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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동 132번지에 희망을...

자유게시판
작성자
박상표
작성일
2006-04-23 20:15
조회
2531



통인동 132번지가 어디야?



참여연대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참여연대의 '희망1번지'로 결정된 통인동 132번지



참여연대의 새로운 ‘희망 1번지’로 결정된 ‘통인동 132번지’ 근처에는 한정식집 ‘혜원’이 자리 잡고 있다. ‘혜원’은 청와대 직원들이 자주 찾는 음식점으로 매스컴에 종종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1인분에 5만원을 훨씬 뛰어넘을 고급 한정식을 즐겨먹을 팔자가 못되는지라 내부 탐방은 포기하고, 대신 이 일대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김질해보는 답사를 해보기로 한다.





◀조선시대 관청 위치도



새로운 보금자리가 들어설 통인동은 일반인들에게 상당히 낯선 지명이다. 경복궁 옆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법정동(法定洞)이긴 하지만 번듯한 동사무소도 하나 없다. 그래서 현재 행정동(行政洞)인 효자동의 관할 아래 있다.



그렇다고 통인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역사적 유래가 깊은 것도 아니다. 동네 자체는 오래되었으나 ‘통인동’이라는 이름은 기껏해야 일제시대에 처음 생겼으니 말이다.



통인동은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인왕산은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 초 태조~세조 때에는 서봉(西峰) 또는 서산(西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촌(西村)이라는 이름은 바로 백악산과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방위 개념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인왕산에서 누상동으로 흘러내리던 물과 인왕산에서 옥인동과 청운동 골짜기로 흘러내리던 물은 지금의 통인동 우리은행 앞 삼거리에서 합류하여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지나 황토마루(동아일보사 근처)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청계천의 상류지역에 해당한다.



그래서 웃대(上村)라는 말이 생겼다. 웃대는 옥인동, 누상동, 사직동, 효자동, 창성동, 통인동, 신교동 등을 일컫는 말이다. 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삼청동에 있는 백련봉 서쪽으로부터 배화여고 뒤편 언덕의 인왕산 필운대에 이른다. 즉, 동서로는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남북으로는 사직로와 북악산 사이에 이르는 지역으로 ‘필운삼청지간(弼雲三淸之間)’이라 불리었다.



웃대에는 서리(경아전), 내시, 시전상인, 군교 등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청계천 지역의 웃대와 아랫대는 소위 ‘여항(閭巷)’으로 불리었으며, 중하층 민중들이 신분제약의 울분을 술과 시로 달래며 옥계시사, 송석원시사, 칠송정시사, 직하사, 비연시사, 서원(일섭원) 시사, 육교시사 등의 모임을 결성하여 조선후기 ‘평민문학’을 꽃피우기도 했다.



물론 경치가 좋은 곳은 권력층들이 차지하였다. 권율과 백사 이항복의 필운대, 친일파 윤덕영 별장, 안동김씨와 여흥민씨, 세종과 선조의 탄생지 등이 이곳에 있었다.





▲《해동지도》의 「도성도」(18C 중엽)



그럼, 통인동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통인동 일대’는 1396년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5부 52방으로 나눌 때, 북부 준수방(俊秀坊)에 속했다. 이 일대에는 통곡(通谷), 사포동(司圃洞), 옥동(玉洞)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51년(영조 27)의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는 행정구역이 좀 더 세분화되어 한성부 북부 준수방(俊秀坊) 준수방계(俊秀坊契)에 속하였다.



이 당시의 상황을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인《해동지도》(47.0×30.5cm, 8책, 서울대 규장각 소장)의 「도성도」를 통하여 살펴보자. 이 지도에서 준수방계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다만 경복궁 옆에 영희전(永禧殿), 육상(毓祥), 효장묘(孝章廟)가 있고, 이웃 동네인 청풍계(淸風溪), 옥류동(玉流洞), 그리고 사직(社稷), 필운대(弼雲臺), 분선공허(分繕工墟)가 나타난다. 분선공허(分繕工墟)는 토목과 영선에 관한 일을 나누어 맡아보던 임시관청인 ‘분선공감(分繕工監)’의 옛터라는 뜻이다.





▲《도성대지도》의 준수방계(18세기 중엽)



《해동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1753~1764 추정, 188 x 213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에서는 준수방(俊秀坊)과 준수방계(俊秀坊契)를 확인할 수 있다. 지도에서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 바로 통인동 우리은행 앞 삼거리다. 통인동 우리은행 삼거리 조금 아래에서 금청교(禁淸橋)를 볼 수도 있다.



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5부를 5서로 고치고 계와 동을 늘려 47방 288계 775동으로 하였을 때, 이 일대는 북서 준수방에 속했다.





▲《한성대지도》속의 준수방(1901년경)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써 지방제도를 공포하여 8도제도를 없애고 23부 336군으로 개혁했다. 이때 한성부가 한성군으로 되었으며, 북서 준수방은 그대로 존속하였다.



