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08-19   559

[기고] 박 대통령, 취임사에 스스로 사망 선고?

[경제 민주화 워치] <5> 세제 개편안 논란과 후퇴하는 경제 민주화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8.8 세제 개편안을 두고 전국이 들끓었다. 애초 정부안에 합의했던 새누리당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정부에 책임을 넘기고 발을 빼기 바빴고, 야당은 세금 폭탄론으로 여론에 편승했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고 하루만에 정부가 증세 기준을 상향 조정해서 세 부담이 느는 사람 수를 줄이는 편법 수정안을 냈지만 향후 추이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급작스럽게 힘을 얻은 것이 대선 공약의 권위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복지 수정론이다. “무상복지 한다니까 좋아하더니, 이제 와서는…”이라는 식의 국민을 모욕할 수도 있는 언급도 거침없이 나온다.


세제 개편안 사태를 두고 언론의 주류는 주로 증세에 대한 거부감 및 소통과 설득이 부족한 정부의 졸속안이 만든 결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장난도 한몫했고,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지 않았으니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의 기망(欺罔)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덧붙는다. 일리 있는 이야기들이다. 세금 더 낸다는데 좋아할 사람 없고, 하루 만에 수정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니 애초에 숫자놀음으로 만든 졸속으로 보이기도 한다.


습관성 졸속이 자초한 8.8 세제 개편안 논란

그러나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나 졸속의 실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좀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 우선 ‘2013년 세법 개정안’은 집권 기간에 걸친 복지 공약의 이행을 위한 비과세·감면의 정비를 시작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2013년도 세수 부족을 메운다는 측면도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의 세수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9조4000억 원 정도가 줄었다. 그런데 이 세수 감소의 원인은 경기 회복이 정부 기대와 달리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법인세율을 인하한 데에 있다. 2009년에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내렸지만 기업들의 투자는 세율 인하의 명분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관련된 이런 요인들에 대한 반성과 납득할 만한 대응 없이 먼저 엉뚱한 곳에 덜컥 증세한 모습이니,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음으로 이런 형식적인 문제보다 당연히 있게 마련인 증세 거부감을 크게 증폭시킨 더 중요한 요인이 있어 보인다. 최근에만 해도 세금을 쓰고 걷는 문제와 관련해서 국민의 공분을 초래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우선 원전 비리다. 아직 그 복마전이 다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당장 집권당의 당직자와 국정원장 비서실장 출신부터 전 차관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이 복마전 속에 정부의 정책 자금과 지원금이 얽혀 있다. 세금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난 공무원 비리다. 그것도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된 국가 기간산업에서 일어났다. 반면 세금을 걷는 것과 관련된 공무원의 비리는 전 국세청장이 받았다는 30만 달러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국세청장 취임 축하 인사치레였다고 한다. 수억 원이 관행이라 한다. 국세청은 관련 그룹 회장의 주식 이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천억 원의 탈세 정황을 확인하고도 한 푼도 세금을 추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현 정부가 이런 사건들에 대처하는 태도다. 그것은 세제 개편안이 발표되기 며칠 전인 지난 7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잘 드러났다. 이 국무회의에서는 ‘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제정안이 크게 수정되어 통과되었다. 지난해 제안된 김영란법의 요지는 “공무원이 100만 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한다”는 것으로서, 이것이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이를 통해 공무원에 대한 스폰서 관행과 떡값 관행을 막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무회의는 그 기본 취지를 크게 훼손해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 “형사처벌 없는 과태료”만 내도록 바꾸었다. 과태료만 내면 공무원 신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전과 기록도 남지 않기에, 사실상 구속력이 없는 법안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작태는 같은 시기 전 주한 미8군사령관이 한국 근무 시절 ‘선물’로 받은 도금 펜과 가죽가방, 그리고 ‘겨우!’ 수백만 원의 현금이 문제가 되어서 중장에서 소장으로 강등(降等)당하고 전역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와 너무나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이런 퇴행이 어찌 ‘선진화’요, ‘정상화’일까 싶다. 세제 개편안은 그 와중에 발표되었다. 개편안을 졸속으로 봐 준다 해도, 그것은 그냥 어쩌다 실수로 나온 일회성 졸속이 아니라 세금을 걷고 쓰는 일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는지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습관성 졸속이 아닐까?

