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10-04   2715

[판결비평 ⓛ] “국가가 정사(正史)를 세우려해서는 안 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년 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출판사들에게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수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집필자들은 교과부의 수정명령을 거부하고 교과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지난 9월 교과부의 수정명령이 위법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에 앞서 8월에는 수정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있었습니다.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둘러싸고 엇갈리고 있는 이들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는 전문가 3명으로부터 비평을 부탁해 아래에 소개합니다.<편집자주>

[판결비평②] 교과서 소송, 우리 사회의 상식을 시험하는 재판
광장에나온판결_25회_201010.pdf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 사진)

1. 반쪽의 승리 – 절차위반이 문제라면 절차를 바꾸면 될 뿐

이것은 ‘반쪽의 승리’일 뿐이다. 아니 ‘승리’도 아니고 단지 우리가 앞으로 다루어야 할 더욱 중요한 문제를 밝혀주었을 뿐이다. 2008년 11월 2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근현대역사교과서의 소위 ‘좌편향’을 수정하기위해 교과서출판사에게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대통령령) 제26조 제1항에 의거 수정명령을 내렸고 2010년 9월2일 서울행정법원은 이 수정명령이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위 판결에서 법원은 “우리 헌법 제31조제6항(“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은 국가가 교육을 제공함에 있어 그 내용을 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근거한 현행 초중등교육법 및 이로부터 위임받은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은 교과용도서의 검정에 관한 권한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부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도록 한 헌법 제31조제4항의 취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은 검정권한을 전적으로 교과부에 맡겨두지 아니하고, 검정과 관련하여서는 학문적으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 학부모,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사람 등으로 구성된 교과용도서심의위원회의 심의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검정과 관련한 피고의 재량에 일정한 절차적 통제를 가하고 있다. 앞서 본 헌법규정의 취지와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에서 심의위를 두고 있는 취지를 고려할 때 이 사건 처분은 그 실질에 있어 검정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처분은] 검정에 관하여 정하고 있는 절차를 준수하여야 할 것이다. 피고가 이 사건 처분에 앞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역사교과서전문가협의회를 교과용도서심의회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라고 하였다.

즉 위 수정명령은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인 것이다. 위 사건에서 다투어진 수정명령은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 제26조1항에 의한 것이긴 하였으나 이 조항은 해석상 탈자 및 오기를 교정하기 위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 법원은 내용적인 수정은 제26조제1항의 수정명령을 통해서 할 수 없고 반드시 이 규정이 정한 절차 즉 ‘검정’을 거쳐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정한 절차가 바뀐다면 어떻게 되는가?

실제로 교과부장관은 곧바로 9월24일에 이 규정을 바꾸기를 시도하여 ‘교과부 장관은 교과서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검정도서에 대해선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즉 상위법을 개정하여 교과부장관이 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내용적인 수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절차를 바꾸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법률이 바뀌게 되면 교과부가 똑같은 내용의 수정명령을 내려도 전혀 하자가 없다. 지난 6월30일 교과부의 요청으로 ‘반-대기업적인’ 내용이 삭제된 사회교과서 역시 위 판결을 기준으로 하면 위법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위의 법률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교과부는 내년3월에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합법적인’ 수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2.  법률로만 하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

결국 남은 문제는 교과부가 단독으로 내용적인 수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제도에는 아무런 흠결이 없는가? 물론 현재까지의 판례를 보자면 이미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는 물론 합헌결정이 내려져 있다.(헌법재판소 1992.11.12. 89헌마88) 교과부가 스스로 교과서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합헌이라면 이미 만들어진 교과서에 수정을 가하는 것은 당연히 합헌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국가의 권한의 헌법적 한계는 헌법 제31조 제4항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으로 집약된다. 그런데 같은 조항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헌재의 국정교과서 결정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헌법 제31조의 각 조항들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⑥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교육의 자주성 ․ 전문성 ․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교육방법이나 교육내용이 종교적 종파성과 당파적 편향성에 의하여 부당하게 침해 또는 간섭당하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진리교육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교육의 자주성이 보장되기 위하여서는 교육행정기관에 의한 교육내용에 대한 부당한 권력적 개입이 배제되어야 할 이치인데, 그것은 대의정치(代議政治), 정당정치하에서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정상의 의사결정방법은 당파적인 정치적 관념이나 이해관계라든가 특수한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적 가치증진에 관련되는 교육문화 관련분야에 있어서는 다수결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교육내용에 대한 권력적 개입은 가급적 억제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동조 제4항의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에 대한 외재적 한계가 아니라 단지 입법자가 행정권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여할 의무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이란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정의사결정’으로부터 교육의 내용을 보호하는 원리로 해석을 하며 ‘행정관료에 의한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성의 목표인 것처럼 설시하고 있는 것이다. 법률을 만드는 국회가 교육행정기관보다 더욱 ‘다수결의 원리’나 ‘당파적인 정치적 관념’에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시이다. 교육의 내용을 행정관료의 자의적인 개입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법부가 교육의 내용과 양태를 법률로써 확립하기만 하면 정치적 중립성도 모두 보장된 것으로 이해하는 결정들이 뒤따르고 있다.

