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06-10   2911

[판결비평문] 이사의 책임경영원칙을 불완전한 근거로 저버린 판결

참여연대는 지난 연말에 선고된 동방페레그린증권 이사들을 상대로 회사에 끼친 손실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소송의 대법원 판례를 최근 입수하게 되었다. 지난 2004.12.10. 선고된 이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법률의 규정에 근거는 없지만 법해석에 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 즉 재판부의 재량에 의거하여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줄일 수 있게 한 새로운 판례로서 중대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었다.

그리고 이사들의 손해배상책임을 법률규정이 아닌 판사들의 재량적 판단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이 대법원 판결은 현재 대법원에 상고중인,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전자 이사들을 상대로 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대법원 재판(2003다69638)의 향배에도 지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즉 2003.11.27. 선고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한 손해배상액을 80%나 경감시키는 판결을 내려 원고측에 해당하는 참여연대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는데, 동방페레그린증권 사건의 대법원 판례내용을 근거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상고심을 맡은 대법관들이 이사들의 손해배상책임을 80%나 경감시킨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일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동방페레그린증권 사건의 대법원 판결과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2심 판결에서 재판부가 제시하고 있는 이사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논리의 정당성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중대표소송 불인정 등 기업 경영진의 책임과 관련하여 실체적인 진실과 정의구현에는 지극히 소극적인 사법부가 이사들의 책임을 경감시키는데 있어서는 재판부의 재량을 대폭 인정한 점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김선웅 변호사(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의 판결 비평문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1. 이사의 책임강화와 이사의 책임제한의 관계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정책에 따라 상법, 증권거래법이 개정되어 과거 부실, 불법경영으로 인한 회사의 손실에 대해서 주주 또는 채권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실제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나 이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짐으로써 경영진이나 이사회에 충실의무, 선관주의의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이사회의 실질화와 책임경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반면 책임추궁소송을 당한 이사들에 대해서 거액의 손해배상판결이 내려지게 되자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에 대한 특수성과 기업가정신의 훼손을 이유로 경영판단의 법칙에 의한 이사의 책임면제방안과 이사의 책임제한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근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에 관한 법원의 입장을 밝힌 판례는 이사의 책임제한에 관한 법리의 완성이나 제도보완의 본격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나 그 내용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있다.

본 글에서는 지난 연말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사의 책임제한의 법리와 타당성, 그리고 앞으로의 영향에 대해서 검토해보고자 하며 이를 위해 이 판결에 앞서 2003년 말에 내려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함께 검토한다.

2. 검토대상 판례

가. 동방페레그린증권 사건(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2다60467 판결)

이 판례는 증권사에 손실을 입힌 이사에 대해서 예금보험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증권사의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이다. 대법원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법리만 인정하고 실제 이 사건 피고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제한 주장을 받아들이는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이 판례는 위법행위로 인한 회사의 손실에 대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필요성을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례라고 할 수 있다.

(1) 사실관계

동방페레그린증권은 1)대표이사가 단독으로 결정한 나산종합건설 발행 무보증 CP를 매입하였다가 120억원의 손해를 입었고, 2)지배주주의 지시로 미도파 주식을 홍승 및 일진 파이낸스에 매도하였다가 재매입하는 과정에서 153억여원의 손해를 입었으며, 3)코스닥 미등록 주식을 매입하여 82억여원의 손해를 입었다.

이에 동방페레그린증권의 파산관재인인 예금보험공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시 대표이사와 자금담당 상무이사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2) 판결의 핵심요지

“이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해태함으로써 회사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에 그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당해 사업의 내용과 성격, 당해 이사의 임무위반의 경위 및 임무위반행위의 태양, 회사의 손해 발생 및 확대에 관여된 객관적인 사정이나 그 정도, 평소 이사의 회사에 대한 공헌도, 임무위반행위로 인한 당해 이사의 이득 유무, 회사의 조직체계의 흠결 유무나 위험관리체제의 구축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추어 그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판결문) 판결의 결과를 소개하면, 대법원은 원고가 피고들의 임무해태로 인하여 동방페레그린증권이 입은 전체 손해액 중 일부만을 청구하고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들이 배상하여야 할 손해액을 원고가 청구하는 금액 이하로 제한하여야 할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청구금액 전액을 인용한 원심을 정당하다고 판결하여, 이 사건에 국한한 피고의 이사책임의 제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나.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서울고등법원 2003.11.27. 선고 2002나6595 판결)

이 판례는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들이 삼성전자 전현직이사들이 위법행위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이사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2심판결이다.

