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03-28   2206

온라인상 정치의사 표현 유죄, 법이 문제냐 판결이 문제냐

시민포럼-법정밖에서 본 판결① 대법원2004도7488에 대한 판결비평

선거운동원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선거일 1백80일 전 시점부터 후보등록이 이뤄지는 선거일 16일 또는 22일 전의 시점까지 어떻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까. 현 공직선거법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결국 주변사람들과 사석에서 떠드는 것 이외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법이 옳다고 올해 초 대법원은 조용히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총선 전 박근혜 의원 홈페이지에 비방글을 올린 김 아무개에게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제93조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회적으로 토론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판결을 소재로 참여연대와 <시민의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의 첫 주제는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표현의 자유 논란이다. 편집자 주

지난해 4월 총선 전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홈페이지에 비방글을 남긴 김 아무개. 검찰은 그를 당락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비판ㆍ지지글을 배포ㆍ게시해선 안된다는 공직선거법 93조 위반으로 기소했다. 1심과 항소심에선 무죄를 판결받았지만 지난 1월 대법원은 유죄로 판결했다. 선거혼탁을 막을 판결인가, 정치의사 표현의 자유에 대한 퇴행적 결정인가.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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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3월 24일 오후 4시

장소: 참여연대 2층 강당

사회: 한상희 건국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좌담: 박경신 변호사, 김준기 경향신문 법조담당 기자, 강병익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정리: 이재환 시민의신문 기자

사진: 양계탁 시민의신문 기자

han.jpg한상희(이하 한): 법원 판결의 시대사적 의미가 뭔지 짚어 보기위해 마련한 기획입니다. 나아가 시민의 관점에서 판결을 평가하고 판결에 대한 시민사회의 태도까지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법원과 일반사회가 서로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하자는 것이죠. 이를 위해 첫 좌담 주제로 박근혜 의원 인터넷 홈페이지 비방글 게재에 대한 선거법 위반 판결을 선정했습니다.

논점이 여러개가 될 것 같은데, 우선 선거부정을 막기 위해 시대적 요구로 마련한 선거법이 지나친 제약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 사법자제와 적극주의의 문제, 인터넷 공간에서의 유권자 권리, 선거운동의 문제를 짚어볼 수 있겠는데요.

박경신(이하 박): 선거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여지를 가지는데 대해 비평할 기회라 생각합니다. 사건은 총선 선거운동기간 전 김 아무개가 정치인 박근혜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누가봐도 비방의 글을 남긴 것에서 시작합니다. 검찰은 공직선거법 93조 1항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포함된 문서 및 기타 유사한 것의 게시를 위반했다며 김 아무개씨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1심과 항고심에서는 실제 조문에 김씨의 행위를 비춰볼 때 유죄인 것이 당연함에도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인터넷을 다른 문자매체와 똑같이 다뤄야 하냐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공직선거법 59조는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기간에 상관없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통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포스터나 신문광고는 다 금지하면서 인터넷만은 선거운동을 허용하죠. 판사들은 고민하다 59조가 후보자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한 반대하는 일종의 선거운동도 허용해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93조 해석을 인터넷을 통한 후보 반대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93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유죄로 판결하고 환송시켰죠.

: 돈은 막고 입은 열자는게 선거법을 만든 이유인데, 부작용인가요? 대중이 선거에서 자기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너무 인색하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낙선운동을 규제하려는 것도 마찬가지죠.

돈 막고 입열자는데…

kim.jpg김준기(이하 김): 대법원 판결문을 처음 보곤 이런 식으로 판결하면 비방, 반대글 뿐만 아니라 지지글도 마찬가지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위법 아니냐고 기사에 썼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정치인 홈페이지에 일반 국민들은 아무 글도 올리지 못한다란 거죠.

1심, 항고심 판결은 대법원 판결의 황당함에 비해 명쾌했습니다. 그래서 이걸 판결한 대법원 판사가 누군가 보기도 하고, 나중엔 아무래도 1심, 항고심 판결을 한 판사들은 인터넷을 잘 알고 대법관들은 연세가 있어서(웃음) 생긴 세대차에서 나온 판결이 아닐까란 생각까지 했습니다.

: 결국 비평은 유권자에게는 말할 기회를 박탈한 선거법의 문제로 모아지는데요. 오늘 나오지 못한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의 경우도 선거법에 할 말이 많죠?

