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08-18   1432

[판결비평문] 되살아나는 경찰국가의 망령

지문채취와 지문정보 경찰청제공 합헌 헌재 결정

지난 5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이른바 지문날인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9년 9월 지문날인 반대 운동을 하던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6년 만에 헌법재판소는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주민등록증 제도는 행정사무의 효율적 처리 외에 치안유지, 국가안보도 고려된 것’이라며, ‘지문수집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공익목적에 비해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경찰이 지문정보를 보관, 전산화하고 이를 범죄수사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 목적과 대상 등을 법률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합헌 결정을 내린 셈이다. 반면 송인준, 전효숙, 주선회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열손가락 지문을 범죄수사용으로 전 국민에게 찍도록 하는 것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들 재판관은 열손가락 지문날인의 법률적 근거가 없으므로 경찰청이 정보를 보유하는것도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열손가락 지문날인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보다 경찰행정의 편의만을 앞세웠다’며, ‘국가가 지나치게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같은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지문날인제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근거를 충분히 갖추어 내린 결정인지, 또 지문정보와 같은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다수의견 제출 재판관들의 인식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어,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비평하기로 하였다. (편집자 주)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과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인권이자 동시에 국가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하나의 통치원리로서 국민적 자원의 관리·통제를 위한 정보수집이라는 국가목적차원의 요청과의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갈등의 존재를 헌법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다루지 못하고 연목구어(緣木求魚)격으로 자구에만 얽매이면서 경찰국가적 안보관에만 매몰되는 수준에서 얼버무리는, 반인권적 결정을 드물지 않게 내어놓고 있다.

최근의 지문날인제도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은 이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것은 헌법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과 신뢰까지도 왜곡할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한 우리 헌법재판소의 법률만능주의와 그 기막힌 논리하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는 인권요청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1. 대상판결 사건개요와 판결요지

지문채취와 관련한 이 결정은 두 개의 헌법소원 심판사건을 병합한 것이다. 그 첫째는 이미 지문채취에 응하고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은 청구인들이 자신의 열 손가락 지문이 날인된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이하 ‘신청서’)가 경찰청장에 의하여 보관되면서 전산화되어 항시적으로 범죄의 수사목적에 제공되고 있는 현실이 자신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격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청구인들이 만17세가 되어 주민등록증 발급대상자가 되었으나, 신청서에 열 손가락 지문을 날인하여야 한다는 동사무소 직원들의 요구에 반발하여 그러한 지문채취행위는 자신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격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법에서 주민등록증에 수록되는 항목 중의 하나로 ‘지문’을 규정하고 있고, 그 시행령에서는 신청서의 서식을 정하면서 열 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하는 난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지문날인제도, 특히 열 손가락 지문을 날인하는 현행제도는 법률에 그 근거를 확보하고 있어 법률유보의 원칙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경찰청장이 이 신청서 원부를 보관하여 범죄수사에 이용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컴퓨터에 의하여 처리되기 이전의 원 개인정보자료 자체도 경찰청장이 다른 기관에서 제공받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합헌이라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과잉금지원칙의 위배여부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에 대하여 모든 손가락의 지문정보를 수집·관리하여야만 효율적인 범죄수사가 가능하며, 지문을 채취하는 것이 그 당사자에게 별다른 어려움이나 해악을 주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국가안보차원에서 국민의 정확한 신원확인의 필요성이 크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위헌이라고 할 정도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2. 문제점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자기정보에 대한 통제권이라고 하는 하나의 헌법적 기본권을 인정하고 지문날인제도가 이러한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음과 같이 그 기본권을 언제 어디서건 제한되고 부인될 수 있는, 취약한 것으로 만들어두고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제시하지도 않은 법률의 기본 취지와 동떨어지는 입법의도를 제시하면서까지 지문날인제도를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다.

실제 지문날인의 근거로서 언급되는 주민등록법은 그 본래의 목적이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상시로 명확히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함”에 있다. 당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주민관리제도로서 제정된 것이 주민등록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그 법에 의해 만들어진 주민등록증에 대하여는 전혀 다른 목적을 설정한다. 헌법재판소에 의하면 이 주민등록증 제도는 이런 주민관리 목적보다는 치안유지나 국가안보를 위하여 탄생한 제도로서 범죄수사 혹은 간첩식별 등을 위한 신원확인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여기서 지문날인제도는 “국민의 자기 식별성을 강화함으로써 보다 확실한 신원확인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되어 버린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의 헌법적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은 국가가 가지고 있고, 국가는 어떤 정당한 목적을 의도하여 법률을 제정하였는지 증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국가가 생각해내지도 못한 입법의도를 제시하여 법률을 정당화하는 행위는 단순히 당사자주의의 위반이라는 소송절차적인 문제 이상의 것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입법의도가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상시로 명확히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함”이라면 지문날인제도는 필요 이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그와 같은 입법의도는 미국식으로 지문날인을 동반하지 않는‘사회보장번호’의 부여 등의 다른 법률로써 충분히 달성된다.

