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법 위에 시행령, 그 위에 삼성

난해한 법률. 금산법

법(法), 참 어렵다. 법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암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중에서도 금산법(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은 정말 난해한 법률이다. 비록 법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금융을 공부하는 경제학도로서 금융관련법을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던 필자에게도, 특히 최근 전국민적 관심 대상이 된 삼성 금융계열사의 금산법 24조 위반 문제를 제기한 장본인 중 한 사람인 필자에게도, 금산법은 정말 오묘한(?) 법률이다.

지금까지 금산법을 열 번도 넘게 읽어 보았지만, 읽을 때마다 그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한다. 연시(戀詩) 한 구절 한 구절을 가슴에 새기듯 읽었던 사춘기 시절 이후, 문장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 맛을 음미했던 것은 이번 금산법 독해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금산법에 대한 법리적 해석은 생략하겠다. 정 궁금하신 분은 참여연대 홈페이지(www.peoplepower21.org) 검색창에 ‘금산법’을 치면 21개(!)의 논평, 보도자료, 칼럼이 쫘악 올라오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제목에 ‘금산법’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만 21개이니,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코스트(cost)가 만만치 않음을 미리 충고 말씀 드린다.

본 법률을 사문화시키는 정부의 금산법 시행령 개정안

오늘은 금산법이 아닌 그 시행령 개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시행령 개정? 법도 개정되지 않았는데, 웬 헛소리?’라고 생각하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가지신 분들께, 외람되지만, 다시 한번 충고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나라의 법을 읽을 때는 법 뿐만 아니라 그 시행령까지, 아니 시행세칙과 감독규정까지 한꺼번에 컴퓨터 화면에 올려놓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코 다친다.

의문의 여지없이 매끈하게 써내려간 법문의 맨 끝에 붙어 있는 ‘단, …는 예외로 한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정한다’는 식의 단서 내지 하위규정 위임의 마법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법체계의 진수를 알 수 없다. 법만 읽어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이 시행령 이하 하위규정에 들어가 있다. 심지어는 하위규정에 숨어 있는 예외를 통해 본법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DJ정부 시절 이른바 「5+3」원칙의 핵심적 성과물이었던 투신사 및 보험사의 계열사 유가증권 투자한도 축소 조치가 2001년 추석 연휴 전날과 그 다음날 각각 시행령 개정을 통해 쥐도 새도 모르게 원위치했던 일이나, 82개 대규모 상장법인에 대한 집단소송을 2년간 유예하는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을 빌미로 어느 날 갑자기 금감위가 외감규정을 개정하여 14,000개 외감법인 전체에 대한 감리를 2년간 면제한 일 등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에게만 해당되는 조항을 만들고서 특정기업 염두해두지 않았다는 재경부의 궤변

금산법도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가 될 뻔했다. 주지하다시피, 금산법 24조는 산업과 금융의 분리를 위해. 재벌의 계열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일정 한도(5% 또는 20%) 이상 소유할 때 금감위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금감위가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법이 아닌 시행령(6조)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재경부가 시행령을 개정하여 한도초과 주식소유에 대해 금감위의 승인을 얻을 수 있는 예외조항을 확 넓혀놓으면 어떻게 될까? 금산법 24조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될 것이다. ‘에이, 설마…. 재경부가 어떻게 그런 일을…’이라고 하지 마시라. 설마가 사람 잡는다. 실제 잡을 뻔했다.

최근 박영선 의원을 통해 공개된 재경부의 내부문건(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개정내용’, 2004.10.12)에 따르면, 재경부는 금산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기도 전인 작년 10월 이미 시행령 개정의 윤곽을 잡아 놓았다.

금산법 개정 문제가 대통령도 한 말씀 거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을 빚지 않았다면, 즉 법 개정안이 재경부 원안대로 국회에서 무난히 처리되었다면, 시행령도 소리소문없이 그렇게 개정되었을 것이다.

재경부 내부문건은 한도초과 주식소유를 승인받을 수 있는 두 가지 예외조항을 시행령에 담으려 했다. 공정거래법 11조에 따른 의결권 행사를 위한 경우와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경우이다. 차례차례 보자.

왜 재경부의 시행령안이 삼성을 위한 것인가 1

첫째, 공정거래법 11조? 이럴 수가… 공정거래법 11조는 원래 재벌의 계열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했었는데, 삼성의 로비에 의해 2001년 말 내부지분율 30%까지는 의결권을 허용하기로 개악되었고, 작년 공정위가 이를 다시 15%로 축소하는 법 개정안을 내자 삼성이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론을 내세우며 결사반대를 주장하여 결국 여야간의 몸싸움 끝에 간신히 통과되었고, 드디어는 올해 삼성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까지 제청한, 그 파란만장한 이력의 조항이다.

