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07-30   538

[기고] 박 대통령, 당선 일등 공신 팽시키나

[경제 민주화 워치] <2> 경제 민주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

이병천,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장- 강원대 교수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그것을 알고 싶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시민사회에서 그 국정 운영 기조와 방식을 놓고 100일 평가를 했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생략되고 촛불 시위가 그 평가를 대체했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경우도, 유신 독재 망령이 부활할 거라는 반대편의 심각한 우려와 비판을 누르고 당당히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다, 창조 경제가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속마음과 함께) 2013년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반열에 올라간 탓인지 아니면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 때문인지, 시민사회의 100일 평가는 건너뛰었다. 그러더니 집권 반년 시점에 촛불 시위를 맞고 있다. 좋은 조짐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대선 개입 댓글 공작으로 정당성과 신뢰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은 국정권의 국기 문란형 정치 공작 때문만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이제 경제 민주화까지 도둑맞은 꼴이 될까봐 우려할 지경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낡은 승자 독식, 정글 자본주의 모델을 갈아엎고 99%를 위한 발전 경로를 재창조해야 한다는 시대의 명령은 한국의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바로 ‘세’우자)로부터 경제 민주화 길로 갈아타도록 강제했다. 이에 부응해 박 후보는 마음이 맞지 않는 김종인 씨까지 발탁하여, 경제 민주화를 실천해 민생을 살리고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굳은 약속을 했다. 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힌 까닭은 (국정원의 댓글 공작 덕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국민들이 경제 민주화를 가장 잘 해낼 후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국정 최고 지도자가 되더니 이제 겨우 집권 초기 법안 몇 개 만들어진 시점인데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경제 민주화 입법에 종지부를 찍는 발언을 했다. 이제야 시작하나보다 했는데. 국정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이 정도라면 처음부터 갈지자걸음으로 비틀거리던 경제 민주화의 행방도, 그것과 ‘창조 경제 미스터리’의 관계도 다 풀린 게 아닌가 싶다.

애초에 침몰하던 보수(保守)를 보수(補修) 공사하는 박근혜식 버전은 특이한 짬뽕 브랜드였는데, 그 짬뽕은 그리 맛있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 잡탕밥을 출시하면서 박 후보는 태연히 “줄푸세 = 경제 민주화” 등식을 고집했었고 그 등식은 정말 자가당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보고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여전히 미래로 가는 개혁적 보수로 거듭나지는 못하고 있구나, 이들이 권력을 쥐면 경제 민주화 ‘시즌2’도 또다시 험난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 후보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던 경제 민주화는 인수위 국정 과제에서는 실종되었다. 200쪽이 넘는 자료 어디에서도 경제 민주화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대선 과정에서 급조된 것으로 보였던 ‘창조 경제’가 ‘일자리 중심의 창조 경제’라는 이름을 달고 국정 목표 ‘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실종된 경제 민주화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라는 말이었는데, 그것은 일자리 중심의 창조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하위 전략의 하나로 끼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실종된 경제 민주화

생각해 보자. 경제 자유화, 규제 완화, 민영화, ‘줄푸세’ 등이 판치는 시절로부터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시민권을 얻기까지 재벌 독식 정글 자본주의와 양극화 체제 아래 고통받고 약탈당한 다수 대중 즉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와 상공인, 쪼들린 중산층, 중소기업가 등 ‘을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던지. 그러나 경제 민주화라는 말은 무척 넓고, 모호한 구석도 많다. 그 때문에 보수 정치 세력이 지난날의 방임-방종적 시장 자유화에서 어쩔 수 없이 경제 민주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얼마든지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주무르며 잡탕밥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체질적으로 사회경제적 삶에서 민(民)이 주(主)가 되는 실질적 민주화, 이해 당사자들이 대등한 주체로서 참여하고 발언하는, 그래서 민주적 견제력 또는 대항력이 제도화되는, 명실상부한 경제 민주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그런 식의 경제 민주화는 너무 불안할 뿐더러 불온하기까지 하다. 그에 따른 생산적 갈등과 타협을 통해 ‘창조'(기술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될 탈추격 선도자 경제의 길, 참여 민주적이면서 사회 통합적인 높은 성장 체제 경로를 불신한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국정 과제에서 창조 경제를 제1조로 내세운 것,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삭제하고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으로 갈아 끼운 의미를 그렇게 해석한다.

