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들의 축제
26일 열린 국세청의 삼성 과세 결정 축하연
지난 26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 국세청이 삼성 이재용씨 등에 대한 과세결정을 내린 것을 자축하는 행사가 열렸다. 1회전을 마치고 다시 2회전을 시작하기 전 1분의 휴식시간. 삼성의 세습에 제동을 거는 이 싸움을 이끌어 온 윤종훈 회계사는 이 행사의 의미를 위와 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그 동안 당연시 되어왔던 재벌기업의 세습에 쐐기를 받은 장본인들 50여명이 모였다. 지난 4월 16일 안정남 국세청장은 국회에서의 질의응답시 삼성에 과세 통보를 한 사실을 밝혔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이 삼성의 탈세혐의를 국세청에 통보한지 335일, 집회 등 시민행동을 시작한지 134일, 국세청앞 1인 시위를 시작한지 89일, 국세청과 삼성이라는 골리앗은 드디어 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상을 바꾼 침묵의 외침, 국세청 앞 1인 시위
“4월 16일 국세청이 삼성에 과세 통보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조간 신문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순간 1인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스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매일 인터넷을 보면서 이미 저에게는 낯익은 얼굴들이었습니다. 눈앞을 스쳐가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44억으로 4조원을 벌어들인 삼성 3세 이재용의 탈세 혐의를 국세청에 통보하면서 시작된 지난한 싸움을 이끌어 온 장본인 윤종훈 회계사(전 참여연대 조세개혁 팀장)는 이번 과세 결정에 대한 소감을 위와 같이 밝혔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그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를 등뒤로 한 채 ‘나 홀로’ 국세청 앞에 나섰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1인 시위는 현 집시법의 구멍을 뚫는 새로운 시위 방식으로 정착됐다. 이에 대해 김창국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국세청 앞 1인 시위로 정부에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논의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제라도 1인 시위에 대한 특허 신청을 해야겠다”고 평가했다.
윤종훈 회계사가 시작한 삼성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은 시민들의 참여. 89일동안 국세청 앞을 지켰던 이들은 108명. 이 사업을 담당했던 홍일표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간사는 “4월 16일 국세청장의 국회 발언으로 국세청 앞 1인 시위가 끝나 시위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십명”이라고 밝힐만큼 이 시위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실질적인 성과를 이끈 사업이었다.
“내일부터 시험이라 안 오려고 했는데…” 최연소 1인 시위 참가자 신동헌(18세)군은 1인 시위 참가를 계기로 앞으로 시민단체 간사가 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백번이라도 1인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26일 자축연에 참석한 1인 시위 참가자들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책받침을 선물받았다. 1인 시위 장면과 시위 소감이 적힌 책받침을 받아든 시위 참가자들은 내리는 눈, 쏟아지는 비, 따가운 햇살 속에 국세청 앞을 지켰던 무용담을 주고 받았다. 그 책받침은 작은 물방울 하나가 물줄기를 이루듯이 자신들의 참여가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삼성의 탈세혐의를 밝혀냈다는 증거였다.
108명의 시위에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진보적인 언론인들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인터넷 종합 일간지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는 지난해 11월부터 한달 동안 삼성 이재용 세습문제에 대한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또 MBC ‘PD수첩’도 작년 11월 이 문제를 다뤘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정길화 PD는 “방송이 나가는 날 영등포 세무처장이 MBC에 아침부터 찾아와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무언의 압력을 행사했다”며 당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까지의 에피소드에 대해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24일 1인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그동안 연재됐던 기사들을 모아 ‘삼성 3세 이재용, 그의 출발선은 왜 우리와 다른가’라는 단행본을 오는 28일 발간할 예정이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이연우(21)씨는 “솔직히 질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저 내가 참가한다는데 의의를 두겠다는 마음으로 1인 시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윤종훈 회계사는 “자신도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냐는 마음으로 이 싸움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그는 “삼성과의 싸움을 처음 시작할 때 100명중 99명이 반대했다”며 “.처음 한달 동안은 그 1%의 가능성을 보고 싸웠다”며 힘겨웠던 시작을 회상했다. 윤회계사는 “그러나 국세청의 과세 결정 소식을 듣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직 삼성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최고의 변호사와 회계사를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돈이기 때문. 그는 “돈과 권력으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고 확신했다. 1인 시위를 처음 시작할 때 한 켠에서는 ‘그저 나 혼자 미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윤종훈 회계사. 그러나 그는 “1인 시위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과세통보 후 20일 이내에 과세적부심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삼성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윤종훈 회계사는 “이제 단지 1회전이 끝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삼성이 싸움을 걸수록 자신들의 파렴치한 행동이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싸움을 걸수록 좋다”며 “최종적 승리를 이끌어내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8시 30분 조촐한 행사를 마친 사람들은 지난해 12월 26일 송년회 자리에서 “국세청이 과세 결정을 내리는 날 다같이 마시며 축하하자”며 담궜던 ‘용기백배주’를 나눠 마셨다. 다시 2회전을 시작하기 위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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