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1월 2019-10-29   1053

[기획]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 9 – 느티나무 시민서클, 유쾌한 지지와 공감의 커뮤니티

아카데미느티나무 10주년 기획 –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9

느티나무 시민서클,
유쾌한 지지와 공감의 커뮤니티

글.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지난 10월 5일 밤. 검찰개혁 제8차 촛불집회가 끝날 무렵, 서울 서초역 사거리 중앙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걷는다. 걸음은 춤이 되고 웃음이 되고 함성이 된다. 주변의 시민들도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어떤 이가 묻는다. “어디서 나오셨어요?” 이들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6개 서로 다른 소모임(이하 ‘시민서클’)의 멤버들이다. 그중 한 사람이 ‘나가자’ 제안하고 두세 명이 호응하고, 서로가 속한 시민서클에 연락해서 모인 것이다. 그러면 느티나무의 시민서클은 어떤 활동과 경험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발견하고 있을까? 

 

시민서클 ❶ 그림者 

10월의 토요일 오후, 시끌벅적한 홍대 앞. 카페 안에서 8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요즘 본 영화 이야기도 하고 내년 전시 계획도 이야기하면서. ‘그림자’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림자는 토요일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서울드로잉>과 금요일 저녁 <미술학교> 수업을 마친 시민들이 만든 후속모임. 2012년 일본 지진피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전시회로 시작해 2014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걸개그림 그리기, 2017년 반려동물 주제의 전시회 등 사회적 활동을 해왔다. 월 1회 함께 그림을 그린다. 매년 그룹전을 진행해 지난 2월 제8회 그림자 전시회를 개최했다.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2019년 10월 ‘그림자’ 회원들이 월 정기모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결성 2012년

비전 함께 그림을 그리면 삶이 즐겁다

구성원 22명

 

더불어 함께 각자의 행복과 민주적 소양을 키워요

“대부분 직장인이라 월 1회 스케치모임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클이 9년째 유지되는 데는 그림자만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요. 등가의 의무감 강요하지 않기, 다름을 인정하기, 기다려주기, 더불어 함께 각자 나름의 행복 찾기. 회사 같은 조직에서는 수용되기 힘든 이런 특성들이 그림자를 9년이나 유지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지불식간에 체득하게 되는 민주적 소양 아닐까요.” 

– 성열훈 ‘그림자’ 회장

 

시민서클 ❷ 도시의 노마드 

하늘이 푸르른 5월의 봄, 토요일 오전 9시 30분 경기도 양평 아신역. 여자와 남자 15명이 단 한명의 지각도 없이 칼같이 모였다. “집에서 다들 두세 시간 걸리는데 우리 너무 무서운 조직 아니야?” 서로 보며 깔깔 웃는다. ‘도시의 노마드’가 양평 ‘2019 발달장애 작가들의 폐공장 전시’에 초대받아 춤공연을 하던 날이었다.    

 

춤서클 ‘도시의 노마드’는 느티나무의 춤 워크숍을 마친 사람들의 후속모임. 이들의 강점은 어디서든 원하면 춤을 출 수 있는 자유로움에 있다. 봄에는 시원한 남한강 상류에서 춤을 추고, 가을에는 억새가 흐드러진 노을공원에서 춤을 춘다. 누가 번개를 제안하면 세운상가 옥상이나 독립문 역사공원에서도 춤을 춘다. 2014년 서울댄스프로젝트에 이어, 2015년 광화문 광장 집회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는 춤을 췄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2017년 6월항쟁 30주년엔 시청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지난 6월 느티나무 10주년 축하 2부 옥상파티는 음식부터 프로그램 전체를 ‘도시의 노마드’ 구성원들이 준비했다. 지난 9월에는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한강시원제’에 초대받아 공연을 했다.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도시의 노마드 회원들이 〈2019 발달장애 작가들의 폐공장 전시〉에서 춤을 추고 있다

 

결성 2014년

비전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구성원 23명

 

숲을 만들어가는 나무들을 만나요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가. 삶의 시작은 사람이죠. 느티나무 서클활동을 하면서 늘 진한 사람 냄새를 맡아요. 스스로 숲을 만들어가는 나무들을 만납니다. 나무가 숲을 향해 가다 보면 생채기가 날 때도 있죠. 그러나 그것은 다시 사람으로 치유돼요. 어떨 땐 고단해서 다시는 뭐든 안 맡겠다 하다가도 그 진한 향기에 다시 취해 우리는 서로 의지하는 나무처럼 묵묵히 생기 있게 나아갑니다.” 

– 백미정 ‘도시의 노마드’ 진행팀

 

시민서클 ❸ 역사답사모임 굴렁쇠 

느티나무 초기 <역사교과서 읽기> <한국 근현대사> 등 역사 강좌가 많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역사교과서 왜곡과 국정교과서 추진 등 역사 이슈가 뜨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강화도, 철원 등 역사답사를 경험했던 시민들이 2013년부터 자발적으로 월 1회 모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굴렁쇠>답사에는 전문 강사가 없다. 매년 초 연간계획을 세워 답사장소를 정하고 구성원들이 그 일정을 분담한다. 회장도 따로 없다. 단톡방에서 소통하고 실행하면 끝. 서울 명동성당 등 가까운 곳부터 제주 4.3 평화공원, 군산과 목포의 근대유적지, 부산 비석마을, 안동 독립운동가들의 고택, 제암리 학살현장까지 간다. 박제된 역사지식이 아닌 역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2013년 ‘굴렁쇠’ 회원들이 인천 개항장 조계지 답사를 하고 있다  

