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12-10   453

[기고] 며느리도 모른다는 창조 경제, 그 실체를 다시 묻는다

[경제 민주화 워치] <20> 창조, 누구를 위해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황혜란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창조 경제는 시스템 전환이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창조 경제”라는 풍자적 표현이 국정 핵심 의제인 창조 경제를 둘러싼 초기 반응이었던 것 같다. 올해 6월 정부는 “국민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과학 기술과 ICT(정보 통신 기술)에 접목하여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고, 기존 산업을 강화함으로써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경제 전략”으로 창조 경제를 정의하고 3대 목표, 6대 전략, 24개 추진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창조 경제의 윤곽을 제시하였다. 현 정부의 창조 경제 청사진을 살펴보면 창업, 벤처·중소기업의 창조 경제 주역화, 창의 인재 육성, 과학 기술과 ICT 혁신 역량 강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개인의 창의성과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 경제 민주화를 대체하는 의제로서 창조 경제 띄우기가 활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창조 경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창조 경제가 등장한 배경과 더불어 창조 경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과학 기술과 혁신이 국민 경제와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되짚어 봄으로써 창조 경제의 실천적 의미를 새롭게 조망해 보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창조 경제는 우리 경제가 이제까지 추구해온 모방형·추격형 성장 모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부도 창조 경제 청사진에서 “그간의 모방·응용을 통한 추격형 성장에서 벗어나 국민의 창의성에 기반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한다는 문구를 통해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경제는 ‘성공적으로’ 추격형 성장 모델을 실행해 왔다. 그러나 추격형 성장 모델의 잠재성이 급속히 쇠락함에 따라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모방과 추격을 벗어난’ 새로운 성장 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의 ‘창조 산업’ 혹은 ‘창조 경제’ 개념과 우리와 같은 후발국의 ‘창조’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선진국의 창조 산업 개념은 미디어나 문화 콘텐츠와 같은 지식 자본을 중심으로 한 논의임에 비해 우리나라의 창조 경제 개념은 모방과 추격에 의해 추동되어온 성장을 벗어난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을 요청하는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 모든 성공적인 성장 모델에는 그 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하는 조직과 제도적 원리가 있다는 점은 잘 인식되지 않고 있다. 한국형 추격 경제 시스템에는 그에 걸맞은 조직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즉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 메커니즘, 수직 위계적 거버넌스를 통한 신속한 의사 결정, 수출 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소수의 경제 주체를 중심으로 한 지식 자원의 동원 등이 빠른 모방과 학습을 위한 조직 원리로서 자리 잡았다.

창조 경제 논의의 핵심적 내용을 이루는 과학 기술, 혹은 혁신 활동에도 추격형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과학 기술과 혁신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모방이나 추격형 성장 모델은 과학 기술이나 혁신 활동과 관련 없이 일어났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통념과는 반대로 모방·추격형 성장 모델에 조응하는 혁신 시스템이 밑받침되어 왔다.

추격형 혁신 체제에서는 선택과 집중 원리에 의해 선별된 산업 부문과 경제 주체를 중심으로 지식 자원을 집중하는 형태의 과학 기술 활동이 이루어져 왔다. 추격형 혁신 체제의 작동 방식을 간추려 말하자면 수월성을 근간으로 한 선별적 자원 배분이나 공공 연구 기관이 매개하는 대형 국가 연구 개발 사업을 통한 시스템 기술의 개발과 대기업에 확산하는 구조, 혁신 주체별 각개약진식의 칸막이 조직 중심의 지원 방식, 부처별 및 부처 내 국별 경쟁 시스템에 근거한 정책 프로그램 기획 및 집행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의 조직 방식은 혁신 주체의 역량이 미약하고 목표로 하는 기술과 시장이 확실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모방과 추격의 혁신 시스템으로 작동하였다.

이와 같은 추격형 성장 시스템의 작동 원리는 보편 교육 확대, 산업 기반 확대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혁신 주체들의 역량 강화라는 긍정적인 사회 효과와 더불어 다른 한편 중소기업 하도급 구조와 지방으로부터 소득 유출, 지식 자본의 소수 집중 등 사회 불평등을 초래하는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더구나 추격형 시스템의 성장 잠재력이 축소됨에 따라 숙련 절약형 노동 구조, 양극화 심화, 연구 개발 투자 대비 성과 창출 지체 등 추격형 시스템 실패로 보이는 현상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창조 경제는 추격형 성장에서 작동했던 혁신 체제를 창조형 혹은 탈추격형 혁신 체제로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적 전환이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하나의 경제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하는 이러한 조직-제도 원리는 그 변화가 매우 더디게 일어난다. 즉 시스템 수준의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하나의 성공적인 시스템의 안착은 정책이나 제도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체화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체화되어 성공적으로 작동된 시스템은 경로의존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모방형 체제가 작동하기 위해 경제 정책이 기획되고 운용되는 방식, 기업의 일하는 방식, 숙련을 조직하는 방식, 연구 개발을 수행하는 방식 등이 사회 경제 시스템 내에 착근되어 있다. 더구나 기존 체제에서 성장의 과실을 나누어 가진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책적 구호나 제도의 기능이 바뀐다고 해도 혁신 주체의 행위 방식이나 자원 배분 및 이익 분배 방식의 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스템 전환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창조 경제 실천 과제들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담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나 조직, 규율, 분배 원리 등에서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창조 경제와 사회적 혁신

