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03-15   2500

[판결비평문] 법원의 검열, 영화 ‘그때그사람들’ 가처분 결정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의 이태운, 김연학, 전휴재 판사는 이른바 10.26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의 명예등을 훼손한 점이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낸 영화상영금지가처분 사건에서, 비록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고 하나 영화상영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릴만하지는 않다고 결정하였다. 특히 전직대통령으로서 공인이라는 점과 함께 명예훼손이란 단순히 주관적인 명예감정만을 침해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보아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예술창작의 자유에 대해 긍정적인 사항을 판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긍정적인 판시내용과 달리, 3인의 판사는 신청인들이 문제삼지도 않았던 일부분, 즉 창작기법에 의해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부분을 문제삼으며, 일부 다큐멘터리 장면으로 인해 관객들이 사실과 허구를 혼동할 수 있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시하며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여 상영하라고 결정하였다.

결국 이 때문에 이 결정문을 읽다보면 표현과 예술창작의 자유에 대해 일부 전향적인 결론을 기대하게 되다가 아주 실망스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 결정의 긍정적인 면은 다른 판결에서도 이어져야겠으나, 관객들이 일부 장면 때문에 영화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혼동할 것이라 지나치게 걱정하면서 구체적인 창작기법에까지 재판부가 개입한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결정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오동석 교수(아주대 법학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의 판결 비평문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1. 들어가며

이 결정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아래 ‘고인’으로 줄임)의 장남인 박지만씨가 ‘그때그사람들’ 제목의 영화가 고인의 성적 사생활 등 생활상과 10ㆍ26사건 당시 고인의 행적을 허위로 기술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함으로써 고인과 가족의 인격권 또는 명예 및 추모 감정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영금지의 가처분을 구한 것에 대한 결정이었다.

2. 예술ㆍ표현 자유와 인격권의 충돌

1) ‘이태운 재판부’ 재판장 판사 이태운, 판사 김연학, 판사 전휴재

(아래 “재판부”로 줄임)의 판단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영화 제작ㆍ상영에서 예술 표현 자유와 인격권 충돌의 문제임을 확인하면서 구체적 법익형량 원칙을 해결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결정(1996. 10. 4. 선고 93헌가13, 91헌바10(병합))을 인용하여 영화 제작과 상영이 언론ㆍ출판 자유는 물론 학문ㆍ예술 자유의 보호대상임을 인정하였다. 다만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자유와 비밀 등 사적 법익도 보호되어야 하므로, 언론ㆍ출판 자유가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처럼(헌법 제21조 제4항) 예술 표현 자유도 타인의 인격과 충돌하는 경우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법익형량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 사건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인데, 재판부는 그 모델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도 “死後에 망인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왜곡 등으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유족이 명예훼손 또는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영화 상영금지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기준은 ‘명예의 중대 침해’이며, 그것은 ‘침해의 태양이나 정도, 악의성 여부 등을 고려’하여 “그 침해의 태양이나 정도, 악의성 여부 등을 고려하여 명예가 중대하게 훼손될 경우에만 상영금지를 인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 비평

이 사건이 예술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충돌 문제로서 양 법익의 추상적 형량이 아니라 구체적 형량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재판부의 판단에 동의한다. 아울러 재판부가 제시한 바와 같이 인격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는 경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예술 표현 자유를 제한하는 상영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사건에서의 구체적 판단기준에 대한 재판부의 논리는 문제가 있다. 먼저 영화가 사실 보도와 달리 사생활 왜곡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점이다. 재판부는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의 표현에서 예술과 허구 그리고 사생활 왜곡을 혼동하고 있다. 사생활의 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실존 인물에 대한 예술 표현은 필연적으로 허구이다. 그러나 그러한 허구가 모두 사생활 왜곡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말하듯 ‘예술가가 인격권의 중대한 침해를 악의적으로 의도하였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모델영화’에서 사생활 왜곡 묘사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재판부의 편견이다. 오히려 왜곡의 관건은 수용자의 태도인데, 수용자는 영화를 허구로 선이해(先理解)하기 때문에 사생활 왜곡의 가능성은 진실을 전제하고 있는 사실 보도에서 더 높을 수 있다.

이 점은 영화의 다큐멘터리 사진 부분을 영화 전체 속에서 이해하지 못한 재판부의 판단으로 이어진다. 내가 보기에 재판부는 영화와 사실 보도 그리고 허구와 진실을 물과 기름 관계인 것으로 단정함으로써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사진이 실제 사건을 재구성하여 사생활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감독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영화의 허구성을 증폭시키는 예술적 장치임을 간과하고 있다.

