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1-23   4878

[판결비평] 당내 경선 대리투표, 헌법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까?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한 혐의로 510명이 기소된 사건 기억하시죠?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정치권의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지요. 지난 해 11월 28일 당내 경선 대리투표 행위가 위법이라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리투표를 해 선거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백 모 씨와 이 모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요.

통합진보당 대리투표 사건의 큰 쟁점은 당내 경선에도 일반적인 선거의 원칙인 평등·직접·보통·비밀의 4대 원칙이 적용되느냐 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10월 7일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는데요. 현재도 490 여명이 1, 2심 재판을 진행 중이고 유·무죄가 엇갈린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 대법원 유죄 판결에 대해 아주대 오동석 교수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비평문을 보냈습니다. 우리 사회 중요 판결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나누자는 의미에서 여러분께 이 비평문을 소개합니다. [판결비평]은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런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당내 경선 대리투표, 헌법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법원 제3부 2013. 11. 28.자 2013도5117 판결

대법관 민일영(재판장) 이인복 박보영(주심) 김신

 

아주대 오동석 교수

 

 

 

 

 

오동석 /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은 2012년 3월 14일부터 같은 달 18일까지 5일 동안 2012년 4월 11일 실시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경선을 실시하였다. 검찰은 전자투표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한 이유로 업무방해 혐의로 20명을 구속기소하고 442명을 불구속 기소하였다. 피고인들은 가족이나 직장 동료, 지인의 핸드폰으로 온 투표인증 번호를 전달받고 위임을 받아 ‘대리투표’를 한 이들이다. 

2013년 10월 7일 서울중앙지법 제35부(부장판사 송경근)는 최모 씨 등 45명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2013고합274(병합))(아래 “지법판결”). 그러나 2013년 11월 28일 대법원(주심 대법관 박보영)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확정하였다(2013도5117)(아래 “대법판결”).   

정당의 자유의 범위에 관한 헌법원칙

 

대법원은 “당내 경선에서도 선거권을 가진 당원들의 직접․평등․비밀투표 등 일반적인 선거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고, 대리투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헌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진보당의 선거 관련 규정으로부터 유추하여 이러한 기준을 도출하였다.

반면 지법판결은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당내경선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당법이 “정당의 당헌에서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선출방법이나 절차에 관해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출발하였다. ‘정당이 선거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제47조 제2항은 이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서 구체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헌법 제8조 제1항은 “정당설립의 자유, 정당조직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등을 포괄하는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헌재 2004. 12. 16. 2004헌마456). 각 정당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당원의 의사를 확인하고자 한다. 명시적인 금지규정이 없다면 또는 선거제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당의 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진보당의 선거 관련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 관련 규정을 보면, “직접투표는 선거권을 가진 당원이 투표소에 직접 방문”하도록 하고 있지만, 전자투표의 경우 이러한 규정이 없다. 또한 고유인증번호 입력 과정이 있지만, 이것은 “여러 번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일 뿐 ‘단순히 투표권자의 의사를 대행하는 대행투표’ 금지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아니다. 업무방해에 대한 판단은 최대한 진보당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직접선거원칙과 대리투표행위의 관계

 

헌법과 법률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금지명령이 없는 이상 유권자의 선택과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만을 한 단순대행투표는 직접선거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지법판결이 피고인들을 도덕적 비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대법판결은 “선거권자가 특정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위임하는 대리투표에서도 선거권자의 진정한 의사를 왜곡할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점”을 들었다. 공보관의 보도자료는 “선거권자들…로부터 전자투표를 위한 인증번호를 전달받은 뒤 그들 명의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 대리투표”를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초기에는 선거인이 후보자에게 직접 투표하는 것을 의미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선거결과가 유권자의 의사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되기만 하면 직접선거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당내경선의 본질을 훼손할 만큼 투표권자의 의사와 대행투표의 결과 사이에 왜곡이 있는지 각각 구체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단순히 투표권자를 대신해서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과잉의 조치이다.

 

인터넷 투표시스템의 현실과 그에 대한 규범적 평가 

 

지법판결은 인터넷 투표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하였다. “대리투표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투표율을 높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대리투표를 최대한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포기하고 이를 금지하는 규정조차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전자투표를 실시한 진보당의 당직자들 및 선거관리 업무 담당자들에게 근본적이고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판결은 이러한 인터넷 투표시스템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근거도 아닌 법 규정을 원용하였다.

 

전자투표와 인터넷투표는 다르다. 전자투표는 폐쇄적인 회선 내에서의 이루어지며, 투표관리자 및 참관인의 감시에 의해서 직접투표의 원칙을 유지할 수 있다. 국회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터넷 투표에서는 직접투표의 원칙을 담보하기 위해서 본인 인증을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홍채인식과 혈관인식 혹은 지문인식과 같은 생체인식기술이 직접투표 원칙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동의 또는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대안제시 등이 필요하다. 

 

김인성 한양대 교수는 한국식 인터넷투표는 기존 선거 시스템의 개선안이 아니라 온라인 여론 조사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직 선거원칙을 직접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인터넷 투표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진보당에게 책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정당으로서 당내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하여 당원의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려는 정치적 실험을 할 수 있는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향후 제도적 개선을 요청하는 선에서 ‘경고’하면 될 것이지 형사처벌을 동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선거권은 개인의 권리이다. 선거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선거원칙이란 선거권자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 등의 선거제도 운영자가 준수해야 할 기준이다. 이 사건의 피고인들이 인터넷 투표에 참여할 여건이 충분치 않아 자신들의 의사를 대신 전달해주길 원하는 유권자들의 요구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면, 오히려 이들은 투표에 참여하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선거권을 보호한 셈이다. 인터넷 접근성 등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통선거원칙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는 적어도 업무방해죄의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선거원칙 간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겨보아야 한다. 근무시간 등의 여건 때문에 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는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 또는 확장을 통하여 최대한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오늘날 생존 때문에 다시 위협받고 있는 보통선거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인터넷 투표는 보통선거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직접 투표장에 나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미완의 제도라는 한계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마저도 인터넷 접근성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면, 이들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제도적 장치와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광범위한 규제와 관리의 권한을 누리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소외된 이들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는 먼저 본연의 업무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점검하고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제도를 완비한 다음에서야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국가는 자신의 책무를 먼저 이행하지 않고서는 국민을 향해 형벌을 동원할 수 없다. 그것이 죄형법정주의의 헌법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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