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11-23   3527

[24차 판결비평①] 헌법, 군대에서는 할 일이 없다?

지난 2010년 10월 28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를 합헌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 헌재는 이 조항에 따라 23개의 서적들에 대해 내려진 불온서적 지정 및 반입금지조치가 장병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며 당시 군법무관 7명이 낸 헌법소원을 각하하였고, 군인복무규율 조항의 근거법률인 군인사법 제47조의2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각하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2008년 10월 22일, 군법무관 7인이 국방부의 자의적인 불온서적 지정이 장병의 알권리, 학문의 자유, 양심형성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간 사건입니다.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 10월 29일 “군인들의 사상의 자유를 무시한 결과이며 법적으로도 흠결을 가지고 있어 유감”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오동석 아주대 교수(헌법), 오병두 홍익대 교수(형법)를 비롯해 2008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 가운데 한 명인 박지웅 변호사 등 세 명의 전문가에게 헌재 결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담은 비평을 요청하였으며 각각의 글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

[24차 판결비평②] 헌법재판소의 ‘복고주의’ : ‘특별권력관계론’과 ‘복종적 정신전력론’
[24차 판결비평③] ‘불온’이란 말은 결국 21세기 한반도에서 종식되지 못했다
[참여연대 논평] 헌재의 “불온한” 결정 유감

JWe201011230a.pdf– [24차 판결비평 – 광장에 나온 판결]

오동석 교수 (아주대 법학ㆍ헌법)

 1. 군대에서는 쓸모없는 헌법

한국의 헌법체제는 민주공화국헌법체제인가? 아니면 민주공화국 국가 안에 초헌법적 안보법체제가 독립적으로 형성된 ‘이중국가’인가? 아무래도 후자인 듯하다. 헌법이 통제하지 못하는 안보법체계와 안보기구가 공공연히 존재하며, 그것들이 헌법기관보다 사실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공식국가가 비공식국가에 자리를 내주고, 양지의 국가가 음지의 국가에 밀리”게 되며, “헌법하위법에 의하여 설치된 안보관련기구들이 초헌법적 주권기관으로 군림함으로써 공식 국가기관들은 박제된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한다.” 헌법은 무늬만 최고법규범일 뿐 쓸모없는 장식용으로서 동원될 뿐이다.

국방부는 이른바 ‘불온서적’을 지정하여 영내 반입을 금지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합헌으로 결정하였다(헌재 2010.10.28. 선고 2008헌마638 결정). 헌법소원심판에서 제출된 국방부의견서는 청소년 대다수를 대한민국 국군의 주역으로서 군복무 대상자로 이해하고, 입대 장정들이 “확고한 국가관과 대적관을 확립하고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군복무 중에 한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의식이 스스로의 자율적 판단이 아니라 상명하복의 위계체계 속에서 ‘명령’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유로운 토론과 균형 잡힌 사고를 배제하는 일방통행의 세뇌일 것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국제평화주의와 평화통일원칙 그리고 사상ㆍ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더욱이 국방부는 이와 관련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을 파면하였으며, 파면 취소를 구하는 재판에서 1심 법원은 상급자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하여 그 파면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불온서적 지정의 위헌성 그리고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가 군 내부질서와 등가적이거나 단순 형량사항이라고 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헌법적 의미는 무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따라 이를 재판하여 군의 월권을 바로잡아야 할 헌법재판소가 이를 합헌으로 결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전향적 결정을 기대하던 목소리는 천안함 사건 이후 헌재의 태도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사건 하나에 헌법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한국에서 헌법이 실종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헌재는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의 실종을 조장․확인하는 기관이다. 군은 헌법으로부터도 통제되지 않는 성역으로 남았으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헌법에 의해 각종의 권력을 통제해야 할 헌법재판소는 정작 헌법을 재판하여 무능력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권력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2.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비판

첫째, 헌법재판소는 국가안보를 과장했을 뿐 아니라 한 치의 허술함 없는 철통 보호를 강조한 반면에 ‘제복 입은 시민’인 군인의 기본권을 무시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국가안보상황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이를 미리 예측하여 규율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헌법은 전시와 그에 준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정한 규정들을 두면서 평시와 다른 기본권 제한의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헌법 제27조 제2항 비상계엄시 군사재판을 받는 경우, 제77조 제2항 비상계엄시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에 대한 특별한 조치, 비상계엄 아래 군사재판에서 단심의 경우 등이다. 사실 이런 헌법규정 자체가 군사적 권한의 민간영역 개입이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다.

미국의 홈즈 대법관은 “전쟁이 바로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위험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법의 기준 그 자체는 평상시나 전쟁시나 동일하다”고 보았다. “다만 전쟁시에는 특유한 혼란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나타난 행위와 그 행위가 나타난 상황과의 관계에서 위험한 해악의 발생가능성이 높은데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반면 한국의 판례는 분단체제에서 북한의 존재 자체로부터 거의 전시 상황에 준하는 정도로 강한 기본권 제한을 용납하는 논리를 확립하고 있다. 그 결과 전시적 상황은 예외적 상황으로서 매우 엄격하게 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항상화 또는 정상화함으로써 기본권을 권력의 지배 아래 두고 권력은 민주주의적 통제의 바깥에 둠으로써 민주공화국 헌법규범을 해체한다.

둘째, 헌법재판소는 군대를 또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 셈이며, 헌법의 문민통제원칙을 형해화함으로써 군대를 헌법의 사각지대로 만들었다. 헌법재판소는 ‘불온도서’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라고 판단하였다.

이른바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므로, 군 내외 모두에서 관련 책을 읽지 못하도록 금지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책을 읽음으로써 초래되는 영향력을 배제하는 의미는 거의 없다. 이 사건 서적의 영내 반입금지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의 유의미성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군과 민간사회의 영역을 구별하여 달리 취급할 까닭이 없다.