그렇다면 이제 창조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려스러운 것 중 하나는 현재 정부의 창조 경제 논의가 개인의 아이디어, 창의적 인재, 개인 창업 등 개인의 창의성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방과 추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진작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그러나 창조 경제의 주역을 ‘개인’으로 설정하였을 때 두 가지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 첫째, 혁신은 사회적 과정이라는 측면이다.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듯이 혁신 활동은 다양한 주체 간 관계에 의해 상호 영향을 받는 사회적 과정이다. 따라서 개인의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확산되는 혁신의 역동성을 상실하기 쉽다. 혁신은 지식 생산과 확산이라는 과정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이 전제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혁신에 따르는 높은 위험을 사회적으로 흡수하고 완충하는 장치가 부실한 상태에서 개인의 창조성에 근거한 창업을 강조하다보면 자칫 개인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가 되풀이될 수 있다.

둘째, 이윤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즉 공공적 성격의 혁신이 간과되기 쉽다. 최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식량, 물 등 자원 공급의 한계, 식품 안전, 고령화 사회 진입 등의 환경 변화는 과학 기술 활동에 중요한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의 모색과 이를 위한 에너지, 교통, 주택, 의료, 식량, 안전 등 분야에서 사회적 혁신 활동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혁신 활동은 개인의 창의성이나 이윤 동기에 기반을 둔 혁신 활동으로 환원하기 힘든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혁신은 국민의 생활 편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혁신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참여 하에 공공 영역에서 개발과 전달-확산의 구조가 설계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사회적 혁신은 새로운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발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역사를 통해 볼 때 새로운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도래는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이나 커뮤니케이션 및 이동과 관련된 시스템의 발전과 궤를 함께해 왔다. 1800년대 중반 시작된 증기 패러다임에서는 증기기관 철도, 우편과 전신, 대규모 항구 등의 인프라가, 1900년대 초 시작된 대량 생산 패러다임에서는 고속도로, 공항, 송유관 네트워크, 보편적 전기 공급 등의 인프라 발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즉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 나갈 동력으로서 기술의 추동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런 기술을 채택한 새로운 인프라나 기존 인프라의 재정의(redefine)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에는 새로운 기술을 담은 사회 인프라에 대한 장기 투자를 통해 새로운 기술적 기회를 모색하고 그 확산 과정에서 민간 혁신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탄소 제로 도시의 건설이나 신교통수단 노선 건설, 신재생에너지 기술 도입, 스마트 그리드 기반 에너지 전달 체계, 모바일 진단 기기와 결합한 예방 중심의 보건 의료 시스템 개발 등은 새로운 에너지원과 전달 및 이동 기술에 대한 모색과 함께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회적 혁신의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부문들은 사회 인프라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고 한번 정착하면 고착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자원 배분과 수익 분배 체계를 ‘공공성’ 가치 하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의 조직 방식과 이러한 사회적 혁신의 결합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러한 사회적 혁신 활동은 국민 생활의 ‘수요’에 기반을 둔 혁신 활동이라는 점에서 창조형 혁신 시스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까지의 추격형 혁신 활동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에서 기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모방하고 학습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기 때문에 수요를 염두에 두지 않은 혁신 활동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혁신 활동은 국민의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의하고 수요에 기반을 둔 혁신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공급 중심적 기술 기획에서 수요 기반의 기술 기획으로, 기존의 모방 중심의 기술 학습에서 문제 정의와 해결 중심의 기술 학습 능력으로 변화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기술 기획과 확산 관행의 변화는 바로 창조 경제의 요체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창조 경제의 윤곽이 드러나고 계획의 실행 단계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창조와 혁신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다시 한 번 필요하다. 창조와 혁신은 고정되어 있는 정태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 및 경제 주체들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그 발전 방향이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동태적 실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창조 경제의 목표로 국민 경제의 성장과 함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며, 특히 ‘새로운 성장-혁신 시스템으로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시스템 전환이라는 관점을 취하면 정책 지원 프로그램의 내용과 함께 자원 배분, 기술 개발의 방식과 확산 구조, 정책 기획의 거버넌스 구조, 이익 분배 메커니즘 등 과정 중심적 접근에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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