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과세 한다면, 국민들은 큰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이 국세청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7)

청장님, “잘못을 알고도 이를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잘못이다”라는 옛 성현의 말씀은

바로 지금의 국세청을 두고이르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최근, 국세청에서 러브호텔을 비롯한 유흥업소에 대하여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은 ‘세무조사권의 남용’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러한 국세청의 조치에 찬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익을 보는 것은 한가지 해를 제거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흥업소에 대한 세무조사에 새로 착수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현재 국세청의 뜨거운 감자로 걸려 있는 이재용씨의 탈세사건을 조속히 마무리 짓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11월 13일, 저는 국세청 관계자와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 분은 이 사건을 아직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대략 세가지로 들었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은 주식이동조사와 관련하여 조사하여야 하는데, 주식이동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결론을 못내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분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주식이동조사와는 무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재용씨가 이번 사건 발생을 전후로 해서 삼성의 주식을 얼마에 취득하고 얼마에 팔았는지 전혀 몰라도 독립적으로 과세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주식이동조사가 끝나야 이번 사건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이번 사건에 대하여 과세할 경우 삼성에서 분명히 소송을 걸텐데, 국세청이 소송에서 지면 망신이니까 신중하게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청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당시 삼성SDS 주식의 거래가격이 존재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참여연대가 법원에 제기한 신주인수권행사금지가처분신청에서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준 서울고등법원은 물론이고 삼성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서울지방법원 조차도 당시 삼성SDS 주식이 54,750원 내지 57,000원에 거래된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에서 소송을 걸더라도 국세청이 승소할 확률은 거의 99% 아닙니까? 청장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난 5월 23일 청장님과 면담한 자리에서 청장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법원의 판결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송에서 국세청이 이길 확률은 90%가 넘습니다. 만약, 삼성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들로 [드림팀]을 결성하여 국세청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실무자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실무자분께 이처럼 승소 확률이 높은 사건에 대하여도 과세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과세할 수 있는 사건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삼성은 위의 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니, 언제부터 국세청이 탈세자의 허락을 받고 과세하였습니까?

끝으로 그 분은 아무튼 조사에 시간이 걸리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군요. 지난해 국세청이 한진그룹의 탈세사건을 조사하여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제가 알기로 한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는 99년 6월 29일에 착수하여 11월 15일에 납세고지서를 발부하였습니다. 약4달반이 소요된 셈입니다. 한진그룹 탈세사건의 내용은, 대한항공이 외국의 엔진제조회사로부터 받은 외화 리베이트 자금을 조중훈 일가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였고, 그 과정에서 허위 회계장부를 꾸며 탈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려면, 대한항공 계좌의 입출금 내역과 각종 회계장부를 샅샅이 추적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에 소요됩니다. 반면, 제가 탈세제보한 사건은 이 사건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간단한 사건입니다. 게다가, 저희가 모든 증거자료를 다 제출하여 추가로 사실관계를 조사할 필요도 없어, 그냥 과세하면 되는 사건입니다. 그토록 복잡한 사건은 4개월반 만에 마무리 지었으면서, 간단하기 그지없는 이 사건을 7개월이상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 분의 주장에 대하여 이처럼 조목조목 반론을 펴자, 그 분은 급기야 ‘하필, 이때 이 사건이 터졌는지….’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저희가 ‘재벌변칙증여심판 시민행동’을 선포하면서 한가지 걱정했던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세청이 혹시 시민단체의 압력에 못이겨 과세했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전보다 더 강경하게 버티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논어(論語)에 ‘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금 참여연대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양이 되는데…’ 이런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국세청에서 이 사건에 대하여 과세를 한다면, 국민들은 국세청에 큰 박수를 보낼 것이며 국세청에 대한 신뢰감도 그만큼 더 커질 것입니다.

내일이 청장님의 답변을 들을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며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00년 11월 30일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 종 훈 올림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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