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6-17   4708

[판결비평] 한 변호사의 ‘A소령 성희롱 사건 판결을 본 소감’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2014년 3월 20일,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성적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여군 대위 사건에 대한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의 선고판결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공소사실(군인등 강제추행, 직권남용가혹행위, 폭력, 모욕)을 전부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현재 군검찰과 피고인 쌍방이 항소하여 제2심(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진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가해자 A소령은 불구속 상태입니다. 

이번 군사법원 판결에 대해 김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열린사람들 대표변호사)는 아래 비평문에서 ‘군사법원이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어려운 판결이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래 판결비평문을 한번씩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한 변호사의 ‘A소령 성희롱 사건 판결을 본 소감’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 2014. 3. 20. 선고 2013고9 판결(군인등강제추행, 직권남용가혹행위 폭행 모욕)

재판장 한재성 대령, 군판사 김민경 소령, 군판사 김애령 소령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 법무법인 열린사람들 대표변호사

 

 

2013. 10. 15.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육군 모 사단에서 여군대위가 직속 상관인 사단참모 A소령으로부터 수차례 강제추행과 성희롱, 모욕 등을 당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A소령이 했다는 성희롱 발언에는 “한 번 자면 군생활이 편해질텐데”라는 말도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수년간 군사법 업무를 담당했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피해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고, 성희롱 발언 자체에 적용할 법조항도 마땅치 않아 보여, 자칫 잘못하면 군검찰이나 군사법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2014. 3. 20.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직권남용가혹행위, 폭행, 모욕, 군인등강제추행 등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2군단보통군사법원 2013고9).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했다는 성희롱 내지 모욕에는 ➀ 너는 15사단 여자 소다 ➁ 봉급 값도 못하는 정신지체장애인 ➂ 이런 멍청한 새끼 ➃ 같이 자야지 아냐? 같이 잘까? ➄ 남친과 성관계할 때 내가 전화하면 안 좋을 것 아니냐 ➅ 보좌관(피해자를 칭함)이 몸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어도 나는 성욕을 잘 참고 있지 않냐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군사법원이 이에 대해 군형법 제62조 제1항을 적용한 것은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위 조항은 직권을 남용하여 학대 또는 가혹한 행위를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우리 대법원은 이에 대해 「군형법 제62조에서 말하는 가혹행위라 함은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8도2222판결 등).

 

그동안 직권남용가혹행위죄는 주로 간부가 병사들에게 심한 얼차려를 부여하는 경우 자주 적용되던 죄명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여 피해자에게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다면, 이를 군형법상 직권남용가혹행위로 못 볼 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군형법상 직권남용가혹행위죄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규정되어 있지 않고 징역형만 규정되어 있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는 점에서, 군사법원은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법조항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사법원이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2건의 군인등강제추행죄을 제외하고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했다는 성희롱 발언은 사관학교를 졸업한 영관장교가 결혼을 앞둔 젊은 후배 장교에게 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더군다나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평소 하급자인 상대방이 여군이건 남군이건, 간부이건 병사이건 간에 성적 발언을 서슴없이 해왔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실로 해괴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부인한다. ➀ 어떻게 공개된 장소에서 강제추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➁ 스쳤을 뿐 성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 ➂ 일기장에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제추행은 없었다 ➃ 격려 차원이었을 뿐 성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 ➄ 군 업무의 속성상 어느 정도의 욕설은 용인되어야 한다는 등이다.

 

피고인의 이러한 태도는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별 것도 아닌 일로 죽어버려 내 인생도 끝장났다”는 원망이 서린 것 아닌가 의문을 갖게 한다.

 

군사법원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 피고인의 이러한 변명을 배척하느라 판결문을 여러 장 허비하고 있다. 아마도 피고인의 이러한 태도를 준엄하게 꾸짖고 엄벌에 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판결문에는 자신의 범행을 축소·은폐하는 피고인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오히려 서둘러 피고인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피고인의 오직 목표지향적, 결과지향적, 상부지향적인 업무수행은 하급자에게는 과중한 부담을 안겼고, 하급자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훈계의 수준을 넘어 상대방의 인격을 폄하하는 모욕적인 언사와 질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에 앞서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폭언 및 가혹행위 등 사적 제재를 행하여서는 아니되며, 사적 제재를 일으킬 수 있는 행위를 하여서도 아니된다”는 군인복무규율 제15조를 인용하고 있다. 피고인도 잘못했지만, 피해자도 맞을 짓을 했다는 뜻인가?

 

결국 판결문은 “피고인은 한 부서를 책임지는 장이자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중적 지위에 있었던 자로서, 책임 부서의 전체적인 상향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과 완벽한 임무수행으로 상급자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바람, 그리고 학교선배이자 병과선배로서 피해자를 교육하고 훈계하고자 하는 생각 또한 하급자인 피해자를 심하게 질책한 동기로도 보이는 바, 결국 그 방법과 그 정도에 있어서는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났으나 동기에 있어서는 참작할 여지가 있다”며, “이는 상하간 소통의 문제로도 보인다”고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해괴한 피고인의 변명을 배척하느라 힘을 모두 소진한 탓일까? 재판부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피고인을 한번 꾸짖지도 못했다. 피고인의 행동을 그저 “능력이 모자라는 후임장교에 대한 과욕이 부른 불상사”로 정의한 채, 서둘러 피고인을 풀어주고 말았다.

 

현역 장교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는 것은 곧바로 군에서 제적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결코 가벼운 처벌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 판결의 양형이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균형감을 잃고 있다.

 

심지어 “종교활동의 공유”를 선처사유로 들고 있다. 피고인이 종교활동을 강요하여 피해자가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 말이다. 엄벌에 처해야 할 요인이지, 선처할 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피고인이 가족을 통해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또 하나의 선처 요인으로 들고 있다.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시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군사법원의 판결은, 군대 내에서 간부가 지속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경우 이를 직권남용가혹행위로 처벌할 수 있음을 밝힌 매우 의미 있는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어려운 판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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