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1-11-07   2925

삼성을 건드릴 자, 그 누구인가 – ‘안기부X파일’ 노회찬 유죄판결에 대한 소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회장 비서실장이 현직 고위 검찰간부들에게 고액을 정기적으로 상납하였다는 사실을 국내 유력일간지 사장에게 얘기하는 내용을 안기부가 도청한다. 현직 국회의원 1인이 이 정보를 입수하여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에게 알리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이른바 ‘안기부X파일’ 사건의 전모는 위와 같다. 그리고 위 사건이 발생한 뒤 6년이 지난 지금, 검찰간부들에게 비자금을 지급하였던 비서실장은 수뢰혐의로 수사조차 받지 않았고 영예롭게 퇴직하여 같은 계열사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 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자신과 가족 소유로 시가 2천억 원 상당의 빌딩을 소유하는 등 천문학적인 부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편, 위 사안을 폭로한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인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으며,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오랜 법정 투쟁 끝에 지난 10월 28일 파기환송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1노1583 판결)에서 징역 4월(집행유예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19대 선거출마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위 사건의 후일담이다.

 

무언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의문이 들것이다. 위 ‘안기부X파일’ 사건의 판결, 특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관하여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2011. 5. 13. 선고 2009도14442 판결)에 대하여는 여러 평석이나 기사에서 비판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 따로 법률적인 분석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물론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할 점은 아주 많다). 다만,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너무나 부조리한 결론이 내려진 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본다.

 

노회찬 전 의원에게 유죄선고가 내려진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점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이란 왜 만들어진 법인가. 1993년 통신비밀보호법 제정 당시 제정이유를 보면 “국민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전기통신의 감청과 우편물의 검열 등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가 구현되는 자유로운 민주사회로 진전시키려는 것임”이라고 한다. 즉, 이 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근본적인 가치는 사생활의 비밀, 즉 개인의 프라이버시(privacy)권과 통신의 자유인 것이다. 그런데, 사생활의 비밀 또는 프라이버시란, 일반적으로 자기만의 사적 영역을 함부로 공개당하지 않고 사생활의 평온과 비밀을 요구하기 위하여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예를 든다면, 자신의 성적 취향이나 파트너에 대한 비밀,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상 같은 것, “난 사실 동성애자야.” “아랫집 여자와 사귀고 있어.” “나는 뉴라이트를 지지해.” 이런 사적인 영역을 함부로 공개당하지 않고 침해당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법을 통하여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기부X파일’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비서실장이 기업의 비자금으로 검찰 고위간부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이 사실을 국내 유력 일간지 사장에게 얘기하는 것을 국가기관이 도청한다. 당사자도 대화내용도 심지어 이를 몰래 녹음한 자까지 모두 공적 존재이며, 대기업과 국가기관의 부정부패, 검찰의 비리와 타락, 이에 동조 또는 묵과하는 언론, 불법수사방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공공의 문제가 모두 녹아있는 공적 사안이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나 프라이버시라고는 한치도 개입되지 않은 공적인, 너무나 공적인 내용인 것이다. 과연 통신비밀보호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가치가 이런 것인가. 이 법이 보호하려는 것이 기업범죄와 국가기관의 타락인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대법원 판결과 이에 따른 파기환송심을 비판하기에 앞서, 법 위에 정의를 묻고 싶다. 과연 법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타락한 대기업과 검찰인가. 이에 용감히 맞서 싸우는 정치인인가. 그리고 너무나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삼성을 건드릴 자, 그 누구인가.

 

김남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Ple20111107.hwp

 

[이글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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