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06-10   1818

[판결비평문] 정신지체 여성장애인을 ‘보호불능’상태로 만든 판결

지난 4월 20일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 지대운, 김동윤, 전상훈 판사는 정신지체2급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사건에서 검사가 기소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장애인성폭력문제를 다루는 많은 단체들은 비판성명을 발표하며, 성폭력특별법 제8조에 대한 법원의 잘못된 법해석을 질타하는 동시에, 이 같은 판결을 반복하지 않기위해서는 성폭력특별법 제8조를 아예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지난 1월 사법감시 제23호 ‘참여연대가 본 2004년 주요 판결 – 디딤돌과 걸림돌’에서 정신지체2급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행 사건의 피고인이 무죄라고 선고했던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 윤재윤(재판장), 김경호, 김주효 판사의 2004노425(파기환송심, 2004.9.15 선고) 판결에 대해 “여성장애인을 ‘보호불능’상태로 만든 판결”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와 똑같은 논리구조를 가진 2004노315(2005.4.20 선고) 판결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비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편집자 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성폭력특별법”) 제8조는 장애인이 성폭력에 대항할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므로, 성폭력에 대한 저항을 하지 못하여서 가해자가 ‘폭행 또는 협박’을 사용하지 않고 간음하였다하더라도 그 가해자를 강간죄 로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이다.

물론 형법 제299조가 이미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하는 행위는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같이 처벌한다”고 하고 있고 성폭력특별법 제8조도 단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는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폭력특별법 제8조가 일견 형법 제299조 보다 더 나은 면이 없는 듯 보이지만, 형법 299조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하는 ‘친고죄’인 반면 8조는 비친고죄로서 정신지체 장애인의 고소권 행사의 실제적 어려움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법규정이다. 그리고, 성폭력특별법 제8조는 ‘장애’도 항거불능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성폭력특별법은 애초 ‘신체장애’만을 항거불능으로 인정하던 것을 제1차 개정시(1997.8.22)에 정신상의 장애인 보호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장애인의 범위를 정신상의 장애까지 확대하였다. 이러한 입법조치는 법원이 “형법상의 유추해석의 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제정법(개정되기 전의 성폭력특별법) 제8조에서 말하는 신체장애에 정신박약 등으로 인한 정신장애도 포함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신박약자인 피해자를 간음한 행위는 법 제8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고한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정신장애에 대한 성폭력문제가 성폭력특별법에 의해 제재받지 못하게 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입법 및 법개정의 취지가 온전히 판결에 반영되지 않으면 도리어 성폭력특별법은 정신지체 장애인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차별수단이 될 수 있으며 위 사건은 그와 같은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1. 대상판결 사건개요

대상판결의 피해자는 정신지체장애 2급 장애여성으로 피고인은 피고인 집 1층에 세들어 살던 내연녀의 딸인 피해자가 사물의 변별능력이 미약한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기로 마음먹고, 1999. 10월 밤 10시경에 부근 야산으로 피해자를 데려가 강간하였다. 이후에도 피고인은 2003년 8월까지 8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강간하였는데,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무죄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2. 대상판결 재판부의 판결요지 및 이유

이 사건의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성폭력특별법 제8조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점에 관하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며 1심 판결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성폭력특별법 제8조의 “항거불능”을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으며, 위 법률 제8조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어야 하고 이러한 요건은 형법 제302조에서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의 처벌에 관하여 따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피해자가 정상인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정신상의 장애가 있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정신지체 장애인인 피해자가 반항하기 어렵고 약간의 위협이나, 폭행이 있더라도 쉽게 강간당할 수 있다는 취지에 불과할 뿐이지 피해자가 성적인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로 보여지지 않는다고 하여 항거불능의 상태를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3. 이 판결의 문제점 – 피해자의 정신연령과 ‘항거불능’ 여부의 관계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판부가 “피해자가 6-7세 가량의 지적수준”이라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도 재판부는 “성교육을 받았고, 성관계후 ‘생리를 하지 않아 임신한 것 같다’ 등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보아 성적 자기 방어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형법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는 “13세 미만의 부녀를 간음…한 자는 제297조(강간)…의 예에 의한다”라고 하여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다른 증명없이 곧바로 제297조(강간)과 똑같이 처벌되도록 하고 있다. 즉, 13세 미만의 부녀자는 ‘자발적인’ 또는 ‘동의에 의한’ 성행위 자체가 불가능함을 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법 제305조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하는 친고죄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성폭력특별법 제8조의2에서도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경우를 처벌할 수 있게 하면서 비친고죄로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자발적인 성행위가 애초에 법적으로 불가능한 6-7세 가량의 지적수준을 가졌다는 점 자체가 이미 “항거불능” 상태인 것이지, 6-7세인 피해자가 사실적으로 항거를 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다시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법적 연령이 13세 미만인데 ‘힘도 세고 성적으로는 아는 바가 많다’는 이유로 형법305조의 적용을 기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폭력특별법 8조의 적용에 있어서도 우선 피해자의 정신연령이 사실적으로 가려지면 ‘항거불능’ 여부의 판단에 있어서 이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실제 법원의 다른 판결에서는 피해자의 정신적인 연령에 대한 법원의 사실판단은 ‘항거불능’ 판단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제시된 정신지체의 장애등급은 1~3급으로 되어 있으며, 1급은 지능지수 34 이하, 2급은 지능지수가 35~49, 3급은 지능지수가 50~70 이하인 사람이 해당된다.

