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부의 카드사 대책에 대한 참여연대의 입장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추궁 포기, 도덕적 해이 부추겨



-적기시정조치 발동, 카드채 매입 가격의 현실화,

실질적 의사결정자의 증자 책임 등 보완되어야

1. 지난 3월 11일 검찰의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 수사 발표 이후 금융불안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카드채 편입 투신사 펀드에 대한 환매요구가 쇄도하고 채권시장의 거래가 사실상 마비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그 주요원인 중의 하나로, 지난 몇 년간 과당경쟁 또는 심지어 불법영업을 통해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시도하였던 카드사들의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 결과 카드채를 대량보유하고 있는 투신사에 대한 신뢰가 크게 악화되었던 것이 지적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3월 17일 카드사 종합대책을 내놓았고 이것으로도 금융불안이 진정되지 않자 4월 3일 이른바 5조원의 브릿지론 조성을 통한 카드채 매입 및 4.6조원의 카드사 증자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였다.

최근의 채권시장 동향이 카드업계 및 투신업계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시스템 위기 상황인지 또는 국내외 경제환경의 악화에 시장이 과잉반응한 결과 나타난 일시적 유동성 부족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시행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시스템 위기 상황이든 또는 일시 유동성 부족 상황이든, 금융불안의 확산을 막는 것은 정부의 고유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는 현재의 정부 대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카드사와 투신사의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그리고 감독기관의 감독부실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오직 이미 드러난 문제를 은폐하고 미래로 이연시키는 데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킨 건전한 금융기관과 원칙을 어긴 부실 금융기관을 구분하지 않고, 감독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부관료가 오히려 안정대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금융불안은 새로운 형태로 그리고 보다 큰 규모로 재연될 뿐이다.

현재의 카드사 대책은 99년의 대우채 처리 대책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채권시장 안정기금이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부실경영에 대한 차별화된 제재(penalty) 부과 없이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최근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대해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하며, 이에 대한 책임규명 및 보완대책을 요구한다.

첫째, 부실카드사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발동 포기 문제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점은, 이번 카드사 대책이 아무런 법적 근거를 갖지 않는, 즉 관치금융의 재연이라는 사실이다.

카드사를 비롯한 여신전문금융회사도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에 의한 적기시정조치의 대상이 된다(시행령 제2조의1). 그 결과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기초한 여신전문금융감독규정의 제16조 내지 제23조에는 경영실태분석 및 적기시정조치에 대한 상세한 규정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경영개선 권고·요구·명령 등으로 이어지는 적기시정조치의 발동조건 및 조치의 내용들이 열거되어 있으며, 특히 최근 이 감독규정이 개정되면서(2003.1.29) 카드사에 대해서는 조정자기자본(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에 해당) 요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및 대손충당금 적립기준이 강화되었고, 4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되어 있다(부칙).

또한 금융감독원장은 경영실태분석 및 평가 결과 경영지도비율이 악화될 우려가 있거나 경영상 취약부문이 있다고 판단되는 여신전문금융회사에 대하여 이의 개선을 위한 계획 또는 약정서를 제출토록 하거나 당해 금융기관과 경영개선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여신전문금융감독규정 제8조).

참여연대는 금융감독당국이 개별 카드사의 경영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야말로 금융감독당국의 직무유기이다. 또한 참여연대는, 일부 카드사의 경우 적기시정조치의 적용 또는 경영개선협약의 체결이 불가피할 정도로 심각한 부실상황에 이르렀다고 보는 시장참여자들의 판단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과잉반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카드사의 연체율(그나마도 보유자산 기준에서 관리자산 기준으로 완화한) 이외에 그 어떠한 경영지표(특히 조정자기자본비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이번 카드사 대책이 법령에서 정한 적기시정조치 등의 근원적 대책을 포기한 관치금융이며, 부실 카드사의 처리 문제를 미래로 이연시키는 미봉책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올 하반기 한국경제를 둘러싼 거시적 환경이 개선되고 이에 따라 카드사의 손익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을 기대하는 ‘천수답 농사’라는 것이다.

적기시정조치의 원래 취지는 일정 기준 미달시 자동 발동함으로써 감독정책상의 자의성과 금융기관 경영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물론 여신전문금융감독규정 제20조에는 일정 조건하에 적기시정조치의 발동을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아무런 근거제시 없이 특히 기본적인 경영실태 관련 정보제공 없이 적기시정조치 발동을 자의적으로 유예하는 것은 적기시정조치의 도입 취지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건전한 금융기관과 부실한 금융기관 사이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시장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확대하고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금융감독당국은 카드사의 경영실태 현황을 정확히 공개하고, 부실한 카드사에 대해서는 적기시정조치를 예외 없이 발동하며, 정녕 금융시장의 불안이 우려된다면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매입(금융기관부실채권의효율적처리및한국자산관리공사설치에관한법률 시행령 제2조)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부실 금융기관의 퇴출을 두려워해서는 금융개혁을 추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위기관리에도 실패할 것이다.

둘째, 브릿지론을 통한 카드채 매입 과정의 문제

4월 3일 금융시장 안정대책의 핵심내용 중 하나는 은행·보험사 등이 조성한 5조원의 브릿지론을 통해 투신사 펀드가 보유한 카드채를 매입함으로써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서’ 투신사를 지원했던 99년 대우채 처리 때의 채권시장 안정기금과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법적 근거 없이 관치금융으로 5조원의 브릿지론을 조성한 근본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브릿지론이 최소한의 경제적 합리성을 갖기 위해서는 카드채의 매입가격(즉 할인금리)이 카드사와 투신사의 부실경영에 대한 엄정한 제재(penalty)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현실화된 가격, 특히 개별 카드사의 경영실태를 정확히 반영한 차별화된 가격이어야 한다.

