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11-28   2106

[제21회 판결비평-판결읽기] 법원, 마음 속까지 판단하나?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에 날개 달아준 법원 판결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사전에 공권력을 발동하는 것은 정당한가?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과연 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마을회관을 출발하려는 농민들을 경찰차가 가로막았다. 이른바 원천봉쇄를 한 것이다. 화가 난 농민들이 경찰차를 부수었다. 농민들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런데 청주지법 제천지원(재판장 신용석, 차영민, 이세라 판사)은 경찰의 원천봉쇄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명백한 범죄예방을 위해서 행해져야 하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서울에서의 집회를 막기위해 상경을 저지한 것은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이 제천지원의 판결은 곧 뒤집혀졌다.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 판사들(재판장 김상준, 신동헌, 손삼락 판사)은 제천지원과는 정반대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범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개최가 금지된 집회에 참여할 의도가 분명히 있었고, 또 최근의 집회들이 폭력시위였던 점으로 보아 피해가 예견되므로 경찰로서는 범죄예방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원천봉쇄를 행한 것은 적법하다고 한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번 경찰의 원천봉쇄가 적법한 공무집행인지 아닌지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인 제천지원과 대전고법의 판결을 통해 과연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지, 현재 우리 법원은 과연 이러한 요건들을 제대로 고려하고 있는지 토론해 보고자 판결비평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비평글은 박주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가 작성하였다(편집자 주).

같은 사건, 정반대의 판결

지난 3월 10일 충북 제천시 농민회 등 농민단체 회원 20여 명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미 FTA 반대집회 범국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막 준비된 승용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농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있는 봉양읍 주민자치센터의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화가 난 농민 두 명이 입구를 막고 있는 교통순찰차 1대와 경비 지프차 1대를 파손시겼다. 농민들은 구속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공무집행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상경저지를 통해 집회를 원천봉쇄해 온 경찰의 행위를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보아 온 이전 법원 판단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불행하게도 항소심에서 곧바로 뒤집어졌다. 이 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한 대전고등법원은 원심과 달리 두 명의 농민에게 공무집행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마이너리트 리포트

전직 경찰이었던 한 남자는 지금 경찰에 의해 쫓기고 있다. 경찰에 있을 때 상당한 엘리트였고 지위도 높았던 그가 경찰에 쫓기는 이유는 바로 살인예정자이기 때문이다.

살인예정자? 그렇다. 범죄예측기가 그가 곧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범죄예측기의 예측을 집행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는 범죄예측기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예측과는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는 진실을 밝혀내게 된다. 그런데 이 진리는 그가 범죄예측기의 예측을 집행할 때 집행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항변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봤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로 인한 선택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경찰력이라는 공권력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인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가’하는 것도 보여준다.

범죄자를 낳은 어머니까지 처벌할 수 있나?

비록 헌법이 도둑질을 기본권으로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도둑을 예로 들어 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과연 언제부터 이 사람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가? 마음먹는 순간부터 이 사람은 도둑예정자가 되어 처벌되거나 행위가 제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도둑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실질적인 행위를 하는 시점부터 처벌이 가능한가?

형법 등 국가의 강제력을 규정한 법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위와 같은 것이다. 이는 ‘어떤 행위가 범죄결과를 낳았고, 범죄결과를 낳은 그 행위를 행위자에게 객관적으로 귀속시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서 이를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의 문제라고 한다. 인과관계의 폭을 한없이 넓히면 범죄자를 낳은 어머니나 아버지까지 처벌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 폭을 너무 좁히면 범죄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가 없거나 매우 적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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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의 역사를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폭을 합리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범죄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비난받거나 처벌받았다. 범죄자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차 범죄자 개인의 행위를, 그리고 그 중에서도 보다 직접적으로 범죄와 연관된 행위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의 인정 폭이 줄여져 나간 이유는 바로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의 확장 덕분이었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공권력의 작용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 인간의 행동 중에 범죄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고, 중요한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하거나 금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위에서는 도둑질을 예로 들었으나, 헌법이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집회나 시위, 또는 파업 등에 관해서는 어떨까?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의 문제가 기본권에 관해서 발전한 것이 바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다. 이는 어떤 행위가 제한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와 그 행위로 인해 발생할 해악이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하고, 그 행위로 인해 해약의 발생이 절박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기본권 중에서도 보장의 정도가 강한 정신적인 기본권(언론의 자유, 집회나 결사의 자유 등)의 보호를 위해 적용되는 원칙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이 원칙에 입각하여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 합헌인지 아닌지를 심사하고 있다.