한마디로, 삼성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재벌 어디도 관심이 없고, 오직 삼성만이 문제가 되는 법조항이다. 그래서 이것이 논란이 될 때마다 발벗고 나선 전경련을 두고 다른 재벌들조차 ‘삼경련’이라고 비아냥거렸던 문제의 그 조항이다.

그런데 이걸 금산법 24조의 예외조항으로 인정하겠다고? 누구를 위해? 제발 ‘재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 또는 국민경제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답하지 말기 바란다. 다른 재벌들이 웃는다.

시행령에 이 예외조항이 들어가면, 현재 법위반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7.25%)은 그냥 합법화되고, 공정거래법 11조가 허용하는 한도까지 더 살 수도 있다(개정 공정거래법 11조의 한도는 내년 4월부터 매년 5%씩 축소하여 2008년 4월이 되어야 15%로 된다. 2008년 4월? 그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누가 아는가?)

더구나, 금산법 24조는 금융을 통한 산업 지배를 금지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 11조의 의결권 허용 사유(정관변경, 임원임면, 합병 및 영업양수도 등)는 지배의 핵심 사안들인데, 이를 시행령에서 인정하면 어찌 되는가? 법은 지배를 금지했는데, 시행령은 지배를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 결국 시행령의 예외조항이 본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위헌,위법한 시행령이다.

왜 재경부의 시행령안이 삼성을 위한 것인가2

둘째,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 촉진? 어떻게 이런 일이….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은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주식 소유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삼성카드와 (구)삼성캐피탈은 1998.12 중앙일보의 계열분리 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인수했으며, 2004.2 삼성캐피탈의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삼성카드가 (구)삼성캐피탈을 합병하였다.

따라서 계열분리와 기업구조조정을 승인의 예외조항으로 인정하면, 현재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25.64%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매각명령은 물론 의결권 제한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건 시행령 개정 이후에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예외조항이지, 이미 법위반 상태에 있는 삼성카드에는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라고 변명하지 마시기 바란다.

정부안은 물론 심지어 박영선 의원안도 과거 법위반 금융기관에 대해 사후승인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양자의 차이는, 과거 법위반 금융기관이 사후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정부안은 의결권 제한만을, 박영선 의원안은 5년 내 매각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시행령에 이 예외조항이 들어가면, 당연히 삼성카드는 이를 근거로 사후승인을 신청할 것인데, 과연 금감위가 ‘삼성카드는 과거 법위반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이 예외조항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릴까? 만약 그렇다면,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증거가 있냐고? 있다.

문학진 의원이 입수한 2004.7.2일자 금감위. 증선위 합동간담회의 자료를 보면, “삼성카드는(즉 삼성그룹의 입장은- 필자 주) 동 지분 취득은 중앙일보사 계열분리를 위한 것으로 … 감독당국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회의 결과를 수록한 2004년 제 13차 합동간담회 일지(참석자는 금감위 부위원장, 금감위 증선위 상임위원등이다) 에서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은 5% 이하로 줄여야 하는지, 계열분리 과정에서 취득한 지분에 대하여는 승인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의에 대하여” “현행 법 하에서는 5% 이하로 줄여야 하며, 계열분리 과정에서 취득한 지분 17.1%의 취득승인을 위해서는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변(답변의 주체는 금감위로 보인다)”하고 있다.

그러면, 어제 재경부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해명하였듯이, 재경부의 시행령 개정방향 문건이 “시행령 개정작업시 실무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일반사항들을 기술한 단순 참고자료”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말을 믿는다면, 정말 순진무구한 사람이다.

경제정책은 진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경부는, 금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전에, 이미 삼성의 요구와 금감위의 의견을 받아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소유를 합법화해줄 시행령 개정 준비를 완료했던 것이다.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헌법 → 법률 → 시행령 → 시행세칙 → 감독규정으로 이어지는 상위법 우선의 법령체계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러나 이번 재경부의 내부문건은 현실은 교과서와 무척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 위에 시행령이 있고, 그 위에 삼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 금산법 개정의 관전 포인트는 하나로 집약되었다. 국회를 농락한 재경부와 금감위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공권력을 막후조정한 삼성에 대해, 헌법기관인 개개의 국회의원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이다. 국회의원 한명 한명의 발언과 표결 내용을 모두 역사에 기록하여야 한다. 이들이 삼성공화국의 창업공신으로 기록될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수호자로 기록될 것인지, 결과를 알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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