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4-04   1713

[판결비평-판결읽기2] 눈가린 법의 여신이 ‘교통불편’과 ‘인권’을 저울질한다면?

지난 3월 15일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종관 판사, 정승규 판사, 홍성욱 판사)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관할경찰서에 신고한 ‘한미 FTA저지’를 위한 청와대 인근 경복궁 근처 인도에서의 행진 등 집회 계획에 대해 경찰이 교통불편이 우려된다며 개최를 금지한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며 정당한 것이라고 판결(사건번호 2006구합24787)하였다.

지난 해 6월 범국본은 정부의 한미FTA협상 추진을 반대하기 위해 청와대 주변 경복궁 인근에서 2000명 정도가 참가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관할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관할 경찰서장은 집회장소가 주요도로이고 미리 배포된 유인물에 인간띠잇기를 개최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등 공공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다며 금지 처분하였다. 이에 범국본은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금지하는 요건은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적용ㆍ해석되어야 하는데, 교통불편이 야기될 우려만으로 집회를 금지한 것은 경찰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들은, 경찰 측 주장대로 처음 집회 신고한 2000명보다 많은 수만 명이 참가할 것이 예상되고 “만일 수만명의 집회참가자가……일시에 집회를 개최한다면…인도뿐 아니라 차도까지…점거되거나”, “그 일대의 인도 통행이 불가능”하여 일대에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을 것이 명백하므로 금지처분은 정당하다며 경찰 측 손을 들어 주었다.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기본권 보호에 충실해야 할 법원이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면서 서로 충돌되는 권리들의 침해정도를 충분히 살펴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떠한 대체수단도 강구하지 않은 경찰 측 주장만을 받아들여 너무 손쉽게 ‘심각한 교통불편 야기’를 인정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함께 토론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 판결을 비평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비평칼럼은 한상희(건국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장유식(변호사, 법무법인 동서남북)이 작성하였다(편집자 주).

교통불편, 인권보다 앞서는가?

인권을 말할 때, 사람들은 과도하게 주어지는 어떤 권리를 상상한다. 그것은 방종같이 보이기도 하고 역차별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인권도 좋지만’이란 수식어가 붙는 말들이 꽤 많다. ‘인권도 좋지만 요즘 청소년은 예의가 없어.’ ‘인권도 좋지만 경제가 살아야지, 노동조합이 대순가’라는 식의 말들이 이것이다.

인권도 좋지만 시리즈 중에 ‘인권도 좋지만, 교통 불편을 초래하는 집회는 나쁘다’가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집회ㆍ시위가 이 시리즈의 상종가를 치는 이유는 잦은 집회ㆍ시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집회ㆍ시위 사전금지 조치, 경찰의 과잉진압, 교통 불편을 이유로 한 집회금지 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과 같은 ‘그래서 인권도 좋지만, 인권은 나중에’라는 주장이 득세를 얻어가는 외부적 요인이 크다. 그런데 문제는 인권이란 없어도 그만인 ‘도 좋지만’에 해당할 수 없는 권리라는 데 있다.

인권은 예를 들면, ‘누구나 자신의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점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해당한다. ‘누구나 100평대 아파트에 주거할 권리가 있다’에 해당하는 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의미하는 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권리에 해당하는 것이 인권이다. 결국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은 양보가 없고, 물러설 곳이 없으며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되는 기본에 해당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기본과 필수를 ‘도 좋지만’쪽에 세우면서 권력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의 대부분을 힘의 균형이 대등한 A와 B의 갈등상황인 것처럼 포장한다.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젊은 경찰과 60대, 70대가 대부분인 농민의 맨주먹이 똑같고, 특정되지 않은 사람들의 교통 불편과, 언론도 권력도 없어서 결국 거리에 나와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유는 똑같다.

아니 사실은 전자가 훨씬 힘없는 약자이며 보편타당한 상식에 해당한다.’고 번쩍 손을 들어준다. ‘교통 불편 야기 우려 이유로 집회자유 금지한 서울행정법원(제 12부 재판장 정종관) 판결이 대표적이다.

판사들이여, 인권은 법전에 없고 거리에 있다

‘종로부터 광화문까지 FTA반대집회로 인해 교통체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쪽 방면으로 가실 분들은 우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말 낮의 교통체증은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학습시킨다. 또 하는구나. 또 막히는 구나… 무의식의 회로에는 ‘집회를 하면 길이 막히고, 불편하고, 결국 나는 짜증이 난다. 그러므로 집회는 나쁜 것이다.’ 라는 등식으로 새겨진다.

여기에 언론들은 ‘선량한 시민들의 발목을 잡은 시위대들의 불법과 무질서’를 끊임없이 반복 재생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어느새 중얼거린다. “도대체 왜 저런 짓들을 하는 거야…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것들” 사실은 도대체, 아직도, 왜, 정신 못 차리고 그런 짓들을 하고 있는지, 이유 전달이 가장 중요한 목적인 집회시위는 불편과 무질서, 게다가 폭력 시비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2조 1항은 집회신고를 접수하는 관할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주요도시의 주요도로에서’ 진행되는 집회ㆍ시위에 대해 ‘교통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 제1항은 집회ㆍ시위제한이 될 수 있는 각 도로를 별표로 정해놓았다. 그런데 이 별표에 정해진 주요도로를 살펴보면 경찰은 언제든지 서울 전역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관할 서장이 집회 시위에 대해 교통소통 만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면, 바로 집회는 불법이 된다.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이거나 눈에 가시거리인 FTA범국본이나 민주노총 같은 단체가 집회신고를 한다면, 일개 경찰서장은 간단하게 수천, 수만 명의 시위대를 불법행위자로 만들 권한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교통 불편을 이유로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나선 것이다. 경찰이나 법원이나 인권을 모르기는 매한가지고, 편파적인 것도 똑같다. 잃을 것이 없어서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원망이 ‘모두 한통속’인 그들에게 향한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인권인 이유

날 때부터 집회ㆍ시위하기를 작정하고 태어난 자는 없다. KTX여승무원, 대추리 할머니, 영화인들, 2005년 경찰 방패에 찍혀 죽은 홍덕표 할아버지, 평생 노가다로 살다가 또한 경찰에 맞아 죽은 포스코의 하중근씨도 아마 그 자리에 서기 전에는 교통 불편으로 인해 집회ㆍ시위를 싫어했을지 모를 ‘소위’ 선량한 보통 시민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을 거리로 내 몬 것은 잔인한 세월이었고 절망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였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인권인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언론을 통해서 ‘도 좋지만’이라는 말들을 듣는다.

이번 판결을 내린 서울행정법원의 판사, 법복을 잠시 벗고 과거에 선량하고 평범했던 그들이 흘린 눈물이 거리마다 차오르는 그곳, 거리에 잠시 서 있기를 권유한다. 인권이 교통 불편보다 앞서는 것을 배울 방법은 그것밖에 없겠다. 한 손에는 칼을 뽑아들고 한 순에는 저울을 든 법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를 깨닫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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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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