헌법이 현역 군인을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으로 임명할 수 없게 함으로써 문민통제원칙을 수립하고 있는 것은 군의 특수성조차 헌법규범의 틀 안에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알 권리의 내용으로서 ‘책을 읽을 권리’ 그리고 책 저자들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고려할 때 군의 책에 대한 판단은 시민사회의 판단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군에 대하여 문민통제를 받도록 한 헌법의 명령내용이다. 

셋째, 헌법재판소는 군인의 정신전력을 강조함으로써 군대는 군인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할 수 있으며, 군인은 인격적 자율적 판단권 없는 존재로 격하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정신전력의 영역은 고도의 전문적인 판단을 요하는 민감한 부분”이므로 “사전에 일의적으로 명확하게 규율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고, 오히려 현실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불확정개념으로 규율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군인의 정신세계는 사상․양심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받으므로, 민주공화국 군대의 정신전력은 군인 각자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스스로 습득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따라서 군대에서의 각종 ‘정신교육’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스스로의 인격적 판단에 의해 자각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군인은 주권자로서 스스로 국가방위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넷째,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규범적 효력을 제한함으로써 군의 권력을 통제해야 하는 헌법을 재판하여 헌법의 보편성보다 군의 특수성을 우위에 놓았다. 헌법재판소가 하는 일이 권력의 편의에 맞게 헌법을 재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동서독 체제경쟁 구도의 전투 모드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약진하였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헌법해석권을 사실상 독점함으로써 지배체제의 법적 헤게모니를 조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처럼 헌법충성의 조달자로서 또는 법적 헤게모니의 조직자로서 이중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집행부 및 그 외곽장치들과 함께 전투적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인 안보복합체를 구성하고 있다.

권력통제장치로서 헌법이 실종되고 국가권력이 집행권 중심으로 운용되면, 형식적 법치주의가 횡행하기 마련이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입법권의 근거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조항이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에 대하여 권한을 부여하는 수권(授權)조항이라면, 이 조항은 국회를 규정하고 있는 장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따라서 이 조항의 핵심적 의미는 단서인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에 있다. 즉 집행부 권력에 대비하여 의회민주주의의 결과물이자 민의의 형식으로서 “법률”을 강조하되 기본권규범이 국가권력을 구속하고 있음을 확인한 조항이다. 이 단서조항이 그야말로 단서로서 그저 수사적 표현이라면, 헌법 제37조 2항은 불법국가로 가는 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외형상 법치는 그것만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자가 그것을 ‘법률에 의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나치스의 법치국가(Rechtsstaat)에서 볼 수 있듯이 곧바로 불법국가로 전화하기 때문이다.

 3. 민주공화국헌법의 회복이 절실하다
 
한국에서 헌법체제가 민주공화국헌법체제가 아니라 병영헌법체제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은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본 군국주의 계엄령을 사실상 그리고 법적으로 복제하면서 시작되었다. 1948년 여순사건과 제주4․3에서 반인권적 계엄령이 선포․시행되었고, 1949년 11월 24일 제정된 계엄법은 민주공화국헌법과 양립하기 어려운 일제 계엄령의 복제판이었다. “포스트콜로니얼”, 즉 식민지 체제가 끝난 후에도 식민지주의적인 지배나 심성, 문화적 상황이 의연히 존재하거나 형태를 바꾼 식민지주의가 한층 강화되어 있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6․25전쟁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전쟁의 트라우마(trauma)는 적과 동지의 흑백논리증후군을 낳았다. 적대적인 적의 형상화는 좌익빨갱이, 사회적 폭력분자, 노동조합원, 불평불만분자, 친북좌파, 전문적 “불법․폭력시위꾼” 등으로 전이․확장되며, 그들에 대한 고발․심판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정체성을 입증하도록 강요당한다.

군사독재정권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87년 민주화를 거쳐 문민정부․국민정부․참여정부를 지나오면서 ‘독재체제’를 벗어났을지는 모르지만, 아직 ‘군사체제’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한 치의 빈 틈 없는 국가안보의식’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자 ‘사명’으로 강요하는 총력전 체제 속에서 시민헌법조차 정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생명권 같은 중대한 인권조차 경시할 수 있는 것은 1972년․1980년 헌법의 권위주의체제의 입법․집행․사법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부수립 과정에서 사상을 빌미로 또는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정치권력이 자행했던 살인의 경험이 또는 한국전쟁 시 정식재판 없이 국민을 대량학살한 경험이 또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서 수사․기소․재판했던 사법살인의 경험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 몇몇은 처벌받았을지 모르지만, 권력은 단죄되지 않았다. 새로운 권력자로 교체되었을 뿐이다. 5․18학살의 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군대를 동원하는 것에 대하여 제대로 된 인권보호체제를 가지지 못한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입헌민주주의 헌법체제에서는 군대도 군인의 인권을 보장함은 물론 전시 군의 작전활동에서도 인권규범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군의 기본가치와 질서는 군사전문가, 군사관료, 군사집단의 가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의 이념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군대는 늘 합법적이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해 그것이 법치국가의 군대인 것을 자각하고 양심의 진실성을 존중하고, 국민 각자가 법 앞에 평등한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또한 군인은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하며, 평화를 지켜야 할 뿐 아니라 평화를 파괴하는 여하한 것에 대해서도 결연히 맞서야 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군인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군대의 문민화’를 통하여 헌법체제를 ‘탈군대화’하는 것이야말로 헌법 근대화의 시작이다.

JWe2010112300.hwp– 보도자료 원문

JWe201011230a.pdf– [24차 판결비평 – 광장에 나온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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