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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4.06.03
  • 879

[경제 민주화 워치] 현대판 '추노', 방치할 건가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세월호와 지방선거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집중되어 있다. 슬픔과 분노는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과 현직 대통령의 리더십에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의견이 충돌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론을 정치로 이끌고 있다. 


이렇게 사고에 대한 슬픔과 정치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과 달리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여론의 관심에서 살짝 비껴 있다. 그 사이 가계 부채는 다시 한번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올 1분기 가계빚은 지난 해 말보다 3조4000억원 늘어난 1024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양적 증가도 문제지만 질적 악화와 빚의 심각성이 중산층엑까지 옮겨 붙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은행권 대출이 증가하기 보다 주로 20% 전후의 고금리 제 2금융권 대출이 크게 늘었다. 최근 국회 예산 정책처가 발표한 ‘소득계층별 가계부채 현황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취약성이 저소득층인 소득 분위 1, 2분위에서 점차 4분위 등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 계층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저소득층의 빚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빚의 심각성이 중산층으로 옮겨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가장 큰 이유는 사회 전체적으로 강하게 신념화 되어 있는 ‘빚은 갚아야 한다’는 도그마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대단히 심각하다. OECD가입국 중 일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자살 5명 중 1명은 경제적 사유(경찰 통계연보)로 인한 것이고 자살 충동의 39.5% 또한 경제적 어려움(통계청, 2012년 사회조사)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화차>나 <피에타>와 같은 영화들을 통해 채무자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혹은 채권자들이 얼마든지 채무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빚은 갚아야 한다는 명령에 갇혀있다. 

이 명령안에서 금융권은 점차 과잉 대출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한때 빚 권하는 사회 분위기에 비판적이던 여론은 이제 채무자들의 빚 상환을 감시하는 모드로 전환되어 사회적인 채무 조정의 모든 논의를 차단하고 있다.

당연히 저소득층의 빚이 아무리 심각해도 채무 조정을 해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도그마 앞에서 좌절되고 만다. 지난해 금융연구원은 채무 취약계층의 채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채무 취약계층이 350만명을 넘고 이 중 상환능력이 매우 부족한 채무자가 114만명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114만명의 상환 불능자에 대해 적극적인 파산 면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 직후 언론에는 "빚갚아 주는 나라"라는 같은 제목의 글이 도배가 되었다. 동일한 제목의 기사가 40여개 이상의 언론에 동시에 게재된 것이다. 그만큼 기사가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충분했기 때문이겠지만 금융위의 파산 면책 지원에 대한 금융권의 불편한 시각이 언론을 통해 전달된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더욱 무시무시하다. ‘빚은 무덤까지 가서라도 갚아야’한다거나 ‘갚지도 못할 빚을 빌렸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갚아야 한다’는 등 언뜻 보면 채권 추심원들이 댓글을 도배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금융회사가 이미 받을 생각이 없다면?

이렇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은 금융권에게 여러 사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부채 상환을 마치 사회 도덕을 지키는 기준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은 금융권으로 하여금 빚문서로 여러 형태의 사업구조를 창출해 내면서 다양한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금융거래 구조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처럼 ‘반드시 갚아야 한다’라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은행의 경우 연체를 3개월 이상 지속하는 채권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하고 금융감독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손실 처리해 버린다. 한마디로 부실채권에 대해 최초의 채권자인 은행이 3개월이상 연체가 지속되는 경우 채권 회수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은행은 물론 장부상 손실처리를 한 뒤 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한다. 매각 대금은 채권 원래 가격의 10%가 안된다. 이런식으로 헐값에 은행에서 대부업체로 매각된 부실채권 규모가 2010년부터 2012년 9월말까지 2만 7414건 금액으로는 약 1193억원에 달한다. 헐값에 사들인 부실채권에 대해 대부업체는 채권 원금과 연체이자 및 법정비용까지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채권이 본래의 채권자의 손을 떠났지만 여러 대부업체를 떠돌며 연체이자가 따라붙어 몸집이 계속 커진다. 마치 주인을 바꿔가며 팔려다니는 노예의 노예문서와 같다. 심지어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은 이미 3~4개 이상의 대부업체를 전전했을 것이고 거래 가격은 채권의 1%전후로 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즉 대부업체 입장에서는 만원에 매입한 채권을 가지고 1000만원 이상의 채권 회수를 할 수도 있다. 걸리기만 하면 엄청난 고수익이다. 이렇게 채권의 2차시장에서 잘하면 큰 수익을 거머쥘 부실채권 돈벌이가 가능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가하는 빚갚으라는 명령 때문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금융시스템 안에서 은행등 본래 채권자는 장부에 손실 처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들은 채권의 이런 거래를 알지 못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바로 이런 식의 부실채권 거래 실태를 고발하고 무분별한 채권거래 대신 채무자들의 빚 탕감을 위한 ‘롤링 주빌리’ 운동이 벌어졌다. 롤링 주빌리란 기독교 전통으로 빚탕감 운동 등의 희년 운동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대부업체로부터 헐값에 부실채권을 사들여 빚독촉을 통해 빚을 회수하는 대신 채권을 태워 버려 채무자들을 빚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시민들의 모금 7억으로 155억의 빚이 소각되었고 우리나라는 1300여만원의 모금으로 4억 7천만원의 빚이 사라졌다. 사단법인 희망살림의 분석에 의하면 117건의 빚이 소각되었고 부채 평균 액수는 400여만원이었다고 한다. 채권의 81%가 10년이상 장기 연체 중이었다. 400만원을 못 갚아 10년이상 사실상 사회에서 퇴출된 것과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는데 알고보니 그들을 쫒는 사람이 처음 그들이 마주했던 채권자가 아니다. 단지 빚문서를 헐값에 사들인 다른 채권자이다. 여전히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 쫓기는 노예와 노예를 쫒는 추노와 같은 이야기가 채권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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