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 폐지를 조건으로 하는 빈껍데기 집단소송제 거부한다

한나라당의 집단소송제-출자총액제한제 연계처리방침 관련 성명



1. 한나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을 통과시키는 대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나라당의 입장이 두 제도의 취지와 효과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최근 불법적 정치자금 문제의 주범으로서 한나라당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경제개혁의 의지를 다져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혁의 물줄기를 역류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두 제도의 연계방침을 즉각 철회할 것을 한나라당에 강력히 촉구하며, 만약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조건으로 한다면 차라리 빈껍데기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을 거부하는 바이다.

2. 증권집단소송제도는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 증시불공정행위에 대한 소액다수 투자자의 사후적 피해구제 수단인 반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계열사 출자를 통한 재벌총수의 황제경영과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함으로써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사전적 구조개선 수단이다. 따라서 두 제도는 도입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며, 이를 하나로 연계시켜 한 가지 제도가 도입되면 나머지는 폐기해야 한다는 논리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

최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재벌총수의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완화에 초점을 맞추어 개편하고자 하는 논의(예컨대 서울대기업경쟁력연구센터 용역보고서)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회사법적 규율의 보조적 수단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개별기업이 아닌 기업집단이 경제행위의 실질적 주체가 되는 한국 재벌구조의 현실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공정거래법상 규제장치는 경제력집중 억제, 즉 반(反)독점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단일 상품시장에서의 독점력이 주로 문제가 되는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의 재벌구조의 폐해는 이업종간 혼합결합에 의한 경쟁제한 효과(대표적인 예가 바로 산업과 금융의 결합이다)가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수단이 계열사 출자이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재벌총수의 대리인 문제에 대한 규제수단일 뿐만 아니라,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는 규제수단이기도 하다.

제도의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른 증권집단소송제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연계할 수는 없다.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공정거래법의 목적을 80년대식의 낡은 유제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재벌구조의 문제를 은폐하는 주장임을 한나라당은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3. 설사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목적을 경제력집중 억제가 아닌 회사법적 규율의 보조수단으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한나라당에서 제시한 증권집단소송법 수정안은 집단소송법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빈 껍데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적용대상도 시세조정,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 이미 증권거래법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불법행위로 극히 제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자산 2조원 미만의 기업에 대해서는 2006년 7월 이후에나 적용되며, 그외 원고와 대리인의 소제기 횟수 제한, 지분율 요건, 엄청난 비용비용 부담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남소방지 장치를 다 도입해 놓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미 분명히 지적한 바 있다. 한나라당 수정안은 물론 (이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도 않는) 법사위 심사소위 합의안조차 소액다수 투자자의 사후적 피해구제 수단이라는 증권집단소송제도의 원래 취지는 완전히 훼손된 상태이다. 다만 제도도입이 갖는 사전적 예방효과마저 포기할 수가 없기에 더구나 이번 정기국회를 넘기면 회기만료로 법안이 자동폐기될 우려가 있기에, 시행 후 보완을 전제로 한나라당 수정안으로 정기국회 내 입법화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이런 껍데기 증권집단소송법으로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크게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이런 껍데기 증권집단소송제도를 가지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기와 연계하자고 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재벌비호당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4. 한편 현재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이 좌초 위기를 맞은 데에는 한나라당 뿐 아니라 정부의 책임 역시 크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증권집단소송법이 ‘空約’이 될 상황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비단 증권집단소송법의 표류뿐 아니라 출자총액제한와 금융기관 의결권제한 완화와 같은 재벌 규제장치의 후퇴 역시 재경부를 비롯한 정부가 주도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재경부는 증권집단소송법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노력하여, 재벌의 대리인이 아님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5. 다시 강조하건대, 한나라당의 증권집단소송법과 출자총액제한제 연계방침은 전혀 다른 두 제도를 주고받기 식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농간이며 재벌개혁과 시장개혁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재벌비호당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시장개혁의 로드맵이 확정되기도 전에 그 틀을 흔들고 있다. 껍데기 증권집단소송제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연계는 물론 회계제도개혁법안의 통과와 공정위 금융거래정보요구권 시한연장의 연계까지 언급하는 상황이다.

시장개혁의 성과를 확인도 하기 전에, 아니 개혁안이 확정되기도 전에 전혀 성격이 다른 규제장치들을 주고받기 식으로 뒤흔드는 것은 한나라당이 여전히 과거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한나라당의 구태의연한 발상을 강력히 비판하며, 이미 껍데기만 남은 증권집단소송법의 입법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의 연계를 단호히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며 한나라당이 즉각 두 제도의 연계방침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개혁센터


PEe2003111300.hwp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