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3-10-21   6745

[판결비평] 동성애혐오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학생, 학교 책임 없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의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비평은 지난 2009년 부산의 한 고등학생이 동성애 성향으로 반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아 자살하자, 피해 학생의 부모가 해당 학교를 운영하는 부산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학교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부산고법에 환송한 판결에 대한 비평입니다.

 

동성애혐오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학생, 학교 책임 없다?

대법원 제3부 2013. 7. 26. 선고 2013다203215 

대법관 이인복(재판장), 민일영, 박보영, 김신(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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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동석 /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사건의 논점은 ‘동성애혐오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학생에 대하여 학교와 교사가 어떠한 책임을 지는가의 문제이다. 대법원 제3부는 학교와 교사에 대하여 피해학생의 자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원심을 파기하였다. 다만 대법원이 집단괴롭힘 자체에 대한 학교와 교사의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학생의 자살에 대한 학교책임을 인정하는 판례는 2007. 11. 15.의 대법원판결(2005다16034)이다. 논리를 따라가 보면, 먼저 ① “지방자치단체가 설치ㆍ경영하는 학교의 교장이나 교사는 학생을 보호감독할 의무”를 진다. ② 의무의 범위는 “학교 내에서의 학생의 전 생활관계에 미치는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및 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이다. ③ 더 구체적으로 교장이나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 책임은 “교육활동의 때와 장소, 가해자의 분별능력, 가해자의 성행,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관계 기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사고가 학교생활에서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거나 또는 예측가능성(사고발생의 구체적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

 

따라서 자살의 결과에 대하여 학교의 교장이나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아 교사 등이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다만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괴롭힘이 계속되고 그 결과 피해 학생이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 있었음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에는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상황에 대한 예견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건의 핵심은 과연 집단괴롭힘이 악질적이고 중대한 집단괴롭힘의 결과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 대한 예견가능성의 여부이다.

 

 

대법원판결에 대한 의견

 

대법원판결의 문제는 자살 책임에 대한 법리보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집단괴롭힘이 악질적이고 중대하느냐의 문제이다. 대법원은 자살의 계기가 “반 학생들의 조롱, 비난, 장난, 소외 등에도 기인”하였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아주 빈번하지는 않았”고, “행위의 태양도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조롱, 비난 등에 의한 것이 주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괴롭힘에 이를 정도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망인이 자살을 암시하는 메모를 작성하기도 하였지만, 이 사건 사고 무렵에 자살을 예상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망인이 2009. 11. 29. 일요일에 가출하여 다음날 등교하지 않고 방황하다가 그날 22:00경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자살하였는”데,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담임교사에게 망인의 자살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산지방법원의 판결(2012. 7. 12. 2011가합24176)은 이렇게 사실관계를 판단하였다.

(A)은 어느 정도 일정기간 반복적으로 반 학생들 중 일부로부터 적극적인 조롱, 비난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소극적으로 소외를 당한 나머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 사건 괴롭힘이 반년 이상 지속되고 그 정도도 심하여져 감으로 인하여 (A)이 받게 되는 정신적 고통도 고등학교 1학년인 (A)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게 되어 결국 (A)이 자살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괴롭힘이 하나의 원인이 되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며, 한편 (A)이 그의 동성애적 성향 등으로 반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이 이 사건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사유는 될 수 없다. 

 

다음으로 자살에 대한 예견가능성에 대해서도 법리보다는 사실관계에서 원심의 판결을 번복하였다. 즉 원심판결에 따르면, 교사는 ① 피해자와의 상담 및 피해자 작성 경위서를 통해, ② 그리고 청소년 정신건강 및 문제행동 선별설문결과 및 BDI(우울척도검사), SSI-BECK(자살생각척도검사), 불안검사(BAI) 결과, 피해자의 자살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사건 괴롭힘은 학기 초(9월 초)부터 피해자가 자살에 이를 때(11월 30일)까지 어느 정도(3개월 정도) 계속하여 지속되었다. 따라서 교사는 이 사건 괴롭힘으로 인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할 것을 예측하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

 

원심판결에 따르면, 교사는 학부모에게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지 아니한 채 피해자의 동성애적 성향 및 우울감을 알리면서 전학을 권고하는 등의 소극적인 조치만을 취하였다. 또한 교사는 각종 검사결과를 피해자가 다른 남학생들에 비하여 욕이나 외모에 대한 비난에 예민하게 반응함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마찰에 대하여 피해자의 예민함과 동성애적 성향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여 피해자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해결을 모색하려 했다. 따라서 교사는 가해행위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노력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성소수자에 대하여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관용적’이지 못한 한국 사회의 환경 그리고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집단적 괴롭힘이 가지는 의미 속에서 집단괴롭힘에 대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강병철․김지혜(2006: 80)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경우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응답자의 47.4%로 매우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전체 청소년 가운데 자해행위나 자살을 기도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10% 정도인 것에 비해 거의 다섯 배가 높은 수준이다. 이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정신적․물리적 폭력과 깊은 상관이 있다. 위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동성애자의 절반 이상이 언어적 모욕을 당한 적이 있고, 20% 정도가 신체적 폭력의 위협을 받거나 개인소지품이 망가진 적이 있었으며, 누군가 자신에게 침을 뱉은 경험이 있는 경우가 13.8%,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건을 집어던진 적이 있는 비율이 18.5%, 성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10.8%, 주먹질이나 발길질, 무기 등으로 공격당한 경험이 있는 비율도 1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건에서 악질‧중대의 집단괴롭힘 기준은 ‘악질 그리고 중대의 집단괴롭힘’이 아니라 ‘악질적이거나 중대한 집단괴롭힘’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즉 둘 중의 하나만 충족이 되면 학교나 교사의 책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에서의 집단괴롭힘이 ‘악질 또는 중대’의 것인지 또한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교사의 자살예견성을 인정할 것인지가 엄정한 사실관계의 확정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법리의 오해를 이유로 원심을 파기한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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