하지만, “범죄수사 혹은 간첩식별 등을 위한 신원확인”을 목적으로 하게 되면 지문날인이 더욱 수월하게 정당화된다. 이와 같이 국가가 의도하지 않은 목적까지 유추해석하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입법자의 재량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여 기본권을 침해하는 태도이다

둘째, 지문날인제도가 치안유지 목적 혹은 국가안보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판단 자체가 타당한 것인가는 일단 별개의 문제로 내버려 두기로 하자. 문제는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국민 모두에게 하나의 일련번호가 기재된 신분증을 지문과 같은 신체정보와 통합하고 이를 이용하여 개인정보를 통제하게 되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적 통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화·확대되어 왔고 전체주의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추상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주민등록제도가 지문날인제도와 결합하면서 전 국민을 범죄혐의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제도와 더불어 이 지문날인의 제도가 지난 권위주의적 통치의 시대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그 결과로서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과거에 비추어 지문날인제도에 대해 어떠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지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우리 헌법재판소의 헌법의식 혹은 인권마인드의 현 주소가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가 하찮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문날인제도]로 인하여 정보주체가 현실적으로 입게 되는 불이익은 그다지 심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한다. ‘열 손가락 지문 찍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라는 식의 판단이다. 즉 헌법재판소는 지문날인제도가 침해하는 것은 개인정보의 자유가 아니라 단순히 손도장 찍듯 자기의 지문을 찍는 행위, 즉 신체의 자유 정도로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즉 지문날인제도는 국민의 자기 식별성을 확보하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거둘 수 있는 수사방법인 만큼 이에 대한 어떠한 위헌성의 주장도 의미없다는 식의 판단이다(물론 이 과정에서 지문날인제도가 범인의 검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은 과감히 생략된다. 이 부분의 판단이 이 결정에서 내세우고 있는 비용-편익의 분석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제로 지문은 일반인의 생활 속에서 손을 사용하는 어디에나 그 흔적이 남게 되는 생체정보로서 국가가 ‘사후적으로’ 국민의 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얼굴을 “사용”하는 것은 흔적이 남지 않지만 손을 사용하는 것은 흔적이 항상 남는다.

국가가 국민들의 사진을 찍어 주민등록제도의 정보의 하나로 보관하여도 국민이 생활을 하면서 특정행위를 할 때 사진에 찍히지만 않는다면 국가에 의해 감시의 도구로 사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문은 국민들이 손을 사용하여 한 행위의 대부분을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열손가락 지문을 제출함으로써 제출되는 것은 지문의 모양만이 아니라 평생 동안의 자신의 손의 궤적인 것이다

넷째, 열 손가락 지문이 찍힌 주민등록증신청서의 원본을 경찰청이 보관하면서 이를 치안목적으로 관리하는 현재의 관행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문제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생체정보를 주민등록이라는 명목으로 수집하여 범죄수사 내지는 치안유지라는 별개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설정해 놓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개인정보법’)이 범죄의 수사에 필요한 경우 처리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조항을, “컴퓨터에 의하여 이미 처리된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의하여 처리되기 이전의 원 정보자료 자체도 경찰청장이 범죄수사목적을 위하여 다른 기관에서 제공받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률조항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범죄에 대한 수사를 위하여 공공기관이 자신이 가지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을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현재와 같이 모든 범죄를 대비하여 모든 정보주체-모든 국민-에 관한 정보를 무더기로 경찰청에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법의 취지는 공공기관들이 자신의 업무를 원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게끔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들을 마음대로 다른 공공기관에 제공하고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의 정보교환, 정보제공의 가능성을 되도록 축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 법조문의 해석은 공공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한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좁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환언하자면 범죄수사목적을 위해서 경찰청은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특정한 범죄사건과 관련하여 혐의자나 피의자 등 그 사건관련자에 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정보만을 제공받을 수 있음을 규정한 것이다. 역으로 범죄사실이 그렇게 구체적·개별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못하다면 개인정보를 제공하여서도, 그것을 요청하여서도 아니 된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이 법률이다.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이 법규정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면서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현재의 관행에 손을 들어 준다. 여기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법률유보의 원칙은 그 존재의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는 법률이 국가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법률로 해석되고 이 과정에서 국민에 대한 기본권 침해 최소화라는 헌법이념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어 버린다.

실제 헌법재판소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그 말미에 “그 법률적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하면서 스스로도 이 결정의 논거가 취약함을 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역으로 헌법재판소가 법리를 떠나 “우리의 말이 곧 헌법”임을 선언한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3. 결론

실제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개개인이 자신의 사적 생활에 관한 정보에 대하여는 자신이 결정하고 통제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판결로서 나름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종래 학설의 수준에서 혹은 법률의 수준에서 보장되어 왔던 개인정보기본권의 문제를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헌법적 차원으로까지 고양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 판결은 그동안 적지 않은 발전을 경험한 우리 인권보장의 한 국면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제반의 권력억제장치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에서 헌법상의 기본권보장 인권보장의 이념을 도출하고 그 제도적 장치로서의 권력분립이나 제한정부의 원칙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법률유보의 원칙은 어떻게 작동하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보여준다.

입법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입법의 취지나 법리를 끌어 들임으로써 최소한의 의회주의적 통제조차도 무효화시킨다. 지문을 통해 파악될 수 있는 정보의 가능성은 무시한 채 단지 지문의 제출을 통한 기본권침해만을 고려함으로써 개인정보의 자유를 단지 신체의 자유수준에서 파악한다. 법률유보의 원칙의 이념을 무시하고 개인정보법이 허용하는 국가기관 간의 정보교환범위를 넓게 해석한다.

이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법률해석보다는 사실인식이다. “법은 현실여건의 바탕위에서 그 시대의 역사인식이나 가치이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므로, “어느 특정한 법이 뿌리박고 있는 정치,경제, 사회적인 현실과 역사적 특성을 무시”하고 “헌법의 순수한 일반이론에만 의존하여서는 그 법에 관련된 헌법문제에 대하여 완전한 이해와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견강부회의 논리로 이 점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그 “어느 특정한 법이 뿌리박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현실과 역사적 특성”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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