다음으로 예술 표현 자유가 인격권을 침해할 수는 없지만, 재판부가 판단하듯 모델영화가 완전한 허구로 승화할 때 인격권 침해의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실존 인물 혹은 사건을 소재로 하여 그것을 고유명사 그대로가 아닌 보통명사화함으로써 예술로 승화할 때 인격권 침해는 없다. 즉 박정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장기집권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서 그 권력의 위세를 실감케 하는 소재일 뿐이며, 영화 속에서 그는 박정희 그 자체가 아니라 권력자를 표상할 뿐이다. 막연한 권력자가 아닌 구체적인 권력자의 위세가 ‘박정희’ 라는 실존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될 뿐, 재판부도 인정하듯 영화는 박정희를 주변인물로 묘사하고 오히려 당시 엄청한 권력자 주변의 평범한 이들에게 주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물론 드라마를 현실과 혼동하는 이가 없지 않지만, 그들을 한국 사회 평균인으로 상정하는 것은 관객모독이다.

3. 구체적 장면에 대한 판단

1) 재판부의 판단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였다. 첫째, 영화는 사실 전달 기사와 달리 공익을 위한 사실 적시와 거리가 멀어 공적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도 사생활 왜곡 묘사의 가능성이 높다. 둘째, 완전한 허구로 승화한 경우에는 인격권 침해의 여지가 적지만, 셋째 그렇다고 인격권 침해를 허용할 수는 없다.

먼저 신청인이 문제 삼은 구체적 장면은 다음과 같다(아래에서 장면 번호로 표기).

“신청인이 이 사건 영화에서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구체적 장면은, 별지 대본 기재 중 S#2{비밀요정에서 반라(半裸)의 여인들의 등장 장면 및 철없는 엄마의 대사}, S#3(헬기 안에서의 각하 등의 음담패설 및 일본어 사용 장면), S#10, 28, 32, 34, 36(청와대 각하 집무실과 궁정동 별관 만찬장에서의 각하의 일본어 사용, 집무실에서 양실장을 통하여 엔까(演歌)를 잘 부는 가수인 ‘수봉’을 만찬장으로 부르도록 한 장면, 만찬장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을 상상하는 장면, 젊은 여자의 품에 기대어 수봉이 부르는 엔까에 심취해 있는 장면), S#40(양실장이 각하 앞에서 드러누워 유흥을 즐기는 장면), S#62{각하의 피살 장면, 구체적으로는 각하가 ‘김 부장 또 쏠라꼬?, 한 방 묵었다 아이가?’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김부장이 이미 총을 맞고 쓰러진 각하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 다시 세운 후 高木正雄(다까키 마사오, 각하의 일본 창씨명)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누구나 죽으면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장면}, S#109(국군 서울지구 병원 수술실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이 각하 나체 시신의 음부를 모자로 덮는 장면) 등이라 할 수 있겠다(위 장면 모두를 통틀어 ‘이 사건 문제장면’이라 한다).”

재판부는 먼저 ‘각하’가 이 사건 영화의 주인공이나 갈등의 중심인물이 아니라면, 피신청인들은 고인의 행적이나 성격 등을 이 사건 영화상의 표현보다 완화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등 충분한 ‘회피가능성’이 있었다고 보았다. 둘째, 재판부는 살해 장면(S#62)과 병원장면(S#109)에서 ‘악의성’을 엿볼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이 사건 문제장면이 ‘신청인의 고인에 대한 명예 및 추모감정을 상당히 자극’하고 있음은 물론, 관객들에게는 “공적 인물인 고인에 관한 왜곡된 인상을 갖게 하여(설사 그것이 부분적으로 실제 사실과 합치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고인 및 신청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았다.

다만 두 가지 점을 다시 감안한다. 첫째, 피신청인들의 경우 본안소송에서 다투어 볼 기회조차 없이 창작물을 관객에게 공개할 기회 자체를 봉쇄당하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가처분 발령의 결정에서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둘째, “명예훼손이란 단순히 주관적인 명예감정을 침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대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어야” 하므로 “객관적으로 보아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 그 내용에 다소 과장되고 부적절한 표현, 신랄하고 가혹한 비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되어야 범위 내에 있으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재판부가 개입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을 발령하여 보호할 필요가 있을 정도의 다툼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은 ①영화 자체에 대한 검토와 ②영화모델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루어졌다.