강병익(이하 강): 선거법이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선거에 나서고 국민은 원천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 봅니다. 입은 풀고 돈은 막겠다고 만든 선거법은 애초부터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겁니다. 이제 유권자도 입을 풀어줘야죠. 조승수 의원 항고 기각건도 유권자와 정치 신인의 정당하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규제 사례입니다. 기성 정치인들이 의정보고서 형태로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면서 운동금지 기한 하루 전에 공약 발표했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건의 판결에서도 판사마다 편차가 큰게 사실입니다. 선거법 관련 법원 판결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 입법자가 무리한 법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정치관계법이나 선거관련법은 이해관계에 따라 편법적인 규정이 나올 가능성이 많거든요. 이걸 교정하는게 법원의 역할이기도 한데, 이번건의 대법원 판결은 굳이 그렇게 엄격하게 해설할 필요가 있었나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park.jpg: 대법원 잘못이라기 보단 법률 구문 자체가 광범위하게 유권자 참여를 막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앞서 이 건에 대한 비평문을 쓸 때도 대법원 비난이 아니라 하급심과 항소심이 기계적 법률조문 해석에서 벗어나 법 정신과 취지를 잘 살려 판결을 내린 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1심과 항소심 판결을 보더라도 인터넷 이용빈도까지 분석하며 유권자 선거운동이 더 개방적이여야 함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금권선거를 막기위해 제한을 가했는데 인터넷은 돈이 안든다, 그러면 인터넷에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막을 필요는 없다는 진일보한 생각을 펼쳤죠.

판사 입맛대로 재단 곤란

: 법조 취재현장에서 많이 느낀건데, 판사들은 법률뿐만 아니라 양심에 따라 판결합니다. 법 문구에 천착해 판단하기도 하지만 재판관들이 자신의 이념ㆍ가치관을 끼워넣은 판결도 상당수 있다는 겁니다. 때론 숨어있고 때론 노골적인데, 작년 대법원의 국가보안법 판결을 보면 법률적 판단 외에 당시 논란이 된 존폐ㆍ개폐 문제에 대한 의견을 두 개나 냈었죠.

이번 대법원 판결도 1심, 항고심대로 판결한다면 인터넷에서 무차별 허위ㆍ비방이 범람하겠다는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만 본 것이죠. 직접 안해봐서 그런지 사회적 토론이 큰 비용없이 이뤄질 수 있는 긍정 측면은 감안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 1심ㆍ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의 핵심 차이는 법 적용과 해석을 유권자 중심이냐, 후보자 중심이냐로 본 차이라고 봅니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유권자들은 공정선거 합시다란 얘기밖에 못하죠.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정치행위이지만 할 말이 없습니다. 당에도 모 후보 홈피에 비판글 썼는데 법원에 나와라, 갔더니 벌금 1백50만원 내라, 당이 해결해 달라는 전화를 가끔 받습니다. 인터넷에서 비판과 지지를 자유롭게 하며 공론의 장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거 문제될 것 없잖아요.

: 예를 들어 볼까요? 현 선거법도 친구끼리 술마시며 후보자 욕해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홈페이지는 문자로 남는다는 이유로 사적인 표현도 용납못하게 막는 것은 문제가 있죠.

: 세대차이 얘길 했는데 신세대들은 홈페이지에서 댓글 달고 사적인 대화 나누는게 생활화 됐습니다. 메신저만해도 문자로 남는데 93조의 적용을 댈 수 있는지, 사법부도 그렇지만 입법자들도 고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블로그는 더 심각하겠는데요. 홈페이지보다 더 애매하잖아요. 선거기간중에 특정 정치인의 기사를 모아 올린다면 어떻게 되나요.

: A후보에 대해 어떤 유권자가 당선을 바란다고 썼다면 지지같긴 하고, A후보가 옛날 국회의원 할 때 어떤 일을 했다고 쓰면 이건 지지냐 반대냐 판단할 근거가 없죠.

kang.jpg: 법을 촘촘히 만든다고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시민사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조직해 잘못된 판단은 압박을 통해 고쳐야 할겁니다. 유권자들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토록 해야죠. 아마 단시일내 논의조차 안될 것으로 보이지만 네티즌과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 답을 찾아야 할 것같습니다.

: 사회 일각에선 이런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것도 위험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 모든 건물, 공공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것처럼 선거법도 헌법에 기초한 평가,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방향에서 선 점검을 받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 짖굳은 질문 하나 하죠.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의 잘못입니까, 판단의 잘못입니까.

: 양쪽 모두 책임을 져야 할 측면이 있죠. 법적으로 미비한 것도 있고 흙속에서 옥을 찾는, 입법취지에 맞는 적극적 판결도 모자랐다고 봐야죠.

판결비평 첫 장 열다

: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욕구가 커질수록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겁니다. 문제는 법원의 인식입니다. 선거가 재밌다,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할 얘기도 못하게 막으면 투표율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성역화된 법원에 문제를 제기해야죠.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 동떨어진 판결을 시민사회가 공론화해 고칠 수 있는 분위기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사실 법원 판결을 평가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용감하거나 무식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사법부가 제대로 가기 위해선 사실 그 방법밖에 없죠. 재판관들도 법만 가지고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온라인 시대를 맞아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알리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인터넷이 된 상황에서 이를 통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입법자의 탓이냐 법, 판결의 문제냐 따지는건 중요치 않은 것 같네요.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이를 문제삼을 통로가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논의는 어찌보면 결론이 뻔한 것 같습니다. 판결비평의 첫 장을 열며, 앞으로 사법부의 변화를 촉진하는 자리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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