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12-19   535

[기고] 80대 할머니의 안타까운 죽음…’강도 논리’를 버릴 때다

[경제 민주화 워치] <22> 공공 부문 민영화, 무엇이 문제인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이것이 이른바 ‘경제 민주화’ 관련 기본법이라 할 수 있다. 뼈대만 추리면 균형 성장, 적정 분배, 남용 방지, 주체 조화가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다. 국가는 이를 위해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 질서에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경제 민주화를 향한 국가의 기본 의무이다.

물론 헌법의 다른 조항, 일례로 제10조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나 제34조 국가의 사회 복지 의무 등과 이 경제 민주화 조항을 종합하자면, 국가는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사회 복지를 확충하고 경제 민주화를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곧 새 대통령이 취임식을 할 때 하는 엄숙한 선서의 내용이기도 하다. 거꾸로 해석하면, 헌법에 나오는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는 대통령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던 공약을 준수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대통령이라면 ‘원래’ 해야 하는 일이다.

최근 수서발 KTX 법인을 별도로 설립하여 기존 코레일 노선과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결정과 관련, 우리 사회는 파업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것이 곧 민영화의 전 단계로서 국민을 위한 철도가 아니라 자본을 위한 철도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 보고, 총력 투쟁으로 민영화를 막고자 한다. 정부나 코레인 경영진은 이것은 단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경쟁 체제의 도입일 뿐, 민영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 해명한다. 경쟁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서비스의 질은 높이는 대신 요금은 10~20%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한편, 철도 경영진은 8000명에 가까운 파업 노동자를 직위 해제해 고용 불안을 부채질함과 동시에 한국교통대 철도대학 학생을 중심으로 대체 인력을 투입했다. 그 와중에 한 대학생이 ‘노동자가 대량으로 잘려 나가고 대선 불법 개입이 확실히 드러났으며 밀양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어찌 다들 태연하게도 안녕히 살 수 있느냐?’며, 정당한 사회적 투쟁을 지지하는 취지의 대자보를 붙이면서 여론이 폭발적으로 고양되고 있다. 설상가상, 대체 인력 투입으로 인한 전동차 조작 미숙이 이미 여러 번 일어나던 중 12월 15일 밤, 80대 할머니 한 분이 크게 다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 시점에서 도대체 민영화 논란이 왜 발생하며 무엇이 근본 문제인지 경제 민주화 관점에서 짚어 보기로 하자. 민영화란 기존의 공공 부문을 민간 자본에 넘겨 운영하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는 소유권 변동과 운영권 변동을 동시에 의미한다. 하지만, 설사 소유권이 완전히 민간 자본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운영권을 넘김으로써 경영의 기본 원칙이 공익성보다 수익성에 기초하게 되는 경우도 민영화에 속한다. 여기서 핵심은, 공공 부문일 당시엔 전체 국민을 위한 봉사가 기본 목적이었지만, 민영화가 되면 자본의 이윤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물 산업 민영화를 연구한 오그덴과 앤더슨(1995)에 따르면, “민영화 정책의 가장 논쟁적인 요소는 자연독점적 성격과 네트워크적 특성이 강한 공공 산업을 민영화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은 “공공 산업의 특성상, 단일 조직에 의해 네트워크를 운영 및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중복 투자는 비효율을 낳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독점이란 전력, 통신, 철도, 가스, 수도 등과 같이 자연적,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높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지니는 부문에 독점적인 기업 경영이 불가피한 현상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자연독점적 성격 때문에 (국유화를 추구한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우리가 아는 국영 기업 또는 공공 부문이 존재해왔다. 즉, 자연독점이 가능한 공공 부문을 민간 자본에 넘겨 경쟁 체제를 도입하거나 수익성을 추구하도록 하기보다 공익을 위한 경영을 하는 것이 효율성과 공공성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런 발상이 앞서 말한 헌법 제119조의 경제 민주화 취지에도 걸맞다. 국민의 복리와 행복을 위해 국가는 공공 부문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철도를 비롯한 전력, 통신, 가스, 수도 등의 분야나 토지, 의료, 교육 분야 등은 민영화 또는 사유화를 해서는 안 된다.


수익만 달콤하게 따먹겠다는 ‘날강도 논리’, 이게 본질이다

그렇다면 민영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서비스의 질 향상과 가격 인하” 논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나는 이렇게 본다.

첫째, 서비스의 질 향상과 가격 인하를 통한 고객 만족 증대가 반드시 민영화 또는 경쟁 체제 도입으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철도의 경우, 서비스의 질 향상은 이미 현재의 공공 부문 안에서도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민영화 여부가 아니라 공공 부문 종사자들의 서비스 정신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공사나 백화점 등에서 보듯이 직원들이 지나치게 ‘감정 노동’까지 수행할 필요는 없다. 필요에 걸맞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내용으로 봉사하면 서로 기분이 좋다.

둘째, 공공 부문은 그야말로 공익성을 가장 중시한다. 물론, 효율성도 중요하다. 따라서 가격 인하 문제의 경우, 불필요한 중복 투자나 (낙하산식 고용으로 투입된 비전문적인 경영진이나) 고위 관리층이 받아가는 높은 보수 따위를 현저히 줄이면 해결할 수 있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경영하는 사람들이라면 민간 기업처럼 천문학적 보수를 받을 이유는 없다. 민간 자본이 사유화하도록 넘기는 것이 아니라 (노조 참여 및 직원 총회를 통해) 경영을 민주화하고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을 드높이는 것이 사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이다.

셋째, 사실 가장 중요한 측면인데, 공공 부문에서는 효율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기에 철도의 경우 적자 노선과 흑자 노선이 있다면 ‘손익의 상호 보전’을 통해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춘다. 그래야 손님이 별로 없는 산골 오지에까지 기차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 위주의 민영화가 이뤄지면 산간벽지에 사는 이들은 철도, 통신, 수도, 전기 등 ‘공공재’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현재 문제가 되는 수서발 KTX의 별도 법인 설립도 이런 면에서 알짜배기 노선이 갖는 수익성 부분만 민간 자본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설이나 보수 관련 투자는 기존 코레일이 담당하되, 승객 운송으로 인한 수익만 달콤하게 따먹겠다는 ‘날강도 논리’가 숨어 있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제 거듭 확실해진 것이 있다. 그것은 자본이 수익성 위기에 내몰려 더 이상 ‘블루오션’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자연 생태계나 공공 부문 등을 잠식함으로써 이윤을 계속 늘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한 자연 침탈이나 공익 침탈은 우리 일반 시민들이 그러한 자본 논리에 협조하고 묵인할 때 쉽게 현실화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이나 영혼조차 더욱 피폐하게 된다. 즉, ‘더불어 사는 행복’이라는 공동체적 가치관은 갈수록 쇠퇴하고 “그게 나에게 무슨 이익인가?”만 따지는, 모래알처럼 고립되고 편협하게 이기적인 개인들만 늘어 간다.

만일 그렇게 사회가 황폐화하고 이기적 개인들만 넘친다면, 도대체 헌법의 행복 추구권이나 경제 민주화 조항, 국가와 헌법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종국적으로 ‘삶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강도 논리’에 동조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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