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2-18   2626

[판결비평] 김용판 1심 재판② 내부 고발 사건의 특성 이해 못한 재판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를 축소, 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지난 2월 6일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검찰의 유력한 증거였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이 다른 17명의 경찰들의 진술과 배치되어 권은희 과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 서울중앙지법의 무죄 판결에 대한 비평문 두 편을 소개합니다.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김용판 1심 재판 ②]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보건대’ 무죄라고?

내부 고발 사건의 특성 이해 못한 재판부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2. 6.선고 2013고합576 판결(공직선거법위반 등) 

재판장 : 이범균, 배석판사 : 이보형, 오대석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이지문 /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이 사건에서 적법하게 증거조사를 마친 많은 증거를 통해 파악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정상적인 경험칙, 논리법칙과 건전한 상식에 근거하여 보건대, 이 사건 공소사실에 관한 검사의 논증이 단순한 의혹 또는 추측을 넘어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의 확신이 드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판단한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형사부 재판부가 ‘국가정보원 여직원 사건’(판결문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수사를 축소 ․ 은폐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죄목으로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108페이지 분량이나 되는 판결문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 구절의 핵심은 결국 ‘증거를 통해 확인해보니 김 전 청장은 무죄다’라는 것이다. 

 

그럼, 재판부가 받아들인 ‘증거’는 무엇인가가 이번 판결의 관건이 될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본 사건의 증거분석 및 수사 과정에 관여한 17명의 경찰관들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을 하였는데, 피고인이 ‘선거에 개입하고 실체를 은폐할 의도로 허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분석 결과 회신을 거부하거나 지연시켰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력한 진술증거는 주로 권은희의 진술뿐이다. 그러나 권은희의 진술 중 대부분은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거나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반면 권은희를 제외한 다수의 다른 증인들은 대체적으로 서로의 진술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였다.” 

 

 

재판부가 수용한 증거는 지난 해 4월 서울지방경찰청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에 지속적으로 부당개입했다고 세상에 알렸던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인 권은희 과장(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의 진술이 아니라 다른 17명의 ‘현직’ 경찰관들의 진술이었고 이를 근거로 “피고인이 실체를 은폐하고 허위 수사결과를 지시하려 한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는 부족하기에” 김 전 청장의 무죄를 선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12년 12월 12일 김하영 국정원 직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과 12월 16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권 과장이 반발하고 시간을 달라고 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다른 경찰관들의 진술을 근거로 권 과장의 진술을 배척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판결에 결정적 문제가 있다. 앞서 인용한 판결문의 마지막 구절에서 재판부는 ‘정상적인 경험칙, 논리법칙과 건전한 상식에 근거하여 보건대’라고 하고 있는데, 자신에 돌아올 실익보다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부고발에 나선 한 사람의 주장과 검찰에서 피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던 사람들로 오히려 기소되어야 할 사람들을 포함하여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진술 중에서 어느 쪽의 말이 더 신뢰성이 있는지는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재판부는 판단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경찰 증인들이 준비해 온 메모를 들고 말하는 것을 봐도, 오히려 모든 증인이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을 봐도 17명의 일치되는 진술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충분히 할 수도 있어야 했다. 더욱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증언했던 경찰 간부들은 모두 승진하고 내부고발자인 권 과장은 승진에서 누락된 현실에서 말이다. 재판부의 ‘논리법칙’은 단순히 1대 17에서 17명이 많으니까 많은 쪽 진술이 더 타당하다는 유치원 수준의 산수법칙일 뿐이다. 

 

재판부의 이러한 논리가 왜 허구일 수밖에 없는지 필자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군 부재자투표과정에서 여당 지지 정신교육과 공개투표 행위 등을 기자회견을 통해 증언했을 때, 국방부는 필자 소속 부대원 500명 장사병들이 “우리 부대는 공명정대하게 투표하였다. 이지문 중위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했다면서 부정선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 논리대로 한다면 1대 500이니까 필자의 증언은 거짓이고 500명의 진술이 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500명은 부정선거를 지시하거나 실행에 옮긴 장교들과, 그 장교들에게 잘못 찍혀 휴가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사병들이었다. 이러한 500명의 허구가 여실히 깨졌던 것은 이들 중 전역한 장교 한 명과 사병 두 명이 필자의 파면취소청구소송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에는 군에 있다 보니 사실대로 진술하지 못했다. 이 중위가 증언한 것처럼 그러한 부정행위들이 있었다”라고 증언해주었고 그 결과 파면취소가 되어 중위로 명예전역을 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고 폭로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해당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부인하는 것이 내부고발 사건의 일상적인 유형임에도, 내부고발자 한 명보다는 단지 수적으로 많다는 단순 숫자놀음에 빠져 권 과장의 주장을 배척하는 것은 이러한 내부고발의 특성을 간과하였거나, 아니면 그 특성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수용하게 될 경우 피고인에 무죄판결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경우 후폭풍이 어디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 하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피고인의 진술이나 공동정범일 수 있는 이의 증언은 받아들이면서도 권 과장의 진술이나 권 과장에게 유리했던 진술은 배척하는 재판부의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으로 재판부는 2012년 12월 12일 오후 2시 59분 피고인과 권 과장이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권 과장은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대신 격려 전화였다는 피고인의 진술을 인용하고 있으며 격려 전화를 하라고 제안했다는 이병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의 증언도 피고인과 일치하기에 더 신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사인 기사에 따르면 지난 해 9월 6일 3차 재판에서 수서경찰서 소속 김성수 지능수사팀 팀장의 ‘단 한 마디만 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서울지방경찰청의 메시지를 권 과장에게 전달해준 적이 있다’라고 한 권 과장의 진술에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은 인용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12일 “김 전 청장의 1심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혀 2심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2심 재판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재판부가 정치적 판단보다는 사건 자체에 집중해줄 것을, 그리고 내부고발 사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검찰은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도록 1심에서 부족했던 증거를 확실히 보강해야 할 것이고 좌천시킨 윤석열 팀장을 비롯한 초기 수사팀이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검찰 역시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특검이 필요하다는 야당 및 시민단체의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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