그 후 일제식민지 초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북부의 통곡(通谷), 사포동(司圃洞), 옥동(玉洞)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통동(通洞)’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통동(通洞)’은 ‘통곡(通谷)’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



사포동(司圃洞)은 궁중의 채소전과 원포(園圃)를 관장하던 사포서(司圃署)에서 유래한 동명이었다. 사포서는 호조(戶曹)의 정6품 속아문(屬衙門)으로 그 책임자를 사포(司圃:정6품)라고 불렀다. 이 일대에 있었던 사포서는 중부 수진방(壽進坊, 현재의 수송동 116번지)으로 이전하였다가 1882년(고종 19)에 폐지되었다.



또한 통동에는 사포서 외에 내시부(內侍府)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시부는 이조(吏曹)의 속아문(屬衙門)으로 그 책임자는 종2품 관직의 상선(尙膳)이라 불렀다.



1936년 4월, 조선총독부는 동명을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통인동은 통인정(通仁町)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통인정이 되었다. ‘통인(通仁)’이란 지명은 한성부 북부 준수방의 ‘통곡(通谷)’과 ‘인왕산(仁王山)’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 전한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통인동이 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왕산 주변의 문화유산 지도



근처의 유적지로는 세종대왕의 탄생지(통인동 137번지 일대)와 천재작가 이상(李箱)이 살던 그의 백부의 집(통인동 154번지), 윤동주 하숙집(누상동 9번지), 겸재 정선 생가(청운동 89번지 일대, 경복고 자리), 겸재 정선 옛집(옥인동 20번지 일대), 송강 정철의 옛집(청운초등학교 정문), 조원의 운강대(경복고등학교), 우계 성혼의 옛집(경기상고), 추사 김정희 생가(통의동 35-5) 등이 있다.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난 이상(본명 : 김해경)은 백부의 집인 통인동(옛 통동) 154번지에서 23살까지 살았다.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했다.



이상은 통인동에서 조선총독부가 있는 광화문까지 매일 걸어서 출근을 했으며,「오감도」와 「날개」를 집필하기도 했다. 통인동 이상의 옛집은 현재 한 지붕 아래 한복가게와 한문 서원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몇 년 전 김수근문화재단에서 매입하여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그 밖에 인왕산, 도정궁터(선조의 탄생지), 사직단, 황학정, 필운대, 육각현 만리장성집(칠송정시사), 송석원터, 순화병원터(북부학당, 자수원, 현재 군인아파트), 선희궁터, 청풍계, 우당기념관, 창의문(자하문), 부암동 백사골 별서, 세검정, 홍지문, 석파정, 무계정사, 탕춘대성, 장의사지 당간지주, 환기미술관, 환경운동연합 등이 가까이에 있다.



또한 이 일대는 궁궐에서 가깝고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보니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즐겨 그렸으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풍경과 감정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겸재 정선은 ‘인왕제색도, 장동팔경첩, 풍계유택, 청풍계도, 인곡유거’ 등을 남겼고, 강희언은 ‘인왕산도’를 남겼다. 단원 김홍도는 ‘송석원시사야연도’를 남겼고, 이인문은 ‘송석원시회도’를 남겼다.



인왕산을 노래한 문인들의 작품은 청음 김상헌의 ‘유서산기’(『청음집』권38), 김동인의 단편소설「광화사」, 박완서의「내가 잃어버린 동산」(『한 길 사람 속』, 작가정신, 1999), 김광규의 시 「인왕산」, 황지우의 시 「산경(山經)」등이 있다.





▲천재작가 이상(李箱)이 살던 그의 백부의 집(통인동 154번지)



올 가을이면 참여연대가 통인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이제 ‘통인동 132번지’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희망 1번지’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참여연대가 통인동 132번지에서 새롭게 쓸 역사는 참여연대 회원들뿐만 아니라 한국과 아시아, 세계의 시민들이 함께 어깨를 걸고 써나갈 것이다.



모두의 희망이 담긴 피와 땀과 눈물과 웃음의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은 한 손에 벽돌 한 장과 다른 손에 기왓장 한 장을 들고 통인동 132번지로 모이자.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 나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을 위해서 후원금을 보낼 수 있는 후원계좌도 마련했으니 걱정 마시라.



희망 1번지로 가는 길에는 모두가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통인동 132번지는 희망의 벽돌 한 장, 미래의 기왓장 한 장을 함께 쌓을 아름다운 얼굴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 후원금 보낼 곳



하나은행 (예금주 참여연대) 162-054331-02104



담당: 이지은 간사 (02-723-5300)





▲참여연대의 새로운 보금자리, 희망 1번지, 통인동 132번지 찾아가는 길





* 월 1회 ‘희망 1번지 답사’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참여연대 회원, 간사, 임원, 일반시민이 부담 없이 주말 시간에 반나절이나 하루를 참여연대 희망1번지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3개의 답사코스를 제시합니다. (참가비 : 무료, 필수품 : 따뜻한 마음과, 튼튼한 발, 그리고 운동화와 생수 1병)



[코스 1] 사직단-필운대-황학정-인왕산 등반-송석원터-자수궁터-참여연대 희망1번지(통인동 132번지)-선희궁터-백세청풍암



[코스 2] 세종대왕 탄생지-참여연대 희망1번지(통인동 132번지)-겸재 정선 생가터-청송당 옛터-자하문-부암동 백사골 별서- 세검정



[코스 3] 장의사 당간지주-석경루 옛터-홍지문-탕춘대성-보도각백불-참여연대 희망1번지(통인동 132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