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재벌이 두려워서입니까?

참여연대 장하성 위원장이 서영훈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위원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 교수)는 10월 24일 오전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을 포기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민주당 서영훈 대표에게 집중투표제 의무화의 필요성과 반대논리에 대한 반박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송하였다. 참여연대는 지난 16일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 입법청원서와 증권관련집단소송에 관한 법률 제정 입법청원서” 등을 국회의원 27명의 소개를 받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다음은 민주당 서영훈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전문이다.

서영훈 대표님께

안녕하십니까?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학교 장하성입니다. 서대표님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대표로서 당의 정책을 결정하는 중책을 맡고 계시기에 이 글은 대표님께로 보내드립니다.

지난 일요일 신문보도에 의하면 민주당이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반대하고 집단소송제도 법무부의 반대로 도입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도 허탈해서 이런 글을 정치인에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를 스스로 자조하면서 글을 올립니다. 두 제도가 재벌의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해서 왜 필요한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어 더 이상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반대이유에 대한 저의 의견을 적겠습니다.

보도된 반대이유

신문보도 만으로는 반대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왜 반대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그냥 재경부와 재벌이 반대한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단편적이지만 22일자 신문에 보도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 기업 이사회의 분열과 경영효율성 저하같은 부작용이 많아 현실적으로 도입이 쉽지 않다”(조선일보)

“민주당 내에서도 경기가 침체조짐을 보이는 현시점에서 집중투표제의 의무화가 경영의욕을 꺾는다” (동아일보)

“집중투표제를 기업지배구조의 세계화기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한국일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 민주당도 적극적이지 않고 재계의 반발도 매우 거센데다 이사회분열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도입이 어려운 상태” (한겨레)

“증권시장에 가뜩이나 침체상태인데다 기업들이 상장공개나 상장, 등록을 기피할 우려도 있다”(한겨레)

반대이유에 대한 의견

집중투표제를 반대하는 이러한 이유들은 논리적으로 모순일 뿐 아니라 현실성도 없으며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회가 분열된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어도 현실적으로 소액주주가 이 제도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선택한 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최선의 경우에 사외이사 1-2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나마도 현재의 재벌의 소유구조에 비추어 볼 때에 1-2명의 이사라도 소액주주가 선출할 수 있는 회사는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집행이사는 물론이고 사외이사까지도 완전히 대주주와 경영진이 선택한 사람으로만 이사회가 구성되고 있는 현실에서 1-2명의 극소수의 독립적인 이사를 선임하는 것이 재경부와 민주당이 말하는 “이사회의 분열”입니까? 국회에 소수의 야당의원이 있으면 국회가 분열된다고 해야 하나요? 주식회사는 수많은 주주로부터 자본을 받은 민주적인 기업구조입니다. 이사회는 당연히 서로 다른 의견이 있어야 하며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할 독립적으로 선출된 최소한 사외이사가 존재해야 합니다. 집중투표제는 독립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최소한의 이사를 선출하는 유일한 제도입니다. 이를 분열이라고 한다면 민주당이 재벌기업에서 총수의 전횡적 경영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경영효율성이 저하된다”

경영진이 선택한 이사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사회에서 견제역할을 할 1-2명의 소수의 독립적인 이사가 있는 것이 경영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입니다. 모든 이사를 총수와 경영진이 선출하는 현 제도에서 소수라도 견제의 기능을 갖는 독립적인 이사가 있다면 오히려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요? 집중투표제가 도입되어 1-2명의 독립적인 이사가 선출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다수의 이사를 장악하고 있는 경영진은 다수결로 어떤 안건이라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경영의욕을 꺾는다는 주장은 이사회라는 제도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사회에서 1-2명의 견제하는 사외이사가 경영의욕을 꺾는다고 민주당이 주장한다면 어차피 지금의 이사회는 총수의 측근으로만 채워져 있으니 아예 이사회를 없애고 총수 혼자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요?

재벌들은 아직도 주주들을 무시한 총수와 경영진의 소위 “신속한 의사결정”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GE와 같은 선진국의 대기업이 이사회의 90% 이상이 독립적인 사외이사들로 구성되어서 경영효율성이 없습니까 아니면 경영의욕이 없습니까? 집중투표제는 소수 독립적인 이사를 선임하여 경영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재벌들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기 위하여 국민의 혈세를 150조를 낭비한 것은 견제장치가 없는 총수의 전횡적인 경영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까? 총수의 하수인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한 대우, 한보 등의 실패한 재벌과 형제총수 간의 싸움으로 국가경제를 흔들고 있는 현대가 경영 효율성이 있었습니까?

“세계화 기준이 아니다.”

재벌들이 세계적 기준에 맞는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게 하기 위해서 독립적인 이사회의 구성이 절대 필요한 것이고, 집중투표제는 바로 독립적인 이사를 선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입니다. 미국과 같이 재벌총수의 전횡적인 경영도 없고, 소액주주와 투자자보호를 위한 수없이 많은 제도적, 법적 장치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도 6개 주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총수들이 전횡을 휘두르고 있고 이를 견제한 장치가 없기 때문에 이 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화 기준”에 맞지 않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를 “세계화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주장입니다.

