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법 24조의 사실상 폐기를 주장한 재경부의 ‘2004. 10. 12. 시행령 개정 방향’

금산법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초과 지분 소유 합법화시키려 해

삼성생명에 대한 ‘자동승인 의제’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예시 제시

삼성카드도 계열분리·구조조정을 근거로 예외 인정하려 해



재경부가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에게 제출한 내부문건(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개정내용’, 2004.10.12)에 따르면, 재경부는 금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전인 작년 10월 금산법 제24조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방향을 결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의 계열금융기관이 비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법 제24조의 입법취지를 감안할 때, 재경부가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를 허용하는 승인기준을 시행령에 추가하려고 했던 것은 위임입법의 범위를 일탈하는 위헌·위법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라는 시장경제의 근본원칙을 허물어뜨리려 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재경부의 시행령 개정방향 문건에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소유가 자동 승인의제된 것이라는 자신의 최근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예시를 담고 있으며,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소유도 사후승인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추가하고 있어 결국 재경부가 삼성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법과 시행령을 개정하려 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박영선 의원이 확보한 재경부 내부문건(별첨 자료 참조)의 앞부분에는 부득이한 사유로 한도를 초과한 경우 사후승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위반 금융기관에 대해 시정조치 및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되 법 개정 이전의 위반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의결권만 제한하도록 하는 등 작년 12월 입법예고안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금까지 금산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 입법예고안이 삼성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닌가, 또는 올 7월 확정된 정부안의 부칙에 삼성을 봐주기 위한 조항이 추가로 더 들어간 것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공개된 재경부 내부문건은,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전에 재경부가 국회 심의를 거치는 않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금산법 24조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지는 예외조항을 추가하려고 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행령을 통해 본법의 입법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예외조항을 추가하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현재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산법 문제에서 재경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입법기관인 국회를 농락하려 했었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현행 금산법 제24조 제1항은 재벌의 계열금융기관이 한도를 초과하여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 금감위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단 금감위가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법이 아닌 시행령 제6조에 규정되어 있다. 당해 주식 소유를 통한 기업결합이 관련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해서는 안되며,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사실상 지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경부의 내부문건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공정거래법 제11조에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사유(즉 정관변경, 임원임면, 합병 및 영업양수도 등 이른바 경영권 변동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한도초과 소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승인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별첨자료 5p. 하단의 ‘개정방향’ 참조).

재삼 강조하건대, 금산법 제24조는 금융을 통한 산업 지배를 금지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그 시행령에서 지배와 관련된 핵심 사안인 정관변경, 임원임면, 합병 및 영업양수도의 경우에 한도초과 소유를 허용한다는 것은 본법을 폐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법은 지배를 금지하고 있는데, 시행령은 그 지배를 허용하고 있는 모순된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다.

시행령상의 승인기준이 이렇게 개악된다면, 삼성생명 등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삼성의 계열금융기관들이 법위반 상태를 벗어나 모두 합법화될 것이며, 나아가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계열금융기관의 고객 돈을 이용하여 지배력을 유지·확장하려는 유인이 더욱 강화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재경부의 내부문건은 이처럼 승인기준을 완화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2002년 1월 공정거래법 제11조가 개정되어 내부 지분율 30%(2004년말 재개정되어 15%로 축소)까지는 재벌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이 허용되었는데, 금산법 제24조가 이러한 환경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여전히 비금융회사 주식의 5% 이상을 소유하는 것은 금지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의 이러한 설명은 억지일 뿐이다. 공정거래법 제11조가 개악되어 의결권을 허용한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이를 별개로 하더라도, 공정거래법은 자연인인 총수일가는 물론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의 소유지분을 모두 합친 내부지분율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재경부가 문제 있다고 한 금산법 제24조 제1항 2호의 5% 기준은 단일 금융회사의 소유지분을 말하는 것이다. 적용대상이 완전히 다른 기준을 억지로 꿰맞춘 것일 뿐이다. 더구나 공정거래법 제11조의 개정이 금산법 제24조의 위법취지, 즉 금융을 통한 산업 지배 금지를 무너뜨릴 수 있는 논거가 될 수 없다.

또한 재경부의 내부문건은 승인기준 완화의 논거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오히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자동 승인의제된 것이라는 자신의 최근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저질렀다. 즉 재경부 내무문건은, 은행이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은행법상 금감위 승인을 얻어 출자전환으로 16%의 지분을 취득한 경우는 금산법상 승인의무가 면제되나, 출자전환으로 14%를 소유하면서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는 금산법상 승인을 받지 못하게 되어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이 출자전환 주식 14%를 소유하는 것은 은행법상 승인이 필요 없는 경우이다. 만약 삼성생명에 대한 자동 승인의제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14% 출자전환 주식의 경우 은행법상 승인이 필요 없으므로 금산법상 승인이 자동 승인의제되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 결국 재경부와 금감위의 자동 승인의제 논리는 삼성생명 문제가 논란이 되자 급조한 변명에 불과하며, 법 적용 대상에 따라 다른 논리를 들이대는 조삼모사의 행태에 불과하다.

실제 금감위는 작년 “우리은행의 우리제일상호투자전문회사에 대한 출자 승인”(금감위 보도자료, 2004.12.24.) 건에서 설립 근거법(은행법)상 금감위의 승인이 필요 없는 경우에도 별도의 금산법상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보고 실무적으로 그렇게 처리하였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소유에 대한 자동 승인의제 논리는, 재경부 스스로의 논리로나 금감위의 실제 업무처리로나, 모두 자기모순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재경부 내부문건은 비금융회사 주식의 한도초과 소유를 승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외조항으로,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경우도 포함하고 있다(별첨자료 5p. 하단의 ‘개정방향’ 참조).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이 그 자체로 정책적 목표일 수는 있으나, 이것을 금산법 제24조의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계열분리 또는 구조조정 시 매각해야 하는 주식을 계열금융기관이 고객의 돈으로 떠안을 이유가 없으며, 금산법 제24조는 바로 이런 경우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더구나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은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주식 소유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삼성카드와 (구)삼성캐피탈은 1999.12 중앙일보의 계열분리 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인수했으며, 2004.2 삼성캐피탈의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삼성카드가 (구)삼성캐피탈을 합병하였다. 따라서 계열분리와 기업구조조정을 승인의 예외조항으로 인정하면, 현재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25.64%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매각명령은 물론 의결권 제한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재경부는 삼성생명뿐만 아니라, 삼성카드도 완전히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한 것이다.

금산법 제24조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이다. 이 원칙과 충돌하고 있는 재벌은 사실상 삼성이 유일하다. 재경부는 이처럼 시장경제의 근본원칙에 도전하고 있는 삼성을 비호하기 위해 금산법 개정안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아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금산법 제24조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사회 공기(公器)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법질서의 근본을 허물어뜨리는 재경부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이 국회가 재경부의 책임을 엄중히 추궁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미 정부기구로서 신뢰성을 상실한 재경부의 개정안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므로, 국회는 진정 입법기관으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인식하고 금산법 개정안을 신중하게 심의.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 별첨자료 ▣

1. 재경부가 제출한 문건


경제개혁센터

논평_051006.hwp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개정내용.hwp승인기준변경_05100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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