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04-26   2966

[한명숙 1심 판결비평 ②] 검찰의 공판중심주의 표류기

지난 4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 김형두 부장판사)가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1심 판결 뿐 아니라, 공판과정을 통해 검찰 수사와 공소의 문제점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회(위원장 : 최강욱, 변호사)는 지난 4월 14일 오후 3시, <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로 본 검찰권 남용 >이라는 주제로 판결비평 공개좌담회를 열었습니다.

이 좌담회는 한 전 총리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검찰의 수사권·공소권 남용과 이를 통한 검찰의 정치적 행태를 낱낱이 비판하고, 이번 1심 공판과정을 통해 새롭게 조명 받게 된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제 등의 의미를 평가하면서 검찰개혁을 위한 논의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 1심 무죄 판결 통해 검찰권 남용 비판과 공판중심주의 의미 평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좌담회 사회를 맡았고, 4명의 패널 가운데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김인회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는 법 이론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아울러 한 전 총리 1심 공판 취재를 맡았던 이승훈 기자(오마이뉴스 정치부)와 이번 1심 공판을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방청한 파워블로거 정광현 씨(‘미디어 한글로’ 블로그 운영자)도 패널로 함께해 공판과정과 그 현장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하며 의미 있는 흐름들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참여연대·한겨레 하니TV·오마이뉴스·라디오21 사이트를 통해 약 2시간에 걸쳐 공동생중계된 좌담회 전체 영상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한겨레 하니TV를 통해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를 통해 좌담회 패널로 참여한 하태훈 교수, 김인회 교수, 이승훈 기자, 블로거 정광현 씨의 비평 글과 함께 좌담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금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검사)의 비평 글도 차례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좌담회 영상 아래의 글은 그 두번째 글로 이승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쓴 비평을 소개합니다. 이후 참여연대와 민변이 앞장설 검찰개혁을 위한 발걸음에도 많은 관심과 지지,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광장에나온판결_2010-2.pdf

참여연대와 민변의 판결비평 좌담회 <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로 본 검찰권 남용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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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수사와 반칙… 검찰의 공판중심주의 표류기

이승훈 기자
(오마이뉴스 정치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 수수 혐의 사건 재판이 무죄로 막을 내렸다. 검찰의 기소부터 선고까지는 108일, 첫 공판에서 선고까지는 33일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총리공관 현장검증을 포함 14회의 공판이 진행됐고 증인만 20명이 법정에 섰다. 각 공판들은 또 반전에 반전이 거듭하면서 한편의 법정 드라마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결말도 주인공의 ‘해피 엔딩’(검찰 입장에서는 언해피 엔딩이겠지만)으로 끝나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 이유로 법정 드라마의 소재가 사상 첫 전직 총리의 뇌물수사 혐의 사건이었다는 점, 또 주인공이 오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다는 점이 거론 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 재판은 다른 재판들과 달리 사전에 ‘줄거리’가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보통은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는 순간 구체적 혐의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수사 과정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피의자는 언론을 통해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기소 전 이미 재판에서 다뤄질 내용들이 모두 노출되고 만다. 결국 내용 전개가 뻔한 재판에는 언론도 대중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결말에 해당하는 선고 내용도 대부분 보도되지 않거나 거물급 인사들의 경우가 아니면 크게 보도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달랐다. 한명숙 전 총리의 피의 사실이 <조선일보>라는 언론을 통해 공표된 것까지는 같았지만 그 후 한 전 총리 측은 사실 관계를 부인하고 피의사실 공표에 강력 항의하는 선까지만 대응했다.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검찰 수사에서도 진술을 거부하면서 사건의 실체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사건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라면 재판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언론과 대중들이 각 공판을 꼬박꼬박 챙기면서 법정에서 나온 주장과 증언들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그래서다. 또 이틀에 한번 꼴로 공판을 진행하는 집중심리가 이루어진 덕에 일일 연속극처럼 하나의 공판이 끝나면 바로 다음 공판의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검찰의 조서와 공소장 보다 법정에서 나온 진술에 따라 재판을 하는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제도가 언론의 보도 관행과 대중들의 재판 관전법까지 바꾼 것이다.