3.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의 규범성 복원

물론 이렇게 해석되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하위규범을 통제하는 헌법으로서의 규범성이 없어지게 된다. 제31조제4항의 규범성을 복원시켜야 한다.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미국판례들을 살펴보자.

가. “국가가 정설을 세우려 해서는 아니된다”

우선 정치적 중립성을 살펴보자. 미국판례들은 국가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보호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국가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국민들을 차별하는 것은 사상통제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차별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극장, 공영/국영TV, 예술진흥기금, 과학진흥기금 등에서 국가와 견해가 같은 사람들에게 발언기회나 재정적 지원을 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차별을 견해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견해차에 따른 차별금지원리는 공립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왔다. 즉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의 내용에 국가와 견해가 같은 입장만을 반영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에 의한 교과서선정이 아무리 절차적으로 올바르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견해차에 따른 차별일 경우 선정 자체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1982년 Island Trees Union Free 교육위원회 대 Pico사건(457 U.S. 853 (1982))에서 대법원은 교육위원회가 학교 도서관에서 특정한 책들을 장서에서 제외시키자 학생들이 자신의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서 대법원은 학교는 교육이라는 특수한 목표를 수행해야 한다면 ‘저급하거나(vulgar)’ ‘교육적 적절성(educational suitability)’이 결핍된 자료들은 제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육위원회가 책에 담긴 사상에 동의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책들을 도서관 장서에서 제외하거나 ‘정치, 국가관, 종교 또는 다른 견해의 분야에서 정설을 확립하기 위해’(아래 박스 참고) 그 책들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위헌판결을 한 것이다.
 

Va. Bd. of Educ. 대 Barnett, 319 U.S. 624, 642 (1943)
이 유명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2차대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강제한 교육위원회 결정이 학생의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며 위헌판정을 내렸다. “국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역사와 국가조직 그리고 시민적 자유의 보장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애국심을 유발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학생에게 어떤 신념을 천명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의 양태와 의미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논점은 느리기도 하고 쉽게 간과되는 충성심 함양으로의 길을 강제경례를 통해 질러가는 것이 헌법적으로 허용되는가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1975년 당시 뉴욕주의 아일랜드트리교육구 내의 공립학교를 담당하는 주정부기관인 교육위원회의 교육위원들은 한 보수적인 학부모단체의 회의에 참가하여 그 단체에서 거부되어야 할(objectionable) 책들의 목록을 입수하였다. 자신들의 교육구 내의 고등학교 도서관에 이 책 중의 9권(아래 박스 참고)이 비치되어있음을 알고 교육위원회는 이 책들이 음란하지는 않으나 “반 미국적, 반 기독교적, 반 유대교적 그리고 명백히 저급하다”고 하며 도서관에서 수거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대해 학교의 교장들은 도서관 장서에 대해 이의가 들어올 경우 위원회를 구성하여 검토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교육위원회는 학교 직원4명과 학부모 4명으로 구성된 서적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서적평가위원회가 대부분의 서적들에 대해 적합판정을 내리자 교육위원회는 서적평가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위 9권의 책에 대해 도서관은 물론 수업교재로 사용될 수 없다고 명령하였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소송을 제기하였다.
 

1975년 당시 아일랜드트리교육구 내의 보수적 학무모단체가 거부한 책들
(1) Slaughter House Five, by Kurt Vonnegut, Jr.; (2) The Naked Ape, by Desmond Morris; (3) Down These Mean Streets, by Piri Thomas; (4) Best Short Stories of Negro Writers, edited by Langston Hughes; (5) Go Ask Alice, of anonymous authorship; (6) Laughing Boy, by Oliver LaFarge; (7) Black Boy, by Richard Wright; (8) A Hero Ain’t Nothin’ But A Sandwich, by Alice Childress; and (9) Soul On Ice, by Eldridge Cleaver.