1심 법원(수원지방법원 2001. 12. 27 선고 98가합22553)은 삼성전자의 전ㆍ현직 이사들에게 약 977억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였으나, 2심 법원은 190억원의 손해배상만을 인정하였다. 이 사건은 확정판결이 아니며 현재 대법원에 상고되어 있다.

(1) 사실관계

삼성전자 전ㆍ현직 이사들은 1)비자금을 조성하여 전직대통령에게 뇌물공여(75억원), 2)삼성전자 계열사에게 자금을 부당하게 지원, 3)부실계열사의 주식을 인수 및 지급보증을 결정하였으며, 4)계열사주식을 실거래가격 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처분하였다.

이 판례에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한 이사들의 행위는 계열사의 주식을 실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처분한 사안인데, 삼성전자는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을 과거에 취득한 가격(주당 10,000원) 및 실거래가격(주당 6,600원)보다 낮은 주당 2,600원에 지배권이 포함된 92%에 이르는 주식지분을 처분한 것이다..

(2) 판결요지

이사와 회사는 위임관계에 있고 위임인인 회사가 수임인인 이사의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행하여진 행위로 인하여 직접 손해를 입게 된 경우에 있어서, 회사는 그 사업의 성격과 규모, 사업의 시행경위, 이사의 업무내용과 회사의 배려정도, 이사의 임무위반의 태양, 이사의 회사에 대한 공헌도, 기타 제반사정에 비추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이사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이 상당하다.

3. 이사의 책임제한에 대한 법리

가. 법해석에 의한 이사의 책임제한 가능성

이사는 상법 제399조에 따라 정관 또는 법률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해태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회사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한다.

또한 등기된 이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사에게 업무집행지시를 내린 자는 이사와 같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상법 제401조의2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

이사는 회사와 위임관계로서 위임관계에 근거한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에 대해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며, 상법은 특히 이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주주들 동의에 의해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하거나 해제하는 제도(상법 제400조, 제405조)는 있지만 주주의 동의 없이 위법한 행위를 한 이사에 대해서 손해배상책임을 사후에 경감할 수 있는 명문의 규정은 없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사후적인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하는 것과 같이 이사 책임의 제한제도가 법제화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과연 법해석과 일반적인 법원칙으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하는 것이 가능한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사의 책임제한 근거로 우선 거론되는 근거는 손해의 공평부담원칙과 신의칙이다. 이는 손해배상에서 일반적인 법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한 상법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회사로부터 경영을 위임받은 이사의 행위에 대해서 회사도 역시 손해를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과실상계이론이다.

이사의 책임은 그 이사에 의해 모두 이루어진 결과가 아닌 회사의 조직상 결함이라는 과실로 인해 발생하였으며, 회사의 과실에 따라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이 경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과실은 이사를 보좌해야 할 직원의 직무해태, 다른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익상계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감경할 수 있는 근거로 주장되기도 한다.

이사가 회사에 대해 부담할 손해배상액의 산정에 있어 이사의 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와 이로 인해 회사가 얻은 이익을 상쇄하는 법리이다. 이같은 논리에 따른다면 이사의 행위로 인해 회사가 입은 손해는 이로 인해 회사가 얻은 이득을 당연히 공제한 후의 것이어야 할 것이며, 또 이 때 회사의 부당한 이득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손익상계이론은 뇌물공여로 인해 용역이나 사업기회를 회사가 얻을 수 있도록 한 이사에 대해서는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다.

