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12-31   962

[기고]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는 스머프 마을의 진실

[경제 민주화 워치] <24>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경제 민주화

성춘일, 참여연대 실행위원- 변호사

어린 시절 재미있게 즐겨봤던 프로그램 중에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만화영화가 있다. 파파 스머프, 주책이, 스머페트(여성 스머프), 똘똘이, 투덜이, 욕심이(요리사), 허영이, 편리, 시인, 익살이, 덩치 등 직업과 성격이 다양한 스머프들은 깊은 숲 속에 버섯 모양의 집을 짓고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스머프를 잡아 수프를 끓여 먹으려는 못된 가가멜 때문에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가끔 스머프들 간의 티격태격 갈등도 있으나 스머프들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평화로운 공동체 마을을 유지했다.

새삼스레 오랜 기억 속에서 스머프를 끄집어낸 것은 하나둘 사라져 가는 골목의 상점들 때문이다. 사람 사는 동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슈퍼마켓, 분식집, 치킨집, 빵집, 세탁소, 문구점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모습이 마치 똘똘이, 투덜이, 욕심이 등 난쟁이 스머프들이 팔팔 끓는 가가멜의 수프 솥으로 내던져지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1999년 46조 원에 이르던 재래시장의 매출액이 2010년 24조 원으로 추락하는 동안 대형 마트의 매출액은 7조 원에서 36조 원으로 늘었다. 5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납품업자의 생산 단가를 깎아 마련한 1+1 행사, 연중무휴 및 24시간 영업으로 대형 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의 재래시장과 골목 상가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고 있다.

2012년, 견디다 못한 스머프들이 가가멜에게 저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홈플러스의 입점으로 생존권의 위협을 느낀 망원시장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으면서까지 홈플러스 입점 저지 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 결과 2013년 4월 홈플러스와 망원시장 상인들은 상생 품목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홈플러스가 합정동에 입점하면서 망원 지역 상인들의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떡볶이, 순대, 물오징어, 소고기국거리, 우족, 등뼈, 총각무, 마른 고추, 망고, 밤, 대추, 석류, 아귀, 임연수어, ‘코다리’ 등 총 15개 품목을 홈플러스에서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망원시장은 지붕을 입히고 배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2013년 5월, 다윗과 골리앗의 또 다른 싸움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남양유업으로부터 밀어내기 피해를 본 대리점주들이 남양유업으로부터 겪었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세상에 폭로한 것이다. 남양유업 사태는 계약 당사자를 지칭하는 ‘갑과 을’을 경제적 강자와 약자를 지칭하는 사회적 언어로 바꿀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편의점, 치킨, 베이커리, 택배 등 갑의 횡포에 눈물만 흘려야 했던 을들이 봇물처럼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쏟아냈다. 국민들은 함께 분노했고 불매 운동으로 함께 저항했다. 민주당에서는 갑을 관계 개선을 위해 을지로위원회를 꾸렸고, 2013년 10월 정기국회 때는 을들에게 불공정 행위를 일삼은 기업의 총수들이 줄줄이 국정감사장의 증언대에 서야 했다. 기업들의 반복되는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질책도 빗발쳤다.

2013년에 경제 민주화의 바람이 어느 해보다 거세게 불었던 것은 국민의 세금과 국민들의 소비로 성장한 수많은 기업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수많은 광고를 통해 신뢰의 이미지를 구축한 기업들이 뒤에서는 약자인 우리 가족을, 우리 이웃을 착취해서 부를 쌓고 있는 실체를 목격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갑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서울시가 중소 상인들을 위해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품목을 일부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려다 ‘소비자들을 볼모로 한다’는 대형 마트의 여론몰이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대형 마트에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 휴업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제2항에 근거하여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 및 의무 휴업일 지정을 내용으로 하는 조례를 제정하였는데, 이마트를 비롯한 4곳의 대형 마트가 앞장서 반발했다. 이 4곳은 대형 마트의 직업의 자유 및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은 물론 조례를 제정한 각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지난 1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법률 또는 법률 조항 자체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려면 그 법률 또는 법률 조항에 의해 구체적인 집행 행위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현재의 자기 기본권을 침해당해야 한다. 그런데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조례 제정이라는 집행 행위가 있어야만 하므로 위 법률 조항 자체로는 대형 마트의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없다며 만장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한민국 스머프들, 가가멜에게 저항하다

기업의 지배 구조 개선, 순환출자 금지 등과 관련해 그동안 국민 대다수가 ‘경제 민주화는 나와 상관없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을 둘러싼 망원시장 상인들의 생존권 문제,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대리점의 불공정 행위 문제, 편의점주들의 자살을 통해 드러난 편의점 업계의 불공정한 현실을 보며 우리는 물건을 사고파는 아주 소소한 일상부터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음이 밝혀졌다. 더불어 합정동 홈플러스의 상생 품목 합의, 남양유업과 협의회의 상생 협약 체결을 통해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국민들 자신이며 그로부터 경제 민주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헌법은 제119조 제2항에서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국가가 경제적 민주화를 이루는 데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 민주화로 가는 여정의 출발선에 이제야 제대로 서게 되었다. 그런데 출발선에 서자마자 정부는 기업의 투자와 영업 활동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을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 공약들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불공정한 대리점 거래 관행 근절을 위한 대리점 거래 공정화법,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사외이사 자격 요건 강화, 지배 구조 내부 규범 마련 등을 위한 금융회사 지배 구조에 관한 법률이 아직도 국회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꽃이다.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 인권이 최대한 실현시키려는 인본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2500여 년 전의 고대 그리스도 경제적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직접 민주 정치는 노예, 여성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개구쟁이 스머프들의 마을이 아름다웠던 것은 주책이, 스머페트, 똘똘이, 투덜이, 욕심이, 허영이, 편리, 시인, 익살이(상대방에게 폭탄 선물을 주기를 좋아함), 덩치 같은 다양한 스머프들이 각자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서로 동등하게 대우받고 배려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것은 공존과 상생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에게는 대기업이 찍어낸 똑같은 상품과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1+1과 같은 상품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빵을 만들어 주고 옷을 세탁해 주는 누군가가 존재해야 하며,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땀을 흘릴 때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되며 비로소 더욱 인간다워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의 오랜 꿈이자 숙원이다. 우리들로 인하여 더없이 뜨거웠던 2013년 경제적 민주화의 물결. 공존과 상생을 향한 그 물결이 2013년을 넘어 2014년에도 이어지길 염원한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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