4월 중 만기도래하는 카드채는 장부가와 기준가(채권평가사가 산정한)와 평균가격으로, 5, 6월중 만기도래하는 카드채는 기준가로 매입하기로 하였으나, 개별 카드사의 부실상황에 대한 정보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은 현실에서 카드채 매입가격이 부실경영에 대한 차별화된 제재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카드채 매입시 충분한 제재 없이 유동성 공급만을 강조하면, 카드사와 투신사의 부실경영을 사실상 면책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자구노력을 이행할 유인이 없어지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것이다. 나아가 채권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금융불안을 장기화하는 역효과를 야기할 것이다.

한편 일부 부실 카드사와 부실 투신사는 옵션CP(신용등급이 2단계 이상 하락하지 않는 한 3개월마다 자동적으로 만기연장(roll-over)되는 옵션을 붙인 CP, 즉 단기 CP를 가장한 사실상의 장기 카드채)를 발행하고 MMF에 편입하는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옵션CP마저 브릿지론으로 매입해준다면 이는 원칙을 지킨 금융기관은 손해를 보고 불법행위를 한 금융기관은 오히려 이익을 보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감독당국은 옵션CP라는 부실 금융기관의 불법행위를 사실상 방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손실을 건전한 금융기관에 전가한 셈이 된다.

따라서 금융감독당국은 브릿지론을 통한 카드채 매입가격을 충분히 현실화·차별화함으로써 부실경영에 대한 제재 효과를 분명히 하여야 하며, 아울러 옵션CP와 관련한 불법행위는 엄정히 적발·제재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왜곡된 카드사 대주주의 증자 책임

부실 금융기관이 증자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제고하는 것은 자구노력의 핵심이며, 그 과정에서 주주, 특히 지배주주(controlling shareholder)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지배주주의 책임은 사실상의 이사(shadow director)로서 또는 경영 감시자로서의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며, 금융기관 지배주주의 경우 그 책임은 더욱 엄격하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이상의 논리가 한국에서는 대단히 왜곡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즉 지배주주의 책임을 법률적인 것이 아닌, 계열사의 부실을 메우는 도의적 책임 또는 정부의 암묵적 개입을 포장하는 수사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증자를 통해 지배주주에게 책임을 물을 정도로 부실이 심화되었다면 당연히 그 부실 카드사의 경영진에게는 엄격한 책임이 이미 부과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카드업계 전체로 4.6조원의 증자가 필요할 정도로 부실이 심화되었는데, 어느 카드사의 경영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소송은 고사하고 경미한 징계조치나마 부과된 바 없다.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도 없이 곧바로 지배주주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야기된 것이다. 이것이 적기시정조치 등 적법절차를 통한 증자명령과 관치금융에 의한 증자명령의 차이이다.

한편 지배주주는 단순한 대주주가 아니다. 지배주주는 피지배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를 말한다. 이것은 지배주주가 자연인이 아니라 법인인 경우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즉 카드사의 대주주 법인이 부실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piercing the corporate veil), 그 책임은 당연히 대주주 법인의 지배주주에게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예컨대 삼성카드의 부실에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가 대주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이사회와 그 지배주주인 이건희 회장 역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증자참여로 미봉한다면, 이는 이건희 회장 등 실질적 의사결정자의 책임을 소액주주들에게 전가하는 배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것 또한 적기시정조치 등 적법절차를 통한 증자명령과 관치금융에 의한 증자명령의 차이이다.

참여연대는 이미 삼성전자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 삼성전자가 사업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카드업에 지분율 56.59%의 최대주주로 참여한 것 자체가 그룹차원의 잘못된 의사결정이었음을 지적하고, 삼성전자가 또다시 삼성카드의 증자에 참여한다면 이는 삼성자동차에 대한 부당지원 사례를 되풀이하는 것이므로, 증자참여 거부는 물론 차제에 카드업으로부터 완전 철수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삼성카드의 증자가 필요하다면, 이는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이건희 회장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삼성카드 이외에 다른 전업 카드사나 은행계 카드사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금융감독당국은 부실 카드사의 경영진 및 그 실질적 의사결정자(지배주주 또는 모회사 경영진)에 대한 제재 없이 계열사나 모회사의 소액주주에게 손실을 전가하는 방식의 증자를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부실 카드사의 엄격한 자구노력 강제 없이, 수수료율 인상 등을 통해 카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미봉책을 사용해서도 안된다. 이는 미래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뿐이다.

3. 지난 5년간 한국경제는 15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99년 대우채 처리의 경우 채권시장 안정기금 조성 및 수익증권 원금 보장 등과 같은 터무니없는 도덕적 해이를 범하기도 하였으며, 그 결과 투신사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새로운 금융불안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이번 카드채 사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더구나 이번 카드채 사태는, 대우채 사태와는 달리 수 십년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도 아니며, 오히려 최근 몇 년간의 정부정책의 실패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카드채 문제의 원인제공자인 정부는 다시 한번 관치금융으로 문제를 은폐·지연시키려고 하고 있다.

금융개혁은 부실경영에 대한 엄격한 사후제재를 통해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사전적으로 제어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의 감독실패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부실 카드사와 부실 투신사를 모두 살리려는 헛된 시도를 함으로써 결국 금융불안을 확대·심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관치금융의 낡은 틀을 벗고, 카드사와 투신사의 경영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시장에 제공함은 물론 법령에서 정한 적기시정조치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고 증자 등의 자구노력이 필요한 부실 금융기관의 경우 그 실질적인 의사결정자, 즉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책임을 엄정한 묻는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다.

159조원의 수업료를 지불하고서도 대우채 처리 때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노무현 정부의 개혁 슬로건은 이미 낡은 것이 될 뿐이다.(끝)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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