나.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경감의 문제점

판례와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경감시키는 것이 신의칙상 타당하다거나 과실상계, 손익상계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은 매우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을 인정하는 경우 이사의 도덕적 해이와 대리인문제의 시정가능성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이사회제도가 형식적이고 아무런 경영감시나 경영진 견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현재의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경영을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기준으로 손해의 공평부담의 원칙과 신의칙이 이용되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합리적으로 산정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판단시 실질적으로는 경영판단의 법칙과 같이 이사의 주의의무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원칙에 의해 손해배상여부가 결정되고 처음부터 결과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한 회사와 이사의 지위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는 법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의 모든 결과는 이사, 경영진, 지배주주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히려 회사의 주주들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주식회사 구조에 의해서 경영에서 소외되고 그들이 경영감시를 위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사후적이거나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회사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이사, 경영진, 지배주주의 역할과 권한, 실제 관계가 검토되어야 하며, 당사자 사이가 대등한 계약이나 사실관계에 적용되는 신의칙에 기초한 손해의 공평부담원칙이 당연히 이사의 책임제한에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손익상계를 이유로 이사의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근거는 사실상 위법행위와 손해사이의 인과관계의 문제와 손해의 범위의 문제를 혼동한데서 온 것이다.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손해는 회사의 손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이사의 위법행위로 회사가 얻은 이익이 과연 확정적인 것인가도 문제이다. 이익을 얻었지만 위법행위로 되어 나중에 회사에게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건설회사의 이사가 뇌물공여로 어느 사업권을 따내서 회사에 이익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뇌물공여사실로 인해 앞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업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뇌물공여로 사업권을 따낸 이익이 회사의 이익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게 된다.

회사의 과실을 이유로 이사의 책임을 제한하는 근거도 회사의 의사결정구조를 간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사의사결정구조는 결국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에 의해 결정된다.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제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회사의 기관, 감사, 사외이사, 이사회 등은 결국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에 의해 구성되며, 회사의 다른 주주들은 이에서 소외된다.

4. 대상판례의 검토

가. 동방페레그린증권 사건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이 판례를 통해 명시적인 근거가 없는 현행 회사법상 체계에서도 해석상 이사의 책임제한법리를 정면으로 인정하였다.

대법원이 이사의 책임제한의 근거로 밝힌 것은 손해배상의 공평부담의 원칙이다. 이 판례에서 대법원이 책임을 제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참작해야 할 사유로 다음과 같은 사유를 제시하였다.

1) 당해 사업의 내용과 성격, 2) 당해 이사의 임무위반의 경위 및 임무위반행위의 태양,

3) 회사의 손해 발생 및 확대에 관여된 객관적인 사정이나 그 정도, 4) 평소 이사의 회사에 대한 공헌도, 5) 임무위반행위로 인한 당해 이사의 이득 유무, 6) 회사의 조직체계의 흠결 유무나 위험관리체제의 구축 여부

이 판례 사안에서 피고 이사의 주의의무 위반인 행위는 회사내규와 법령의 규정을 위반하였고, 이사회의 결의 없이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졌으며, 의사결정에 매우 신중하지 못했다. 특히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 M&A에 동원되어 불법적으로M&A 대상 주식을 매입하는 자의 손실보전을 해주었다. 회사내규나 법령에 명백히 위반되고, 독단적인 결정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없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사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아니지만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를 위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은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저버린 사항이고, 배임적 행위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을 경감시킬 수 없다.

나.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2심 판결

이 사건 법원은 1)사업의 성격과 규모, 2)사업의 시행경위, 3)이사의 업무내용과 회사의 배려정도 4)이사의 임무위반의 태양, 5) 이사의 회사에 대한 공헌도, 6)기타 제반사정에 비추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에서 회사에 대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례는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제한원칙과 구체적인 요건을 근거로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이 보유주식을 저가로 계열사에게 매각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무려 80%를 경감시켰다.

이 사건 법원은 저가매각으로 손실을 입었지만 우선 회사의 주식매각의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사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판례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1995년도 경영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호황을 이어가던 반도체 사업에 2조 3,496억원에 달하는 신규투자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인하여 타법인 출자한도액이 자기자본의 40%에서 25%로 축소되는 관계로 신규기업투자의 여지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실제로 1995년에 삼성중공업 등 관계회사 주식 취득에 3,246억원, 해외법인 출자금에 3,280억원, 기타의 타법인 주식취득 및 출자금에 2,390억원을 출자하는 등 이 사건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처분 당시 삼성전자가 보유중이던 주식을 처분하여야 할 만한 사정이 일부 존재하였다는 것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어떤 행위의 필요성으로 인해서 매각 시기나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하여 회사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행위의 필요성이 이사들의 책임으로 인해 발생하였다면 그 부분의 책임 역시 이사들의 부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판례에서 삼성종합화학주식이 삼성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주식이었기 때문에 취득을 하였으면 모르되 삼성종합화학은 삼성전자의 관련업체가 아닌 삼성그룹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주식을 취득하였다면 이사의 책임을 경감시켜줄 사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 사업을 위해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있었다 해도 삼성종합화학주식을 고가에 매입하지 않고 유동성이 있는 자산(현금 및 등가물)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충분히 반도체 사업의 자금으로 손해를 보지 않고 투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순환출자 등 재벌계열사들의 잘못된 소유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러한 문제는 삼성전자의 이사회가 스스로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우량계열사가 관련성이 없는 계열사의 주식을 사는 것은 회사로서는 매우 불합리하거나 위험한 투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계열사 주식의 취득은 회사의 이해관계가 아닌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이기 때문에 회사에 이익을 주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비상장법인의 주식을 상속세법시행령에 따른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으로 저가로 평가하여 매각한 행위에 대해서도 법원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제한사유로 보고 있다.

