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2-26   1411

[판결비평-판결읽기2] “법원의 비공개 이유에 이의 있습니다”

절차는 편해졌지만 내용은 부실한 정보공개청구 제도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종종 방문할 기회가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2~3년 사이에 어느 기관이든지 새로운 메뉴(혹은 잘 눈에 띄지 않던 코너)가 전면 배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행정정보공개’ 코너이다. 전에는 직접 방문하거나 팩스로 신청서를 접수할 만큼,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제도가 정보공개제도였다면,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지 10년에 접어들다 보니 정보공개제도를 잘 모르던 사람이라도 공공기관이 설명한 자료를 한번씩 둘러보고 필요할 때 신청해볼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법하다. 정보공개청구의 첫 단계인 ‘신청’ 절차가 편리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열린 행정, 투명행정’을 표방하며 정보공개청구를 선뜻 받아줄 것처럼 홍보하고 있는데, 과연 시민들은 원하는 정보를 수월하게 얻을 수 있을까?

최근 1심 판결이 있었던 FTA 협상문 초안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건은 공공기관이 정보공개청구에 ‘반응’하는 뻔한 형식의 비공개 사안을 다룬 판결이었다.

원고는 FTA 협정문 초안을 사본 또는 출력물로 교부할 것을 외교통상부에 정보공개청구하였고, 외교통상부는 FTA 협상문 초안이 ‘다른 법률 또는 법률이 위임한 명령’에 의해 비공개로 규정되고(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1호), 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으며(제2호), 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제5호)한다고 비공개했다.

보통 공공기관이 정보를 비공개하면서 주로 인용하는 조항이 4개 있는데 그중 3개가 이번 건의 비공개 사유에 해당한다(나머지 하나는 제6호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 개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조항이다).

불만족스러운 판결

이에 대해 각각의 조항이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불만족스럽다. 물론 FTA 협정문 초안이 대외비라고한 외통부의 주장에 대해, ‘대외비’는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행정규칙)에서 정한 것으로 ‘다른 법률 또는 법률이 위임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당연한 판결이다. 하지만 다른 2가지 비공개 사유에 대해서는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최근 정부는 헌법과 사법주권 훼손, 공공정책과 규제의 무력화 등을 초래할 수 있는 ‘투자자 – 국가 소송제’에 대해 그 위험성을 제대로 검토해 보지도 않고 협정문 초안에 담았다가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잇따르자 수개월 후에야 TF를 구성하고 뒤늦게 수정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정부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정말로 위한다면 국민 생활의 근간을 뒤흔들 FTA 협상에 있어서 지금과 같이 주먹구구식으로 준비하고 전형적인 밀실 외교로 일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이 더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열린 행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미 열람 공개가 되고 주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던 자료조차 비공개하겠다는 정부나 이를 용인하는 재판부의 판결은 매우 실망스럽다. ‘의사결정과정 또는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판단 역시, FTA 협상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보다는 일사천리로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만 중요시하는 협상단의 편의만 봐주었다는 면에서 매우 불만족스럽다.

얼마전 참여연대가 정보공개청구 한 부동산 대책 관련 회의 자료에 대해서도, 재경부와 건교부는 관련 정보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음에도 정책 결정에 관한 사항이고 ‘공개될 경우 국민들에게 혼선을 야기하거나 업무수행에 명백한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대부분 비공개 했다. 정보공개법에서 비공개대상 정보를 매우 폭넓고 모호하게 규정하여, 행정기관이 민감하거나 정책결정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 손쉽게 비공개 결정을 내린 또 다른 사례이다.

정보공개제도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이처럼 정보공개제도는 절차상의 편리함은 개선되어온 반면, 실제 정보공개청구를 처리하는 공무원과 행정기관의 인식 수준은 정보공개법 시행 초기보다 전혀 나이지지 않고 있다. 각 기관의 정보공개담당자가 아닌 공무원 중에는 아직도 정보공개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비공개사유도 밝히지 않고 비공개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정보공개 비율이 행정기관 평가에 실적으로 반영되므로 공공기관이 비공개 결정을 내리기보다 청구인에게 취하를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갖가지 불합리한 사유에 의해 비공개 결정이 내려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는 평균 33개월이 소요된다. 하지만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소송을 진행한다고 해도, 위의 FTA 협정문 초안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건처럼 법의 모호함과 행정정보에 대한 폐쇄주의적인 정서로 인한 비공개 판결을 받기 쉽다.

정보공개제도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자의적인 비공개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행정의 투명성에 입각한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칼럼 더 보기

판결읽기1 “현실성 없는 위험내세워 진짜 국익 외면한 판결”(박주민 변호사)

판결읽기3 “비공개로 일관한 정부 손을 든 편협한 판결”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이경미(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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