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10-29   572

[기고] 위기에 믿을 건 재벌뿐? 박근혜의 착각

[경제 민주화 워치] <14> 동양 사태로 돌아본 한국 재벌 체제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기업 역사 56년, 재계 순위(총수 있는 기업 집단) 30위의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위기에 빠지면서 한국 재벌의 문제점이 다시 한 번 백일하에 드러났다. 중견 재벌 기업 집단이던 동양그룹은 이미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인 2009년부터 지금까지 그룹 전체 차원에서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였다.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데 따르면 부채 비율도 999.81%로서 이미 자구 능력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계열사들의 연쇄적인 부도 위기와 법정관리 신청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동양 재벌이 부실에 빠지고 그 부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 재벌 체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재연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핵심 계열사인 ㈜동양이 2010년 말부터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서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총수 일가는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동원하여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게 된다. 부실에 빠진 계열사들에 대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새사연, “동양 사태, 막을 수 있었다”, 2013.10).

더욱 심각한 것은 동양그룹이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과 대부업체를 동원하여 재무 건전성을 의심받는 주요 계열사의 회사채와 CP(기업 어음)를 무모하게 시장에 과잉 유통시킨 것이다. 계열사의 위험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회사채와 CP를 유통시킨 결과, 이들에 투자해서 피해를 본 규모가 5만여 명, 2조 원에 육박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을 정도다. 결국 순환출자를 통한 돌려막기, 금융 계열사를 동원한 자금 조달 등 재벌 체제에 내재한 온갖 편법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부도를 막지 못하고 그 피해를 사회 전체에 전가해 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 시민사회가 그동안 주장했던 재벌 개혁의 정당성을 재차 확인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번 사태는 동양그룹에 국한된 문제인가. 다른 재벌 그룹들은 자산 구조와 수익성이 탄탄하여 문제가 없는가?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앞으로 우리경제 회복은 재벌 대기업 집단이 이끌 수밖에 없는 것인가. 또는 한국 경제 회복을 주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재벌 체제가 여전히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경제 위기에 믿을 곳은 그래도 재벌뿐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실물 측면에서 홍콩을 포함해 우리에게 수출 비중이 30%에 달하는 중국의 고성장 혜택이 있었다는 점과 함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주요 재벌들이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선방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분기 실적이 연속해서 10조 원을 넘기며 성장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보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올해 창립 44주년이 된 삼성전자는 2012년 매출 1786억 달러, 순이익 205억8600억 달러로서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14위에 올랐다. 2009년 40위였던 것이 계속 상승해온 결과다. 반면 영업 이익은 삼성전자의 두 배에 달하지만 매출이 적은 애플은 19위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2012년 TV 시장에서 7년 연속 1위,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 대수 기준 점유율 25%로 1위 기업이기도 하다.

눈부신 성적은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포춘> 500대 기업에서는 104위에 올랐고 글로벌 자동차 기업 13개 가운데 매출 9위였지만, 순이익 순위로 보면 5위에 올라선 상태이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 경제 침체가 5년을 넘어 지속되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오히려 글로벌 시장 점유율과 수익 규모를 확대해왔던 것이고 한국 경제의 수출과 부가가치 창출을 주도했다는 세인의 평가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부터 국민들이 요구했던 경제 민주화의 거센 물결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도 6개월 만에 재벌 개혁 정책을 덮어버리고 이제는 재벌에 기대어 경제 회복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다. 지난 8월 28일, 10대 그룹 총수와 회동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분들이 마음 놓고 투자와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던 발언도 이런 맥락이다. 설사 재벌 체제가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국제적으로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며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 이들에 의지해서 어려운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논리다.

삼성과 현대차의 화려한 실적, 재벌 체제의 실상을 가리다

그러면 정말 현재 시점에서 우리 재벌의 내실이 얼마나 탄탄한지 살펴보자. 간단한 하나의 방법으로 그들의 당기 순이익 변동을 살펴보겠다. 그룹 차원에서 보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당기 순이익 집계 자료를 기준으로 2005~2007년 3년 평균과 2010~2012년 3년 평균을 비교해보았다. 경제 위기로 실적 변동이 크게 흔들렸던 2008년과 2009년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또한 최근 8년 동안 연속적으로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지정된 그룹사 가운데 공기업을 제외한 34개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 대상 기업 집단을 2012년 자산 규모 순서대로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삼성, 현대 자동차, 에스케이, 엘지,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지에스, 한진, 한화, 케이티, 두산, 에스티엑스, CJ, 신세계, 엘에스, 동부, 금호 아시아나, 대우조선 해양, 대림, 현대, 오씨아이, 현대백화점, 효성, 한국지엠, 동국제강, 코오롱, 한진중공업, 케이씨씨, 케이티엔지, 동양, 현대산업개발, 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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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 1, 2위 그룹인 삼성과 현대차는 예상대로 글로벌 대침체 가운데에서도 엄청난 이익 신장을 기록했다. 삼성그룹은 11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두 배를 훨씬 넘는 성장을 했다. 절대 규모는 삼성에 미치지 않지만 성장률은 현대차가 오히려 압도적이다. 4조 원대의 이익이 무려 13조 원까지 3배로 성장한 것이다. 삼성은 삼성전자(전체 순익의 54%)가, 현대차는 현대/기아자동차(55.5%)가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창출했음은 물론이다. 세계 경기 침체기의 실적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눈부신 실적은 여기까지다. 이들 두 그룹을 제외하고는 3, 4, 5위 그룹들의 이익은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엘지그룹은 다소 줄어들기까지 했다. 물론 그룹사에 대한 순이익 총계를 단순 비교하는 것만으로 한국 재벌이 취약해졌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더 다양하게 성장성이나 수익성, 재무 상태 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지표만으로도 현재 재벌 체제가 장기 침체를 원만하게 돌파해나갈 추진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중하위 재벌 그룹들은 실적 악화