이 판례에서 법원은 비상장법인의 주식은 매수처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매매가격 협상과정에서 상속세법시행령의 규정에 따른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에 따른 가액을 매매가격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구체적인 주식가액의 산정을 외부 회계법인에 의뢰하고 그 자료를 이사회에 상정하게 된 사정, 회계법인이 제공한 자료에 따른 위 주식의 평가액이 당시 적정가액이라 보여지는 주당 순자산가치에 미달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속세법시행령의 규정에 따라 계산된 것이라는 점을 이사의 책임제한 근거의 하나로 들고 있다.

외부회계법인에 가격의뢰를 산정하거나 상속세법시행령에 따라 비상장주식의 주가를 산정하는 것은 주식의 실질가치를 못 받아도 방어할 수 있는 논리이다. 이렇게 당연한 절차나 오히려 손실을 더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격을 산정한 것을 책임제한의 사유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기본적이고, 오히려 불리할 수 있는 의사결정이 아니라 어느 정도 최선을 다했음을 나타낼 수 있는 추가적인 정황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상판례에서 법원은 주식매각과정에 있어 피고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아니한 점을 이사의 책임제한 사유로 고려했다.

그렇지만 개인의 이익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이사의 책임을 제한할 수는 없다. 이사가 본인이 아닌 제3자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였으며, 이러한 행위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위반된다. 특히 회사가 아닌 회사의 지배주주나 계열사의 이익을 위한 행위 역시 이사의 충실의무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행위이다.

개별 계열사와 계열기업집단 또는 지배주주의 이익은 동일하지 않고 상충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이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손해배상액을 경감시켜주는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또 법원은 이사의 책임제한 사유로 주식매각 이후 반도체 부문에서 많은 수익을 얻었던 점을 들었다.

잘못된 경영판단행위이지만 그 행위가 다른 사업이익의 창출의 원인이 되었다는 이사의 책임제한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업이익 창출과 잘못된 경영판단행위의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명확하게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인과관계에 대한 검토나 검증도 없이 다른 사업에서 이익을 창출했다는 이유로 이사의 부실경영행위에 대한 책임을 경감시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당시 이사회의 구성원들인 피고들은 회사의 핵심 경영진으로서 그 이후 회사의 이윤창출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 점을 들어 이사의 손해배상액을 경감시켰다.

그런데 이윤창출에 대한 회사의 정당한 보상이 있었으면 이를 손해배상액의 제한사유로 적용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의 손실에 책임이 있는 이사가 스톡옵션과 연봉으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면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도 한계를 두어야 한다. 특히 회사의 이윤창출에 필요한 자금을 유상증자형식으로 주주들에게 조달하였다면 회사가치를 증대시킨 자금조달에 기여한 주주들의 기여도를 고려할 때 이사들만의 기여도를 감안하여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린 행위에 대해 책임을 경감시키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대상판례들은 이사의 책임제한의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책임제한의 근거가 추상적이고, 미약하다. 이른바 신의칙이나 손해배상공평의 분담원칙을 이용해 이사의 책임제한을 명문의 근거가 없어도 인정하는 것은 손해배상액에 대한 법원의 재량을 너무 넓게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이 해석상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법해석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법률의 창조행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판결에는 분명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이유로 법률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이중대표소송의 불인정 등 회사법 해석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인 법원이 이사의 책임제한에 있어서는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법원이 구체적 타당성, 피해자인 소수자 보호, 권리구제 보다는 기득권 보호, 거래의 안전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김선웅

(변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김선웅 (변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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