.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법 2004고단8192에서 정신지체 2급으로서 사회연령 9세로 판단되는 피해자를 ‘항거불능’으로 판단하였고, 부산지법2004고합352,709(병합)에서도 정신지체인 14세 피해자가 중학교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능력이 떨어진다 하여 ‘항거불능’으로 판단하여 ‘항거불능’으로 판단하였고, 수원지법2004고합112 사건에서도 정신지체 2급인 22세 여성에 대해 사회연령이 5.8세 정도로 판단되고 성적 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판단할 능력이 떨어진다 하여 ‘항거불능’으로 판시하였다. 단, 부산지법2003고합634에서 ‘항거불능’으로 판단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정신지체 3급이며 실제 연령도 44세였다.

이처럼 이 사건의 판결은 이 같은 판례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까지 위 재판부가 피해자가 ‘정신연령은 6-7세인데 성적으로는 자기방어능력이 있다‘는 무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근거로 제시한 부분들도 애매하다. 첫째, 피해자가 ‘성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성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인지 성행위, 임신 등에 대한 중학교 생물시간 식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둘째, ‘임신과 생리 사이의 관계를 안다‘는 것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성행위를 윤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다. 정신연령이 6-7세로 판단된 피해자를 성폭력특별법 제8조의 보호막 바깥쪽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반대논거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도리어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를 ‘항거불능’으로 판단해야 할 사실적인 근거들이 더욱 눈에 띈다. 피해자의 정신장애의 특성상 피해자와 평소 잘 알고 있는 어른이라는 점, 평소 피고인이 술을 먹고 내연관계에 있던 피해자의 어머니와 오빠를 때렸던 것이 기억나서 무서워 반항하지 못한 점 등은 피해자의 지적수준에서 생각할 때 피고인을 복종해야하는 대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게 더욱 강한 저항을 요구할 것이 아니고 저항이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정신적인 장애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지를 따져봤어야 한다.

이 사건에 비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이경민 재판장)3월 25일 판결에서 “피해자가 한글, 자모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숫자 20까지도 개념이 없는 사실과 피고인이 ‘오징어먹자’는 등으로 꾀어 단시간에 2차례 간음, 10차례 추행하는 동안에도 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부분 순순히 응한 것으로 보아 ‘성적자기결정능력’이 없어 자기방어가 불가능한 ‘항거불능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라고 판시함으로써 ‘정신상의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하였다. 즉, ‘순순히 응한 것’을 단순하게 ‘무항거’로만 해석한 것이 아니고 ‘성적자기결정능력 부재’의 근거로 해석한 것으로 사안의 복잡성을 잘 감안하였다고 보여진다.

4. 사법부의 더 깊은 고민을…

대법원은 형법 302조 형법 제298조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하는 행위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는 반면 형법 제302조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를 간음 또는 추행하는 행위를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고 있다. 즉,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에 대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위계 또는 위력” 정도의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은 행위를 가했어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서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의 처벌에 관하여 따로 규정하고 있어, 성폭력특별법의 제8조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즉, 형법 체계가 조문상 “심신미약자”에 대한 성폭력은 302조를 통해 다루고 “항거불능”인 자에 대한 성폭력은 형법 제299조 내지는 성폭력특별법 제8조로 다루기로 한 이상 성폭력특별법 제8조의 더욱 높은 형량(3년 이상의 유기징역. 302조는 5년 이하의 징역)이 적용되려면 ‘심신미약’을 뛰어넘는 고도의 ‘항거불능’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와 같은 선언 자체는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한 판단이며, 이 판결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성폭력특별법 8조로 기소하지 않고 형법 302조로 기소되었다면 법원이 달리 판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항거불능’을 어느 정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있어서 우리가 이 사건의 판결에 가진 아쉬움은 여전하다. 정신지체 여성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특히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성폭력특별법에 대한 입법취지를 살리는 사법부의 더 깊은 고민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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