 
대법원은 “판례의 교훈은 명백하다. 교육위원회는 도서관 장서를 구성함에 있어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재량은 편협한 정치적 방식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 (중략) 우리의 헌법은 국가에 의한 사상의 탄압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략) 교육위원회가 서적의 수거를 통하여 교육위원회가 찬동하지 않는 사상에 소송원고인 학생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면(871) 이는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교육위원회의 교육위원들 중 2명이 하급심에서 반미국적의 의미를 서술하라고 하자 A Hero Ain’t Nothin’ But A Sandwich라는 서적이 건국공신 조지 와싱톤이 노예소유주였음을 밝힌 점을 지적한 것은, 위와 같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한다고 하였다.

1980년 Loewen 대 Turnipseed사건에서 주정부가 임명한 교과서검정위원회가 <미시시피: 분쟁과 변화>라는 책에 대해 흑인과 노예들의 처우에 대한 묘사가 너무 부정적이라며 검정을 거부한 것에 대해 연방지방법원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위헌처분을 내린 바 있다.(488 F.Supp. 1138 (1980)) “국가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들은 특정 책이 논란이 될만한 견해을 담고 있다고 하여 이를 검열해서는 아니된다(Bazaar v. Fortune, 476 F.2d 570 (5th Cir. 1973);Burnside v. Byars, 363 F.2d 744 (5th Cir. 1966)).”

1982년 Pratt 대 Independent School District 사건(670 F.2d 771 (8th Cir.1982))에서 교육구는 the Lottery라는 영화를 모든 학년의 수업교재에서 배제하도록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학부모 일부가 이 영화가 폭력적이며 (2) 종교적 가치와 가정적 가치를 폄하한다는 민원을 제기한 후, 해당 교육구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에 따라 2명의 시민, 2명의 교사, 1명의 미디어전문가, 1명의 교육당국자, 1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공청회 등을 통하여 위 영화를 중학교 교재에서는 배제하되 고등학교 교재에는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였고, 교육위원회는 심의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하면서 내려진 것이었다. 제8순회지구 연방항소법원은 위의 교육위원회의 결정이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그 영화의 사상적 내용을 이유로 내려져있다는 사실판단을 존중한다고 하며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위헌처분하였다. 교육위원회는 실제로 해당 교재를 배제할 때는 그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고 추후에 당해 소송이 제기된 이후에야 폭력을 결정의 근거로 들었지만 하급심은 “사후적으로 급조된 아전인수적 근거(self-serving statement. . made after the fact)”라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이와 같은 교과서선정에 대한 위헌성 주장이 항상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2005년 Chiras 대 Miller 사건(432 F.3d 606, 618 (5th Cir. 2005))에서 텍사스주교육위원회가 Environmental Science: Creating a Sustainable Future라는 고등학교 환경과학교과서가 심의위원회, 공청회 및 교육기관관리국(Educational Agency Commissioner)등에서 채택권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개의 보수적인 싱크탱크기관이 공청회 재개를 요구하여 공청회가 추가로 열린 후에 그 교과서를 ‘부적격’ 처리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와 일단의 학생들은 견해차에 따른 차별이라며 헌법소송을 제기하였다. 제5순회지구 연방항소법원은 우선 교과서가 어떤 의미에서도 공적 공간이 아니라는 미연방대법원의 Hazelwood 판시에 어긋나는 판시를 하는 한편 그렇기 때문에 견해차에 따른 차별이 허용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제5순회지구 연방항소법원은 최소한 Pico판시에서 민주당원이 장악한 교육위원회가 당적에 따라 공화당원들이 저술하거나 지지하는 교과서들을 제거하는 것은 학생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는 원리에 대해서는 동의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실제로 교육위원회 위원들이 이와 같은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해당 교과서를 배제하였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실제로 교육위원회의 위원 1명이 환경문제의 근본원인이 경제발전이라는 교과서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논설을 쓴 적이 있으나 법원은 이것이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정치적 주장이라는 증명이 없다고 하였다.

나. “교육의 당사자는 5명이다”

다음은 자주성과 전문성의 규범적 내용을 채워줄 미국판례들을 살펴보자.