이게 바로 법조계에서 이번 재판을 두고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은 조서와 수사기록을 던져버리라”고 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판중심주의 정신과 원칙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 모범 사례라고 평가하는 첫 번째 이유다.

이뿐이 아니었다. 재판을 재판답게 한 공판중심주의의 원칙은 재판의 전 과정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속기사를 자처한 재판장

 
이번 재판을 맡은 김형두 재판장은 사법부에서 철저한 공판중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김 재판장이 공판 중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잠깐만요, 정리 좀 합시다”였다. 그는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 중간 중간 답변 내용을 꼼꼼하게 재확인 하면서 직접 속기록 정리를 해나갔다. 또 신문이나 답변 내용의 취지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재판장이 직접 추가 질문을 던져 명확한 답변을 받아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리된 내용을 다시 읽어주면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빼놓지 않았다.

또 증인들이 신문 내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신문 내용에 포함된 검찰 조서나 법정에 제출된 증거, 참고자료는 반드시 법정에 설치된 스크린에 띄워 보여준 후 재판장이 직접 읽어주면서 질문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이 유도신문성 질문을 던지거나 질문 내용이 너무 장황한 경우에는 재판장이 대신 질문에 나서기도 했다.

그만큼 법정에서 나온 증언만으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김 재판장의 의지는 강했다.
김형두 재판장은 또 법정에 나온 증인들에게 항상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법원은 증인들의 증언을 믿고 재판을 합니다. 그래서 위증을 할 경우 법원이 엄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사실만 말하고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세요. 잘 모르는데 추측해서 말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다시 재판을 받아야하는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재판 중 총리공관 경호원이었던 윤아무개씨가 법정 증언 후 위증 혐의로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 같은 당부는 그 강도가 세지기도 했다. 김 재판장은 검찰의 요구에 따라 추가로 증인으로 나온 다른 경호원들에 대해서는 신문 도중 “그건 증인 의견 아닌가요, 기억 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세요”라고 충고를 하는 등 더 꼼꼼하게 진술 내용을 점검했다.  

이런 신중한 재판 진행 때문에 오전에 시작된 공판은 늦은 밤까지 계속되기 일쑤였다. 연일 이어지는 ‘마라톤 공판’으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측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과 취재하는 기자들까지 매일 강행군을 감내해야 했다.

장점도 있었다. 진술 내용을 반복 확인하는 ‘거북이’ 진행 덕분에 기자들은 법정 진술과 재판 상황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해 보도할 수 있었다.

형사소송법 강의장이 됐던 법정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강의에 나서기도 했다. 재판 진행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이 격렬한 의견 대립을 벌일 때면 김형두 재판장은 형사소송법 조항과 대법원 판례 등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원칙을 따져나갔다. 때론 법 조문 해석을 놓고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이 의견을 주고 받기도 했다.

혜택을 본 것은 법정에 있는 기자, 방청객들이었다. 법률적 지식이 있든 없든 형사재판의 절차와 원칙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탓이다.

형사소송법 강의의 절정은 한명숙 전 총리가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부터였다. 법정에는  형사소송법은 물론 형사소송규칙, 법원실무제요, 대법원 판례 등이 차례로 비쳐졌고 검찰의 신문 절차를 생략할 것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후 현행 형사소송법으로 개정이 되는 과정에 대한 소개와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피고인의 권리 보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권고한 한 취지 등에 설명도 이루어졌다. 하나의 형사소송실무 강좌나 형사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권리를 다루는 교양강좌로도 손색이 없었다.

