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3-12-11   5164

[판결비평] 존재의 절규에 답한 법원의 성별 정정 결정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여성이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하려면 외부 성기 수술을 반드시 해야할까요? 지난 11월 19일 법원은 “성별 정정의 허가에 있어서 외부성기의 형성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성이 있”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진전시킨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대한 비평문을 소개합니다. 민주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내용으로 함께 읽어보시지요. 

 

존재의 절규에 답한 법원의 성별 정정 결정

서울서부지방법원 2013.11.19.2030호파1406결정

 판사 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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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훈 / 변호사 

 

 

1.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한 소년은 여자가 되기 위해 모래판에 올라 씩씩하게 세상과 샅바를 겨룬다. ‘성 정치학의 민감한 문제를 성장영화의 문법으로 풀어낸’(변성찬) 이 경쾌한 영화는 동구가 여장을 한 채 마돈나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살고 싶었던’ 동구는 자신의 꿈대로 여자로서 살 수 있을까? 존재의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2. 이 문제에 대하여 1945년 스위스 법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다. 법은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있어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하여 법률효과를 부여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 성전환자가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할 권리가 없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의 법률적 판단의 기준은, 언제나 무엇이 성전환증 환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1945. 7. 2. 스위스 법원의 결정 중에서 –

 

 

3. 반면에 우리 사회에서 성전화자들이 법적 대답을 듣게 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성별정정을 허가한 대법원 최초의 결정(대법원 2006. 6. 22. 선고 2004스42결정)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를 향해 절규해온 그들에게 대법원의 결정 그 자체는 환영할만한 것이나, 시기적으로는 너무 늦게, 내용적으로 불충분하게 대답한 것이었다. 

 

이 결정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지만, 창조질서를 선언한 ‘말씀’으로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종교인 등의 거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사회적 쟁점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적 논쟁을 우려한 듯, 그 쟁점의 가운데서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성전환수술을 완료했을 것 등을 요건으로 제시하였다. 대법원은 2006. 9. 6.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대법원 호적예규 제716호)을 제정하여 위 결정의 내용적 의미를 스스로 제한하고, 제한된 의미를 법률적 근거 없이 일반화함으로써 찬반양론에 걸친 줄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대법원 지침에 의하면,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려면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자에서 남자로의 수술은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도 생명의 위험을 담보로 하는 매우 위험한 수술이다. 또한 당뇨병 등 다른 질병이 있으면 이러한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수술 비용이 약 2,000만원에 달하는 고비용인데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부터 완강하게 성별화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외부성기 수술을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유럽인권법원은 성전환수술 및 치료를 위한 비용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어야 하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또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에 관한 가장 최근의 제정법인 영국의 성별인정법(Gender Recognition Act, 2004)에서는 성전환수술을 성별 정정의 법적 요건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별로 없는 ‘상징’을 생명의 위험과 큰 비용을 들여 만들어서 법적인 성별과 교환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성전환자들이 당혹해했고, 좌절했다. 

 

2008. 11. 5.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법원장에게 위 지침을 개정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고결정을 한다. 권고의 내용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상의 성별정정허가 요건 중 ‘성기수술’, ‘만 20세 이상일 것’, ‘혼인한 사실이 없을 것’, ‘자녀가 없을 것’, ‘부모의 동의서를 제출할 것’ 등의 요건에 대해 인권침해 요소가 없도록 개정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예규 제293호(2009.01.20.)로 위 지침을 개정하였지만, 개정 내용 중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받아들여진 것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다. 

 

4. 2013년, 이 문제는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최근 11월, 서울서부지방법원(법원장 강영호)이 외부성기 성형요건을 제외한 나머지 요건을 갖춘 성전환남성 30명이 가족관계등록부 성별을 ‘여’에서 ‘남’으로 정정을 청구한 사건(2013호파1406)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한다”며 30명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이 결정에서 “단지 외부 성기를 구비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가족관계등록부 상 여성으로 묶어 두는 것은 신청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지난 3월 서울서부지법은 남성 성기가 없는 여성 5명의 성별 정정을 처음으로 허가하면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엔 허가 이유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법이 아니”고, “법률적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성전환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1945년 스위스 법원의 판단과 유사한 사회적 판단을, 이번 결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도 갖게 되었다. 결정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사회의 특징은 우리 사회의 기본질서를 해하지 아니하는 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이 없는 존경과 배려로 서로를 관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관용은 나에게 편안한 사람들과 편안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삶의 방식을 함께 할 공간을 내어 주는 것으로서 차이를 뛰어 넘는 동등과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2013.11.19.자 2013호파1406결정 중에서 –

 

 

법적 성별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의 불일치를 존재의 감옥으로 여기며, 이 사회를 향해 절규해 온 당사자들에게 법원이 이제 하나의 대답을 준 것이다. 존재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슬픔들을 견뎌내야 했던 당사자들에게 이번 결정이 늦었지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의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 전문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시민사회의 건전한 의견이 법원의 판결에 반영되어야 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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