 

결성 2013년

비전 시민, 잊혀진 역사를 기억하다

구성원 10명

 

관심사 같은 친구들과 살아있는 역사를 공부해요

“굴렁쇠 친구들과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가서 많은 무덤들과 시신도 못 찾은 이들의 명패 앞에 섰을 때 우리가 풀지 못한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어깨에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산의 비석마을에서도 무덤 위에 집을 지어야 했던 피난민들의 삶이 너무도 생생하고 뼈아프게 다가왔죠. 앞으로 역사의 현장에 작은 표지석을 세우는 시민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어요. 답사를 다니며 아무런 표지도 없는 곳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 박현아 ‘굴렁쇠’ 

 

시민서클 ❹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화두가 되었던 ‘기억’. 아카데미느티나무는 기억을 주제로 교육연극워크숍을 진행했다. 이어서 2015년 <느티나무 시민연극단>을 만들어 인권연극제에 참여했다. 배우 모두가 한 번도 연극 무대를 경험한 적이 없는 시민들이었다. 연극단원들 중에는 친구의 무대를 보고 자극받은 사람도 있고, 직장에서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인생을 살아보리라 용기를 낸 사람도 있다.  

 

매년 봄가을 느티나무 연극워크숍에 참여하고 겨울엔 정기공연을 하고 있는 시민연극단. 매월 1회 모임을 하면서 희곡을 읽고 연극을 함께 보기도 한다. 지난 겨울 2박3일 서해 바닷가 엠티에서는 ‘최근 자신에게 가장 기억나는 장면 하나’를 꺼내 즉석에서 연극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오는 12월 제 5회 정기공연은 <명혜가 사라졌다>. 대본은 느티나무 시민배우들이 풀어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 단원이 직접 집필했다. 5년 전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결성 2015년

비전 내안의 순수한 아이를 만나는 즐거운 놀이 

구성원 16명

 

공동의 목표를 위한 참여, 큰 활력소 

“강좌를 듣는 것과 달리 배움을 나누고 실천하는 경험은 서클에서 가능합니다. 느티나무의 서클에서는 누가 정하지 않아도 빈 곳이 생기면 누군가가 채워줍니다. 자기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내놓습니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협의를 통해 해결해가는 경험이 쌓이면서 공동체도 개인도 조금씩 성장하구요. 특히 참여연대 느티나무의 시민서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정치적인 지향점이 비슷합니다. 사회 문제에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삶에 큰 활력소가 됩니다.” 

– 이정옥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시민서클 ❺ 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2015년 봄, 느티나무에서는 <푸른 시니어학교 – 새로운 노년 시대를 만들자> 강좌를 시작했다. 그후 매 학기 참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2017년 이 서클을 만들었다. 줄여서 노년서클. 이름과 달리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2017년에는 각자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물건으로 ‘나의 인생사 전시회’를 열었다. 모범적 복지관과 요양원 답사를 함께 했고, 늙음 죽음 돌봄에 관해 책을 함께 읽어왔다.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2017년 노년서클 회원들이 노인영화제 관람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결성 2017년

비전 고령화 시대, 노년에 대한 새로운 시야와 비전을 위하여 

구성원 12명

 

즐거운 서클, 힘과 아이디어를 얻는다 

“노년서클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참 반갑고 즐거워요. 여기서 같이 공부하면서 아이디어와 힘을 얻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탁구모임과 노인문화원을 만들었구요. 노년서클 구성원들의 지지와 응원이 컸죠.” 

– 정헌원 ‘노년서클’

 

시민서클 ❻ 감우산방 친구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일상을 예술로 축제로.” 감우산방은 2011년부터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던 강사 제미란 선생님의 작업 공간 이름이다. 이 워크숍에서 수년에 걸쳐 옷을 짓고, 염색을 하고, 이불을 만드는 경험을 한 사람들의 후속모임이기에 그 이름이 <감우산방 친구들>. 함께 책을 읽고 느낌과 생각을 나누며 좋아하는 손작업을 한다. 일상과 삶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된다. 

 

결성 2018년

비전 손작업과 책읽기를 연결한 삶의 서사 나누기 

구성원 24명

 

편안하고 안전한 경청과 공감의 공간 

“감우산방 친구들은 참 독특해요.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닌데도 일상의 소소한 얘기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죠. 서로의 얘기를 깊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김혜정 ‘감우산방 친구들’ 

 

느티나무의 시민서클의 힘

사회변화에 대한 공공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같은 관심사와 목표를 위해 즐겁게 함께 하는 친밀한 관계.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제안할 때 지지해주는 사람들. 서로 존중하며 경청해주는 사회적 친구들. 새로운 사람을 초대하고 환대하는 열린 모임. 작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어도 집단지성의 힘으로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경험. 이 안에서 서로 배움이 일어난다. 이것은 혼자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금방 이뤄질 수도 없다.     

 

지난 10년 동안 아카데미느티나무의 6개 시민서클들이 만들어낸 커뮤니티의 경험. 이것은 그 개인과 서클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을 위해서도 소중한 걸음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민력의 기본은 타인과 공감하고 관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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