교육의 이해당사자는 국가와 학생 만이 아니다. 학부모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으로부터 파생되는 교육내용 선택권이 있고 교사는 자신의 학문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에서 파생되는 교권이 있으며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 결국 교육의 내용을 규정하는 헌법적으로 올바른 방법은 교육의 자유의 다섯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1) 국가 (2) 학부모 (3) 교사 (4) 학교들 및 (5) 학생들의 의사를 모두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의사는 충돌할 수 있지만 이 충돌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정된다. 특정 교과서의 검인정에 대한 최종적 결정은 국가가 내리게 되지만 그 교과서가 실제 학교에서 사용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실제 그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은 일선교사가 된다. 하지만 그 교사에 대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학교로서 그 교과서를 이용한 특정 교사의 교육능력에 대해 평가를 하고 그 평가에 따른 조치를 할 수 있다. 또 학부모는 특정 교사가 선정한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같은 과목의 다른 교사가 가르치는 강좌로 학생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해조정의 요소로서 특정 교과서가 검인정되는 과정에서  미국,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공청회 등과 같이 위의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교과서의 검인정은 국가기관이 주관하되 학생들과 모든 교육당사자들이 의견제시를 할 수 있는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절차적인 요소는 학부모, 교사, 학교 등에게는 각 이해당사자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Pratt사건과 Pico사건을 보면 교육당국이 학부모, 학생, 교사들이 참여하는 심의기구를 구성한 후에 교육당국 스스로가 그 심의기구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던 사례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83년 Johnson 대 Stuart사건에서는 제9순회지구 연방항소법원은 오레곤주의 교과서검정제도가 학생들에게 특정 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음은 물론 승인이 되지 않는 이유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도 전체의 위헌성에 대한 소송을 허락하였다.(702 F.2d 193 (9th Cir. 1983))

“위헌제청의 대상이 된 제도는 학생들이 특정 책이 합법적으로 검인정되거나 검인정 거부되었는지를 입증할 합리적인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매2년마다 주교육위원회는 출판사들에게 법의 내용을 전달하고 계약에 따라 출판사들이 법을 준수해야 함을 상기시키고, 교과서위원회는 법률을 염두에 두고 책을 선정한다. 책이 인정이 거부될 때 주교육위원회나 교과서위원회는 그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196)”

이에 따라 학생들의 교육권은 물론 학부모들의 교육권도 침해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고 교사들의 교육권에 대해서는 교사들이 교과서 외의 다른 자료들을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있으므로 침해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이 절차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가진 교육에 대한 권리를 위해서도 기능한다. 2007년 Asociacion de Educacion Privada De Puerto Rico 대 Garcia-Padilla사건에서 제1순회지구 연방항소법원은 교과서 선정에 있어 부모들이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이의제기가 불가능한 비토권을 갖는 교과서 선정제도에 대해 위헌처분하였다.(490 F.3d 1 (1st Cir. 2007))

즉 푸에르토리코에서는 그 지방 전체에 적용되는 검인정제도는 없고 개별학교들이 교과서를 선정하는데 이때 학부모들이 교과서 선정에 있어서 교과서 가격 등을 이유로 학교의 교과서 선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기회를 주지않는다고 위헌판정을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육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국가, 학교, 교사 및 부모가 모두 일정한 헌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며 교과서검인정제도가 공청회와 같은 요소를 통하여 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각 이해당사자들이 교육에 대해 가진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헌법적 당위인 것이다.

4. 교과부의 수정명령 권한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하다

위 미국판례들을 인용해보았을 때 교과부가 내용적인 수정명령을 내릴 때 견해차에 따른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즉 교과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용들을 솎아내서는 아니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 이것은 ‘좌편향’된 내용을 솎아내려 하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또 교과부가 교육의 다른 당사자들이 모두 따라야 하는 교과서선정결정을 단독으로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른 교육의 당사자들이 참여하고 교육의 가장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교사들이 참여하는 선정절차를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자주성 및 전문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법이 교과부의 입법예고대로 단독으로 내용적인 수정을 명령할 수 있게 된다면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을 위반하는 제도가 된다.

5. 보론 : 저작인격권 소송

저작인격권은 사실 저작권이 아니다. 일본에서 서구의 저작권법을 계승하면서 별다른 생각없이 저자의 권리 즉 moral right을 저작권법 안에 집어 넣어 저작인격권이라고 부른 것을 대한민국이 역시 아무 생각없이 계승하여 마치 저작인격권이 저작권의 하나인 것처럼 되어버렸고 그와 함께 권리의식도 높아만 갔다.

그러나 저작인격권은 지적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독점력을 인정해줘서 그와 같은 지적노력을 독려한다는 지적재산권법의 기본틀을 벗어나는 것이며 저작인격권이 저자로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어떤 절대적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아니된다.

저작인격권은 그야말로 인격권으로서 저자로서 자신의 인격이 훼손되지 않도록 타인의 행위를 방지하는 규범으로서 작용할 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저작물에 심대한 변경이 가해진다면 저자의 인격권이 훼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저작인격권의 소위 ‘동일성유지권(즉 변경금지권)’은 모든 변경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저자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의 변경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서의 교과부의 수정명령에 의한 출판사의 내용변경이 그렇다면 저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구심이 있다.

광장에나온판결_25회_2010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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