①의 검토는 이 사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허구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로서 상업영화라는 점, 과장, 왜곡 및 희화가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법적 판단에서는 풍자, 흉내, 비꼼, 농담의 일부로 하는 대사에 대하여는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되도록 자제하여야 할 것인 점, 피살 장면에서의 대사는 ‘친구’라는 영화의 주인공의 행동이나 대사를 패러디한 것으로 합리적인 관객이라면 실제로 고인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하였을 것이라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영화에서 각하는 주인공 또는 갈등을 주도하는 배역이 아니라 일부 장면에 출연하다가 끝내 살해되고 마는 비극적인 객체일 뿐이라는 점, 이 사건 영화의 제작진은 영화 제작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10ㆍ26 사건에 관한 각종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보여지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졌다.

②의 검토는 고인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공적 인물이므로 고인과 그의 유족들은 그들의 프라이버시 등에 대한 침해를 어느 정도 수인(受忍)하여야 할 것인 점, 고인에 대하여 지극히 긍정적인 평가로부터 장기집권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독재자일 뿐이라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나 평론이 존재하는 점, 10ㆍ26 사건은 단순한 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갖는 중대한 공적 사실이란 점, 망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10ㆍ26 사건과 같이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사실에 관한 재조명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우려가 있는 점 등에서 이를 재조명함에 있어 다소의 추측이 가미되더라도 이에 대한 제재는 상당히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졌다.

그 결과 재판부는 사회통념상 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선뜻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으며, 그에 따라 이 사건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 내지 이 사건 문제장면과 같은 작가가 직접 제작한 영화 내용에 관한 직접적인 수정이나 삭제를 구하는 신청을 인용할 정도의 피보전 권리에 관한 구체적인 소명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2) 비평

재판부는 문제 장면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인격권 침해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악의성 의혹은 스스로 인정하듯 블랙코미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희화일 뿐이다. 나의 경우 그 장면에서 박정희의 사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그의 친일 혹은 독재 전력, 더 나아가서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한국 사회 권력층을 보았다. 병원 장면에서는 권력의 무상함을 그리고 피살 장면에서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그래서 이것이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블랙코미디임을 상기시키는 감독의 의식적인 장치로 이해하였다.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장치가 연극 혹은 영화의 기법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청인의 감정과 고인의 인격권 침해를 분리한 점, 영화 자체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 점, 공직 인물과 공적 사건에 대한 ‘상당히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 것, 그에 따라 삭제나 수정을 요할 정도의 소명이 없다고 판단한 점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4. 다큐멘터리 사진 부분에 관한 판단

1) 재판부의 판단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장면들(이하 ‘이 사건 삽입장면’이라 한다)이었다. 그것은 “이 사건 영화 중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거론한 장면이나, 영화 시작 부분에 부마민주항쟁(이른바 ‘부마사태’)에 관한 다큐멘터리 화면을 배치하고, 10ㆍ26 사건에 관하여 극적 전개를 한 다음, 다시 고인의 장례식 다큐멘터리 화면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영화가 허구라고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속의 인물이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게 된 경우 양자를 동일시하게 되고 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화의 한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허구라는 일반적인 인식이나 제작자의 주장과는 달리 영화가 실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여지가 충분하고, 위와 같은 경우에는 실제 인물 자체의 인격상을 왜곡하고 명예를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인물을 소재로 채용하였지만 창작자의 창작력에 의하여 충분히 연소되어 허구로서 승화되었다는 전제’하에 이 사건 문제장면을 삭제하기 어렵다고 본 재판부의 판단 유지가 이 사건 삽입장면으로 곤란하게 되므로 결국 “이 사건 삽입장면을 삭제하지 아니한 채로 이 사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 구체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이 사건 삽입장면의 내용, 분량, 삽입 위치와 방법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삽입장면이 이 사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승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거나, 작품의 완성도 유지나 흐름상 필수불가결한 장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되고, 오히려 이 사건 삽입장면을 제외하더라도 내레이션이나 영화본문에 ‘수봉, 김재규’ 등의 실명이 거론됨으로써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점을 나타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여지며, 한편 이 사건 영화 시작 부분에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부 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있었던 사건’과 ‘픽션’이라는 두 명제에 유사한 지위와 분량을 부여하여 자막에 배치함으로써 위 자막만으로는 관객들에게 이 사건 영화가 허구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 부족하다고 보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 자막이 이 사건 삽입장면들과 결합할 경우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 사건’을 묘사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도 없지 않으며, 더욱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의 첫머리나 말미에 실제 인물과는 상관 없는 내용이라고 밝히더라도 관객은 그러한 자막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인물과 소재가 된 인물을 일치시키려 할 것이어서 인격권이 침해가 될 소지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앞서 본 자막만으로 이 사건 삽입장면의 상영까지 허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재판부는 다만 이 영화에서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부분을 특정할 수 있으므로 영화 전체에 대한 상영금지가 아니라 문제가 된 부분만을 삭제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 사건 신청의 보전의 필요성에 관하여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였다. 첫째는 명예권의 성질상 일단 침해된 후에 금전배상이나 명예 회복에 필요한 처분 등의 구제수단만으로는 그 피해의 완전한 회복이 어렵고, 손해 전보의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려우므로 사전 예방적 구제 수단으로 침해행위의 금지청구권을 행사함이 긴요하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헌법 제21조 제2항에서 정한 검열금지의 원칙은 의사표현의 발표 여부가 오로지 행정권의 허가에 달려있는 사전심사만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에 의한 상영금지 가처분은 행정권에 의한 사전심사나 금지처분이 아니라 개별 당사자간의 분쟁에 관하여 사법부가 사법절차에 의하여 심리, 결정하는 것이어서 헌법에서 금지하는 사전검열에 해당하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표현행위에 대한 가처분에 의한 사전금지청구는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나 사생활 등 인격권 보호라는 목적에 있어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고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었다(헌법재판소 2001. 8. 30. 선고 2000헌바36 결정 참조).

