그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를 게시하였다는 것만으로는, . . .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금지하고 있는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게시 등의 선거운동이라고 할 수 없으며, 위 규정 또한 이러한 후보자의 홈페이지를 통한 공개토론 자체를 금지하기 위한 의도로 입법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만에 하나 이를 금지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는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견개진의 권리를 정당한 이유없이 과도하게 제한한 위헌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공직선거법 제93조 1항은 ‘선거운동’만을 금지하는 정도가 아니다. “정당… 또는 후보자… 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모든 문서들의 게시가 상기 조항에 저촉된다. 그러므로 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면 피고인의 행위는 어쩔 수 없는 법률위반이다.

그러나 하급심 판사들은 제93조 1항을 해석함에 있어 입법의도를 적극적으로 분석하여 그 조항이 일련의 ‘선거운동’만을 금지하려 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렇게 하면 피고인 김 씨의 행위는 ‘공개토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입법의도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을 통해 법의 외연을 문언의 경계 너머로 밀어내는 것이야말로 법률해석에 있어 문언적인 접근보다는 입법의도를 역사적 사회학적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가공해내어 문언의 개정에 버금가는 법률의 내용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사법적극주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항소심 판사들(손기식(재판장), 이윤식, 김현석)은 공직선거법 제59조가 후보자의 인터넷을 통한 자기지지 발언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한 제93조는 인터넷을 통한 반대발언을 허용하는 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1심의 취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렇다면 애초에 왜 제59조가 인터넷을 통한 후보자 자기지지 발언을 자유로이 허용하였는가에 대해 공들여 논증한다.

“①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의 사용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특히 개인 홈페이지를 통하여 자신을 홍보하는 행위가 보편화되어 가면서 정치활동이나 선거운동에서도 인터넷 통신과 홈페이지의 이용빈도가 급증하고 있는 점, ② 이러한 현상은 후보자와 선거인 모두에게 효과적인 정보의 전달 및 획득 내지는 선전을 위하여 매우 유력한 수단이므로 그 자유로운 이용의 필요성이 크고, 입후보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쉽게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는 위와 같은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국민의 투표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자유선거의 원칙을 실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는 점, ③ 통상의 선거관련 인쇄물이나 광고 등은 그 제작과 배포.게시 등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후보자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고 후보자의 자질을 홍보하는 내용을 게시하는 것은 누구든지 많은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용이하게 할 수 있으므로 이로 인하여 후보자 간의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불균형을 두드러지게 할 염려가 거의 없고 오히려 돈이 안 드는 선거관행을 정착시키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 ④ 일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과는 달리 후보자 개인 홈페이지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접속하게 열람하게 되므로 일반 인터넷 사이트보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문서의 배포나 게시 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홍보하는 행위와는 달리. . .[하략. 강조 편집자]”

항소심 판사들은 위에 다 게재하지 못한 A4 2장 분량의 분석을 통해 인터넷을 통한 후보자 지지 또는 반대는 다른 선거운동과 차별되어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하는 논리를 축적한 후, “법 제93조의 입법목적은. . 후보자들 간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불균형이라는 폐해를 막고, 비용이 적게 드는 선거운동과 이를 통하여 후보자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려는 데 있다”고 하여 법 제93조 하에서도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을 통한 “공개토론”은 허용된다고 한다. 사실에 대한 끈기 있는 천착을 통해 일견 같아 보이는 두 개의 사물(즉, 인터넷과 재래식 문서)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러나, 결국 위 하급심과 항소심이 제59조로부터 받은 영감을 대법원은 받지 못하였다.

“공직선거법 제59조 단서 제3호에서 후보자, 후보자가 되고자하는 자는 선거운동 기간의 제한없이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법률의 개정 경과 등에 비추어 보면, 공직선거법 제59조 단서 제3호의 규정은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려는 자에 한하여 선거운동기간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한 자신의 선거운동 행위를 법률의 개정을 통하여 새롭게 허용하는 취지일 뿐이고, 더 나아가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려는 자가 아닌 일반 국민이 후보자 등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허용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판결문중)

우리는 공직선거법이 악법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보완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광범위한 선거운동의 제한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원의 평등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상에서는 후보자들에 의한 선거운동을 무제한 허용하는 조항이 있다는 것(제59조)은 칭찬받을만 하다. 그러나, 흙 속의 옥(제59조)을 더욱 빛내어 다른 조항들(예를 들어 93조)까지 아름답게 해석해내는 것은 사법부의 몫이다. □

박경신(미국 변호사,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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