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0-07-28   2309

[기고]영장만 있으면 훔쳐가도 되나?

  • 영장만 있으면 훔쳐가도 되나?


     

    박경신 공익법센터 소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 사람이 타인과 주고 받은 7년치, 7개월치의 모든 e메일들이 압수수색되었다거나 수년간 축적된 개인정보가 담긴 노트북이나 하드디스크가 통째로 압수되었다거나 하는 사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저럴 필요까지 있는가’하며 검찰에 아쉬워하지만 이러한 압수수색은 모두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법원이 압수수색의 대상 범위를 한정하지 못하고 영장을 발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몰래’ e메일 압수수색 다반사

    그런데 법원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첫째, e메일 압수수색이 현재 ‘몰래’ 이루어지고 있어 판사들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YTN노조, MBC 「PD수첩」 PD들에 대한 압수수색 등이 우연히 밝혀졌을 때에만 사회적 우려와 저항이 간헐적으로 비등하였을 뿐 훨씬 더 많은 숫자의 e메일 압수수색은 계정소유자 몰래 이루어지고 있다.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때는 수사 대상자의 프라이버시권과 수사의 필요성을 저울질하여 적정선을 긋는 수밖에 없다.

    권리침해의 심각성을 느끼려면 수사 대상자들의 피해상황과 그로 인한 고통을 판사들이 접해봐야 하는데 피수색자들도 자신이 압수수색당하는 걸 모르고 있으니 그런 신음소리 자체가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 판사는 아무래도 수사의 필요성을 더욱 인정하는 선에서 압수수색 대상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정보라는 것이 그 내용을 예측할 만한 ‘외관’이 없다. 특정정보가 범죄 관련성이 있는지를 알려면 그 정보를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유체물들은 외관이 있어서 외관을 보고 범죄 관련성을 미리 판단할 수 있다.

    정보는 겉에서 보면 다른 정보와 구별되지 않는다. 하드디스크나 e메일 계정에서 각 파일이나 메일들을 읽지 않고 범죄 관련 정보만 걸러내고 나머지 정보들의 비밀을 보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목이나 폴더명으로 한정하려고 하면 범죄자들이 이름만 바꿔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고작 한다면 특정 수신자와 주고받은 e메일들만을 뽑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행법은 이미 ‘몰래’ 이루어지는 압수수색을 명백히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121조는 피고인은 영장집행시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하고 122조는 그러한 참여가 가능하도록 통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으며 이 규정들은 피의자들에게도 준용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원리에 부합한다. 적법절차원리의 일반이론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할 때는 반드시 침해사실을 알려주고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이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판정자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재판이다.

    침해 사실 반드시 미리 알려줘야

    그렇다면 압수수색을 통해 국민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때도 역시 침해사실을 통지해줘야 한다. 가택 압수수색영장이 있다고 해서 검경이 밤에 몰래 침입해서 물건들을 가져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사대상이 아닌 e메일 서비스 제공자에게 통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 침해되는 사생활의 자유의 주체에게 통지해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상의 사후통지규정도 적법절차원리를 위반한다. 장래에 발생할 정보를 포착하는 감청은 즉시통지를 하게 되면 감청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사후통지가 헌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일 뿐이며 과거에 주고받은 e메일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통지시점을 미룰 이유가 하등 없다.

    ‘몰래’ 하는 압수수색은 법개정도 필요없고 현행법만 제대로 지키면 끝난다. 하드디스크나 e메일 계정에서 범죄관련 정보를 미리 걸러내는 방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검찰에 소속되지 않은 중립적이고 정보기술에 능한 사람이 범죄관련 가능성이 있는 정보들만을 걸러서 검찰에 넘겨주는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법개정이 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영장발부판사의 재량으로 충분히 내릴 수 있는 조치이다.

    * 이 글은 7/23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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