2) 비평

이 결정의 결정적 오류는 다큐멘터리 장면에 대하여 삭제를 결정한 것이다. 이 사건 삽입장면 때문에 관객이 영화와 실제를 동일시함으로써 영화가 실제 인물 자체의 인격상을 왜곡하고 명예를 침해했다는 것은 다시 말하건대 ‘관객모독’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Lebach 결정(1973. 6. 5. BVerfGE 35, 202쪽 아래)의 경우, 방송사가 과거 범죄사건을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제작ㆍ방영하려 한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재판소는 제1단계에서 방송 자유와 인격권 어느 쪽의 헌법가치도 추상적 차원에서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구체적 형량의 제2단계에서 범죄행위의 시사적 보도에 대하여 보도의 원칙적 우위를 인정한 위에, 마지막 제3단계에서 ①텔레비전 방송의 반복성, ②시사적 정보이익의 부족, ③중대한 범죄행위이면서도 ④수형자의 사회복귀를 해하는 경우에만 보도가 금지된다고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때그사람들’의 경우 먼저 영화가 텔레비전 방송과 달리 유포 범위가 협소한 점 그리고 수용자의 자발성과 적극성 요청 정도가 강하다는 점, 둘째 시사보도와 달리 영화 장르상 실제 상황으로 오해할 우려가 적다는 점, 셋째 재판부도 인정하듯 고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므로 이 영화가 미치는 파급효가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의 삭제 결정은 재판부의 검열로서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삽입장면을 제외해도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점을 나타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법관이 법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예술가가 해야 할 예술적 판단을 한 것이며, 또한 삽입장면이 단지 소재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 속에서 주목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휩쓸리고 사라져 갔음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요한 영화적 장치였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전검열이 행정권의 문제일 뿐 사법부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판단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치밀한 논리구성을 통한 엄격한 사법적 판단만이 사전검열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뿐 법익형량의 이름으로 적절히 타협하는 것은 표현 자유를 위축시키는 사법적 검열의 틈입관문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다큐멘터리 장면이 필수불가결한 장면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삭제 결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영화감독이 ‘악의적으로’ ‘사실로 오인케 할 필수불가결한 장면’을 사용하여 ‘고인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훼손시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 영화에 손을 대서는 안되었다. 설령 추후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금전배상이나 명예 회복에 필요한 처분 등 구제수단으로 충분한 정도이다.

5. 맺으며

결론적으로 영화 ‘그때그사람들’의 일부 다큐멘터리 사진 부분을 삭제하도록 명한 가처분 결정은 예술 표현 자유와 인격권을 형량함에 있어서 삽입 장면이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 사건 묘사로 인식케 한다는 논리적 비약을 함으로써 예술 표현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라고 평할 수 있다. 물론 영화에 대한 평자의 이해가 주관적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재판부는 그 이상으로 관객과 영화를 주관적으로 단순화하여 애초 내세웠던 종합적 판단을 결정문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재판부의 존재이유에 걸맞는 인권 보장에 실패하였음은 틀림없다. □

오동석

(아주대 법학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오동석 교수(아주대 법학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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