상위 5대 재벌 가운데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 행진을 벌인 것이 삼성과 현대차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중하위 재벌 그룹 사정은 어떨까? 동양그룹과 같은 중견 그룹들은 과연 동양보다 얼마나 더 나은 것인가? 지난 8년 동안 계속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민간 그룹 34개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처럼 수익성 개선이 두드러진 그룹들은 현대중공업과 CJ, 그리고 신세계 정도에 불과했다. 성장 추세로만 보면 현대차를 뛰어넘는 초고속 성장을 한 그룹은 CJ다. 2007년 이전까지 1000억 원대의 순이익을 내던 그룹이 2010년 이후에는 무려 8000억 원대를 넘나드는 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연치 않게 삼성, 신세계, CJ 등 범삼성 가문의 성장세가 유독 두드러진다.

하지만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6개 집단에서 평균 순이익 절대 규모가 감소했다. 2010~2012년 기간 중에 평균 순이익이 아예 마이너스에 달한 기업도 6개나 되었다(2005~2007년 기간에는 한 개 그룹사밖에 없었다.) 한진, 에스티엑스, 현대,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동양그룹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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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눈에 띄는 것은 신세계를 포함하여 현대백화점그룹과 같은 대형 유통 기업 집단들이 같은 기간 동안 상당한 수익성 신장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특히 2007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처음 올라온 홈플러스는 당시 280억 원 수익을 내다가 작년에는 무려 3800억 원을 낼 정도로 급격한 신장을 했다. 유통 재벌들이 경제 위기로 골목 상권까지 잠식하면서 호황을 누렸다는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한편 재벌 대기업 집단들의 부채 비율 역시 위기 이전보다 악화되었는데 2008년 4월 142.5%에서 2013년 4월에는 167.2%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양 재벌은 600%에서 1000%까지 늘었다. 여러모로 동양그룹의 위기와 부실은 오래전부터 예측 가능한 것이었고 CP 관련 금융 사건도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재벌 개혁,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결국 재벌 체제가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견고해졌다고 생각한 것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화려한 실적에 가린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이 친기업 정책을 내걸고 환율 정책 지원, 법인세 감면, 규제 완화로 뒷받침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현대차 등 몇 개 그룹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실적이 악화되거나 재무 구조가 취약해졌던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삼성과 현대차라고 하는 두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독주 체제가 구축되어 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삼성과 현대차의 지난해 수익 25조 원과 13조 원은 5조 원을 밑도는 3위 이하 그룹에 비해 압도적일 뿐 아니라 34개 민간 그룹사 전체 수익의 절반을 넘는 수준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자산 규모에서도 3위 이하 재벌들이 150조 원을 밑도는 데 비해 삼성 500조 원, 현대차 200조 원으로 압도적이다. 과거 30대 재벌, 10대 재벌을 넘어서 당분간 ‘2대 재벌 체제’라고 하는 새로운 지배 구조가 강화될 것이고 이들이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둘째, 삼성과 현대차가 엄청난 실적 상승에 비례해서 일자리도 그만큼 늘린 것은 아니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2012년 기준 삼성그룹 종업원 25만9000명은 2008년에 비해 35% 늘어난 규모이고 현대차그룹 14만 명은 같은 기간 18% 정도 증가한 규모였다(2012년 국정감사 김영환 의원 보도 자료). 순이익이 2배, 3배가 늘어날 동안 고용은 훨씬 못 미치는 증가에 그쳤다는 것인데, 이는 두 그룹사의 성장 전략이 해외 투자와 해외 생산 기지 확대를 위주로 한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두 그룹의 놀라운 실적 행진이 국민의 체감과 상당히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두 그룹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재벌들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개선된 것이 별로 없거나 절반 이상은 명목상 수익 규모 자체가 감소했다는 것이고 일부는 동양그룹처럼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재벌들의 체력이 악화되었다는 얘기이고 상황 전개에 따라 제2의 동양 사태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어려우니 재벌들에 기대어 경제를 회복하자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추가적 부실들이 발생하기 전에 재벌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여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우리 경제 내부의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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