결국 논쟁 끝에 재판부가 검찰에게 신문할 기회를 주되 검찰의 신문 내용을 미리 검토해 형사소송규칙에 어긋나는 신문 내용, 즉 모욕적이거나 진술을 강요하는 질문, 또 진술을 유도하는 질문 등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합의 과정은 지난했다. 예정됐던 공판 기일에 논쟁이 마무리되지 않자 바로 다음날 새로 공판기일이 잡혔고 논쟁은 이튿날까지 계속됐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이번 재판에서의 결정이 앞으로 재판에서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검찰은 피고인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 검찰의 신문 방식을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문제는 검찰총장의 결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고 변호인측은 이번 재판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원실무제요에 나온 원칙에 따라 검찰 신문 절차를 생략해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부의 신문 내용 첨삭 진풍경


법으로 먹고사는 판사, 검찰, 변호사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법 조항을 굳이 스크린에 띄우고 그 해석과 적용을 놓고 의견을 주고 받은 건 ‘법에 따른’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재판장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형두 재판장은 한 전 총리가 피고인 신문권을 행사한 후 검찰이 검찰 신문권도 보장돼야 한다고 맞서자 “가장 정치적인 이 사건을 가장 법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법과 재판 진행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하겠다는 뜻을 천명함과 동시에 이번 재판에 대한 정치적 논란 차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피고인 신문 전 재판부의 질문 ‘첨삭 지도’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의견을 참조해 검찰의 신문 내용 중 피고인에게 진술을 강요하거나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 모욕적이고 위협적인 질문 등을 모조리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일부 질문이 “~한 사실이 있지요?”라고 끝나는 경우에 재판부는 “유도 신문에 해당한다”며 “~한 사실이 있나요?”라고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꼼꼼하게 질문을 손봤다.

이 때문에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질문 수정 작업은 중간에 짧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3시간 40분여가 걸리는 진통을 겪었다.


한 기자는 이를 두고 전날부터 공방을 벌이고 이렇게 길게 수정할 시간에 차라리 검찰이 신문 내용을 읽었으면 피고인 신문이 진작 마무리 됐을 텐데라는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만큼 법리 공방이 치열했고 신중하고 세심한 수정 작업이 이어졌다.


증거 제출에 있어서도 형사소송법 조항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전직 경호원 윤아무개씨가 법정에서 “오찬이 끝나면 총리가 항상 먼저 나왔다”는 증언을 하자 검찰은 부랴부랴 다른 4명의 경호원을 추가로 조사해 조서를 증거로 제출하려 했다. 하지만 재판부로부터 거부당했다. 김형두 재판장은 “기소 후에는 법관의 면전이 아닌데다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 권한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진술은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법정에 제출되지 않은 자료를 근거로 한 신문에 대해서는 강하게 제지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이 각자의 동의 없이 법정에서 제시한 증거나 참고자료는 재판부가 아예 보지도 않았다.

검찰의 공판중심주의 표류기

 
그러나 검찰은 이번 재판을 통해서 이미 도입 5년이 지난 공판중심주의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김형두 재판장이 검사를 향해 “여보세요”라고 쏘아붙인 후 신문을 제지했던 장면이 그 대표적 사례다.

지난 2일 한명숙 전 총리의 13차 공판. 검사의 신문을 제지하던 김형두 재판장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오전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공판 강행군’을 하루걸러 진행하면서도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김 재판장이 그런 표정을 지어보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발단은 마지막 공판까지 반복된 검찰의 ‘반칙’이었다. 변호인 측 피고인 신문이 끝난 후 반대신문에 나선 노만석 검사는 피고인에 대한 모욕적 신문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단이 모두 빼기로 합의한 질문을 한 전 총리에게 던졌다.

“(제주도 골프빌리지에서) 골프 친 것을 감출 의향이 없다고 했는데 왜 본명이 아니라 가명으로 골프를 했는지 말씀할 수 있나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리고 가명으로 한 것은 검찰 수사로 확인돼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인데 설명해 줄 수 있나요?”

검찰이 합의를 깨고 반칙을 하자 당장 변호인단의 항의가 이어졌고 재판부는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김형두 재판장이 검사를 향해 이례적으로 “여보세요”라고 쏘아붙인 것도 이 때였다.

김 재판장은 “어제 그 질문이 모욕적이라고 해서 바꿨는데 그걸 다시 반대신문하면서 물어보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노만석 검사가 “어제 제가 그 자리에 없어 몰라서…”라는 변명을 내놓자 김 재판장은 더 단호한 목소리로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한 전 총리가 가명으로 골프를 쳤다는 게) 객관적으로 입증됐다고 하는 데 그건 검찰의 생각일 뿐”이라고 면박을 줬다.

