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경제강좌 2009-03-04   2504

[시민경제교실] 정무위 기습처리를 보면서

정무위 기습처리를 보면서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


 
정확히 1년만이다.  언론매체에 컬럼을 싣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  필자는 작년 2월말에 앞으로 1년 동안 절필할 것임을 평소 관계를 유지하던 몇몇 언론사 데스크에 알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작년 초에 금융계에 종사하던 제자가 보냈던 신년하례 이메일 한통 때문이었다.  평소 필자의 글을 자주 읽었다는 그 제자는 그 이메일에서 “선생님 글이 점점 무서워지는 것 같아요”라고 촌평을 해 주었다.  그랬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한나라당의 집권과정을 보면서 필자가 썼던 글의 논조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변해 갔던 것 같다.  그 때 느끼는 바가 있어 1년 절필을 결심했다.  내심으로는 이 동안에 인격 수양도 좀 해서 다음에 독자 앞에 설 때에는 조금 더 점잖은 논조로 차분하게 생각을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1년 동안 절필하겠다는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절필 후에 “인격수양”된 모습으로 “점잖게” 생각을 전하겠노라는 내심의 약속은 거의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당장 1년의 공백을 깨고 처음 쓰는 이 컬럼의 내용부터 그리 점잖지 못하니 말이다.
사회과학자가 쓰는 컬럼은 사회의 반영이다.  따라서 그 글의 내용이 점잖지 못한 진정한 까닭은 사회 자체가 점잖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부터 어제까지의 국회의 모습이 그러했다.  논리와 상식은 실종되고 신의는 배신으로 되돌아오고, 절차적 정당성은 속도전과 강행처리라는 구호 속에 속수무책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속에서 출총제는 결국 대안없이 폐지되고,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과 같은 금산분리 완화법안은 이제 법사위 통과와 본회의 표결이라는 단 한 자락의 고비만을 남겨 놓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은 어쩌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 경제살리기를 하자는 데 왜 그 난리들이냐?  금산분리 한다고 밥 먹여 주나?  모로 가도 경제만 살아나면 돼.”  경제가 어려우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 모두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1년 반 전 대선 때 이런 생각을 한 바 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선택했다.  그 결과 경제가 살아났는가?  나라 꼴이 모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정작 경제는 안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필자만의 편견인가?

이번에 경제살리기 법안으로 포장된 공정거래법 및 은행법 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 경제를 모로 가게 하는 데에는 공헌할지 몰라도 경제를 살리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법들이다.  아마 조금 시일이 지나면 우리 국민 모두는 “우리 경제가 모로 가는 것”의 결과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출총제 폐지부터 살펴 보자. 아무런 대안없이 출총제를 폐지했을 때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목도한 바 있다.  외환위기 직후 규제 완화 한답시고 출총제를 폐지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투자가 이것 때문에 늘어난 것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 대신 재벌 기업의 경제력 집중만 엄청나게 늘어났다.  경제는 모로 갔지만 살아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출총제를 다시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있는가?  10년도 안된 과거는 역사가 아니고 그냥 에피소드일 뿐이어서 그런가?  앞으로 우리는 그 망각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지금부터라도 순환출자 규제나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등 보완조치의 입법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 문제는 출총제와 달리 사람들이 제도 폐지의 효과를 실제로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작용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자칫하면 우리 경제를 망국의 수렁으로 침몰시킬 수도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크게 3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재벌이 사모펀드에 “마음껏” 출자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은행을 “통째로”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과장이 아니다.  어제 적절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정무위를 통과한 개정안(어제는 도저히 입수가 안되었고 오늘에야 간신히 입수한 최종 개정안)은 한 때 그 한도의 축소가 거론되었던 서로 다른 재벌 계열사 출자분 합계 한도를 수정하지 않은 채 정부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따라서 재벌들은 서로 합하여 사모펀드에 50%까지 출자하고도 “산업자본이 아닌 자”로 행세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마음껏” 출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또 이 사모펀드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은행 주식을 100%까지 살 수 있다.  문자 그대로 “통째로” 사는 것이다.  즉 이번 개정안은 재벌들에게 은행 주식을 완전히 갖다 바치는 길을 터 주었다.
개정안의 두 번째 내용은 일반 산업자본에게 은행주식을 10%까지 사고 의결권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다.  이것의 직접적인 효과는 법 시행후 당장 발생한다.  현재 외국의 산업자본인 테마섹은 하나은행 주식을 9% 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의결권은 4%까지만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 은행법이 시행되면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의결권이 즉시 살아나게 된다.(참고로 부칙에는 이미 가지고 있던 주식에 대한 경과조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결권이 즉시 살아난다고 보면 된다.)  하나은행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테마섹의 지배를 받는 것이 경제살리기 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개정안의 세 번째 내용은 연기금 및 그 위탁운용자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은행을 “통째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은행 민영화를 앞두고 국민연금 등 비교적 투명한 운영구조를 갖춘 연기금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연기금은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고 그 위탁운용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필요성과 현실의 운용상황을 면밀하게 판단하여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이런 것에 대한 고민 없이 그야말로 도매금에 모든 것을 넘기고 말았다.
이런 개정안이 시행되어 재벌과 외국의 산업자본이 우리나라 은행을 소유하거나 지배하게 될 경우 무슨 일이 있어날 것인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다. 
삼성과 우리은행의 사례를 보자.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이고 우리금융지주의 대주주는 예금보험공사다.  즉 우리은행은 국가 소유 은행이다.  그런데도 삼성은 우리은행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태평로의 구 삼성 사옥에 있던 우리은행 지점이 그 좋은 예이다.  이 지점에서는 삼성과 연관된 금융법규 위반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  재작년 가을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사건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점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그 어떤 국가권력도 여기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간부는 약간의 제재 후 오히려 승진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은행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지금도 상황이 이러할진대 은행의 의결권 주식을 보유한 다음의 결과는 더 이상의 언급을 요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2월 하순경 다른 법률의 공청회 때문에 정무위의 일부 여야 국회의원 및 금융위 관계자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자리에서 만난 그 분들은 모두 잘나고 상식도 구비한 분들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분들 중 일부는 어제 낮 정무위에서 한창 절충과정에 있는 문제 법안을 기습적으로 강행처리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분들은 앞으로 다른 쟁점법안과 관련하여 필요하면 그런 일을 또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그 분들의 진면목인가 하고 생각하니 새삼 세상이 무섭다는 점을 절감한다. 지난 1년 전 붓을 놓았던 바로 그 지점에서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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