“증시침체와 기업공개회피 우려”

이 발언은 현재 주식시장이 침체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주가가 국제수준의 절반 이하로 낮게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에 외국투자자들이 우리 기업에 대하여 회의적인 투자의견을 갖게된 가장 큰 이유가 재벌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집중투표제와 집단소송제의 도입이 무산될 경우에 또 한번 외국투자자들은 우리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에 대해서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최근 국내 개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데, 도대체 재벌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을 위해서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도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와 같은 단기적인 시장개입정책 이외에 무슨 정책을 가지고 있나요?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우리기업의 주가를 올리고 증시를 활성화하는 최선의 방안이며, 집중투표제와 집단소송제는 현재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지배구조개선책입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주가가 떨어지고 증시가 침체된다는 주장은 주식시장의 현실을 정반대로 해석한 너무도 어이없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공개를 꺼린다는 것은 맞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의지가 없는 기업을 정부가 공개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오히려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 기업만이 불특정 다수의 개미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게 해주어야 우리의 주식시장에 건전하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소액주주를 보호할 의지가 없는 기업이 상장되지 않도록 오히려 이 제도를 도입해야 옳은 것 아닌가요?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재벌이 반발하니 제도의 도입이 어렵다는 것은 역으로 민주당과 현 정부의 개혁의지가 의심케하는 발언입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재벌개혁 정책 중에서 단 한가지라도 재벌이 반발하지 않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한 것이 무엇이 있나요?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서 재계가 요구했던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한 결과로 오히려 총수의 지배권만 강화해준 정반대의 폐해를 가져온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더구나 재벌이 반발하는 이유가 위의 네 가지라면 이에 동의하는 재경부와 민주당의 판단력과 개혁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에 재벌총수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찬성하더니 이제 여당이 되고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야당이 정치공세를 필 것이 우려되어 반대했다면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외치는 민주당이 “재벌의 반발이 거세다”라는 이유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집중투표제를 반대하고 집단소송제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최대의 이해심을 동원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재경부의 속임수와 무지

재경부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하지 않는 대신에 집중투표제 실시의 요건을 “현행 3%에서 완화하겠다”(한국일보)고 보도되었습니다. 서영훈 대표님! 재경부의 제안을 정확하게 이해하셨나요?

현재 30대재벌 산하 상장회사 중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은 회사는 11개 회사에 불과합니다. 이중에서 부도가 났거나 워크아웃에 있는 대한통운, 동아건설, 고합, 진로종합식품과 참여연대가 개입한 데이콤을 제외하면 단 6개사 만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126개사 중에서 단 6개사가 배제하지 않고 있는데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에 재경부가 이 사실을 알고도 요건을 완화한다고 발표했다면 이는 경제개혁을 추진하기는 커녕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국민을 속임수로 우롱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실을 모르고 이런 발표를 했다면 재경부 관리들의 무지를 어떻게 질타해야 하나요? 재경부 관리들의 말장난에 설마 민주당이 속아넘어간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집중투표제는 매우 신중한 제도입니다.

소액주주들이 집중투표제로 1명의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에도 최소 20%가 넘는 지분을 모아야 합니다. 30대 재벌의 내부지분이 43%입니다. 그리고 은행, 투자신탁, 보험 제2금융권 등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12%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기관들은 재벌소유이거나 재벌눈치를 보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보호를 위한 의결권 행사를 전혀 하지 않으며, 대부분이 재벌의 요구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우리나라 재벌들의 소유구조에 비추어 볼 때에 수만, 수십만명으로 흩어져 있는 소액주주들이 단결하여 20%를 모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고 있는 11개 기업의 경우에 앞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반대하는 이유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나타났나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이유가 집중투표제는 경영진에 큰 문제가 있어서 소액주주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에만 작동하는 매우 신중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과 재경부가 이러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벌이 반대하니까 함께 반대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재벌개혁에 대한 정부와 민주당의 태도

현 정부는 올 년말까지 재벌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지배구조의 개선입니다. 집중투표제나 집단소송제를 반대하고 있는 현 정부와 민주당이 재벌의 지배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년말까지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실효성 있는 정책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재경부가 상장회사협의회를 통해서 ‘사외이사 직무수행기준’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과 재벌의 요구대로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해주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지난해에도 재경부는 ‘지배구조개선 권고안’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무역협회의 김재철회장이 위원장이 되어 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행된 것은 없습니다. 이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재벌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단지 선언에 그친 것입니다. 이번 재경부가 다시 사외이사 직무수행기준을 만드는 것도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하는 흉내만 내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최근 송자 전 교육부장관의 사임 이후에 사외이사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회적인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사외이사제도가 본래의 목적대로 경영진을 견제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총수와 경영진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된 이유가 바로 사외이사를 독립적으로 선출할 수 있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서대표님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집중투표제는 적극성을 가진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줄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입니다. 현행 상법과 증권거래법에서는 20-30%를 소유한 주주의 경우에도 단 한명의 이사도 선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의 이사가 불법행위를 해도 해임을 요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민주당이 집중투표제를 반대한다면 사외이사제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정부와 민주당은 어떤 정책으로 연말까지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이며, 내년에 가서 국민들의 비난과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글을 맺겠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신문기사를 접하고서 실망감이 너무도 컸지만 이를 감추고 냉정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왜 개혁의 선도인 민주당이 “재벌이 반대한다”는 이유말고는 아무런 합리성과 현실성이 없는 이유로 집중투표제를 반대하고 집단소송제에 유보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실망감과 함께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저와 참여연대는 실망하고 주저앉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액주주운동을 해온 지난 4년여 동안 그러했듯이 저희들의 메아리 없는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저희들의 외로운 메아리에 답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어리석은 짓이 아니었기를 지금 다시 기대해봅니다. 경제위기로 인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국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이 땀흘려 번 혈세 150조원을 재벌들이 만들어 낸 부실채권을 해소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가슴속에 허탈감과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정부와 민주당이 잘해줄 것을 바라고 분노의 침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스스로 “중산층과 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국민적 개혁정당”이라고 표방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진정 재벌을 투명하고 책임지는 기업으로 개혁하고, 중산층과 서민인 소액주주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 글에 대한 서대표님의 진지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2000년 10월 24일

장하성 드림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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