법원, 경찰의 원천봉쇄에 날개 달아주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경찰은 지금까지 대규모집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소위 원천봉쇄라는 것을 해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각 지방에서부터 제지하여 왔다. 올해는 한미 FTA저지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등을 이유로 대규모 집회가 잇달아 개최되었기에 경찰의 원천봉쇄 및 상경저지 역시 잇달았다. 특히 올해 초에는 제주도에서 한미 FTA저지집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려는 농민들을 막기 위해 이륙직전의 비행기까지 강제로 세워 세간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행위들은 법원이 ‘문제없다’고 한 법률적 판단에 기댄 것이었다. 바로 2001년 대우자동차파업 때 시위를 위해 거제도에 있던 노조원들이 상경을 저지당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경찰들의 행위에 의한 손해를 배상해 달라고 청구한 것에 대해 법원이 경찰의 행위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을 말한다. 즉, 이 당시 법원은 처음부터 금지된 집회 또는 관할 경찰서장에 의해 금지통고가 된 집회를 개최하거나 금지된 줄 알면서 집회에 참가하는 행위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므로 경찰관은 이에 대하여 경찰관직무집행법(이하 ‘경직법’)에 따른 ‘범죄의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경찰관이 노조원들의 상경을 저지한 것은 경찰이 취할 수 있는 예방조치의 범위 내이기에 적법한 공무집행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천봉쇄에 대한 태클

그러면 동일한 경찰의 행위에 대해 이전의 법원의 판단과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의 판단이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경직법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경직법 제6조는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전 법원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단순히 불법집회가 예상되고, 그에 참가하려는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경찰이 경직법에 의하여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반면에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은 경직법의 경찰강제력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였다.

즉,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은 ①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 “목전(目前)이라 함은 말 그대로 ‘눈앞에서’라는 명백, 현존성의 의미”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원천봉쇄 조치는, 집회 예정시간인 15:00경으로부터 무려 5시간 30분 전인 09:30경에 서울에서 150km나 떨어진 제천에서 취해 졌기에 농민들이 미리 준비된 승합차로 바로 상경하려 했다는 사정까지 감안한다 할지라도 이른바 “불법집회에 참가라는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하여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②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이 사건의 서울집회의 금지통고 이유는 “추상적으로 추론될 뿐 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입증된 바가 전혀 없고, 금지통고가 된 집회에 참가하려고 준비하는 행위에 불과한 상경행위가 그 자체로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서울집회가 “인명. 신체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집회가 교통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고 하여도 이로써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통해서 법원은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기에 이에 대해 경찰강제력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불법적인 상황이 예상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기본권 행사로 인한 불법이 명백하고, 현존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집회참가자에 대하여 각 지역에서의 출발을 제지하는 이른바 상경저지 또는 원천봉쇄라는 경찰관의 직무집행이 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행위가 사회적인 해악을 끼칠 것이 명백하고, 그로 인한 위험이 현존해야만 그 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을 환영했고, 법원이 집회의 자유, 그리고 공권력행사의 한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을 반겼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줄어들 것을 기대하였다.

반갑지 않은 “네 맘 내 다 알지”

그러나 대전고등법원은 이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즉, 대전고등법원은 ‘예방하려는 범죄행위와 경찰권의 발동대상인 행위 사이의 시간적, 장소적 접근성이 중요한 판단요소가 되겠지만, 명백, 현존성의 판단에 있어서 그와 같은 시간적, 장소적 접근성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권 발동대상인 행위가 예방하려고 하는 범죄행위와 시간적, 장소적으로 밀접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하려는 자들의 의사의 내용 및 명백성, 의사의 번의가능성 유무 및 정도, 행위의 내용 등을 비롯한 제반정황에 비추어 범죄행위가 저질러질 것이 명백, 현존하여 그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명백, 현존성의 원칙’의 내용에 대해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보다 훨씬 폭넓게 판단하고 있으면서, 특히 ‘행위자의 의사의 내용 및 명백성, 의사의 번의가능성’ 등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기준으로 하여 위험의 명백, 현존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공권력발동의 근거로 삼으면 삼을수록 자의적인 공권력의 행사가 가능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정말 나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가 ‘네 맘 내 다 알지’하면 정말 고맙고, 즐겁고 위로가 되겠지만, 뭔가 삐딱하게 나를 바라보는 군대 고참이 ‘네 맘 다 내 알지’하면 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번 대전고등법원의 판단은 경찰이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근거로 하여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경찰의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에 다시 한 번 힘을 보태준 꼴이 되었다.

경찰이 이전에 몇몇 단체의 성향을 문제삼아 해당 단체가 개최하려는 집회의 경우 개별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금지통고한 것에 비추어 보면 이제는 어떤 단체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바로 통제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혹시 집에서 나오는 것조차 막는 것은 아닌지?

올바른 경찰권의 행사

경찰권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강제하는 권력적이며 이익 침해적 작용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가능성이 크므로, 경찰권의 발동 및 행사는 반드시 법률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적용함에 있어서도 엄격한 해석이 요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원칙을 또 한번 무너뜨렸다.

제천지원의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 상급법원에서 뒤집어진 현실에서 앞으로 자의적인, 그리고 행정적 편리함만을 내세워 국민의 행동의 자유를 경찰력으로 침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한낱 바램으로 남고 말 것인가? 이제 대법원의 판결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판결문 보기

청주지법제천지원판결.pdf대전고법판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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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상경 집회 ‘원천봉쇄’ 적법성 논란(프레시안)

-금지통고 집회참가 원천봉쇄는 부적법”<제천지원>(연합뉴스)

-“경찰의 상경집회 원천봉쇄는 정당'(뉴시스)

박주민(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청주지법제천지원판결.pdf대전고법판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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