그렇다면, 민이 주가 되는 실질적 경제 민주화의 길이 3불(不) 딱지(불안, 불온, 불신)를 받는다면, 박근혜 정부 아래 열릴 경제 민주화의 여지란 대체 어떤 것일까? 이 정부에서 미시적 기업 소유 지배 구조에서 거시적 나라 경제 운영에 걸쳐 의사 결정권을 민주적으로 재분배하는 길, 실질적인 ‘참여 민주적 경제 민주화’ 길을 기대하는 것은 필시 연목구어가 될 성싶다. 그렇다고 해서 거리에서 ‘을들’의 압력과 제도 정치 야당의 실력 여하에 따라 경제력의 초집중과 심각한 분배 불공정 상황을 시정할, 다양한 폭의 제도 개혁 여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119조 2항)에 따르면, 경제 민주화란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 분배의 유지”,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 주체 간의 조화” 등을 포괄하며, 국가는 이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내 생각에, 이들 내용 중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 가치를 받아들이는 선상에서 중심 목표로 삼는 것은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다. 이는 박근혜식 포현으로 하자면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 해당된다. 그런데 시장 지배 및 경제력 남용의 방지라는 말도, 공정거래법(정확히 말해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으로 오게 되면 경제력 집중 억제와 불공정 경쟁 규제라는 두 가지 의미로 나뉘어 있다. 기계적으로 딱 자를 일은 아니지만, 이 둘 중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는 주로 헌법상의 균형 있는 성장 및 안정, 적정 소득 분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라는 가치(119조 2항)와 친화적이다. 반면 불공정 경쟁 규제는 주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라는 가치(119조 1항)와 친화적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불공정 경쟁 규제의 경우는, 마구 탐식하는 방종적 자유를 누려온 재벌과 대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시대 흐름도 있고 하니 비교적 작은 소동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인터넷 업계 공룡 네이버가 보수 언론에 의해 뭇매를 맞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 억제 조치는 이와 다르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곧이곧대로 밀고 간다면 가장 중요한 계급적 파트너인 재벌의 이해와 크게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다. 이는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으로 이름을 바꾸어 단 박근혜식 경제 민주화 안에서도 큰 진폭과 공방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 문제는 6월 국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논란에서 잘 드러났다.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에 의한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을 위한(소액주주권도 침해한다) 대표적 사익 편취 행위로서 경제 민주화의 핵심 이슈에 속한다. 박근혜 정부도 인수위 국정 과제와 공정위 업무 보고를 통해서는 줄곧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조항을 경제력 집중 억제를 규율하는 공정거래법 제3장에 신설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래놓고는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 약속을 깨고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율하는 5장(23조)에 신설하는 것으로 끝냈다. 재벌과 우애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다. 경제력 집중 억제와 불공정 거래 규제의 차이를 생생하게 보여준 실례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후 약 반년 동안 경제 민주화는 목이 잘린 채, 재벌을 구슬리고 그 압력에 화답하는 청와대 및 당정 지도부의 경제 활성화 우선론, 속도 조절론, 과잉 규제론 등에 의해 부단히 구석자리로 밀리는 굴종적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정부 초기 주로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중심으로 경제 민주화 입법화를 둘러싼 복잡한 갈등과 밀고 당기기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으며, 종래 잘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두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민주 개혁 정부 10년 동안에도 수많은 ‘을들’을 분노케 하고 눈물 흘리게 했던,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던 신자유주의 ‘줄푸세’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

이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도 시대 흐름에 강제되어 그들이 한 약속 일부만이라도 (고약하게 목을 비틀면서) 지키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민주화 국민운동본부, 전국 ‘을’ 살리기 비대위 등이 주도한 거리의 압력과 제도 정치 공간의 민주당이 투 트택으로 힙을 합쳐 노력했던 것이 주효했다. 특히 국정원 국면(희한하게 NLL 국면으로 둔갑했는데)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무능력을 드러낸 가운데서도, 단식 농성까지 불사하며 다 죽어가던 가맹사업법(프랜차이즈법)을 살려낸 우원식·윤후덕 두 의원은 크게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들이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회원들과 함께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제 민주화가 거의 끝에 왔다? 이제 시작일 뿐

박근혜 정부 시기 경제 민주화는 바야흐로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현대 재벌이 법을 능멸하며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더러, 불법 파견 시정을 요구하는 희망버스에 용역 깡패 폭력으로 대응하고 재계 및 언론, 경찰과 검찰도 맞장구를 치는 사태를 목격하고 있다. 또 세계화 시대 ’IT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 재벌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는 정신을 버리지 않으며 위장 도급으로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온 사태도 보고 있다. 경제 민주화의 ‘제1층’ 바닥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 노동 민주화 문제는 6월 경제 민주화 입법 국회의 완전한 사각시대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상공인, 중소기업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입법화 운동과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 민주화는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 정치의 큰 한계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말한다.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부터는 경기 활성화에 몰입하자고. 반대로 우리는 말한다. 경제 민주화는 이제 시작이라고. 을의, 을에 의한, 을을 위한 경제 민주화야말로 진정한 경제 살리기의 정도다. 더 나아가 창조 경제 따로, 경제 민주화 따로가 아니라 창조 경제도, 창조성도 민주화해야 한다. 1%를 위한 ‘줄푸세’와 99%를 위한 경제 민주화 간의 쟁투는 계속된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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