사실 검찰의 반칙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 때마다 검찰의 증거 제출 및 증인 신문 방식이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에 어긋난다는 재판부의 지적이 이어졌지만 검찰의 무리수는 계속됐다.

지난 달 15일 4차 공판에서 검찰은 정식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자료를 증인 신문에 이용하려다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다.

이날 공판에서 2006년 12월 20일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참석했던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오찬이 끝난 후 4명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고 증언하자 권오성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 보고용인 면담보고서를 제시하면서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면담할 때는 정세균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증인이 먼저 나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면담보고서를) 법정에 정식 증거로 내든지 아니면 제출되지 않은 자료는 사용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불과 4일 후인 지난 달 19일 7차 공판에서도 검찰은 증인 신문을 하다 재판부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검찰은 한 전 총리 시절 의전비서관이었던 조아무개씨를 상대로 곽영욱 전 사장이 건넸다는 5만달러 사용처를 추궁하면서 “한 전 총리가 재직하는 동안 해외출장비를 쓰지 않고 모두 모았다 해도 2만 달러에 불과한데 연 10만 달러에 달하는 아들 유학비용을 그걸로 충당할 수는 없겠죠?”라고 묻다가 제지를 당했다.

김형두 재판장은 “유학비용과 출장비를 정확히 계산해서 사실을 물어야지 왜 자꾸 증인의 의견을 묻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이태관 검사가 한 전 총리의 해외 순방 일정을 제시하면서 ‘암산’으로 출장비를 계산하려다 ”갑자기 계산하려니 힘들다“며 황급히 신문을 마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검찰의 부실수사


그런데 반칙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검찰의 부실 수사다. 곽영욱 전 사장을 비롯한 여러 증인들의 진술 번복은 물론, 재판부로부터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 재판 중 공소장을 변경한 사례 말고도 부실 수사의 정황은 여럿 있었다.  

먼저 검찰은 법정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온 후에야 이를 반박하기 위해 ‘뒷북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기소 전까지 총리공관 경호원 중 윤아무개씨 단 한사람에 대해서만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보통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도 특정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소 2명 이상의 관계자들에게 ‘크로스 체킹’(중복 확인)하는 것이 기본인데 검찰은 전직 총리를 기소하면서도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총리공관의 경호 상황과 경호팀의 동선 등에 대해 조사하면서 단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한 것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검찰은 총리공관 경호원 윤씨가 법정에서 검찰에 불리한 증언을 하자 나머지 4명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였다. 권오성 부장검사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추가 수사”라고 강변했지만 누가 봐도 분명한 ‘땜질 수사’였다.

김형두 재판장도 “경호원 4명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다면 기소 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검찰은 하지 않았다”며 “이는 검찰의 과실”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한 전 총리가 곽영욱에게 받은 5만 달러를 아들 유학비용 등으로 썼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한 전 총리의 환전 기록을 꼼꼼히 살피지도 않았다.

검찰은 재판초기부터 지난 2일 결심 공판에 이르기까지 “한 전 총리와 가족들이 여러 번 해외로 출국하고 아들이 미국 유학을 했음에도 한 전 총리와 가족의 환전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환전 기록은 있었다. 다만 검찰이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백승헌 변호사는 최후진술을 하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 명의의 환전 및 송금 기록이 없다며 5만 달러를 아들 유학비용을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낸 자료에 환전 내역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집중적인 수사를 했다면서 왜 살피지 않았을까요? 답답합니다. 미리미리 살펴서 의심이 가셨다면 혹시라도 이렇게 큰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이 재판절차를 미연에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헛된 허망을 가져봅니다.”

이번 재판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검찰의 형사소송법을 무시하는 증거 제출과 막무가내식 증인 및 피고인 신문, 또 공소장 곳곳에 누수를 초래한 부실 수사로는 강화되는 공판중심주의에 적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검찰이 이번 재판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광장에나온판결_201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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