세제 개편안은 인수위 때부터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조세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국장급 인사이동은 개편안 발표를 겨우 한 달 앞둔 시점인 지난 7월에야 마무리되었다. 이때도 이미 졸속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과연 졸속에 불과한지 물을 만한 일은 또 있다. 지난 6월 26일에 조세연구원이 기획재정부의 연구 용역을 받아 작성한 ‘과세 형평 제고를 위한 2013년 비과세·감면제도 정비 관련 공청회’가 있었다. 사실상 이번 세제 개편안에 대한 공청회였다. 이 공청회에서 한국납세자연합회로부터 “통계청 기준으로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평균 소득이 6000만 원(4인 가족 기준)인데 5500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해 세금을 늘리면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경고가 이미 있었다. 그리고 신임 세제실장은 개편안에 대한 반발의 핵심 원인인 ‘대기업과 고소득 금융자산가들의 세 부담은 늘리지 않고 근로소득자의 부담은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해 왔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누차에 걸쳐 예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별다른 대비책 없이, 그것도 3450만 원으로 낮추어서 강행되었다. 하룻밤 만에 5500만 원, 7000만 원 등으로 세 부담 기준선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던 것도 숫자놀음 계산이 다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관료 입장에서야 숫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려니 이해해 준다 해도, 당·정·청 합의를 거쳤다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의문이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국민의 동의와 반응을 너무 하찮게 본 경우이다. ‘복지를 하자는 명분이 있으니, 이 정도냐 당연히 넘어가겠지’라는 태도이다. 국민 눈을 의식하지 않고 태연히 김영란법을 수정했을 때와 같은 심리 상태였을 것 같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안되면 말고’라는 태도이다. 정말 제대로 된 복지를 정착시키고 확대하는 데 사명감도 없고 별로 동의하지도 않는데, ‘하라니 하기는 해야겠고, 그러다 안되면 내 책임이 아니고 국민이 증세에 반대하는 데야 어쩌겠나’라는 경우이다. 국민의 반발을 모든 종류의 증세에 대한 거부감으로만 편협하게 해석하고, 정책 실패로 인한 세수 부족 문제를 복지 수정론으로 무리하게 연결하려는 시도는 이와 같은 토양 위에서 기댈 언덕을 찾았다.


박 대통령, 취임사에 스스로 사망 선고?

박근혜 정부의 진용이 갖추어졌을 때, 소명의식을 갖고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인사가 없다는 우려가 여러 번 제기되었다. 때로는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온 인사가 요직에 앉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우려가 세제 개편안 논란을 통해 이렇게 현실화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때를 맞춘 것인지 몰라도 현 정부의 경제 민주화 조치와 관련 정책이 마감된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7월 하반기에 들어서부터 정부는 경제부총리의 발언 등 여러 통로를 통해 7월 초 국회를 통과한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 처리로 경제 민주화 조치가 일단락되었음을 공식화하고자 했다. 앞으로 국회에서 시행이 확정된 경제 민주화 관련 조치 이외에 정부 차원의 추가 논의는 없을 것이라는 발언도 고위 경제 관료의 입을 통해 반복되었다. 8월 초에는 당·정·청 간에 지난 7월 16일 입법 예고되었던 상법 개정안을 전면 수정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의 단계적 의무화 등을 통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세제 개편안 논란을 축으로 해서 7월 하순부터 8월에 걸친 시기는 당·정·청 차원에서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지지하는 논리로부터 경영권 위협과 경쟁력 약화 논리로 무게추가 확연히 기우는 하나의 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는 복지 및 경제 민주화를 경제 활성화와 모순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복지와 경제 민주화가 창조 경제로 표현되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던 대통령의 취임사는 사망 선고를 받는다.


“창조 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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